# 273
현질 전사
-12권 1화
Chapter 68. 최후의 몬스터 브레이크
반가워하는 부대원들을 보고 정대식은 씩 웃으며 말했다.
"한창 몬스터들이 몰려오는 중인데, 놈들을 때려잡을 생각을 해야지."
정대식이 내려서는 것을 보고 기철민이 입을 열었다.
"물론 그럴 작정입니다. 저 망할 새끼만 처치하고 나면요."
정대식은 광필두를 힐긋 돌아보고 대꾸했다.
"저 자식이 하마터면 널 죽일 뻔했지."
"제 일뿐만이 아닙니다. 모스크바에서 우리 부대원들의 이능을 모조리 빼앗고, 대장님까지도 공격하지 않았습니까! 저 새끼는 범죄자라고요! 거기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지요!"
"맞는 말이다."
"그럼 왜 저 좆같은 새끼가 7성 무구를 다 갖고 있는 겁니까?"
기철민은 격한 어조로 말을 했다. 정대식이 멀쩡한 모습으로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을 보건대, 광필두에게 7성 무구를 강제로 빼앗겼다고 볼 수 없었다.
정대식 스스로 7성 무구를 넘겨준 모양이라 기철민으로서는 분통이 치밀어 올랐다.
광필두로 인해 티르브링어를 아예 못 쓰게 되어버린 탓도 있었다.
정대식은 간단하게 말했다.
"저 좆같은 새끼가 각성자이기 때문이다."
"예? 각성자라면 저놈 말고도......."
"지금은 각성자 한 명이라도 아쉬운 판국이야. 그런데 저 녀석을 다시 각성자 범죄 관리반에 넘긴다고 생각을 해봐라. 한번 도망쳤던 놈이니 재판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엄중하게 감시를 해야겠지. 그 과정에서 낭비될 인력을 생각해봐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차피 지금은 광필두를 넘겨봤자 소용없어. 보다시피 온 사방이 몬스터인지라 정부 관계자들은 다들 혼이 나가 있을 것이다. 사실상 무정부 상태라고 해도 다름없는 상황이지. 그리고 앞으로 혼란은 더 극심해질 것이다."
"그럼 그냥 가두어두면 되잖습니까! 굳이 7성 무구를 안겨주면서까지 싸우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7성 무구는 한자리에 모여 있을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법이고, 광필두가 그 사용에 익숙하니 굳이 다른 자를 찾아서 건네줘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더군."
"저러다가 7성 무구를 갖고 도망치기라도 하면요? 그 뒷감당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정대식은 단언했다.
"도망 못 친다."
"저렇게 멀쩡히 혼자서 돌아다니고 있는데 무슨 수로 그걸 믿습니까?"
"도망 안 치는 게 아니라 못 치는 거야. 내게 특수한 방법으로 종속되어 있으니 절대로 도망 못 쳐. 내가 보증한다."
정대식이 자신 있게 말을 하자 기철민은 할 말이 없어져 버렸다. 무슨 수를 쓴 건지는 몰라도 정대식이 광필두를 조종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광필두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는 아까부터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기묘한 마음 상태에 대해 깨달았다.
광필두는 자신을 핍박한 이 세상에 털끝만큼의 애정도 없었다. 망하든 말든 별 상관없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도망을 치기는커녕, 정대식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고 있었다.
스켈을 처치했을 뿐만 아니라 다음 사냥감을 찾아 나서기까지 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런 자신의 앞을 펜리르 부대원들이 가로막았을 땐 짜증스러움까지 느꼈다.
위험한 상황에서 네 편 내 편 따지고 있는 게 한심스러웠던 것이다. 그런 것까지 정대식의 사고방식을 꼭 빼닮아 있어, 광필두는 자신이 진짜로 정대식에게 종속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심지어는 그 사실에 격렬한 거부반응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광필두는 그저 미간을 찌푸린 채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대체 내게 무슨 짓거리를 한 거냐, 정대식."
정대식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너도 봉인이나 결계 따위에 처박혀 있느니 조금이라도 거드는 편이 나을 텐데? 혹시 모르지. 네가 이번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지난날을 진심으로 뉘우친다면 네 죄가 경감이 될지도."
광필두는 정대식의 말속에서 묘한 단어를 집어냈다.
"......전쟁이라고?"
정대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전쟁."
정대식은 좌우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분명하게 말해두지. 이건 여태까지 일어났던 몬스터 브레이크와는 완전히 다르다. 이것은 인류의 생사를 건 최후의 전쟁이 될 것이고, 우리가 몬스터들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지구 문명은 끝장날 것이다."
정대식이 하는 말에 펜리르 부대원들도 광필두도 아무 말을 못 했다.
지금 사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은 굳이 생각을 해보지 않아도 뻔히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거의 모든 던전이 터지다시피 해 몬스터가 대량으로 뛰쳐나왔고, 그 종류나 강력함도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전 세계가 이런 상황인 것 같으니 외부에서의 도움을 기대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가장 뛰어난 능력자를 보유하고 있는 한국이 수도를 방어하는 데만도 이렇게 애를 먹고 있다면 다른 나라의 상황은 아비규환일 게 뻔했다.
그러니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손에 세상의 운명이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그때, 항변하는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이봐요! 너무 억측이 심한 거 아녜요?"
말을 한 사람은 타이탄 부대에 지원 요청을 했던 매그넘 공격대의 사람들이었다.
개중 좀 직위가 있어 보이는 자가 앞으로 나서서 말을 했다.
"당신이 올인원 정대식이라는 사실은 잘 알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예언 능력은 없잖아요. 인류 문명의 멸망이니 뭐니 하는 말은 좀 오버 아닙니까?"
괜한 공포 분위기 조성하지 말라는 식으로 하는 말에, 정대식은 침묵했고 그 사람은 기세를 더욱 올려 말했다.
"지금 몬스터 브레이크의 규모가 심상찮다는 사실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헌터가 없던 십 년 전에도 어떻게든 이겨냈잖아요? 한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각성자들의 수도 더욱 늘어났고 전투 기술이나 무구, 아이템 같은 것들도 더 발전했잖아요. 솔직히 말해서 인류가 멸망할 수준은 아니라고 봅니다."
아무래도 그 사람은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정대식의 언행을 경계하는 모양이었다.
정대식과 같이 거대한 힘을 가진 인물이 세상이 망하니 뭐니 선동을 하면 거기에 휘말릴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대식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확장되어 몬스터가 아니라 그가 세상을 집어삼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대식은 항변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당신 말이 맞습니다. 인류는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우리가 반드시 이길 겁니다."
순순히 수긍하는 말에 그 사람도 할 말이 없어졌다.
그러던 때였다.
별안간 하늘이 시커멓게 어두워지며 땅이 심하게 흔들렸다.
지진이 아니라 지속적인 진동이 계속되고 있어 분위기가 심상찮았다.
정대식은 즉시 스킬을 사용해 상황을 살펴보았다.
"천리안."
잠시 먼 곳을 응시한 정대식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아무래도 신속하게 이동해야겠습니다."
기철민이 조심스레 물었다.
"뭐가 나타났습니까?"
기철민의 말에 정대식은 가급적 담담하게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담담하게 말을 해도 듣는 사람들은 몽땅 겁에 질리고 말았다.
"뭔지는 몰라도...... 최소한 15성급이라 짐작되는 몬스터로 보인다."
15성급이라니!
정대식에게 항변하던 사람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15성급으로 알려진 몬스터는 러시아를 집어삼킨 5대 거신 중 암흑신인 체르노보그가 유일했다. 한데 거기에 버금가는 몬스터가 이 땅에 나타났다고?
그게 사실이라면 그는 자신이 한 말을 철회해야 할 터였다.
광대한 러시아 땅을 자신의 영역 아래 두었던 체르노보그와 같은 놈이 나타날 정도라면, 인류의 멸망을 운운해도 이상치 않은 것이다.
"모두 준비는 됐겠지?"
정대식은 펜리르 부대를 돌아보며 말했고,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매그넘 공격대원들은 당신들 미쳤냐고 말을 하고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15성급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다. 최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근처에 있는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그 이동을 막는 것이 최소한일 터였다.
그런데 그들은 싸우러 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말을 하고 있었다.
매그넘 공격대원들은 그들을 말리기 위해서 입술을 뻐끔거렸으나 그 말을 실제로 입밖에 내뱉지는 못했다.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정대식이 서지원을 눈짓했고, 곧 그가 자신의 이능을 펼쳤던 것이다.
"공간 이동!"
* * *
그들이 도착한 곳은 원래 던전이 있었다고 짐작되는 산자락이었다.
산등성이 사이로 나타난 것은 터무니없이 거대한 머리였다.
모양새는 다소 우스꽝스럽게 생겼는데, 천하대장군을 모가지만 잘라놓은 것처럼 툭 불거져 나온 눈에 눈알이 뒤룩뒤룩 구르고 있었고 소 불알처럼 축 늘어진 코와 수염으로 뒤덮인 얼굴, 그리고 함지박만 하게 큰 입을 갖고 있었다.
"우와, 이상하게 생겼어!"
허미래가 하는 말을 듣고 고덕화가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전에는 관측된 적 없는 종류 같군. 머리통만 있는 것이 라푸처럼 생겼네."
"그게 뭔데?"
이재우의 질문에 고덕화가 간단히 말했다.
"인도 신화에 나오는 악마."
"라푸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겉보기로는 체르노보그만큼 강할 것 같지가 않은데? 저렇게 머리통만 있어서야 싸울 수나 있겠어?"
이재우는 그렇게 말을 했으나 그것은 그의 판단 착오였다.
라푸의 등장에 놈을 상대할 만한 각성자가 나타날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함인지, 전투기가 등장했다.
쐐애애애애액-!
날카로운 파공음을 내며 날아가는 전투기들은 섣불리 공격을 못 하고 있었다.
괜히 선공을 날렸다가 자극했다가는 모조리 몰살하는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판단은 현명했으나 라푸의 머리 위를 날아가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전투기들은 엄청난 속도로 라푸를 지나쳐갔으나 그 순간, 라푸가 입을 쩍 벌렸고 거기로 전투기들이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 버렸던 것이다.
전투기들은 세찬 바람에 휩쓸린 종이비행기처럼 비틀거리다 라푸의 입안으로 사라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라푸의 입안으로 산 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나무들 역시 몽땅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스으으으으으으읍-!
나무들이 우지끈 소리를 내며 부러지거나 뿌리째로 뽑혀 라푸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서서히 그 범위가 넓어지고 있어서 거세지는 기류가 펜리르 부대에도 느껴졌다.
"엄청난 놈이다! 그냥 입만 벌렸을 뿐인데 주위에 있는 것들이 다 빨려 들어가고 있잖아?"
"저런 놈이 산중을 벗어나 민가로 내려왔다가는 끔찍한 꼴이 벌어지겠어."
산을 민둥산으로 만들어 놓고서야 입을 다문 라푸는 서지원과 김송근의 말에 대꾸라도 하듯이 산 아래로 둥둥 떠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산 바로 밑에 조그만 마을이 자리해 있었기에 그들은 지체 없이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러면서 정대식이 신속하게 명령을 내렸다.
"허미래! 저 대갈통이 더 이상 이동하지 못하도록 제자리에 묶어놔야겠다!"
"예!"
"김송근과 이재우는 같이 움직여! 김송근이 거대 분신을 만들어내 놈을 상대하고 이재우가 그걸 거들어라!"
"예썰!"
"고덕화와 서지원은 후방 지원을 맡는다. 기철민과 엔트로피는 놈의 전력이 약해지길 기다렸다가 일격을 먹인다! 그리고 광필두와 내가 막타를 치겠어!"
15성급이나 되는 몬스터를 상대로 시간을 끄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던전이 아닌 이상은 더더욱 그랬다.
정대식은 단번에 거대한 대갈통을 반으로 갈라버릴 생각을 했으나, 기철민이 말했다.
"대장님! 죄송하지만 티르브링어는 쓸 수가 없습니다!"
"뭐?"
"요전번 광필두와 싸우다 날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어요!"
기철민은 그렇게 말하며 대열의 맨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광필두를 노려보았다.
정대식의 뜻에 의해 그들과 함께 행동하고 있는 광필두는 아무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