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4
현질 전사
-12권 2화
정대식은 어쩔 수 없이 광필두를 턱짓하고 말했다.
"어이, 광필두! 기철민에게 검을 넘겨줘라!"
광필두에게는 검 외에도 활과 창이 있으니 괜찮을 터였다. 그러나 광필두는 7성 무구를 누군가에게 맡긴다는 것 자체가 탐탁잖았는지 오만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저항은 오래지 못했다. 그는 마지못한 기색으로 딜라이트 소드를 풀어 기철민에게 집어 던졌다.
"받아라."
기철민은 그걸 낚아채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더 이상 입씨름을 할 시간은 없었다.
라푸가 있는 산 아래 다다라 허미래가 디버프를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포스 오브 그래비티! 와이어! 네팅! 위켄!"
허미래는 한꺼번에 무려 세 가지나 되는 디버프를 썼다.
그러자 산 밑으로 내려오던 라푸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곧 김송근과 이재우가 거대 분신과 그림 구현을 했다.
"제 2분형, 거대 분신!"
"작품명, 괴수 작살!"
김송근과 똑같이 생긴 거대한 분신 둘이 나타나자 그들의 눈앞에 이재우가 구현화 해낸 커다란 작살이 나타났다.
거대 분신들은 그것을 낚아채고 곧장 라푸의 얼굴을 내리찍으려고 했다.
그 순간, 라푸가 또다시 입을 쩍 벌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러자 그 안에서 엄청난 광풍과 함께 조금 전에 놈이 삼켰던 나무들이 도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작게는 차만 하고 크게는 집채만 한 나무들이 날아와 온 사방에 처박히니 유성추가 날아오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때 고덕화와 서지원이 반격을 시작했다.
"공간 왜곡!"
서지원의 술수로 인해 공간이 뒤틀리며 나무들이 도로 라푸에게 날아갔다.
때를 맞춰 고덕화가 천강벽수선을 휘둘러 반격에 위력을 더했다.
"천리동풍!"
콰콰콰콰콰콰콰콰콰!
라푸가 토해내는 나무들과 도로 라푸에게 날아가는 나무들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 와중에 정대식이 엔트로피를 불러냈고, 곧 엔트로피와 기철민이 공격 태세를 갖추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천노참격!"
"무적권!"
콰아아아아아아아아!
딜라이트 소드가 빛을 뿜어내고 엔트로피의 주먹이 불을 뿜었다.
그 공격에 연이어 정대식과 광필두가 일격을 가했다.
"으랴아압!"
"하아아압!"
정대식이 온몸으로 내쏜 마력창이 라푸의 머리통을 강타했다.
거의 동시에 광필두의 궁니르가 놈의 정수리를 꿰뚫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마력이 어지러운 빛으로 소용돌이치며 일시에 라푸의 모습을 가렸다.
잠시 후, 한 차례 소요가 지나고 드러난 라푸의 모습은 괴이쩍었다.
라푸의 정수리는 기철민에게 천노참격을 얻어맞은 탓인지 가운데가 푹 패여 있었다.
그 주변으로 엔트로피의 무적권이 내리꽂힌 자리도 보였다.
그것은 정대식과 광필두가 공격한 안면도 마찬가지였다.
궁니르가 꿰뚫었던 미간엔 커다랗게 구멍이 뚫려 있었다.
정대식의 마력창이 쏟아진 부위도 같았다.
마치 벌집처럼 구멍이 뻥뻥 나 있었다.
그 충격 때문인지 라푸의 눈꺼풀 없는 커다란 눈알이 앞으로 툭 굴러 나왔다.
"으윽."
그로테스크한 광경에 허미래가 헛구역질을 했다. 그러나 그 외에는 그 모든 공격을 전혀 맞지 않은 것 같았다.
마치 찰흙이나 고무와 같은 게 복원이 되는 것처럼, 안면에는 다시 살이 차오르고 정수리도 봉긋하게 솟아올라 멀쩡한 모습이 되었던 것이다.
"대장님!"
그때, 굴러 나온 눈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산 아래를 구슬처럼 탁탁 튕기면서 구른다 싶더니, 별안간 팽이처럼 요란하게 회전했다.
그리고 그 회전력으로 허공에 튕겨 올라 엄청난 속도로 펜리르 부대원들을 후려쳤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
"으아악!"
"억."
눈에도 보이지 않을 만큼 기습적인 공격이라 전부 그 공격에 얻어맞거나 바닥에 깔렸다.
다들 신체 상태가 보통 인간이라 할 수 없을 만큼 강화되어 있는 데다가 제각각 방어구를 착용하고 있었기에 치명상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제 위치에서 밀쳐져 서로가 흩어지고 말았다.
그러기가 무섭게 라푸가 입을 쩍 벌렸다.
쏴아아아아아아아아---------!
대량의 공기가 엄청난 빠르기로 그 입에 빨려 들어가면서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있던 부대원들 몇몇을 허공으로 끌어올렸다.
그러자 부대원 중에서 가장 몸이 가벼운 허미래가 순식간에 새카만 구멍 같은 라푸의 입안으로 딸려 들어갔다.
"허미래!"
놀라서 소리를 치는 정대식보다 엔트로피의 행동이 더 빨랐다.
그녀는 재빨리 마력을 방출해 허미래를 칭칭 휘감아 당겼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식으로 붙잡아 놓았으나 그들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은 전부 다 라푸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실로 엄청난 흡입력이었다.
라푸와 펜리르 부대원들 주위에 있는 것을 뿐만이 아니라 반경 몇 킬로미터 내의 모든 것들이 라푸의 입안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거의 허리케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건물과 전신주, 차들이 허공을 날았고 아스팔트와 콘크리트가 벗겨져 일어났다.
라푸의 흡입력이 그 정도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가까이에 있는 펜리르 부대원들은 죽을 맛이었다.
머리털이 몽땅 뽑히는 기분인지라 제대로 눈을 뜰 수도 없었다.
라푸의 주둥이에 영향을 덜 받는 사람은 마기전을 착용한 정대식과 브릴리언트 아우라 아머를 착용한 광필두뿐이었다.
거의 자연재해, 아니, 재앙 수준인 라푸의 공격은 한참 만에야 멈추었다.
놈이 흡입을 그치고 났을 때는 일대에 남아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태초의 지구처럼 헐벗은 모양새였다.
라푸는 어처구니없게도 그 모든 것을 삼키고 포만감이라도 느끼는 것인지 트림을 꺽 했다. 그러자 라푸의 눈구멍에 다시금 그 괴이쩍은 눈알이 툭 하고 튀어나왔다.
아까 라푸가 사방에 있는 것을 몽땅 빨아들였을 때 그 눈알도 그 입속으로 딸려 들어갔던 것이다. 그걸 눈으로 다시 토해내는 모양새인지라 기가 막혔다.
정대식은 저 불쾌하기 짝이 없는 놈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처치하기로 마음먹었다. 지나친 파괴력으로 사용하지 않으려던 마괴결을 써야겠다 싶었던 것이다.
그는 광필두를 힐긋 보고 물었다.
"7성 무구 중 하나인 방패, 스비에스키를 갖고 있겠지?"
광필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스비에스키를 쓴다면 네가 가진 마력으로 얼마만 한 범위를 커버할 수 있겠나?"
"그건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지."
"......서지원도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정대식은 서지원을 손짓했고 간략히 작전을 설명했다. 서지원은 자신 없는 표정이었으나 물러설 수 없었기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정대식은 나머지 부대원들에게도 빠르게 지시했다.
"지금부터 너희들이 저놈을 유인해줘야겠다. 내가 도발로 주의를 끌어줄 테니 놈을 벌판으로 이끌어!"
"알겠습니다!"
정대식은 스킬을 썼다.
"도발!"
라푸가 커다란 눈을 뒤룩뒤룩 굴려 정대식을 노려보았다.
정대식은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고 부대원들이 제각각 공격을 가하며 서서히 몸을 뺐다.
그러자 자극을 받은 라푸가 다시 허공을 둥둥 떠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놈이 전방으로 흡입력을 펼쳤기에, 아직 뒤편으로는 산이 고스란한 상태였다.
만약에 지금 놈이 있는 자리에서 정대식이 힘을 풀어버리면, 그 산이 몽땅 다 뭉개질 판국이었으므로 가급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라푸에 의해서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벌판으로 데려오려는 것이었다.
정대식은 스킬의 효과를 거두어들였고 라푸의 주의는 부대원들에게로 돌아갔다.
부대원들은 제각기 흩어져 있었기에 놈은 어지럽게 눈을 굴리고 있었다.
그렇게 놈의 시선이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틈을 타, 정대식은 마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내 마력을...... 한계까지 응축한다!'
정대식은 마괴결을 만들어내기 위해 자신의 안에 있는 모든 마력을 끌어냈다. 그리고 그것을 손안에 밀어 넣었다.
곧 검푸르게 이글거리는 마력의 응집체가 나타났다.
그것이 이윽고 블랙홀처럼 완전한 암흑으로 새카맣게 변했다. 그러자 그 표면이 일렁거리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대식의 제어력을 넘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정대식에게도 위험할 수 있을 만한 공격력이었으므로, 정대식은 정신을 집중한 채로 그것을 허공으로 띄워 올렸다.
그러기가 무섭게 서지원이 즉시 부대원들을 공격범위 밖으로 이동시켰다.
"공간 이동!"
파슛!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정대식은 진땀을 뻘뻘 흘렸다.
엔트로피가 곁에서 의식을 펼쳐 그의 집중을 도왔고, 이윽고 새카만 구체는 평평하게 펼쳐졌다.
그것은 라푸의 머리 위에 뜬 비행접시처럼 보였다.
비행접시라기에는 기이한 검은 빛을 띠고 있었고, 라푸 역시도 그것이 심상찮음을 알아본 것이 분명했다.
놈은 그 공격력까지도 흡입하겠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다시금 엄청난 광풍이 불며 주위의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는 가운데, 정대식은 마괴결 쪽으로 뻗쳤던 오른손을 꾹 내리누르며 고함을 질렀다.
"짜부라져라!"
그러자 쟁반처럼 넓게 펼쳐진 마괴결이 라푸의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그러면서 엄청난 압력과 무게로 라푸를 짓뭉개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라푸가 강제로 입을 다물었고, 대신에 두 눈이 또다시 툭 튀어나왔다.
그게 곧장 정대식에게로 달려들었으나 광필두가 나서 궁니르로 그것을 쳐냈다.
쾅!
쾅!
쇳덩이가 부딪치는 굉음이 울렸으나 정대식은 그쪽을 쳐다보지 못했다.
그는 한계까지 집중력을 발휘하며 라푸를 뭉개는데 전력을 다했다.
"찌그러져!"
정대식은 이를 악물고 오른손을 꾸욱 내리눌렀다.
그의 의식이 마괴결과 이어져 있기에 그는 실제로 라푸를 손으로 짓누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라푸는 엄청난 반탄력으로 버티고 있었다. 거대한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며 저항하고 있었다. 그러자 정대식의 오른팔 주변으로 마기전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기이한 빛을 내뿜으며 정대식의 오른팔을 마기전이 겹겹으로 감싸고돌았다.
그 바람에 정대식의 오른팔이 점점 더 두꺼워져 힘을 보탰다.
"납작해지라고!"
결국, 정대식은 오른손을 아래로 콱 내리찍었다.
동시에 라푸의 머리가 쇳덩이에 눌린 것처럼 퍽 하고 터졌다.
곧 그 흔적까지 마괴결에 집어삼켜졌고, 정대식의 의식 또한 분산되었다.
집중력이 끊어지자 마괴결에 응집되어 있던 마력이 엄청난 여파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파도처럼 밀려드는 마력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만약에 그걸 그대로 방치해두었다가는 정대식이나 광필두를 휩쓸고 지나쳐 그들 뒤에 자리해 있는 마을이나 도시에까지 이를지도 몰랐다. 그리되면 정대식의 손으로 그것을 파괴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므로, 광필두의 도움이 필요했다.
"스비에스키!"
광필두는 7성 무구 중 그 명성이 가장 드높은 방패, 스비에스키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직경 50cm 정도밖에는 되지 않던 아담한 방패의 크기가 순식간에 1m가량으로 커졌다.
그 영향력은 그보다 더 커져서, 광필두의 마력을 입고 사방을 뒤덮었다. 이윽고 반경 몇 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방어막을 만들어내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파도처럼 번지던 여분의 마력이 거기에 부딪혀 파도를 일으켰다.
물거품처럼 거대한 빛을 터트리며 차츰 그 마력이 품은 공격력이 상쇄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