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276화 (275/297)

# 276

현질 전사

-12권 4화

하중일이 푸념하는 소리를 듣고 그와 함께 왔던 최범수가 말했다.

"헌터는 죽기 직전까지 몬스터와 싸워야 한다는 말이 사실이었나 보죠."

차는 교통체증이 극심한 한강 다리를 간신히 건너서 사령본부에 이르렀다.

정대식은 광필두와 함께 즉시 공대장들이 소집되어 있다는 강당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브리핑이 한창이었는데, 하중일이 말한 대로 공대장이란 공대장은 모조리 소집된 것 같았다.

정대식이 익히 아는 얼굴도 간간이 보이는 와중에 상황 설명이 계속됐다.

"현재 각 열두 개 지점에 대형 MFP가 설치되어 당분간은 몬스터의 접근을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빨간 점으로 표시된 곳이 대피소입니다. 지금 나눠드리는 지도를 참조해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 지도는 차후에 홀로그램 파일로 각자 전송해 드리겠습니다."

앉을 자리를 찾을 수 없어 한 귀퉁이에 서 있던 정대식도 지도를 건네받았다. 지도를 살펴볼 동안 설명이 이어졌다.

"파란 점으로 표시된 부분은 도시의 주요 시설들입니다. 이 빨간 점과 파란 점으로 표시된 지점이 가장 최우선으로 방어해야 할 장소들입니다."

곧 화면이 바뀌며 지도가 사라지고 표가 나타났다.

"이 표를 참조해서 각 공격대와 연합대가 지켜야 할 곳을 확인해보시면 되겠습니다. 이 표에 표시되어 있지 않은 공격대에는 별도의 임무가 부여될 예정이니 브리핑이 끝나고 나서 자리에 남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지금으로부터 두 시간 후에 각 위치로 이동하게 되실 건데, 그 전에 필요한 물품이나 장비들을 보급받으실 수 있습니다. 기본적인 보급품 목록은 입구에서 확인해보실 수 있고, 추가로 필요한 것이 있을 경우에는 별도로 신청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아! 그리고 각성자 전문 병원에 인력이 달리는 고로, 거기로 가주실 힐러 분의 지원을 받습니다."

그때 누군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듯이 언성을 높였다.

"현장에 나갈 힐러도 부족한 판국에 무슨 지원을 받는다는 말입니까?"

뒤이어 다른 사람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왜 보급품 목록에 포션은 없는 겁니까?"

"제일 중요한 게 포션입니다! 부상자가 제때 회복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어요!"

"이 위치 선정은 무엇을 기준으로 이루어진 겁니까?"

"지방 쪽 방어는 어떻게 되는 거죠?"

"MFP 추가 설치는 없습니까?"

"MFP가 어느 정도나 견딜 수 있는 겁니까?"

좌중이 시끄러워지자 황급히 브리핑이 끝났다.

공대장들이 수심과 불만에 가득 찬 표정으로 자리를 떠났고, 정대식은 표의 명단에 이름이 없는 고로 자리에 남았다.

그러자 마찬가지로 남아 있던 공대장 중에 강영후의 모습이 보였다.

"정대식!"

"공대장님."

정대식이 고개를 숙여 보이자 강영후가 뒷전에 선 광필두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떻게 된 거지?"

"설명하자면 좀 깁니다."

그때 강당 안으로 계영일과 각성자 연맹의 맹주와 헌터 협회 쪽 사람 몇 명이 우르르 들어왔다.

아마 그들이 사령부인 모양이라, 자리에 남아 있는 공대장들이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계영일은 공대장들에게 자리에 앉으라 말하고 정대식과 광필두를 눈여겨보았다. 그리고 제일 먼저 정대식에게 말을 걸었다.

"행방이 묘연하다고 들었는데, 제때 돌아와 줬군. 그것도 광필두와 7성 무구를 가지고서 말이야. 과연, 대단한 능력이군."

조금 빈정거리는 어조라고 느낀 것은 기분 탓일까?

정대식은 고개를 꾸벅해 보이고 가급적 간단히 설명했다.

"현재 광필두의 신병은 제가 억류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제 능력으로 그가 종속 계약에 묶여 있으니 제 말은 절대로 거역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7성 무구를 주어 싸우게 하는 편이 옳다고 판단하여 그렇게 했습니다."

"이능 파괴자에게 7성 무구를 넘겨주다니, 지나치게 위험한 일 아닌가? 그자는 심각한 중범죄자다. 그자의 처분에 대해서는 각성자 범죄 전담반에게 맡기는 것이 옳을 거야."

계영일이 미간을 찌푸리고 하는 말에 정대식은 곧장 대꾸했다.

"광필두에 대한 처벌은 이 모든 난리가 지나가고 나서도 늦지 않습니다. 지금은 단 한 명이라도 허투루 쓰는 인력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제가 모든 것을 책임지겠습니다."

정대식이 그렇게까지 말을 하니 계영일도 더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각성자 범죄 전담반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 거라고 첨언하고 본론을 꺼냈다.

"지금 서울 방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안정적인 전력의 확보다! 서울로 보급되는 전력 대부분은 울진과 영광 쪽에 있는 원자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자체 방어 시스템이 가동되고는 있으나 추가 전력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여기에 신에너지 개발 단지가 있다. 마정석에서 전력을 추출해내는 방법을 연구 개발하는 곳인데, 지금 그 기술이 완성 단계에 이르러 시험 가동 중이라는군. 그러니만큼 이곳을 방어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즉, 여러분은 한 시간 안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이곳으로 가야 한다."

계영일은 빠른 어조로 세부 사항을 설명했다.

정대식은 그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있지 않았다.

서울로 들어오면서 본 광경이 어쩐지 마음에 걸린 것이다.

'서울로 오면서 별다른 몬스터를 보지 못했다. 제아무리 MFP가 설치되었다고 해도 서울 인근에 던전이 적은 것도 아니고, 몬스터가 들끓어야 정상인데 이상한 일이다.'

그러던 중에 계영일이 하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다행히 MFP가 제 효과를 발휘하고 있으니 이 에너지 필드에도 MFP를 설치할 예정이다. 보다시피 성능이 좋아서 펄스가 방출되는 즉시 모든 몬스터들을 물러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에 의문이 한층 더 깊어졌다.

'MFP가 몬스터의 접근을 막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몬스터를 물러가게 할 수 있을 정도인가? 하와이 방어기지에서도 섬 자체에는 몬스터들이 득시글했는데?'

정대식은 몬스터들이 없어진 게 아니라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디로 갔는가?

그때였다.

"사령관님!"

누군가 헐레벌떡 달려와 계영일에게 귓속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계영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즉시 정대식을 쳐다보고 말했다.

"지금 즉시 한강으로 가주어야겠다."

"한강으로요?"

정대식이 반문하는 말에 그가 탄식하듯 말했다.

"한강을 따라 몬스터들이 대거 유입됐다."

* * *

정대식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요기를 하던 펜리르 부대를 즉시 호출했다. 그리고 서지원의 능력을 통해 곧장 한강으로 이동했다.

그곳은 이미 한바탕 난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몬스터들이 차량이 꽉꽉 들어찬 다리 위로 기어올라 시민들을 공격하고 있었고, 그 사이로 난입한 군인들이 아무 소용도 없는 총질을 해대고 있어 완전히 아수라장이었다.

"창조!"

정대식은 가급적 어린아이와 비슷한 모습으로 생긴 서번트를 오백 마리 만들어내었다.

그들에게 시민들의 대피를 지시한 뒤 부대원들을 한강에 즐비한 여러 다리로 보냈다.

"각자 다리 하나씩을 맡아서 달라붙는 몬스터들을 처치해!"

서지원이 각자 그들을 한강 주요 다리로 날려 보냈다.

광필두까지 보낸 뒤 자신도 이동했고, 정대식은 눈앞에 놓여 있는 동작 대교로 향했다.

그곳에서 서번트가 이동시키려는 시민 한 명에게 달라붙어 있는 머맨이 보였다. 놈이 날카로운 갈퀴가 달린 발톱으로 옷가지에 매달려 허벅지를 물어뜯고 있었다.

머맨에 물린 사람은 듣기에도 처참한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끄아아아악!"

정대식은 즉시 손가락을 튕겨 작게 응축된 마력탄을 날려 머맨의 머리를 터트려버렸다. 그리고 즉시 그에게로 날아가 포션을 건네주었다.

"괜찮으세요? 이것부터 마시세요!"

"으윽, 으흐흑."

남자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채로 정대식이 주는 포션을 받아 마셨다.

정대식은 그를 서번트에게 맡기고 다리를 넘어서 막 육지로 흩어지려는 머맨의 뒤통수를 과녁에 두었다.

"다중 조준!"

정대식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파바바바바바바밧!

그의 몸에서 무수한 마력탄이 쏟아져 나와 곧장 머맨들의 뒤통수로 날아갔다.

다중 조준을 쓰고 있었기에 단 한발도 빗나가는 법 없이 머맨들의 머리통을 작살내 놓았다.

그렇게 일시에 동작 대교 위의 머맨들을 처치했으나 다리를 따라 물속에서 타고 올라오는 놈들이 끝이 없었다.

그때였다.

"내가 좀 늦었지!"

아까는 보이지 않던 최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녀는 아마도 거대한 몬스터 하나를 상대하다가 급하게 달려왔는지 몰골이 엉망이었다.

머리는 다 뒤집혀 있었고 얼굴도 핏자국과 검댕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러나 허공에 뜬 모습이 그렇게 눈부셔 보일 수가 없었다.

"최희!"

정대식이 그녀의 이름을 소리쳐 부르자 그녀는 씩 웃어 보이고는 호라갈레스를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자 하늘에서 먹구름이 몰려들어 순식간에 어둠이 찾아들었다.

곧, 소용돌이치는 허공에서 벼락의 비가 내리쳤다.

"일렉트릭 쇼크 리콜!"

꽈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한강 일대로 벼락의 폭포수가 쏟아지는데 그 광경이 장엄하고도 무시무시했다.

엄청난 벼락의 폭우가 사정없이 쏟아져 내려 다리 위에 있을 부대원들이 걱정될 지경이었다.

그러나 최희는 펜리르 부대원들이 그것을 피할 만한 충분한 능력이 된다고 판단했나 보았다.

아니면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사태를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쏟아붓는 벼락불에 눈이 다 멀어버릴 지경이었다.

벼락에 이끌려 내려온 전기가 물속으로 퍼졌고 머맨들은 순식간에 맛없어 보이는 튀김이 되었다.

잠시 후, 벼락의 폭풍이 끝나고 나자 한강 위로 무수한 몬스터들의 시체가 둥둥 떠올랐다.

머맨뿐만 아니라 세이렌이며 카니발 옥토퍼스 등 수중 몬스터란 몬스터는 다 있는 것 같았다.

최희는 곧 다리 위로 내려와 물 위에 뜬 사체들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저걸 다 치우는 것도 일이겠군."

정대식은 미간을 찡그렸다.

"......그럴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은데요?"

고오오오오오오!

느닷없이 몬스터들의 시체가 둥둥 떠 있던 한강 한복판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그곳으로 몬스터들의 시체가 빨려 들어가 사라졌다.

한강 물이 모조리 사라지는 게 아닌가 싶을 만한 소용돌이였으나, 자연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마치 다른 공간과 연결되기라도 한 것처럼, 한강에서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지 못한 거대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건......!"

처음에는 문어 모양을 한 괴수가 물 밑에서 기어 나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집채만 한 문어가 그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것이 섣부른 판단이었음을 깨달았다. 문어는 엄연한 머리였고, 그 아래 이족보행형과 흡사해 보이는 신체가 붙어 있었다.

놈의 피부는 점액질의 끈끈한 성분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두 팔 끄트머리에는 갑각류의 커다란 집게발이 붙어있었다.

하반신은 물 밑에 있었기에 어떤 모양새를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괴상한 모양새일 것이 분명했다.

정대식은 즉시 관측 스킬을 사용해 보았다. 그러자 절망적인 결과가 나왔다.

'젠장, 저놈은 15성급이다! 이제 뭐만 나타났다 하면 15성급은 아주 우습군! 15성급이면 처치할 수는 있다고 하지만 나타난 위치가 안 좋아!'

한강은 서울 시내 한복판을 관통해서 흐르고 있었고 저 문어 괴수는 동작 대교와 한강 대교 사이에서 나타난 상태였다.

놈이 난동을 부리기 시작하면 최소한 두 개의 다리가 부서져 버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서울 일대가 온통 쓰나미에 휘말릴 수도 있었다.

지금 문어 괴수가 나타난 것만으로도 한강의 수위가 높아져 한강 둔치 일대가 수해라도 난 것처럼 몽땅 물에 잠겨 있었다.

게다가 점점 수위가 높아지고 있어 꾸물거릴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떤 방식으로 놈을 처치해야 할지 적잖이 난감했다.

이런 데서 마괴결을 쓰면 그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모른다.

광필두가 7성 무구로 그것을 막아낸다 하더라도 이곳은 시가지가 지나치게 가까웠다.

충격이 온전하게 상쇄되리라는 보장이 없었으므로 섣불리 힘을 풀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관측으로 살펴본 결과, 공략할 만한 곳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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