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7
현질 전사
-12권 5화
놈의 문어 대가리 아래, 그러니까 사람으로 치자면 목젖 즈음에 해당하는 부분이었다.
놈은 머리통이 컸고 문어 모습을 하고 있으니만큼 수많은 다리가 머리통 주변을 수염처럼 감싸고 있어 그 위치를 공략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최희가 곁에 있다는 거였다. 그녀와 함께라면 어떤 식으로든 처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정대식이 말했다.
"협공합시다!"
"좋지, 방법을 말해봐!"
최희의 호쾌한 대답에 정대식이 설명했다.
"간단합니다. 제가 저 문어 다리를 회칠 테니 머리통 밑에 숨겨져 있는 약점을 노리세요."
"약점이라고?"
"다리 사이에 있는, 턱밑에 숨겨진 입일 겁니다. 집게발 공격은 저와 제 부대원들이 최대한 막아낼 겁니다."
"알겠어!"
최희가 즉시 허공을 날았고 정대식은 온몸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나마 목표물이 큼직해서 엉뚱한 것을 맞힐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는 게 위안이 되었다.
정대식은 정신을 집중해 스킬을 썼다.
"조준."
연이어 날카로운 접시와도 같이 마력을 납작하게 깔았다.
"마기장!"
곧 마기장 수천 개가 문어 괴수에게로 날아들었다.
파바바바바바바바밧!
문어 괴수가 즉시 집게발을 들어 올려 공격을 막으려고 했으나 정대식은 공격이 빗겨나가거나 무산될 것을 염려하지 않았다.
조준을 썼으니 최소한 공격의 절반은 놈의 집게발을 피해서 그 못생긴 안면에 적중할 터였다.
그러나 정대식의 생각은 오판이었다.
채----------------앵!
놈은 집게발을 들어 물리적으로 공격을 막는 대신에 그것을 서로 부딪쳤다.
그러자 음파와 같은 일종의 충격파가 쏟아져 나와 정대식의 공격을 상쇄시켜 버렸다.
"아니?"
정대식이 놀라고 있는 사이 놈에게 다다른 최희가 다짜고짜 공격을 가했다.
정대식의 서포트가 완전히 소용없게 된 상태였으나 그녀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프로징 포인트!"
별안간 호라갈레스 주변으로 새하얀 연기가 확 일었다.
눈에도 보일 만큼 강력한 냉기가 호라갈레스의 날을 타고 문어 괴수의 집게발을 강타했다.
쩌러러러렁!
집게발이 희게 얼어붙으며 방어력이 약해진 것처럼 보였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정대식은 허공으로 뛰어올라 육탄으로 덤벼들었다.
"강화 강력권!"
쐐애애애애애액!
레벨 30을 찍은 강력권에 마찬가지로 레벨 30의 강화를 더한 주먹은 짧은 거리를 날아가도 음속을 돌파하는 것처럼 엄청난 굉음을 냈다.
정대식은 온몸을 날리다시피 해 마기장의 위력까지 더해진 주먹을 얼어붙은 집게발에 꽂아 넣었다.
꽈---------------앙!
집게발이 터지는 소리가 울리며 그 조각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러나 집게발 하나는 아직 남아 있었다.
그것은 비교적 멀쩡해 정대식을 공중에서 후려쳤다.
뻐억!
"큭!"
거기에 얻어맞은 정대식은 몇 미터를 날아갔다.
다행히 한강 물에 처박히는 봉변은 피하고 수면에 떠 있는 부서진 배 위에 발을 디뎠다.
그러자 나머지 집게발 하나를 더 파괴하려 드는 최희가 보였다.
물론 문어 괴수라 해서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놈은 문어발이라기에는 지나치게 개수가 많은 촉수를 사방으로 뻗쳐 최희를 붙잡으려 했다.
정대식은 즉시 이번에는 마력창을 쏟아냈다.
파바바바바바바바밧!
그러자 문어가 집게발을 한 번 더 부딪쳤다.
하나밖에 남지 않아서 아까보다 위력이 덜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이번엔 충격파가 여러 방향으로 쏘아져 나가며 대부분의 충격파를 소모시켜버렸다.
몇몇 마력창이 놈의 머리통을 노리고 날아들었으나 그마저도 몇 개인가의 촉수를 끊어내는 데 그쳤을 뿐이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만만찮은 놈이군!"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는 새 다리 위의 상황을 수습한 부대원들이 하나둘씩 제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들이 새로이 나타난 몬스터에 대한 지시를 받기 위해 정대식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정대식은 먼저 도착한 광필두와 엔트로피, 그리고 이재우와 서지원에게 최희의 서포트를 지시했다.
"최대한 저 집게발이 제 역할을 못 하도록 막아! 최희의 공격이 집게발을 부술 수 있게......."
그러나 말을 잇던 정대식은 끝까지 그 말을 다하지 못했다.
느닷없이 한강에서 회오리가 솟구쳐 올랐던 것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아!
날카로운 송곳처럼 하늘을 찌르고 오르며 용트림을 하듯 꿈틀거리는 그 회오리는 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위력은 엄청난 게 틀림없었다.
그와 같은 회오리 여섯 개가 문어 괴수의 주변으로 나타나 놈을 보호하듯 감쌌다. 그로 인해 공격 반경이 크게 줄어들었음을 깨닫고 정대식은 얼굴을 흐렸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이런 방법으로 상대할 수 있는 것은 10성급 몬스터까지다. 그 이상은 제아무리 훌륭한 팀플레이도 지능적인 전투전략도 소용이 없어. 압도적인 힘만이 놈들을 깔아뭉갤 수가 있다.'
정대식은 도중에 생각을 바꿔 서지원에게 말했다.
"가서 계영일...... 그러니까 사령관이나 그에게 말을 전해줄 수 있는 책임자를 찾아서 신속히 일대에 있는 모든 사람을 대피시키라고 해라. 그리고 한강 대교, 동작 대교, 반포 대교에 이르는 구간을 모조리 비워!"
그 말을 듣고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낀 서지원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재우가 물었다.
"그럼 우리는 어떡합니까?"
정대식은 이재우를 보고도 말했다.
"너는 가서 나머지 부대원들을 데리고 피해라."
그 말을 듣고 이재우가 당장에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대장님만 놔두고 도망을 치라는 말입니까?"
"그렇다. 정확히는 나를 피하라는 말이다! 너도 봤겠지, 아까도 광필두와 7성 무구가 없었더라면 그 커다란 대갈통을 처치하고 난 여파가 마을을 휩쓸었을 것이다. 그러니 나도 가능하면 그런 힘을 쓰고 싶지 않아! 더욱이 서울 한복판에서라면! 하지만 저놈은 15성급에 달하는 괴물이고 이런 식이 아니라면 처치할 수가 없다. 어물거려봤자 피해만 눈덩이처럼 커질 테니까 내가 나서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해 이런 명령을 하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리고 난 같은 말을 두 번 할 생각이 없다! 이건 명령이다, 가라!"
이재우와 서지원이 내쫓기듯 떠나고 남은 사람은 사람이 아닌 엔트로피와 7성 무구를 지닌 광필두뿐이었다.
정대식은 광필두를 돌아보고 말했다.
"네가 할 일이 뭔지 알겠지."
"방패막이가 되라는 건가."
"그래. 그게 네 유일한 쓸모다. 네가 강북 쪽을 수호해라. 그리고 엔트로피는......."
<제가 강남 쪽을 지키겠습니다.>
정대식은 엔트로피를 보고 조금 근심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녀를 강남으로 보낸 것은 강북에 사령본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남에도 수많은 사람과 각성자들이 있으니 응당 안전하게 지켜야 하겠지만, 자신의 마력을 거의 다 공격에 쏟아부을 테니 엔트로피가 방어에 쓸 마력을 할애해 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래도 컨트롤에 주의를 기울이면 못할 것도 없을 것이라 판단하고 정대식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가라!"
광필두와 엔트로피가 즉시 강 건너편으로 사라지고 정대식은 아직도 문어 괴수와 공방을 벌이고 있는 최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모습은 용맹했으나 그 공격이 그다지 효과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최희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자신을 찔러 드는 물의 회오리며, 집게발의 충격파며, 촉수를 피하느라고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 와중에 쉴 새 없이 호라갈레스를 휘두르며 촉수를 한 뭉텅이 잘라내고 집게발 일부를 얼어붙게 만들었으나 그녀가 지치는 속도가 더 빨라 보였다.
이미 한강에 오기 전부터 일대의 몬스터를 소탕하느라 지쳐 있었고, 호라갈레스는 여신급 무기처럼 무한정 마력을 공급해주지 않으니 싸움을 이어가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정대식은 마기장을 날려 그녀를 후려치려는 집게발에서 최희를 보호했다.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제 쪽으로 끌어당기며 엔다이론을 소환해 문어 괴수의 추적을 훼방 놓았다.
이윽고 그녀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정대식은 마력장을 해제하지 않은 채로 말했다.
"아무래도 여기는 제가 맡아야 할 것 같습니다. 최희 씨는 이제 그만 몸을 피하세요."
"뭐라고? 지금 나더러 피하라고 그랬어?"
최희는 살다 살다 그런 소리는 난생처음 들어본다는 듯이 눈썹을 치켜들었다. 정대식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저놈과 함께 일대의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릴 겁니다. 그러니 몸을 피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정대식은 그녀의 항변을 기다리지 않고 마기장을 강 저편으로 날려 보냈다.
공을 던지듯이 최대한 멀리 던져 보내 놓고 강 한복판에서 엔다이론과 씨름하는 문어 괴수를 바라보았다.
오래지 않아 공격당한 엔다이론의 소환이 해제되어 버렸고, 한강에는 정대식과 놈만이 남았다.
정대식은 한강을 수놓는 여러 개의 다리와, 한강을 끼고 자리해 있는 수많은 아파트와 빌딩들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것들이 아깝다고 15성급 몬스터를 내버려둘 순 없는 노릇이었다.
정대식은 자신이 가진 마력을 응축하기 시작했다.
그에게로 충격파가 날아들기 시작했으나 정대식은 그것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에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놈을 처치하기에 충분할 만큼의 마력을 모으고 또 모았다.
그리하여 이윽고, 새카만 마력의 결정체가 나타났다.
"마괴결."
정대식이 그다음으로 한 일은 간단했다. 그걸 그냥 문어 괴수에게로 집어 던졌다.
그러자 거기에 집중된 그의 정신력을 깨트리며 엄청난 파괴력이 실체가 되어 나타났다.
Chapter 69. 레벨 10
"이건...... 정말...... 엄청나군."
정대식이 15성급으로 추정되는 거대 괴수를 쓰러트렸다는 보고를 받고 한달음에 한강으로 달려온 계영일은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정대식이 놈을 처치하기 위해 한강 다리를 무너트릴지도 모른다는 전언을 보내왔을 때는 그러려니 했다.
15성급쯤이나 되면 몬스터의 크기가 보통이 아닐 테니 잘못 쓰러지는 것만으로도 다리 하나쯤은 아작날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현장을 보고 나니 제 생각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한강변 일대가 반원형으로 완전히 날아가 버렸을 뿐만 아니라, 한강 대교는 주탑만이 남아 있었고 동작 대교는 아예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도 일부분이 날아가 도로가 끊어져 버렸으며, 한강 물이 솟구쳐 올랐다가 일시에 쏟아진 흔적으로 마치 비라도 온 것처럼 반경 몇 킬로미터 일대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한 사람이 어떻게 이만한 파괴력을 낼 수가 있지?'
마치 핵탄두가 떨어지기라도 한 것 같은 광경이었다.
아니, 핵탄두가 떨어졌다 하더라도 15성급 몬스터를 이렇게 갈기갈기 찢어버릴 수가 있는지 의문이었다.
문어 머리를 하고 있었다는 거대 괴수는 원래의 형체를 찾아볼 수 없는 몰골로 흩어져 한강 물을 오염시키고 있었다.
놈에게서 흘러나온 피가 한강 물을 시커멓게 물들이고 있어 신의 분노라도 내린 것 같은 광경이었다. 다른 잡몹들의 시체까지 뒤섞여 그게 썩기라도 한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도대체가 15성급 몬스터를 쓰러트린 것을 기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군! 아무래도 기뻐해야 하는 것이겠지? 그만한 몬스터가 서울 한복판에 출현했는데,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내 기분이 왜 이런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