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283화 (282/297)

# 283

현질 전사

-12권 11화

강영후는 계영일로부터 작전 지휘관의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는 총 300여 명쯤 되는 각성자들을 모아놓고 목청을 높여 상세한 지시를 내렸다.

"다들 알다시피 저 바깥에는 서울 장악을 노리는 몬스터 떼들이 득시글거린다! 우리는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여 놈들의 서울 진입을 저지하게 될 것이다!"

정대식은 사차원 홀로그램 맵을 허공에 띄웠다. 거기에는 일대의 지형이 4D 그래픽이 입체적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우리의 모든 작전은 MFP 방어가 뚫릴 경우를 상정한다. 보다시피 서초 IC에서부터 반포 IC까지의 도로는 전부 끊어져 있는 상태이다. 그리고 경부 고속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MFP가 설치되어 있다. 그러니 만약에 놈들이 진격을 한다면 MFP를 파괴하기 위해 바로 이 지점으로 몰려들게 될 것이다. 즉 서초 IC 입구에서부터 놈들이 쏟아져 나오게 될 거라는 말이지. 우리가 싸워야 할 장소도 바로 이곳이다."

서초 IC 주변으로는 아파트촌이 즐비했으나 이미 시민들은 전부 다 대피를 한 상태였다.

몬스터 떼를 몰아가고 잡몹들을 걸러내기 위한 포격 준비도 끝마쳐져 있었다.

일반적인 포탄으로 몬스터를 죽이기는 상당히 힘들었으나 놈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양 떼 몰듯 할 수는 있는 것이다.

그들은 지원 요청을 받아 움직이게 될 터였다.

"이곳으로 쏟아져 들어오게 될 몬스터의 종류는 특정할 수 없다. 온갖 몬스터를 상대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먼저 처치해야 하는 상대는 잡몹들보다는 5성급 이상의 몬스터임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잡몹들은 군인들로도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지만, 5성급이 넘어가면 각성자가 아닌 이상 죽일 수가 없다. 그러니 공대장의 명령에 상시 귀를 열어두고 정확한 목표물을 타격해야 할 것이다!"

강영후는 거침없이 상세한 지시를 연이었다.

이윽고 작전 설명이 끝나고 질문을 받는 시간이 됐다. 그러기가 무섭게 몇몇이 손을 번쩍 들었고, 강영후가 각오하고 있던 질문이 튀어나왔다.

"정대식은...... 타이탄 공격대 소속의 올인원은 정대식은 어디 있습니까?"

다들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몹시 의아하게 여기고 있었다.

모두가 정대식이 타이탄 공격대 소속이라 생각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강영후는 일단 그 부분부터 먼저 정정했다.

"우선, 정대식은 더 이상 타이탄 공격대 소속이 아니다. 그는 얼마 전에 우리 공격대에서 탈퇴했다. 하지만 그가 우리와 같이 싸우게 될 거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가 한강에서 일으킨 기적을 보지 않았는가? 다만, 적들을 상대하기 전에 다소의 준비가 필요할 뿐이다. 공격이 시작되면 조속히 모습을 드러내어 합류할 테니 염려하지 말도록."

강영후는 거기까지 말해놓고 질문 몇 가지를 더 받았다. 그런 뒤 각자 위치로 이동할 것을 명령했다.

"해산!"

각 공격대원은 공대장을 따라 지정된 장소로 이동했다.

닥치는 대로 부서진 차들과 건물 잔해를 쏟아부어 폐쇄된 서초 IC 입구 양편으로 8번 연합대와 12번 연합대가 포진했고, 나머지 공격대가 시내로 진입하는 길목 곳곳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기철민 또한 펜리르 부대원들과 함께 은신하고 있었는데 김송근과 이재우가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왜 제일 앞쪽에 연합대를 배치해놓은 거야?"

"연합대에 1차 몬스터 브레이크를 경험한 숙련자들이 많으니까 그런 거겠지. 8 연합대와 12 연합대에 폭렬헌터 이창준이랑 곤충왕 장재원이 있잖아."

"그게 누군데?"

"야 이 무식한 놈아, 헌터면서 그 둘을 모른단 말이야?"

"모를 수도 있지."

둘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기철민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정대식이 남긴 말이 자꾸만 떠오른 탓이다.

그는 허리춤에 매달아둔 티르브링어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이게 여신급으로 진화할 수 있는 무기라고? 7성 무구와 같은 위력을 지닌다는 말인가?'

정대식은 애초에 티르빙의 위력이 얼마만큼 커질 수 있는지 꿰뚫어보았을 테다. 티르빙이 여신급 무기로까지 진화하는 무기란 걸 알고 자신에게 맡겼다는 말이다.

기철민은 그런 정대식의 기대가 고맙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웠다. 그는 누군가에게 주목받아본 적이 거의 없는 인물이었다. 타고난 능력도 별 볼 일 없었고, 정대식을 처음 만났을 무렵에만도 막공을 전전하는 딜러였던 것이다.

하지만 정대식과 함께 타이탄 공격대에 들어오게 되면서 인생이 180도 달라져 버렸다.

정대식은 본인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 강하게 만들어 주는 재주가 있었다.

덕분에 펜리르 부대에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한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막공을 전전해서는 꿈꾸지도 못할 값어치의 아이템도 갖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철민은 여전히 자신감을 갖지는 못했다. 이런 상황에 자신이 티르브링어를 갖고 있어도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티르브링어를 티르벵거로 진화시킬 수 있는 능력자에게 넘겨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는 한편으론 누구에게도 이 무구를 넘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르벵거를 자신이 진화시키고야 말겠다는 욕심과, 곧 닥쳐들 싸움에 승리하기 위해서 합리적으로 양보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판단이 서로 엇갈렸다.

'제기랄...... 어떻게 해야 이걸 진화시킬 수 있는지 그 방법을 꿰고만 있다면 이렇게 고민을 하고 있지는 않을 텐데.'

기철민은 속으로 혀를 차며 멀찍이 떨어져 있는 광필두를 눈짓했다.

아직까지는 정대식과 기철민 외에 아무도 모르지만 그는 7성 무구 중 마지막 한 조각인 마갑을 손에 넣었다. 7성 무구를 전부 보유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진화를 이루어내지 못한 것은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인지 광필두의 무표정한 얼굴도 고민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그의 얼굴이 점점 어두침침해지는 것을 보고 고개를 들어 보아하니 해가 지고 있었다.

일대의 전력 공급이 차단된 상태인지라 사방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우뚝 솟은 고층 건물들도 전부 불이 꺼져 있어 매우 기분이 이상했다. 서울은 단 한 순간도 침묵하는 법이 없는 대도시였는데, 지금 순간은 괴괴한 정적에 휩싸여 폐허와 같아 보였다.

그때였다.

쿵!

기철민은 화들짝 놀라서 어깨를 떨었다.

별안간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 같이 둔중한 굉음과 함께 지면이 우르르 떨렸던 것이다.

"뭐야?"

깜짝 놀란 서지원이 토끼 눈을 하고 주위를 둘러보는 가운데, 그 소리가 다시금 반복했다.

쿵!

우르르르르르.......

건물들이 갈대처럼 바르르 흔들리며 사방에서 먼지가 일어났다.

그들은 곧 점점 빨라지는 그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았다.

누구 하나 말해주진 않았으나 몬스터 대군의 진격이 시작된 것이다.

쿵, 쿵, 쿵, 쿵!

쐐애애애애애애액-!

곧 폭탄을 실은 무인전투기가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귀청을 찢는 소음을 내뱉으며 하늘 저편으로 날아간 전투기가 폭탄을 떨어트리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쾅! 쾅! 콰르르르르르!

희미한 석양빛이 남아 있는 하늘 저편을 터져 오르는 폭탄이 붉게 장식했다. 엄청난 섬광과 화염이 허공으로 솟구치는 가운데 기괴한 소란이 멀리서 아득하게 들려왔다.

키에에에에-카르르르르...... 크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아.......

그 소리를 듣고 줄곧 말이 없던 허미래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고덕화가 그런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 주는 가운데, 한 번 더 전투기 편대가 하늘을 날아갔다.

폭탄 투하는 이러다 귀가 먹겠다 싶을 정도로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그렇게까지 오래가지는 못했는데, 하늘에서 불길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폰이다."

이재우가 중얼거리자 전투기들이 하늘을 날아오던 그리폰 무리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곧 전투기들이 화염과 연기를 피워 올리며 아래로 추락했다.

그러나 그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무인전투기들이 대거 날아들었다.

콰아아앙! 쾅! 쾅! 콰르르르르!

완전히 캄캄해진 밤하늘을 폭발해 오르는 전투기들과 선혈을 흩뿌리며 같이 추락하는 그리폰들이 장식했다.

제아무리 몬스터라 해도 고속으로 움직이는 쇳덩어리에 부딪혀 놓고 무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거기에 폭탄이 실려 있다면 더 그렇다.

그러나 그리폰들이 시간을 벌어준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리폰 떼에 가로막혀 전투기가 폭탄을 떨어트리지 못하는 사이, 몬스터 군단이 MFP를 덮쳐든 모양이었다.

구우우우우우우웅---------------------

전자파가 진동하는 것 같은 괴상한 기계음이 하늘을 울렸다. 기철민은 목덜미의 솜털이 모조리 곤두서는 기분을 느꼈다.

오래지 않아 기묘한 위화감이 사방에 가득해졌고, MFP가 설치되어 있던 방향에서 폭탄이라도 터진 것 같은 엄청난 불기둥이 일어났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

움찔한 기철민은 곧 사방으로 퍼지던 이상한 느낌이 사라져버린 것을 깨달았다.

그게 뭔지는 몰라도 아마 몬스터를 내쫓는다는 MFP의 효과일 것이다.

곧, 기철민이 착용하고 있는 단말기가 삐빅 울렸다. 거기에서 강영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MFP DOWN, MFP DOWM!"

곧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땅 울림이 점점 더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IC 주변으로 불가사의한 빛이 번쩍거리며 일어났다.

일견 전자파처럼 보이는 그것은 MFP 지뢰였다.

미국에서 공수받아온 물건이라 효과가 다를지 모른다 싶었는데, 그렇게까지 소용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래지 않아 그 빛이 가라앉았고, 단말기에서 강영후의 명령이 떨어졌던 것이다.

"8, 12 연합대! 공격, 공격하라!"

* * *

폭렬헌터 이창준은 몰려드는 몬스터 떼의 기운을 느끼며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이런 기분이 얼마 만이더라!'

1차 몬스터 브레이크 때 각성해서 그 누구보다 힘겨운 때를 자신의 능력 하나만으로 헤쳐 온 그에게 지금의 세상은 지나치게 평화로웠다.

그는 던전에 들어가 몬스터를 사냥하고 부산물로 먹고사는 일이 어린애 소꿉장난 같다고 생각했다.

옛날에는 오로지 몬스터를 죽이는 데만 집중했지 그놈의 몸값이 얼마인지, 놈에게서 무엇을 얻어낼 수 있을지, 그런 것 따위는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헌터들은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어 몬스터를 죽일 때도 여러 가지를 따지고 들었다.

어느 놈은 눈알이 돈이 되니까 그것만은 절대 피해서 공격을 해야 한다든지, 어느 놈은 별 쓸모가 없으니까 그냥 피해간다든지, 일종의 요령을 피우는 것이었다.

이창준에게는 그러한 형식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그는 다른 헌터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줄곧 솔플만을 하다가 그 짓도 관둔 지가 두어 해 됐다.

자신이 더 이상 몬스터들을 잡는 일에 흥미를 못 느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던전 주변에 가게를 벌여놓고 흑돼지 통구이 집을 열었다.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고기를 기가 막히게 굽는 방식을 터득해 그럭저럭 돈을 벌었다.

하지만 언제나 마음 한구석이 썰렁한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목숨을 걸고 사선에 서 있는 지금 이 순간, 이창준은 매우 오랜만에 자신이 살아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늘 허전하던 가슴이 두근두근 뛰어오르며 전신의 피가 빠르게 돌았다.

아드레날린이 미친 듯이 날뛰는 느낌에 몸을 떨며 이창준은 몸에서 불꽃을 피워 올리기 시작했다.

이미 죽어 자빠진 돼지 말고 살아 있는 몬스터를 불살라버릴 생각에 몹시 흥분이 됐다.

반면, 또 다른 1세대 헌터 중 한 명인 곤충왕 장재원은 지극히 차분했다.

그는 이창준과 달리 지금의 사태가 썩 즐겁지 않았다. 과거 확장 현실 세계가 열리던 그 무렵을 황금시대로 기억하는 이창준과는 달리, 장재원은 지금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 역시도 이장춘과 마찬가지로 1차 몬스터 브레이크 때 자신의 능력을 각성했다. 그러나 곤충을 부리는 그 능력은 몬스터를 상대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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