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8
현질 전사
-12권 16화
하루하루를 돈 걱정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돈이 절실할지도 모르겠지만, 정대식 정도면 죽을 때까지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대대손손 물려줄 수 있는 엄청난 부를 축적해 놓았을 텐데도 더 많은 부를 가지고자 하는 게 이해가 안 됐다. 그것도 이런 환란 속에서 말이다.
강영후도 마찬가지로 그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어깨를 으쓱해 보였고, 최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시작됐다."
MFP가 번쩍거리는 빛을 내뿜으며 밤하늘을 밝히는 가운데 언데드 드래곤의 거체가 어둠을 가로지르고 날아가는 게 보였다.
몬스터들의 괴성이 북한산 꼭대기에까지 들려왔다.
그 절망적인 소음 속에서 MFP 하나가 화염에 휩싸였다.
곧 곳곳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MFP의 푸른빛이 꺼져 들어갔다. 그리고 최후의 작전이 시작됐다.
파아아아아아아아아-------------------------
새벽이 밝아오기 시작하는 하늘을 쉴드가 뒤덮기 시작한 것이다.
* * *
가부좌를 틀고 광화문 광장 정중앙에 앉은 송시민은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그 주변은 마찬가지로 방어막을 치는 능력이 있는 탱커나 버퍼들이 각종 방어 아이템을 장착한 채 둘러앉아 있었다.
그들에게서 솟구친 마력이 한데로 엉겨 상공으로 쏘아져 나가 종로 일대를 반구 형태로 뒤덮었다.
그렇게 형태가 갖추어지고 나서도 계속해서 마력을 전송해 방어막을 보다 견고하게 만들었다.
방어막이 온전히 갖추어진 걸 보고 송시민은 그와 함께 쉴드 작전을 도맡게 된 대원들에게 말했다.
"지금부터는 집중력 싸움이 될 겁니다. 방어막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만 마력을 소량 올려보내시고 몬스터들의 공격이 시작되면 방어막이 약해지는 부분만 집중해서 메워주십시오."
다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송시민은 의식 한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는 패닉룸의 기척을 살펴보았다.
패닉룸이 달리 공격을 받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걸 유지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다만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정대식이 도대체 언제 깨어나느냐가 궁금할 뿐이었다.
아직까지 잠잠한 걸 보니 준비가 끝나려면 먼 것 같았다.
'서둘러야 합니다...... 꾸물대다간 늦어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린 송시민은 곧 이른 새벽하늘을 새카맣게 뒤덮으며 날아오는 괴조 떼를 보았다.
콘도르와 같이 거대한 몸체에 외눈을 하고 있는 데다가 마치 사람 같은 팔다리가 달려 있는 놈들이 방어막으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놈들은 마력이 흐르는 방어막 위로 섣불리 접근하지 못했다. 주위를 뱅뱅 맴돌며 그악스러운 소리로 울어대었다. 그러자 지상으로도 곧장 반응이 왔다.
"옵니다!"
송시민이 외치기가 무섭게 열 줄기의 광선이 날아들었다.
빠웅---------우웅웅웅웅!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괴수의 발톱처럼 도시를 긁어 올리다 방어막을 때렸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방어막이 진동하며 부르르 떨렸다. 다행히도 그게 뚫리지는 않았으나 광선에 두드려 맞은 자리가 얄팍해지는 게 보였다.
그러자 송시민이 당부한 대로 다른 대원들이 그 자리로 마력을 밀어 넣어 방어막을 보강했다.
하지만 그 공격은 시작이었을 뿐이다. 이번엔 광선이 마구잡이로 날아와 방어막을 두드렸다.
보아하니 열 마리의 거대한 고렘이 입에서 무차별적으로 광선을 쏴대고 있었다.
펑! 펑! 펑!
광선이 두드릴 때마다 방어막이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빛을 내며 흔들렸다.
송시민은 조금 더 마력을 끌어올려 방어막의 강도를 높였다. 그러자 진동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제법 위력적인 공격이기는 했으나 저 정도는 버틸 만했다. 송시민은 자신감을 가지고 주의를 집중했다.
오히려 더 선명한 빛을 내뿜는 방어막을 보고 소용없음을 간파했는지, 고렘들의 공격이 멎었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다 한 방향으로 일제히 광선을 쏘아내기 시작했다.
빠우우우우우우우웅!
열 가닥의 광선이 모조리 한 자리에 집중되자 순간적으로 그 자리가 뚫렸다.
송시민은 미간을 찡그리며 재빨리 그곳을 메우려고 했으나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괴조들이 득달같이 쏟아져 들어왔다.
"큭!"
송시민이 다시금 방어막을 메웠을 땐 수십 마리쯤 되는 괴조들이 방어막 안으로 날아 들어와 있었다.
놈들이 방어의 주체인 송시민과 쉴드 작전부대를 향해 덤벼들었다.
하지만 그 전에 놈들의 모가지를 꿰뚫는 마력살이 있었다. 케이론을 빼 든 광필두였다.
그뿐만 아니라 기철민도 있었다. 그는 다지보그의 써클렛을 이용해 괴조들을 지져버리고 있었다.
다지보그의 써클렛은 고렘들이 쏴대는 광선만큼 강력하지는 않아도 그 비슷한 효과를 내고 있었다.
레이저와 같은 광선이 써클렛 중앙에서 쏘아져 나가 괴조들의 날개를 모조리 갈라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놈들이 가까이 접근해 광필두는 딜라이트 소드를 치켜들었다.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괴조들이 우르르 나가떨어졌다.
그 바람에 기철민은 강영후에게 임시로 빌린 무기를 휘두를 여력도 없었다.
그는 시미터와 비슷하게 생긴 대검을 도로 등걸이에 걸면서 투덜거렸다.
"네놈이 다 처치해버리면 난 뭘 잡으라고."
"사냥감이 없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그들 두 사람은 쉴드 작전의 지원을 맡기로 하고 광장에 남았다. 쉴드 작전을 펼칠 대원들을 보호할 사람이 필요한 데다가, 그들에게 여신급으로 진화가 가능한 무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강영후에게 정대식이 한 말을 전해 들었다. 정대식은 자신의 부재가 길어질 경우를 걱정했고 위기 상황에 그들 두 사람이 시간을 벌어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 말을 들은 이상, 몸을 뺄 순 없는 법이다. 그들은 최전선에서 티르브링어와 7성 무구를 진화시킬 방법을 찾고 있었다.
방어막이 약화된 틈을 타 괴조들이 바깥에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었다.
방어막에 붙은 놈들은 몹시 고통스러워했으나 그놈들 위로 달라붙는 괴조들은 마력의 영향을 받지 않아 멀쩡해 보였다.
그런 식으로 방어막에 엄청난 수의 괴조들이 달라붙고 있었다. 그 와중에 광선 공격이 한 번 더 날아왔다.
빠우우우우우우우웅!
광선은 방어막에 달라붙은 괴조들마저 불태웠다. 이번엔 송시민이라고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그는 공격이 어디를 두드릴지 미리 짐작하고 그곳의 강도를 일시적으로 높였다. 그러자 이번엔 방어막이 뚫리지 않았고, 괴조가 침입하는 일도 없었다.
"굉장한데."
기철민은 번쩍번쩍 빛을 내뿜는 방어막을 올려다보면서 감탄했다.
여러 헌터들이 돕고 있다고는 하지만 송시민의 능력이 대단하기는 했다.
이 정도면 정대식이 복귀할 때까지는 충분히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
별안간 천지가 진동했다.
아니, 정확히는 엄청난 피어가 기습적으로 들려왔다.
그 바람에 진땀을 흘리며 집중하고 있던 각성자들 몇몇이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그들을 지키고 서 있던 사람들도 귀를 틀어막으며 제자리에 주저앉거나 멍하니 넋이 나가버리거나 했다.
실로 위력적인 피어였다.
"으아악!"
"꺄악!"
방어 인력 중 몇 명이 기절을 해버리거나 나가떨어져 송시민은 눈을 질끈 감았다.
방어막을 유지하는 인력이 떨어져 나간 만큼 그가 더 애를 써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느닷없이 들이닥친 피어로 인해 그의 집중력도 크게 흔들렸다.
살아생전 이런 피어는 들어본 적이 없어 본능적인 공포심으로 온몸이 얼어붙었다.
그것은 송시민만 느끼는 게 아니었다.
오랫동안 던전을 전전해왔고 정대식을 따라 온갖 강력한 몬스터들의 피어를 경험해본 기철민 또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는 겁을 집어먹지 않으려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제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광필두에게 애써 말을 걸었다.
"이 느낌은...... 모스크바에서 느껴본 적이 있다."
광필두도 억지로 입을 열었다. 대화를 나눔으로써 엄습한 두려움을 쫓아내려는 것이었다.
"체르노보그를 말하는 것이냐?"
"그래, 이건 15성급 이상이 되는 몬스터의 피어......!"
기철민이 채 말을 다 잇기도 전에 한 번 더 피어가 터졌다.
-----------------------------------------------------!
"어억!"
"끄윽!"
"크악!"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버티던 방어 인력 중 절반이 무력화가 되어버렸다.
기철민과 광필두도 귀를 틀어막기에 바빴다.
방어막 안에서도 이 정도 위력이라면 밖에서는 어떨지 상상하기도 두려웠다.
아마 피어가 울려 퍼지자마자 심장마비로 쇼크사하거나 완전히 미쳐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기철민은 벌벌 떨리는 몸을 추스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 내 예상이 틀렸어. 이건...... 이건 단순히 15성급 몬스터의 피어가 아니야. 그보다 더 강력해! 여러 마리가 틀림없어. 방어막을 무너트리려고 5대 거신들이 한꺼번에 피어를 내지른 거야."
기철민의 짐작이 맞는지 틀렸는지 당장은 확인할 수 없었으나, 송시민이 큰 타격을 입은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는 얼굴이 창백해진 채로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고 있었으나 황급히 각성 효과가 있는 포션을 찾아서 털어 마셨다.
그의 주의가 흐트러지면 얄팍해진 방어막이 유리처럼 산산이 조각나버릴 터였으므로, 기철민은 아무래도 작전을 바꿔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퍼뜩 떠올렸다. 그리고 간신히 버텨낸 몇몇 대원들을 향해 소리를 쳤다.
"방어막이 아닌 송시민을 보호해야 합니다! 송시민의 주변으로 방어막을 쳐요!"
그 말을 듣고 그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어차피 방어막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송시민이고 다른 사람들은 거들어주는 정도밖에는 안 됐는데, 작전의 주체인 송시민이 피어에 당해서는 안 될 노릇이었다.
대원들은 그 말이 옳다고 판단하고 송시민의 주변을 방어막으로 둘러쌌다. 그러자 송시민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지며 그의 안색이 맑아졌다.
다시금 방어막이 내뿜는 빛이 강해지는 가운데, 기철민과 광필두는 또다시 피어가 들려오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다시금 피어가 들려오는 대신에 다른 공격이 시작됐다.
인간만큼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피어에 겁먹은 몬스터 떼들이 이성을 잃고서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꾸에에에에엑!"
"취이이이잇!"
"캬아아아아아!"
"크르르르르르!"
온갖 괴성이 들려오면서 발 빠른 잡몹들이 달려들었다. 파도와 같은 몬스터 떼가 사방팔방에서 새카맣게 몰려들더니만 육탄으로 방어막에 들이받고 있었다.
곧 그 소리가 거대한 진동음과 같이 방어막을 꽝꽝 울렸다.
위쪽에서도 무수한 괴조와 하피, 그리폰, 가고일 따위의 크고 작은 몬스터들이 발악을 하며 방어막을 뚫으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었다.
그 가운데 송시민은 허공을 노려보며 방어막을 지키느라 진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겹으로 보호받고 있기에 그의 집중력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으나 방어막을 공격하는 놈들의 수가 지나치게 많았다.
앞뒤 가리지 않고 제 몸을 스스로 부닥쳐가며 덤벼들고 있어 방어막 위로 몬스터들의 검고 푸른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흡사 죽자고 달려드는 꼴이나 다름없는 게 좀 이상했다.
그러자 광필두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아무래도 놈들이 오는 것 같군."
기철민은 그놈들이 누구인지 뻔히 짐작했으나 부정하고 싶은 맘에 되물었다.
"놈들이라고?"
"5대 거신이라 불리는 그놈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