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295화 (294/297)

# 295

현질 전사

-12권 23화

정대식은 그들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광필두를 한번 힐끗 보고 말했다.

"일어나라."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광필두가 눈을 번쩍 떴다.

"허억-!"

그는 급하게 숨을 들이켜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런 그를 보고 최선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떻게......?"

정대식은 그녀를 보고 미소 지었다.

"내게도 복구의 능력이 있습니다. 잊었어요?"

그가 가진 복구 스킬도 궁극적으로는 리페어와 맥락을 같이 했다.

단, 그의 능력은 리페어와는 다르게 어떤 리스크도 없었다.

정대식이 이미 그 능력을 얻기 위한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돈이었다.

그는 곧 파괴된 도시를 둘러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도시 전체를 복구해야 할 것 같군요."

최희는 경악해 말을 더듬었다.

"도, 도시 전체를 복구한다고?"

"죽은 사람을 살리지는 못하지만, 부서진 건물이나 도로를 다시 만드는 것이라면 어렵지 않죠."

정대식은 두 팔을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복구."

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를 중심으로 기묘한 빛을 띤 마력이 천천히 소용돌이치며 주위로 번져나갔다.

그러자 놀랍게도 부서진 아스팔트 조각들이 서로 맞붙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가로등이 다시금 생겨났다.

산산이 부서져 제 형체를 찾아볼 수 없던 건물들도 순식간에 일어섰고, 심지어는 일그러져 나뒹굴던 자동차들까지도 모조리 원상복구 되었다.

마치 비디오를 도로 되감듯이 그렇게 거대한 도시, 서울이 원래 모습을 되찾아갔다.

그의 능력은 한강을 건너면서 끊어진 다리를 만들어내었고 자취를 감추어버린 강남과 사라졌던 도로들까지도 전부 다 재생해놓았다.

곧이어 길가의 가로수들도 다시금 자라나기 시작했다.

화단의 잔디와 보도블록 사이의 잡풀들까지 완벽하게 회복되었다.

이윽고 정대식이 자신의 능력을 거두어들였을 땐, 전쟁의 흔적이 눈곱만큼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몬스터들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고 서울의 모습은 여느 때와 다름없어 쑥대밭이 되었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 경이로운 능력에 사람들은 전부 아연실색했다.

최희는 입술을 파르르 떨기까지 하며 정대식을 보고 뇌까렸다.

"너...... 넌...... 신인가?"

그 단어의 선택에 기철민은 전율을 느꼈다.

그랬다, 정대식이 가진 힘은 인간의 것이라 할 수 없었다.

신이라고 보는 것이 마땅했다.

그러나 정대식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신이 된 것은 엔트로피입니다."

"엔트로피라고?"

"예. 그녀가 저 대신 신이 되어 그 힘을 행사하고 최후의 전쟁을 승리로 끌어낸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퍼뜩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으나 정대식은 굳이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저 신체로서 준비되었던 자신을 관조해보았다.

그는 신이 되지는 않았으나 신으로서의 진화에 합당한 힘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지나치게 강대해서 인간에게는 다소 불필요한 능력이었다.

'아마 이 힘을 갖고 있는 한 줄곧 내가 원치 않는 일에 휘말리겠지.'

정대식은 자신이 강력해지면서 보이지 않는 견제와 압박, 그리고 여론몰이를 당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세상을 구한 올인원으로 존재하는 한은 절대로 그런 일에서 벗어날 수 없을 터였다.

정대식은 마음을 굳히고 말했다.

"그럼 전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최희는 그의 손을 덥석 붙잡고 물었다.

"어딜 가겠다는 거야?"

정대식은 어깨를 으쓱했다.

"몬스터 브레이크가 터진 것은 이곳뿐만이 아닙니다. 세상이 멸망하는 것은 막아내었으나 아직 곳곳에 여러 몬스터가 남아 있을 겁니다. 그러니 놈들을 처치해야지요."

"그럼...... 같이 가요!"

정대식의 말에서 뭔가를 느낀 건지 최선까지 다른 쪽 팔을 붙잡고 늘어졌다.

그러나 정대식은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들을 뿌리쳤다.

그리고 어떤 변명이나 빈말을 하는 대신, 주위에 흩어져 있던 7성 무구를 주워 모았다.

"세계의 종말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이것들은 더 이상 필요가 없을 겁니다. 확장 현실 세계의 고착화로 우주의 마력이 흘러들어오게 되었으니 각성자들의 능력이 강해져 이런 무구가 없이도 던전 안의 몬스터들을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7성 무구는 다시 세상 곳곳에 흩어지게 될 것입니다."

누구도 그 말에 감히 반박을 하지 못했다.

정대식은 연이어 기철민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여신급 무구는 7성 무구 외에도 그의 손에 하나가 더 있었다.

기철민은 잠시 망설였고, 그 마음을 읽은 듯 정대식이 말했다.

"기철민, 넌 티르벵거가 없이도 충분히 강한 헌터이다."

기철민은 입술을 꾹 물었다.

그 언젠가, 누군가에게서 꼭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기철민은 순순히 티르벵거를 정대식에게 건네주었고, 그는 그것을 몽땅 아공간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선뜻 몸을 돌렸다.

그런 그를 향해 최희가 안타까운 기분을 금치 못하고 소리쳤다.

"다시 돌아오는 거지?"

"꼭 돌아오셔야 해요!"

최선의 목소리까지 뒤따르는 가운데 정대식은 미소를 한번 짓고 발길을 옮겼다.

오래지 않아 그 뒷모습조차 신기루처럼 공기 중으로 흩어져 온전히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Chapter 73. 계승

"어이, 꼬맹이! 여기로 좀 후딱 뛰어와라!"

"예!"

윤현민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퍼뜩 몸을 일으켜 달려갔다.

그곳에서는 켈피 해체가 한창이었다.

윤현민이 혀를 길게 빼물고 죽어 자빠진 켈피 시체를 보고 사냥칼을 꺼내 들자 옆에서 헌터 한 사람이 잔소리를 했다.

"가죽에 생채기 안 나게 조심해."

"염려 마십쇼!"

윤현민은 씩씩하게 대꾸한 후에 켈피 가죽을 능숙하게 벗겨냈다.

요즘 켈피 가죽으로 만든 가방이나 신발이 대유행이라 흠집 없는 물건이라면 제법 쏠쏠하게 팔렸다.

사냥하기 까다로운 몬스터지만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놈이었다.

'쳇, 나도 능력만 있다면 이런 것쯤.......'

윤현민은 속이 쓰린 기분에 혀를 찼다.

완전 확장 현실 세계가 시작된 지 3년째.

전례 없던 대규모 몬스터 브레이크로 인해 일어난 최후의 전쟁에서 승리한 인류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다른 차원에서 유입되는 마력 양이 대폭 늘어나 각성자들의 능력이 강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마정석으로부터 에너지를 추출하는 방법을 찾아냈던 것이다.

마력발전소가 지구촌 곳곳에 건설되며 인류는 화석 연료와 원자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던전에서 쏟아져 나오는 막대한 양의 신비 자원으로 인해 제5차 산업 혁명이라 일컬어지는 변화를 이룩해내는 중이었다.

완전 확장 현실 세계가 시작되고 가장 큰 변화는 던전의 확장이었다.

예전의 던전은 몇 가지 종류의 몬스터들이 분포되어 있는 한정된 공간이었다.

던전의 종류에 따라 그 크기가 매우 큰 것도 있었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것도 있었으나 던전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런데 대규모 몬스터 브레이크가 끝나고 났을 때는 그 던전은 단순한 던전이 아닌 이차원으로 가는 통로가 되었다.

지구와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연결되는 입구를 발견하고 인류는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엔 우주로 로켓을 쏘아 올리거나 우주인을 보내거나 하는 식으로 또 다른 세계에 관한 탐사를 시도해왔으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들은 던전을 통해 간단히 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별들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까지는 이세계로 가는 통로를 발견한 정도일 뿐이라, 본격적인 탐사가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모험심 많은 몇몇 헌터들이 겁도 없이 새로운 세계로 떠나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세계로 갔다가 온갖 진귀한 아이템을 가지고 돌아오기도 했다는데, 사실인지 아니면 뜬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찌 되었건 세계 각국에서는 각성자 연맹과 협의하여 이세계를 탐사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는 각성자가 아닌 윤현민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다.

그는 켈피 가죽에 붙은 지방질을 떼어내며 땅이 꺼지라 한숨을 쉬었다.

헌터가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짐꾼이 되었는데, 이게 잘하는 짓인지 알 수 없었다.

아무리 헌터들 주위를 알짱거리고 돌아다니며 던전에 따라 들어와 봐도 없는 능력이 하루아침에 생기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짐꾼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나쁘지 않았으나 사실 그런 건 크게 중요치 않았다.

윤현민은 각성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라스트 몬스터 브레이크가 끝나고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는데 자신 또한 달라질 방법이 없을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어 다른 모든 것이 다 가능해졌어도 일반인이 각성자가 되는 방법은 없는 것 같았다.

MFP가 대중화되면서 윤현민 같은 일반인도 어느 정도는 몬스터와 싸울 수 있게 되었으나 그래도 신의 선택을 받은 각성자들과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났다.

윤현민은 울적해지려는 기분을 애써 뿌리치고 손질한 켈피 가죽을 짊어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느닷없는 고함이 들렸다.

"머맨들이다! 머맨들이 나타났다!"

"습격이다! 딜러 다 어디 갔어!"

순식간에 주위가 아수라장이 되고 켈피 시체가 널려 있던 물가로 머맨들이 기어 올라왔다.

놈들의 수가 한두 마리가 아닌 데다가 다들 한바탕 켈피 사냥을 끝내고 방심하고 있던 차였으므로 각성자들까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짐꾼들은 갖고 있던 짐을 몽땅 다 버리고 다리야 날 살려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윤현민도 재빨리 몸을 빼려고 했으나 사방이 머맨이라 어디로 몸을 빼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였다.

"크앗!"

평소 윤현민에게 일거리를 자주 맡겨주던 딜러 하나가 머맨 서너 마리에게 둘러싸여 고전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어 그대로 두면 당할 것 같았다.

윤현민은 스틱형 MFP를 움켜쥐고 그쪽으로 달려갔다.

개인화기로 개량된 이 무기는 속칭 '지짐이'라고 불렸는데, 몬스터에게 이렇다 할 상처는 입히지 못해도 전기충격기처럼 한동안 동작을 멈추게 할 수 있었다.

"이야앗, 떨어져!"

빠지지지지지지직!

윤현민이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있던 머맨의 옆구리를 지짐이로 지지자 놈이 키아아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그 틈을 타 딜러가 번개 같은 몸놀림으로 나머지 두 마리를 썰어냈다. 죽어 자빠지는 머맨들을 보고 윤현민이 소리쳤다.

"얼른 도망가요!"

"그래, 가자!"

두 사람은 몸을 돌려 호숫가를 벗어나기 위해서 달렸다.

사방은 습지였고 발을 잘못 내디디면 그대로 수초가 가득한 물에 빠져 죽을 수도 있었으나 발밑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온 사방이 머맨인지라 윤현민은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그러다가 그만 썩은 나무 둥치에 발이 걸려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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