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7
현질 전사
-12권 25화
요르문간드 공격대는 지금은 타이탄 공격대를 뛰어넘는 공격대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그들은 전원 열 명으로만 이루어진 소규모 공격대였으나 그 강력함에 있어서는 따라올 자가 없었다.
"그래도...... 무사하다는 소식 정도는 전할 수 있잖아요."
"나 정도 능력자가 무사하지 않은 게 이상한 일이지. 뭣보다 난 이제 은퇴했어. 더 이상 헌터가 아니니까 그들과 엮일 일도 없고."
"헌터를 관뒀다고요?"
상상도 못 한 말에 윤현민이 깜짝 놀라 소리치자 정대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헌터로 활약할 이유가 없더라고. 돈도 벌 만큼 벌었고. 싸움도 할 만큼 한 것 같아서."
"그거야 그렇겠지만......."
상대할 만한 적이 없으니 은퇴를 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던 윤현민은 문득 의문을 느끼고 질문했다.
"그런데 은퇴했다면서 이 던전엔 왜 들어와 있던 거예요?"
"이건 산책이지."
"산, 산책이라고요? 몬스터가 득시글거리는 던전을요?"
"그냥 동네 공원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재밌더라고. 이렇게 돌아다니다가 가끔 너 같은 녀석도 구해주고."
그의 도움을 받은 데 대한 인사도 안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윤현민은 서둘러 감사를 표시했다.
"구해주셔서 고마워요. 형 아니었음 어땠을지 생각도 하기 싫네요."
그러자 이번엔 정대식이 질문할 차례라는 듯이 말했다.
"너야말로 이런 데서 뭘 하는 거야? 넌 각성자도 아니잖아. 지금쯤 대학에 다녀야 할 나이인 것 같은데."
"별로, 대학에 가고 싶지는 않아서요. 어떻게든 헌터에 관계된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럼 차라리 공격대 사무직이라든가...... 몬스터 부산물 처리소라든가...... 마정석이나 던전 자원 개발 연구원이라든가...... 관련 직종들이 여럿 있잖아. 그런데 그렇게 안전하고 돈도 잘 벌리는 직업들을 다 놔두고 위험하게스리 여기서 뭘 하는 거야?"
"짐꾼으로 일하고 있어요. 과거의 형처럼 말이에요."
윤현민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어렵사리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저, 형처럼 되는 게 꿈이었거든요. 아시잖아요. 제가 사실은 헌터가 되고 싶었다는 거."
그렇게 말하는 윤현민을 정대식이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는 곧 땅이 꺼지라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난 아직도 모르겠다, 헌터라는 족속들을 말이야."
"예?"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난 사실 몬스터를 때려잡는 일이나 더 강해지는 일 같은 데는 큰 관심이 없었어. 헌터가 된 것은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고."
"그런...... 그런 줄은 전혀 몰랐어요. 하지만 형은, 엄청나게 강해졌잖아요?"
"그러니 세상일이 참 우습다는 거지. 그래서 난 너처럼 평범한 녀석들이 굳이 목숨 걸고 던전에 들어오려는 걸 이해 못 하겠어. 몬스터들이랑 싸우는 일이 뭐가 그리 즐겁다고?"
윤현민은 입술을 뻐끔거렸다.
사실 본인도 잘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던전에 갖는 로망, 헌터에게 갖는 동경, 순수한 힘에 대한 추구, 그 모든 것들은 인간이라면 응당 가질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그걸 무어라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데 정대식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다.
"......그렇지만 너 같은 녀석들을 싫어하진 않아. 가급적이면 도와주고 싶더라고. 그 멍청한 점이 좀 멋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거니까. 이능이라는 건 너 같은 녀석에게 주어져야 하는 거겠지. 윤현민, 각성자가 되고 싶어?"
윤현민은 불쑥 던져진 질문에 고민할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당연하죠."
"흠, 그래. 만약에 능력을 갖는다면 뭘 갖고 싶은데? 구현? 강화? 아니면...... 희귀한 정신이나 소환?"
윤현민은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느꼈다.
만약에 자신이 각성자가 된다면 어떤 능력을 지닐 것인가.
생각은 그리 길지 않았다. 윤현민의 대답은 한가지였다.
"......모든 능력요."
"뭐?"
"형처럼 모든 능력이 다 갖고 싶어요. 올인원이 되고 싶어요!"
윤현민의 당돌한 바람에 정대식은 좀 당황한 표정이 됐다.
그는 곧 너털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하하! 네가 올인원이 되겠다고? 거 참 욕심 많은 녀석이네."
"형이 올인원이었잖아요. 그러니까 나도...... 올인원이 되고 싶어요. 어차피 만약이잖아요. 꿈이야 꿀 수 있는 거니까."
윤현민이 씁쓰레하게 하는 말을 듣고 정대식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좋아, 하지만 후회하지 마라. 모든 능력을 다 갖는다는 게 마냥 좋지만은 않을 거야. 이도 저도 아닌 능력을 갖게 될 수도 있겠지만, 네가 하기 나름일 테니까."
윤현민은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퍼뜩 알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질문하려는데, 별안간 자리에서 일어난 정대식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잠시 기억을 더듬다가 말했다.
"......이렇게 말을 하는 거던가? 이계의 존재를 처단하라, 그리하면 힘을 얻게 될지니."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엄청난 마력이 윤현민에게로 쏟아져 내렸다.
그는 놀라서 입을 크게 벌렸고 곧 무어라고 설명할 수 없는 기운이 전신으로 밀려들었다.
불타는 것 같기도 하고 얼어붙는 것 같기도 하고, 확장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압축되는 것 같은 기묘한 느낌.
그게 한차례 윤현민을 휩쓸고 지나쳤다.
잠시 후, 정대식이 그를 놔주자 윤현민은 제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는 엎드린 채로 믿기지 않는 기분에 헐떡거렸다.
그러나 전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자신의 안에 생겨났다는 게 분명히 느껴졌다.
윤현민은 고개를 들고 물었다.
"바, 방금...... 뭘 한 거예요? 설마......?"
정대식이 미소를 지었다.
"네가 원하는 바대로 이루어졌을 거다."
"제가...... 각성자가 되었다고요?"
"그래. 그것도 올인원이 되었다. 넌 내 뒤를 잇는 두 번째 올인원이 된 거야."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말도 안 되는 것 같으면 직접 시험해 봐."
"어떻게요?"
멍청하게 되묻는 윤현민을 보고 정대식이 찬찬히 설명했다.
"가장 쉬운 것부터 해봐. 능력 중에 제일 실감이 나는 게 소환이니까. 간단하게 운디네 소환이라도 해보든지."
윤현민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밑져야 본전이지 않느냐는 듯이 턱짓을 하는 정대식의 재촉을 따라 마른 침을 꿀꺽 삼킨 뒤, 정신을 집중했다.
소환 능력이라면 윤현민도 전에 본 적이 있었다.
이렇게 눈을 감고 흐름을 느끼듯 마력을 일으키다 나지막이 부르는 것이다.
"운디네 소환."
파아아아아아앗!
사방이 습지였기에 허공 중에 수분이 모이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윤현민은 공중을 떠도는 물의 형체를 보았다.
춤추듯이 공중을 누비는 그 존재를 바라보며 윤현민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격을 느꼈다.
"됐다! 됐어......! 내, 내가 운디네를 소환했어!"
윤현민은 축축해지는 눈가를 손등으로 훔치며 말했다.
"제가 정말 각성자가 된 거죠? 소환뿐만이 아니라 다른 능력도 다 가지게 되었단 말이죠?"
"시험해 봐."
윤현민은 곧장 방출과 구현, 강화와 같은 능력들을 시험해보았다.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 몸에서 마력이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윤현민은 상상하는 형태 그대로 마력을 쏟아낼 수도 있었고 무언갈 만들어낼 수도 있었으며 돌멩이도 깨부술 만큼 주먹을 강화할 수도 있었다.
한없이 강하면서도 자유로워진 느낌.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능력을 얻은 것이다.
기적과도 같은 일에 윤현민은 꿈꾸는 기분으로 말했다.
"어떻게 이 모든 일이 가능한 거죠? 형은...... 정말로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신이 된 건가요?"
윤현민의 질문에 정대식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신이 되지는 못했지. 정확히는 신이 되지 않았어. 난 인간으로 태어났으니까, 인간에 머무르고 싶었지. 하지만 인간이 갖기엔 지나치게 큰 힘을 가져버렸기에...... 가끔은 너 같은 녀석들을 돕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야."
그제야 윤현민은 최근 헌터들의 SNS를 통해 떠도는 기이한 소문을 떠올렸다.
위기에 처한 헌터들이 좌절과 절망에 휩싸였을 때 나타나는 기인, 혹은 현자, 또는 마법사에 대한 뜬소문이었다.
그는 몬스터들을 애완동물 다루듯이 하며 던전을 제집처럼 여기는 데다가 인간이 미처 가보지 못한 이세계에 대해서도 환히 알고 있다고들 했다.
그는 때로 엄청난 성능의 아이템을 공짜로 건네주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능력을 일깨워주기도 한다고 했다.
그자에 관한 이야기가 하도 거짓말 같아서 헌터들 사이에 흔한 미신이나 루머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주 없는 이야기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윤현민은 생각지도 못한 행운, 아니...... 놀라운 기적을 받고서 어떤 말로 감사를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그 바람에 더듬거리며 식상해 빠진 소리만을 내뱉어 놓았다.
"이,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형은...... 형은 내 구세주예요."
말을 하고 보니 그는 이미 세상을 구한 사람이었다.
구세주라는 말조차도 적당한 표현이 아니었다.
윤현민이 무어라고 할 말을 더 찾으려는 사이, 정대식이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말했다.
"내게 고맙다면 네 능력을 값어치 있게 써라. 다시금 세상에 위기가 왔을 때, 내가 아닌 네가 구원자가 될 수 있도록......."
윤현민은 숙연해졌다.
하늘로부터 어떤 계시를 들은 기분으로 그는 고개를 수그렸다.
세상 사람들 말로는 이능이라는 것은 오로지 신의 선택을 받은 자들만이 갖는 특권이라고 했다.
그런데 정대식이 자신에게 이능을 주었으니, 윤현민에게는 신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그의 말 역시도 신의 계시나 마찬가지였다.
그 사실을 토로하려고 윤현민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정대식의 모습은 이미 간 곳이 없었다.
윤현민은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보이는 것은 사방에 깔린 희미한 어둠뿐이었다.
그제야 윤현민은 정대식이 할 일을 마치고 떠나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도 인사는 하고 가지......."
남겨진 아쉬움에 한 마디를 중얼거린 윤현민은 또 언제 그를 다시 보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아니, 어쩌면 두 번 다시는 만나는 일이 없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멀리 있지 않았다. 그의 말에 따르자면 강남 한복판에, 바로 그들 옆에 존재하고 있었다.
평범한 소시민으로 가장해서 헌터들이 지키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거면 됐다고 윤현민은 스미는 서운함을 삼켰다. 그리고 정대식의 유지를 받들어, 자신의 사명을 다 하겠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주먹은 조금 전까지 평범한 사람의 주먹이었으나, 이제는 각성자이자 헌터이며 올인원으로서의 주먹이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세상을 구원하게 될지도 모르는, 위대한 주먹이기도 했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