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대신 회귀함
#001화
“이번에 확실히 깨달았어. 나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무슨 소리야, 그게?”
“사부. 이번에는 사부가 과거로 가.”
자신의 제자이자, 뇌제(雷帝)라 불리는 이성은이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상태로 그리 말하자 박한새는 인상을 찡그렸다.
평소라면 이런 소리를 해도 가볍게 흘려들었겠지만, 유언이라고 생각하니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치료에만 전념해. 너 지금 상태 많이 안 좋다.”
“치료해도 글렀어. 이미 히드라의 독에 당했거든.”
뽀얀 피부에 또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이성은이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피부색이 거뭇하게 변색이 되어있었다.
그의 말처럼 치명적인 독에 당한 듯싶었다.
“대청봉 던전에서 히드라의 독에 당했다고?”
S랭크 헌터도 죽일 수 있는 게 바로 히드라의 독이었다.
하지만 히드라는 굉장히 드물게 나오는 몬스터였는데, 한국에서는 등장한 적이 한 번도 없었을 정도였다.
“중국에서 지원 온 헌터 중에 파롤의 졸개들이 끼어있었어.”
헌터는 물론이요, 일반인들까지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성좌가 바로 파롤이었다.
악신, 파롤!
인류의 파멸을 원하는 성좌로서, 파롤을 배후성으로 둔 헌터들 역시도 변절자로서 인류를 공격하였다.
이번 레이드의 실패 배경도 악신, 파롤의 수작인 듯싶었다.
“파롤, 이 빌어먹을 새끼가 기어코!”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어차피 과거로 돌아가면 다 없던 일이 될 테니까. 파롤은 과거로 돌아가서 사부가 복수해주면 돼.”
“또 그 이야기를 하는 거냐?”
다시 이야기가 원점으로 돌아오자, 박한새는 헛웃음을 지었다.
과거로 돌아간다니.
세상이 요지경이라지만, 회귀라는 게 정말 가능한 것일까 싶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카펠라 님이 아무리 최상위 성좌라고 해도 더는 여력이 없으시거든.”
그가 카펠라라는 성좌 이름을 말했지만, 사실 박한새는 성좌에 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성좌들은 헌터가 아닌 평범한 인간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박한새 역시도 성좌와 접촉한 적이 없었으니, 정보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성은이의 배후성이니 엄청난 힘을 가진 성좌이긴 하겠지.’
사실상 신이나 다를 게 없는 존재가 바로 성좌였다.
카펠라는 최상위 성좌이니, 회귀라는 이적을 부리는 게 가능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이성은은 종종 미래를 예측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었고 말이다.
“네 말이 사실이라고 쳐보자. 왜 하필 나냐?”
회귀야 그렇다 치자.
왜 하필 자신일까?
이런 박한새의 의문에 이성은은 당연하다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그야 사부는 천재잖아.”
천재.
확실히 박한새는 천재 소리를 들어도 이상할 게 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무공의 창시자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헌터가 아니야.”
“상관없어. 헌터의 정점에 있는 나도 결국, 세계를 지키지 못했잖아?”
“이번엔 다르겠지.”
“아니, 똑같을 거야. 이번 회차에도 기껏해야 피해를 조금 줄였을 뿐, 던전 브레이크 자체를 막지는 못했어. 내 실력으로는 이 정도가 한계라는 뜻이지.”
이성은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른 S랭크 헌터와 비교하면 그의 활약상은 실로 발군이었다.
오죽하면 아시아의 구세주란 소리까지 들었을 정도니.
하지만 그래봤자, 결국 그는 실패자였다.
2회차에 이어, 3회차인 이번에도 세계의 멸망을 막지 못했던 것이다.
“나라고 다를까? 난 던전에도 못 들어가니 너보다 할 수 있는 게 더 적어.”
박한새는 평소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비헌터의 몸으로 헌터 이상의 무력을 스스로 쟁취한 사람이니 자신감이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감과 자만심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었다.
목표가 단순하게 ‘누구보다 강해지는 것’이었다면 박한새는 자신감을 표출했을 것이다.
이미 지금도 S랭크에 비견되는 무력을 가진 박한새였으니.
그렇지만, 던전 브레이크로부터 세계를 구하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아무리 그가 강한 힘을 얻는다고 해도 던전에 들어가지 못하는 그로선 던전 브레이크 역시 막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직접 던전에 들어갈 필요는 없어.”
“그러면?”
“내가 두 번이나 회귀하면서 많은 일을 했지만, 사부가 헌터들에게 가르친 검기 하나보다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어.”
박한새가 개발한 검기는 헌터사에 엄청난 발자취를 남겼다.
이전까지 헌터들은 오직 스킬만으로 몬스터를 사냥했었다.
좋은 아이템을 가졌거나, 경험이 많아 노련한 헌터가 아니라면 스킬로만 사냥을 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전투와 관련된 스킬이 없는 헌터들은 아무리 다른 조건이 좋아도 하위 랭크로 분류되었었다.
하지만 박한새에 의해 검기가 공개되자, 이 같은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서포터로 분류되던 이들도 몬스터를 직접 살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하위 등급 헌터들의 생존율은 비약적으로 올랐다.
제대로 된 스킬 없이, 오직 검기 하나로 C랭크 또는 D랭크 헌터로 인정받는 이들도 생길 정도였다.
물론 A랭크 이상의 헌터들이라고 검기의 도움을 받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검기는 상위 던전에서도 충분히 통했으니까.
“사부는 곧 경지를 올릴 수 있을 거 같다며? 과거로 돌아가서 경지를 올린 뒤에, 검기 이상의 것을 헌터들에게 알려줘 봐. 그러면 인류는 승리할 수 있을 거야.”
“…….”
박한새도 이쯤 되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면, 자신이 적임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정말 내가 과거로 가야 한단 말인가?’
쿠우웅!
그때였다.
대청봉 던전이 있는 방향에서 묵직한 진동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지진의 전조처럼 들리는 그 소리는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할 때 나는 소리였다.
“여기 있어라.”
“사부, 어디 가게?”
“던전이 열렸잖아. 막으러 가야지.”
헌터가 아닌 박한새지만, 몬스터를 상대한 경험은 어지간한 헌터보다 많았다.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할 때마다 가장 앞장서서 싸웠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지금도 망설이지 않고 움직였다.
“어차피 소용없는 거 알잖아. 대청봉 던전은 9성급 던전이야. 한반도 전체에서 던전이 열릴 거라고.”
확실히, 던전 브레이크는 일개 개인이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어떤 던전에서든,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한다면 주변의 던전도 영향을 받는다.
현존하는 던전 중 최고 등급인 대청봉 던전의 경우, 한반도 전역은 물론이고 중국과 러시아, 일본에까지 영향이 갈 정도였다.
즉, 대청봉 던전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한다면 한국의 모든 던전이 열린다는 뜻이었다.
박한새가 아무리 강한 무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한국 전역에서 벌어질 던전 브레이크를 막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 세상에 소용없는 건 없다.”
“결국, 리셋될 세상인데?”
이성은의 말에 박한새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과거로 가서 세상이 리셋되든, 안 되든, 그런 건 알 바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태어난 세계를 지키는 것.
박한새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그뿐이었다.
***
대청봉 던전이 열리자 무수히 많은 몬스터가 쏟아져 나왔다.
몸길이가 5m에 달하며, 사자의 몸에 박쥐 날개를 가진 맨티코어.
그리고 고릴라 몸에 박쥐 날개를 가진 발로그까지.
S랭크급의 최상위 헌터들조차 상대하기 어려워하는 몬스터가 수백 마리나 쏟아져 나온 것이다.
서걱, 서걱!
하지만 맨티코어, 발로그 같은 9성급 흉악한 몬스터들이 단 한 명의 인간에 의해 발이 묶이고 있었다.
‘내가 있는 한, 절대 이곳을 지나갈 수 없을 것이다.’
다른 던전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들은 어쩔 수 없었다.
박한새가 아무리 강해도 그의 몸은 하나였으니.
그래도 가장 강한 대청봉 던전의 몬스터들만 어떻게든 막는다면 인류가 생존할 일말의 가능성을 얻게 되리라.
‘나머지 S랭크 헌터들과 내 제자들을 믿는 수밖에.’
-이해할 수 없군요.
박한새는 자신의 귓가에 들리는 여성의 목소리에 잠시 숨을 가다듬으며, 무심하게 대꾸하였다.
“뭐가 말입니까.”
-굳이 피를 흘리며 싸우는 이유가 뭐죠? 이렇게 고통받으며 싸울 필요 없이, 지금 바로 과거로 갈 수 있어요.
지금 들리는 목소리는 이성은의 배후성, 카펠라의 목소리였다.
“어렵게 생각할 거 없습니다. 눈앞에 적이 있으니, 벤다. 오직 그뿐입니다.”
과거로 회귀하는 것?
성좌의 목소리까지 들렸으니, 더는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최상위 성좌쯤 돼서 헌터도 뭣도 아닌 그를 속일 이유는 없을 테니까.
나름 고위 헌터로 인정받는 B랭크 헌터들도 거들떠보지 않는 게 성좌라 불리는 이들이었으니.
-차라리 이 시간에 과거로 갔을 때 필요할 정보들을 얻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성은이는 어떻게 됐습니까?”
카펠라의 질문을 무시하고 박한새는 이성은의 생사를 물었다.
-과거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박한새는 이를 악물었다.
이성은이 결국 숨을 거두었다는 이야기였으니, 실로 참혹한 기분이었다.
“죄송하지만 대화는 더 이상 못 할 거 같습니다. 몬스터를 상대해야 해서요.”
잠깐의 휴식을 취한 그는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그토록 많은 몬스터를 벴는데, 아직도 저렇게 많이 남아있군.’
이성은의 말처럼 소용없는 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몇백 마리를 베어도 또다시 몇백 마리의 몬스터가 던전에서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만에 하나, 대청봉 던전의 몬스터를 다 잡아도 끝이 아니었다.
지금쯤이면 전국에서 몬스터와 사투를 벌이고 있을 테니까.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본다.’
박한새는 고개를 저었다.
설령 끝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크게 상관없었다.
늘 그렇듯,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당신은 정말 우직한 분이시군요.
카펠라가 질렸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성좌로서 무수히 많은 헌터를 보아온 그녀지만, 박한새 같은 헌터는 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박한새는 헌터가 아니기도 했고 말이다.
-하긴, 그런 우직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니, 무공이란 것을 창시할 수도 있었겠죠.
-이성은 헌터가 왜 당신을 선택했는지 이제는 이해가 되는 거 같아요.
박한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상대가 최상위 성좌라는 사실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있는 적을 하나라도 더 베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다.
‘이제 끝인가.’
무한할 거 같던 단전의 내력이 어느덧 바닥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호흡법으로 대기의 기를 흡수하고 있지만, 그것도 한계는 있었다.
소모되는 양이 압도적으로 많은 지금 상황에서는 내력이 남아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큭!”
내력이 다한 그는 결국 몬스터의 공격을 하나둘 허락하고 말았다.
최대한 피하려고 했으나, 5m 이상 가는 거구의 공격이었기에 비껴 맞아도 치명상이었다.
어느덧 박한새는 전신에 피를 뒤집어쓴 상태로 쓰러졌다.
-설마 이렇게까지 싸울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네요.
카펠라의 말에 박한새는 조소를 흘렸다.
어쩐지 그녀의 말이 비아냥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바보 같다고 생각하시겠군요.“
-글쎄요. 오히려 저는 이번에 확실하게 느꼈어요. 당신이라면 저의 업을 대신 할 수 있을 거란 사실을.
‘업을 대신 한다는 것이 무슨 말이지?’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던 박한새는, 이내 눈앞으로 날아오는 거대한 짐승의 팔을 보며 생각을 멈췄다.
빌어먹을 몬스터들은 잠깐의 여유도 주지 않았다.
‘진짜 과거로 간다면 반드시 이놈들을 멸절시키고 말리라.’
죽음을 경험하고서 눈을 뜨니 뭔가 익숙한 거 같으면서도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과거, 내가 군 전역을 하고 구한 자취방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크게 당혹스럽지 않았다.
이성은의 말처럼 과거로 회귀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었으니.
‘뭐야, 이건?’
내가 당혹감을 느낀 부분은 따로 있었다.
[‘무에서 무를 이룬 자.’ 칭호를 획득했습니다!]
[필멸자의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아무래도 나는 그냥 회귀만 한 것이 아닌 듯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