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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2화 (2/275)

#002화

14년 전, 군 전역을 하고 구한 자취방에서 눈을 뜬 나는 가장 먼저 화장실로 달려갔다.

“이게 14년 전의 나라고?”

화장실 속 거울을 보니, 어제 아침에 본 내 얼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피부가 칙칙하여 몇 살 더 많아 보였다.

‘몸 상태는 나쁘지 않군.’

우락부락한 몸은 아니었다.

오히려 겉으로 봐서는 빼빼 마른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직접 만져보면 알 수 있다.

이 시절의 나는 미래의 나처럼 극도로 압축된 실전 근육을 보유하고 있었다.

‘문제는 내공이 없다는 거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단전 자체가 사라진 상태.

그야말로 무에서부터 다시 내공을 쌓아야 할 상황이었다.

[퀘스트 발생!]

[단전을 만드십시오. 카르마 +1,000]

나는 갑자기 눈앞에 떠오른 퀘스트 창을 보며 당황하였다.

카르마라니?

그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회귀할 때 이상한 문구를 봤던 거 같은데, 이 퀘스트 창과 카르마라는 것이 그때 봤던 문구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일단 단전을 만들긴 해야겠어.”

뜬금없이 떠오른 퀘스트 창이 당혹스럽긴 했지만, 어차피 퀘스트가 아니어도 단전은 만들긴 해야 했다.

앞으로 무엇을 하든, 기본적인 무력은 갖추어야 하니까.

그리고 헌터가 아닌 내가 무력을 갖추려면 단전에다 내공을 모으는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쿵!

남들은 들을 수 없는 거대한 소리가 내 귓속에 뚜렷하게 전해졌다.

막힌 혈도가 뚫리는 소리였다.

‘벌써 응신입기혈의 단계를 넘어 옥동쌍취의 단계에 진입하였군.’

역시 한번 갔던 길이라서 그럴까?

이성은의 도움을 받았던 14년 전의 나보다 훨씬 빠르게 진도를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지. 단숨에 단전까지 만들어보자.’

나는 다시 정신을 집중해서 내공을 운용하였다.

그러다 마침내.

[퀘스트 완료!]

[단전을 만들었습니다. 카르마 +1,000]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옥동쌍취, 주천화부, 양광이현 등.

단전을 형성할 때 거쳐야 할 단계들을 순식간에 지나쳐 결국 단전을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그나저나 카르마라는 게 도대체 뭐지?”

[카르마 상점에서 카르마를 소비하여 각종 물품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사용 가능한 카르마 - 1,000]

마치 내 의문을 해결해 주려는 듯, 문구가 다시 한번 떠올랐다.

“카르마 상점.”

[카르마 상점창

헤이스트 - 9,200 카르마

강철 피부 - 8,500 카르마

집중력 강화 - 6,000 카르마]

눈앞에 떠오른 반투명 홀로그램을 보며 작게 감탄하였다.

스킬부터 시작해서 포션, 아이템까지.

카르마 상점이란 곳에는 온갖 것이 다 있었다.

심지어 내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영약’도 존재하였다.

만년지극혈보 - 150,000 카르마

인형설삼 - 200,000 카르마

묵혈정령실 - 300,000 카르마]

‘정말 무협지에서나 나올 법한 영약들이군.’

설명들이 거창하였다.

반 갑자의 내공과 함께 부수적으로 환골탈태와 임독양맥의 효과를 가져다준다는 만년지극혈보.

그리고 1갑자의 내공을 늘려준다는 인형설삼과 백독불침과 함께 신체를 강화시켜 준다는 묵혈정령실까지.

그 외에도 엄청난 효과를 지닌 영약들이 많았는데, 설명 문구만 봤을 때, 나로서는 실로 탐이 났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꿈도 꿀 수 없겠는걸?’

현재 내가 보유한 1,000 카르마로 구매할 수 있는 영약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자홍선지초’를 구매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자홍선지초는 영약보단 약초에 가까운 풀떼기였다.

하지만 영약은 영약이라서, 복용하면 최대 1년 이상의 내공을 불려준다.

물론 무공 입문자가 복용할 경우, 1년의 내공은커녕 그저 몸이 건강해지는 수준에서 만족해야 할 테지만 말이다.

“바로 복용하자.”

카르마 상점창에서 자홍선지초를 구매한 나는 망설이지 않고 입에 넣었다.

그러자 몸 내부에서 기가 늘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가부좌를 한 채로 운기에 집중하였다.

확실히, 최하급 영약이라서 그런지 순식간에 영약의 기운을 전부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1년이라.’

조금 강해진 거 같긴 한데,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겨우 1년 정도로는 체감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웨에에엥!

갑자기 바깥에서 사이렌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빨리 나와!”

“왜 이렇게 급해?”

“등촌동 전역에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했다잖아! 지금 당장 대피소로 가야 한다고!”

앞집, 604호 커플이 복도에서 하는 대화를 듣고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던전 브레이크라고?’

이 시기에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전역 이후에 내가 처음으로 맞이한 던전 브레이크까지는 아직 몇 달이란 시간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이성은이 없기 때문인가?”

지금의 나는 나비효과를 일으킬 만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회귀자였던 이성은이 개입하지 않아서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였다.

내가 아는 이성은이라면 회귀하고서 가장 먼저 할 행동이 던전 브레이크를 막는 일일 테니 말이다.

‘이럴 게 아니라, 서둘러 사람들을 구하러 가야겠군.’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했습니다! 5명 이상의 생존자를 구출하십시오. 카르마 +500]

기다렸다는 듯 떠오르는 퀘스트.

사람들을 구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꺄아악! 살려주세요!”

등산객으로 보이는 20대 여성이 괴상한 생물체에 쫓기고 있었다.

그 생물체는 다름 아닌, 고블린이었다.

‘역시 봉제산에 가장 먼저 오길 잘했군.’

다른 곳에서 발생한 던전 브레이크는 도심 한복판이라, 방어 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고 헌터들이 즉각 출발해서 피해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봉제산은 산이라는 이유로 헌터 파견이 늦을 것이기에 가장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하였다.

실제로 위기에 처한 여성을 보니 내 생각이 틀리지 않은 거 같았다.

“제가 막을 테니,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치세요.”

“키기긱!”

내가 여인을 구하기 위해 나서자, 고블린이 여인에게 달려들던 기세 그대로 나에게 달려들었다.

부우웅!

고블린의 손에 들려있는 조잡한 나무창이, 내 가슴 부위를 찌를 듯 쏘아졌다.

몸을 살짝 뒤틀자, 창이 허공을 갈랐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겨드랑이로 창을 붙잡았다.

“끼끽!”

고블린이 낑낑거리며 창을 빼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창을 포기하고 손톱을 세우려 할 때, 내 주먹이 먼저 고블린의 얼굴로 향하였다.

퍽!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내 주먹 한 방에 고블린은 빈사 상태에 빠졌고, 나는 빼앗은 나무창으로 완전히 숨을 끊어주었다.

[10 카르마를 얻었습니다.]

나는 작게 감탄했다.

‘몬스터를 잡아도 카르마를 얻는 건가?’

마치 게임 같았다.

몬스터를 잡고 퀘스트를 깨며 강해지는 RPG 게임 말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지금 당장은 사람을 구하는 일이 급했기에 카르마나 문구 내용은 더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킥킥!”

산을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고블린의 수가 많아졌다.

지금은 산 전체에 흩어져있는 거 같지만, 다 모으면 아마 수백 마리는 족히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합!”

[11 카르마를 얻었습니다.]

[9 카르마를 얻었습니다.]

나는 능숙하게 고블린 두 마리를 상대하였다.

단전에는 쥐톨만 한 내공뿐이지만, 그 내공을 다루는 사람이 나라면 고블린 두 마리를 상대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다.

“꺄악!”

“도, 도망쳐!”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비명이 들렸다.

배드민턴장이 있는 방향이었다.

‘수십 마리는 족히 되어 보이는데, 지금의 몸으로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정소연은 배드민턴장 바깥에 비치는 그림자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원래의 그녀였으면 사실 이 정도 위기는 위기라고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B랭크 헌터였던 그녀에게 고블린은 한주먹 거리도 안 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속은 엉망인 상태였다.

마력 역류 현상으로 스킬은커녕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결국, 이렇게 죽을 운명인 건가.’

쾅! 쾅! 쾅!

천막으로 세워진 배드민턴장이 부서질 듯, 크게 흔들렸다.

당장 고블린들이 달려와서는 그녀의 몸을 찢는다고 해도 절대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어떡하죠? 이러다 무너지는 거 아니에요?”

“조금만 버티면 군인이든, 헌터든 저희를 구하러 와줄 겁니다. 조금만 버티세요.”

“저기 그림자들 보세요. 몬스터가 30마리도 넘어 보이는데,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희가 지금 문을 막고 있지 않습니까.”

배드민턴장에 숨은 시민들이 초조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은 지금 수십 마리의 고블린에게 포위된 상태였다.

더 큰 문제는 고블린의 수가 점점 불어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원이 언젠가는 올 테지만, 과연 지원이 올 때까지 천막 건물이 버텨줄지 의문이었다.

‘다른 몬스터도 아니고 고블린 따위에게 죽을 운명이라니….’

정소연은 자조적인 한숨을 내쉬었다.

죽는 건 두렵지 않으나, 하필 자신을 죽일 상대가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고블린이라는 게 창피스러웠다.

찌지직!

“키키킥!”

마침내 천막이 찢어지며 고블린의 형체가 사람들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가자, 사람들은 더는 침착함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아비규환이 된 시민들을 두고 정소연이 앞으로 나섰다.

내상으로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상태였지만, 몬스터에게 등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저긴가?’

비명을 듣고 다급히 달려가니, 고블린이 천막 형태의 가건물을 포위한 채 우르르 몰려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블린들이 포위하고 있는 저 건물 안에 사람들이 숨어 있는 듯 보였다.

“숫자가 꽤 많군.”

스무 마리, 아니 서른 마리는 족히 되어 보이는 숫자였다.

지금까지 만났던 고블린 무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규모가 컸다.

‘하나 문제 될 것은 없다.’

내겐 1년의 내공뿐이다.

하지만 고블린을 상대하는 데에는 1년의 내공이면 충분하였다.

“킥킥?”

일부러 소리를 내며 등장하자, 뒤쪽에 있던 고블린들의 시선이 나를 향하였다.

“케케켁!”

나와 눈이 마주친 고블린이 괴성을 지르다가 갑자기 앞으로 넘어졌다.

넘어진 고블린의 뒤통수에는 공통적으로 큰 구멍이 나있었다.

다른 고블린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기가 일렁이는가 싶더니, 내 주변의 고블린들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철푸덕 쓰러졌다.

내가 내지른 나무창에 꿰뚫리고서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즉사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싸워보는 것도 오랜만이야.’

절정의 경지에 오른 뒤에는 내공이 부족하다고 느낀 적이 드물었었다.

그때의 나에게는 1갑자가 넘는 내공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고작 1년 추가 내공밖에 없는 상태였다.

아직 수십 마리의 고블린이 남아있고 언제 다른 고블린 무리가 나타날지 모르니 극한의 효율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고블린을 죽이자, 랜덤으로 카르마가 조금씩 올랐다.

아마 몬스터 수준에 따라 올라가는 카르마 양도 다른 게 아닐까 싶었다.

‘보스 몬스터를 잡으면 카르마가 더 많이 오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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