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화
콰지직!
내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근처에서 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등산로가 아닌, 나무가 우거진 풀숲에서 누군가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앞을 가로막는 것을 막무가내로 부수며 달려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실로 위압적이었다.
“저기요. 제 동생인데, 긴 생머리에 하얀 피부의 2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 본 적 있으세요?”
흙먼지를 휘날리며 등장한 그녀의 정체는 다름 아닌, 정소연의 언니인 정호연이었다.
정소연과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헌터였는데, 미래에는 무려 S랭크 헌터가 될 인물이었다.
‘정호연을 여기서 볼 줄이야.’
인연이 깊었던 인물을 만나니, 꽤 반갑게 느껴졌다.
물론 정호연은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점이, 조금 씁쓸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정호연 씨의 동생인, 정소연 씨라면 정상에서 고블린들과 싸우고 있을 겁니다.”
“우리 소연이가 고블린들과 싸우고 있다고요?”
내가 정소연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자, 정호연이 화들짝 놀랐다.
헌터로서의 활동은커녕 일상생활도 어려워하는 정소연이 몬스터와 싸우고 있다고 하니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소연이 무사한 거 맞나요? 아니 그보다, 산 정상이 어느 방향이죠?”
그녀는 내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에 아무런 반응도 내비치지 않았다.
동생의 일이 급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애초에 A랭크 헌터인 그녀이니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정체를 안다고 이상하게 여길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무사합니다. 방향은 이쪽으로 쭉 가시면 됩니다.”
“고마워요. 이 은혜는 잊지 않을게요!”
그녀는 짤막하게 감사 인사를 남기고는 내가 가르쳐준 방향으로 다급히 달려갔다.
‘내상이 치료돼서 걱정하지 않아도 될 텐데.’
뭐, 언니로서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어떤 헌터보다도 빨리 정소연을 구하러 온 거겠지.
‘나는 사람이나 구하자.’
퀘스트는 이미 완료했지만, 꼭 퀘스트 때문에 사람을 구하는 것은 아니었다.
설령 퀘스트가 아니었어도 누구보다 빨리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였을 것이다.
우연히 만난 남성에게서 동생의 위치를 알아낸 정호연은 다급히 산 정상으로 달려갔다.
“키에엑!”
“케엑!”
점점 가까워지는 고블린의 괴성을 들으며, 정호연의 속내도 까맣게 타들어갔다.
정소연의 상태가 정상이었다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B랭크인 그녀가 고블린 따위에게 위협을 받을 일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의 정소연은 고블린 하나에게 목숨을 잃을 정도로 몸 상태가 최악이었다.
‘제발, 살아만 있기를!’
그렇게 조급한 마음으로 고블린들이 있는 장소에 도착한 정호연은 예상치 못한 광경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소, 소연아?”
분명, 내상으로 인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정소연이었다.
움직일 때마다 몸속의 마력이 요동치는 바람에 뛰지도 못하고 전투 같은 건 당연히 꿈도 꾸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케에엑!”
위협적으로 들렸던 고블린의 괴성은 사실 비명이었다.
정소연.
바로 그녀가 고블린들을 맨손으로 때려잡고 있었던 것이다.
“언니? 언제 왔어?”
기어코 마지막 남은 고블린까지 쓰러뜨린 정소연이 자신의 언니인 정호연에게 말을 걸었다.
“소연아, 몸은?”
“다 나은 거 같아.”
“나은 거 같다고?”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믿기 어려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내상을 이렇게 빨리 치료하다니?
몸속 마력이 손상되는 현상, 흔히 내상이라 부르는 부상은 헌터에게 있어 실로 치명적이었다.
헌터는 기본적으로 자가치유력이 상당하여 외상은 금세 회복하고는 하지만, 마력의 손상으로 비롯된 내상은 달랐다.
내상을 치료하지 못해 은퇴하는 헌터들만 한 해에 수십 명은 될 정도였다.
“그 심했던 내상을 어떻게 치료한 거야?”
“나도 잘 모르겠어. 어떤 분이 도와줬는데…. 아, 혹시 언니! 짧은 스포츠형 머리의 남성분 못 봤어?”
정소연의 물음에 정호연은 갑자기 아까 산길에서 만났던 20대 남성의 얼굴이 떠올랐다.
곳곳에 고블린이 나타나는 상황인데도 전혀 긴장하지 않던 사내.
그리고 그때는 미처 생각 못 했었는데, 그 사내는 정소연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정소연이 산 정상에 있다는 사실조차도.
“검은색 트레이닝복 입은 남자를 말하는 거야? 네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인데.”
“그분 지금 어디 계셔? 꼭 그분을 만나야 해!”
낯설기 그지없는 동생의 모습을 보며 정호연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 사람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었나?’
생긴 것부터 심상치 않은 아우라를 풍기긴 했었다.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전신 근육이 발달되어 있었으니까.
던전 브레이크가 터진 상황에서도 홀로 태연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었고 말이다.
하지만 정소연의 반응을 보니, 그녀가 첫인상 때 느꼈던 것보다 훨씬 더 범상치 않은 인물인 듯싶었다.
<던전 브레이크, 사망자 0명!>
<신원을 밝히지 않은 헌터, 10명이 넘는 시민을 구출하다!>
<새벽 길드 “비록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했지만, 최선을 다해 수습.“>
<던전 브레이크 책임론을 벗기 위해 분투하는 새벽 길드!>
나는 기사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운 좋게도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나오지 않았다.
다친 사람은 많았지만, 던전 브레이크를 겪고도 이렇게 피해가 적었다는 것에,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새벽 길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되는군.’
오늘 있었던 던전 브레이크는 강서구 지역을 책임지는 새벽 길드로 인해 발생한 문제였다.
즉, 새벽 길드가 제때 던전을 클리어하지 않아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했다는 것.
‘그 망나니 놈이 이번 사태의 원인일 텐데 말이야.’
새벽 길드의 후계자, 김석민.
원래였으면 이성은의 손에 처단되었을 망나니 중의 망나니였다.
하지만 회귀자인 이성은은 지금 존재하지 않았고 회귀자가 아닌 이성은 또한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결국, 김석민은 멀쩡히 살아서 앞으로도 오늘과 같은 민폐를 저지를 것이란 뜻이었다.
“일단 두고 봐야지.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회귀 전의 나였으면 새벽 길드를 살짝 압박만 해줘도 김석민을 제명하게끔 유도할 수 있었다.
새벽 길드가 10대 길드 중 하나여도 내 위상은 10대 길드가 아닌, 5대 길드보다 위에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내 이름값은 일개 헌터만도 못한 상태였다.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지켜보고서 나중에 판단해야 할 거 같았다.
[권속을 늘리십시오. 한 명당 카르마 +500]
‘지금 중요한 것은 이 퀘스트를 깨는 것인데….’
권속을 늘려라.
꼭 퀘스트 때문이 아니더라도, 카르마를 얻으려면 권속이란 걸 얻을 필요가 있었다.
정소연이 고블린을 잡을 때 카르마를 얻은 것처럼, 권속이 생기면 지속적으로 카르마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문제는 권속을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정소연에게 연락처라도 물어볼 걸 그랬다.
그녀를 만나면 조금이라도 의문을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말이다.
‘정소연을 만날 수 없다면 다른 헌터라도 만나보는 수밖에.’
헌터로 각성했다고 해서 모두가 헌터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던전에 들어가는 것이 부담되어 각성자 등록만 하는 경우도 많았고 아니면 헌터 자격시험에 떨어져서 헌터로 활동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주현근은 후자였다.
그는 헌터가 되고 싶었지만, 스킬이 없다는 이유로 헌터 자격시험에서 번번이 탈락하였다.
“짐꾼 새끼, 왜 이렇게 발이 느려?”
“그러니까. 이래서 조금 비싸더라도 F랭크짜리 짐꾼 쓰는 게 낫다니까.”
“죄송합니다!”
E랭크 헌터들의 구박에 주현근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연신 사과하였다.
헌터 자격시험에서 번번이 낙방한 주현근이지만, 그는 던전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물론 그게 헌터로서 던전 사냥을 한다는 말은 아니었다.
주현근은 어디까지나 짐꾼으로서, 몬스터 사냥이 아닌 그저 짐을 나르는 일만 하고 있었다.
“아오, 오늘은 허탕이네.”
“돌아가서 클럽이나 가자.”
“요즘 팰리스가 물 좋던데, 콜?”
“콜.”
헌터들이 하는 대화를 듣고 주현근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돌아간다니 그로서는 천만다행이었다.
장정 다섯 명이 들어야 할 짐을 혼자 짊어지고서 움직이고 있었기에 체력이 한계에 도달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그가 짊어진 배낭에 새로운 짐이 추가되었다.
“너는 힘쓸 일도 없었으니, 쌩쌩하지? 이것도 좀 들어줘라.”
“내 검도 올린다.”
갑작스럽게 추가된 무게에 주현근은 순간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넘어지면 뒤진다.”
그가 휘청거리건 말건, 헌터들은 구경만 할 뿐이었다.
아니, 구경하는 건 양반이었다.
쓰러지면 진짜 죽이기라도 할 기세로 노려보는 헌터도 있었다.
“하아. 하아.”
간신히 중심을 잡은 주현근은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 해서든 강해져야 한다!’
강해지고 또 강해져서 짐꾼 신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였다.
그래야지만 지금 같은 굴욕을 당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던전 밖으로 나가자 드디어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죽다 살아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여운을 느낄 시간은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뒷정리도 짐꾼인 그의 역할이었기 때문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마침내 모든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터벅터벅.
띠 리로 리리리~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박한새 형님.]
주현근은 발신자 이름을 보고서 눈을 크게 떴다.
군 시절, 그가 가장 존경했던 선임의 전화였기 때문이다.
“형님, 어쩐 일로 전화를 다 주셨어요?”
-언제 시간 되냐?
낮고 묵직한 목소리를 듣고 주현근은 미소를 지었다.
동료로서, 선임으로서 누구보다 든든하게 느껴졌던 그 목소리가 지금은 너무나도 반갑게 느껴졌다.
“형님이 보자고 하면 언제라도 시간을 내야죠. 저는 지금 당장도 됩니다.”
빈말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침대에 눕기만 하면 1초 만에 기절할 거 같은 상태였지만, 박한새가 보자고 한다면 그는 당장이라도 뛰어갈 수 있었다.
-그럼 지금 너희 집으로 갈 테니까, 이따 보자.
“넵.”
무거웠던 발걸음이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생사를 함께했던 동료를 다시 본다는 생각에 기분이 들뜬 것이다.
“돈 될 게 뭐가 이리 없어?”
“형님, 진짜 거지새끼들인 거 같은데요?”
“더 찾아봐. 뭐라도 나오겠지!”
하지만 정작 집으로 돌아온 주현근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세 가족이 함께 사는 반지하 집은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팔에 문신을 한 거구의 사내들이 그의 집을 어지럽히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들 지금 뭐 하는 거야!”
작은 방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여동생의 모습을 본 그는 분개해서 외쳤다.
“뭐 하기는. 빚을 갚지 않으니 압류하는 거지.”
“이딴 짓 안 해도 내가 갚는다고 했잖아!”
아버지가 거액의 빚만 남기고 사망한 뒤로 그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그가 각성한 뒤로는 형편이 조금 나아지나 싶었지만, 어머니가 암에 걸리면서 다시 형편이 어려워졌다.
사채 빚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난 것도 그때부터였다.
“너의 뭘 믿고? 네가 헌터라도 되는 줄 아냐?”
“이자는 갚고 있잖아!”
“원금을 갚아야지, 이자만 갚으면 끝이야?”
억지였다.
이자를 착실하게 갚는 주현근은 그 누구보다 성실한 채무자였다.
사채업자 입장에서는 주현근을 대우해줬으면 대우해줬지, 이런 식의 협박을 할 이유는 없었다.
‘나에게 힘이 있었다면!’
엄청난 힘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있는 E랭크 헌터를 쓰러뜨릴 힘만으로도 충분하였다.
“현근아. 이게 무슨 일이냐?”
“하, 한새 형!”
“너는 또 뭐야?”
그때, 또 한 명의 사내가 그의 집으로 들어왔다.
집들이 선물인지, 커다란 짐을 들고 있는 사내의 이름은 다름 아닌, 박한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