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화
출발점 위에 선 문정민은 고개를 돌려 경쟁자들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대부분이 긴장한 기색으로 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딱 봐도 경계해야 할 상대는 없어 보이는데?’
겨우 달리기하는데 긴장하다니.
헌터가 된다고 해도 F랭크로 만족해야 할 사람들 같았다.
뭐 애초에 이곳에서 시험을 치르는 대부분의 각성자들이 F랭크를 목표로 헌터 자격시험에 응했겠지만 말이다.
‘역시 내 경쟁자는 최지혜, 한진영, 정민교 정도인가?’
세 사람은 모두 스킬을 보유했다고 알려진 각성자였다.
또한, 현재 그가 시험을 치르는 목동 시험장에서 가장 순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각성자들이기도 했다.
‘경쟁자가 그 세 사람뿐이라면, 체력 시험만큼은 목동에서 내가 1위를 할 수 있겠어.’
문정민은 다른 건 몰라도 육체적인 능력 하나는 자신 있었다.
그의 스킬 자체가 전반적인 육체 능력을 상승시키는 스킬이었으니까.
평소에 육체 단련을 열심히 하기도 했고 말이다.
탕!
출발 신호탄이 울리자, 문정민의 신형이 총알처럼 쏘아졌다.
분명히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했음에도 그는 순식간에 다른 각성자들과의 거리를 크게 벌렸다.
‘역시 내가 1등이군.’
타다닥!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무언가가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뭐야?”
달리는 도중, 문정민은 자신의 곁을 스치고 지나간 무언가를 보고 눈을 부릅떴다.
전혀 염두에도 두지 않았던 각성자였다.
이름도 모를 정도로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그런 각성자가 문정민을 추월하여 순식간에 골인 지점에 도달하였다.
“뭐, 뭐야?”
“혼자만 우사인 볼트인데?”
“스킬 쓴 거 아니야?”
“100%지. 가속 계열 스킬 안 쓰고 저 속도가 어떻게 나와.”
“미친 3초대라는데?”
“와, 3초라고?”
구경하던 다른 각성자들도 크게 놀랐는지, 그 각성자를 보며 웅성거리기 바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냥 조금 빠른 수준이 아니었다.
다른 각성자들과 비교하면 거의 두 배 이상 빨랐다.
현역 헌터를 데려와도 이렇게 압도적일 수는 없을 테니 각성자들이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빌어먹을!’
뒤늦게 골인 지점을 돌파한 문정민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체력 평가만큼은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고 싶었다.
그런데 하필 가속 스킬을 보유한 각성자가 나타나다니!
‘다른 거는 절대 안 진다!’
오래달리기와 악력, 턱걸이, 사낭 나르기 등.
아직 평가 항목은 많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다른 평가에서는 가속 스킬 보유자가 활약할 여지는 거의 없었으니, 이제부터는 그의 무대라고 할 수 있으리라.
‘뭐? 한 손 악력이 200kg?’
하지만 이어지는 상황은 문정민의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근력, 유연성, 근지구력, 심폐지구력…….
박한새란 인물은 체력을 평가하는 모든 시험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육체 능력 하나만큼은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자부하던 문정민은 단 한 번도 박한새를 이기지 못했다.
“가속 계열의 스킬에 육체 강화 계열의 스킬도 있는 건가? 도대체 스킬이 몇 개인 거야?”
“저 정도면 어디까지 올라가려나.”
“아무리 못해도 D랭크까지는 올라가지 않을까?”
“진짜 부럽네. D랭크라니. 나는 E랭크만 돼도 소원이 없겠다.”
그가 바라던 사람들의 주목이 박한새를 향하고 있었다.
심지어 문정민이 개인적으로 라이벌이라 생각했던 스킬 보유자 삼인방조차 박한새에게 집중적인 관심을 보이는 상황.
문정민으로선 여러모로 허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제기랄! 왜 저딴 괴물이 목동에 있는 거냐고!’
박한새는 딱 봐도 문정민의 상위호환 스킬을 가진 각성자였다.
하필 두 사람이 같은 시험장에서 시험을 치른 이상, 앞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은 문정민이 아닌, 박한새에게로 향할 것이 분명하였다.
시험이 끝날 때마다 나를 향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모든 시험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내고 있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와. 정말 멋있으십니다. 이번에도 1등을 하시다니!”
“나가시면 어떤 길드 가실 생각이세요? 박한새 각성자님 정도면 어디든 가실 수 있을 거 같은데.”
심지어 각성자 몇 명은 나에게 다가와서 아부를 떨기까지 했다.
헌터 라이선스 취득은 이미 기정사실이나 다를 게 없는 것이 지금의 나였다.
친해지면 손해 볼 것이 없으니, 친한 척 구는 것이다.
“길드에 가입할 생각은 없습니다.”
아직 내 행보를 확실하게 정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길드에 묶여있을 생각은 없었다.
길드에서는 내 무공을 독점하려 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헌터도 뭣도 아닌 나를 받아줄 길드가 얼마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내가 아무리 강해도, 헌터처럼 던전에 들어갈 수 없다면 아무런 존재 가치가 없었다.
물론 훈련 교관이나 아니면 연예계 활동을 기대하며 섭외할 수도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정말입니까?”
“헐, 왜 길드에 안 들어가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이능관리부에 들어가시려고 그러시나?”
각성자들은 하나같이 의문의 표정을 하고서 나를 바라봤다.
길드에 가입하지 않겠다는 내 말이 그만큼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스킬도 보유하지 않았는데 길드에 가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내가 그리 말하자,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스킬을 보유하지 않았다고요?”
“에이, 농담이시겠죠.”
역시나 믿지 않는 모습들이었다.
무공이란 것을 모르니, 이런 반응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표정을 보니, 진심이신 거 같은데요?”
“스킬 없이 체력 평가에서 역대급 기록을 쏟아냈다고요?”
“그게 말이 되나?”
“그러니까요.”
입 아프게 더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증명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이런 일을 안 겪으려면 하루빨리 사람들에게 무공의 위대함을 알려주는 수밖에 없겠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김세진이라는 이름의 각성자가 휴대폰을 꺼내서는 기사 하나를 보여주었다.
“그럼 이 기사가 진짜였나 보네요?”
“무슨 기산데요?”
“박한새 각성자님의 기사인데 한번 봐보세요.”
김세진이 나에게 자신의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늦깎이 각성자의 반란? 스킬 따위는 필요 없다!>
제목만 봐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흥미가 생긴 나는 집중해서 기사를 읽어보았다.
기사에는 나와의 인터뷰 내용이 적혀 있었는데, 내가 한 적이 없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스킬은 있으나 마나라느니, S랭크 헌터도 내 적수가 아니라느니.
마치 나를 오만한 각성자의 끝판왕으로 묘사하였다.
‘회귀하기 전에도 자주 당했던 일인데, 설마 회귀하자마자 이런 일을 당할 줄은 몰랐군.’
무공의 창시자로서 나는 늘 세간의 주목을 받았었다.
그리고 기득권이었던 헌터 세력으로부터 견제를 받기도 하였는데, 그중에 가장 많이 겪은 게 언론을 통한 지라시, 루머 등의 흠집 내기였다.
지금 올라온 기사는 회귀 전에 겪었던 일을 떠올리게끔 만들었다.
‘뭐, 그때 겪었던 장난질과 비교하면 애교 수준이야. 아니, 오히려 지금의 상황에서는 반겨야 할 일인가?’
기사를 전부 읽은 나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조되기는 했지만,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어쨌든 나란 존재가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이니.
[ㅋㅋㅋㅋㅋㅋ 각성했다고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아나 보지?]
[28살에 각성했으면서 현실감각 졸라 없네 ㅉㅉ]
[이놈 이번 시험에서 광탈한다는 것에 기자 왼팔 건다]
[스킬이 필요 없다는 헌터는 진짜 처음이다. 레전드]
실제로 기사에 달린 댓글 반응이 엄청났다.
조회수도 상당하였는데, 이 정도 조회수면 아마 지금쯤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도 나에 관한 글이 올라오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재밌군요.”
나는 피식 웃으며 휴대폰을 김세진에게 돌려주었다.
“기자가 작정하고 각성자님 욕먹게 만든 거 같은데, 괜찮으세요?”
“어그로는 확실하게 끌린 거 같지 않습니까?”
태연하게 그리 대꾸하자, 김세진이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자격시험 결과까지 나오면, 아마 웬만한 사람은 전부 각성자님을 알게 되지 않을까요?”
10위 안에 들지 못한다면, 그저 허풍쟁이로 취급받으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조용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10위 안에 든다면?
김세진의 말처럼 업계 종사자들은 전부 나에게 관심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컸다.
어쩌면 업계 종사자뿐만이 아니라, 온 국민이 관심을 가지게 될 수도 있으리라.
“저는 그거면 만족합니다.”
“그런데 기사 내용대로 각성자님은 스킬이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가 그리 물으니, 다른 각성자들도 눈을 반짝이며 내 답변을 기다렸다.
내 주변에 모인 각성자들은 전부 스킬 미보유자였다.
그리고 무공이 존재하지 않는 현재 시대에서는 스킬 미보유자가 도달할 수 있는 랭크는 E랭크가 끝이었다.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한다면 E랭크가 한계라는 뜻이었다.
“스킬이라. 당연히 있으면 좋습니다.”
미래에서 온 나라고 스킬의 중요성을 모르지는 않았다.
무공의 경지가 동등하다면, 당연히 더 좋은 스킬을 가진 쪽이 승부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를 상대로 싸울 때면 더 말할 것도 없었고 말이다.
“역시 그런가요.”
“애초에 기사가 말이 안 됐죠. 스킬이 필요 없다니. 누가 그런 생각을 가지겠습니까.”
아쉬워하는 각성자들을 보며 나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헌터라고 무조건 스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스킬이 없어도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각성자들이 눈을 빛냈다.
주현근도 그랬지만, 이들 역시 강해지고 싶어 하는 열망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아마 이들에게 무공을 가르쳐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무공 수련에 열중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각성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다음 시험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스킬도 없는 주제에 개나대네.”
“그러니까. 누가 보면 S랭크 헌터인 줄 알겠어.”
“곧 알게 되겠지. 스킬 미보유자의 한계를.”
뒤에서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뒤를 돌아보니, 목동 시험장에서 나름 유명인으로 취급받는 한진영과 정민교의 얼굴이 보였다.
그들은 비웃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추잡한 놈들 같으니.’
두 각성자의 모습을 보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나에게 향하는 게 불만인 듯싶은데, 그걸 굳이 내색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저럴 시간에 화장실이나 갔다 오는 게 훨씬 더 유익할 텐데 말이다.
‘저들은 내가 다음 평가 때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분명히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거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음 평가는 헌터로서의 실전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었으니까.
‘마침 시작이군.’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오늘의 마지막 시험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꺄아아악!”
“뭐, 뭐야. 저거?”
각성자들이 무언가를 보고 놀란 듯 비명을 질렀다.
크와아앙!
그와 동시에 용의 괴성이 들렸는데, 고개를 돌리니 정말 용을 닮은 무언가가 보였다.
시험장 한복판에 갑자기 5m가 넘는 거구의 몬스터가 나타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