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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8화 (8/275)

#008화

‘린드웜인가?’

고위 던전에서 주로 출몰하는 보스 몬스터의 등장에 각성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기겁하는 반응을 보였지만, 나는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눈앞에 보이는 린드웜이 ‘진짜’ 린드웜이라면 나도 이런 반응을 보일 수는 없었을 거다.

지금의 내 실력으로는 5성급 몬스터를, 그것도 보스 몬스터를 상대할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린드웜은 가짜였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가상 몬스터에 불과하다는 뜻이었다.

“각성자 여러분,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헌터가 되려면 겨우 이 정도로 놀라서는 안 됩니다. 진짜 헌터가 되고 나면 이보다 더한 일도 겪게 될 테니 말입니다.”

김영수 감독관이 린드웜 앞으로 아무렇지 않게 걸어와서는 그같이 말했다.

그러자 비명을 지른 각성자들은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아시겠지만, 헌터 자격시험의 마지막 평가는 몬스터와의 실전입니다.”

“실전이요?”

“물론 말이 실전이지, 여기 보이는 린드웜처럼, 가상의 몬스터를 상대하는 겁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의외로 각성자들은 처음 듣는 이야기인 듯 혼란스러운 반응을 보여주었다.

“마지막 평가는 교관들과 대련하는 거 아니었어?”

“몬스터라니! 그런 이야기는 없었잖아.”

그들의 반응을 보며 나는 14년이란 시간의 길이가 확실히 짧지 않다고 느꼈다.

14년 뒤에는 증강현실 시스템이 일상적으로 쓰이지만, 지금은 아니었던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가상의 몬스터에게 공격을 당한다고 실제로 대미지를 입을 일은 없습니다.”

김영수 감독관이 각성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리 말했으나, 각성자들은 여전히 동요하는 분위기였다.

직접 두 눈으로 본 린드웜의 위압감은 실로 압도적이었다.

아무리 헌터를 꿈꿨어도 직접 몬스터를 마주한 적은 이번이 처음일 테니, 각성자들이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이런데도 싸우는 게 두렵다면 그대로 포기하십시오. 몬스터와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는 각성자는 절대 헌터가 될 수 없습니다.”

그 말에 각성자들은 정신을 차린 듯, 몸을 풀며 전투 준비를 시작하였다.

그런 각성자들의 모습에 김영수 감독관은 씩 웃고는 손가락 세 개를 폈다.

“3단계까지 통과하셔야지만, 헌터 라이선스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모두 최선을 다해 싸워주시길 바랍니다.”

“어떤 몬스터들이 나오는지 정보를 알 수 있을까요?”

“1단계는 코볼트 한 마리, 2단계는 고블린 한 마리, 그리고 3단계는 코볼트 세 마리가 동시에 나옵니다.”

“헉! 세 마리나 나온다고?”

“미친! 어떻게 세 마리를 동시에 상대해?”

각성자들은 다시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최하급 몬스터인 코볼트와 고블린이라지만, 그래도 몬스터는 몬스터였다.

심지어 한 마리도 아니고 세 마리를 동시에 잡아야 시험 합격이라니?

‘3단계까지는 일단 가볍게 올라가겠군.’

물론 나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봉제산에서 수십 마리의 고블린과도 혈투를 벌인 나다.

고블린보다 비교적 약한 편에 속하는 코볼트 세 마리야 어려울 것도 없었다.

‘올라갈 수 있는 단계까지 최대한 올라가야겠어.’

“크윽!”

한진영은 4단계에서 쩔쩔매고 있는 문정민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냥 몸뚱아리만 단단한 놈이었군.”

체력 평가에선 제법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다.

박한새란 각성자보단 못했지만, 어쨌든 체력 평가에서는 2등이란 준수한 성적을 거뒀으니까.

하지만 몬스터와의 실전에서는 스킬 미보유자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결국, 스킬이 없다면 몬스터를 잡을 수 없다는 뜻이지.’

힘이 세면 뭐 하나?

몬스터는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을 가졌는데.

다른 신체적인 조건도 마찬가지였다.

스킬이 없으면 몬스터를 잡을 수 없고, 그래서 스킬 보유자들이 대우를 받는 것이었다.

“문정민 각성자님. 치명상 판정이 떴습니다. 이만 전투를 멈춰주시길 바랍니다.”

“제기랄!”

한진영은 픽 웃었다.

그가 예상했던 대로 문정민은 4단계를 넘지 못하였다.

스킬이 기껏해야 하나밖에 없는 정민교도 넘어선 4단계를 말이다.

“한진영 각성자님, 나와 주십시오.”

감독관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한진영은 어깨를 돌리며 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재미 볼 정도로만 가볍게 해볼까?”

1단계 몬스터는 코볼트였다.

너무도 약해서, 각성자라면 맨손으로도 때려잡을 수 있었다.

쾅!

하지만 한진영은 맨손이 아닌 스킬, 그것도 파이어볼이란 스킬을 사용해서 코볼트를 잡았다.

원래 호랑이는 토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지만, 이건 도가 지나쳤다.

실제로 한진영은 코볼트를 경계해서 필요 이상의 스킬을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사람들에게 ‘압도적인 무력’을 보여주기 위해 파이어볼을 사용했을 뿐이었다.

“와!”

“이거지. 역시 스킬이 개쩐다니까?”

“AI가 아니라 진짜 몬스터였으면 시체도 찾지 못했겠는걸?”

각성자들의 대화를 들으며 한진영은 피식 웃었다.

‘역시 수준 낮은 놈들에게는, 이렇게 화려한 것을 보여 줘야 뭐가 진짜인 줄 안단 말이지.’

체력 평가에서 아무리 좋은 점수를 거둬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렇게 스킬 한 번으로 여론이 확 바뀌는데 말이다.

아마 업계 관계자들의 반응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음 단계에 도전하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2단계가 시작되었다.

물론 이번에도 시작과 동시에 끝이 났다.

3단계, 그리고 4단계도 마찬가지였다.

다수의 몬스터도 세 개의 스킬을 가진 그를 당해낼 수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5단계가 되었다.

이때는 그도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5단계에는 무려 오크가 등장했다.

‘뭐가 이리 단단해?’

스턴을 먹인 뒤에 파이어볼을 몇 발이나 날렸는데도 쉽게 죽지 않았다.

내구력이 엄청나다는 소린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다음 단계는 힘들 수도 있겠는데?’

세 개의 스킬을 전부 사용해서 간신히 오크를 제거하였다.

5단계가 이 정도라면 6단계는 지금의 실력으론 엄두도 못 낼 수준일 게 분명하리라.

‘뭐 이 정도면 충분하지.’

3단계만 통과해도 합격인데, 그는 무려 5단계까지 통과하였다.

이 정도면 무난하게 E랭크는 따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후에 있을 헌터 연수에서 얼마나 활약하느냐에 따라 D랭크도 노려볼 수 있을 것이고 말이다.

“아, 피곤하다. 저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한진영은 감독관을 향해 싱겁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김영수 감독관은 그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는 다음 차례의 각성자를 불렀다.

“박한새 각성자님, 나와주십시오.”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관중석으로 돌아간 그는 자신의 바로 다음 차례로 올라간 박한새를 보고서 조소를 흘렸다.

‘운도 없는 놈이군. 하필 내 바로 뒤라니 말이야.’

문정민은 박한새의 뒷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저 사람도 아마 나와 크게 다르지 않겠지?’

몬스터와의 대결에서 육체적인 스펙은 당연히 중요하였다.

하지만 몬스터는 근력으로 보나 체력으로 보나 기본적으로 인간보다 육체적인 스펙이 우월하였다.

육체적인 스펙 하나만으로 몬스터를 상대하기는 쉽지 않다는 뜻이었다.

결국, 헌터에게 중요한 것은 스킬이었고, 실제로 상위 헌터들은 전부 뛰어난 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번 거는 진짜 재미있겠는데?”

“그러게. 한 4단계까지 가려나?”

“뭐 피지컬이 좋으니 5단계까지 갈 수는 있겠지. 그래봤자 오크에게 처발릴 테지만 말이야.”

문정민에게 그랬던 것처럼 한진영과 정민교는 박한새를 비웃기 바빴다.

오히려 문정민 때보다 더 심한 거 같았는데, 신체 평가에서 문정민보다 성적이 더 좋았기 때문인 거 같았다.

‘이러면 나는 박한새가 한진영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두길 응원해야 하나?’

그가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1단계 몬스터인 코볼트가 괴성을 지르며 박한새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뭐야, 왜 가만히 서있는 거지?”

“쫀 거 아니야?”

“에이, 설마.”

코볼트가 바로 근처까지 달려들고 있는데도 박한새는 검을 검집에 꽂아 넣은 채 멀뚱히 서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아무것도 못 하고 코볼트에게 공격을 허용할 것만 같았다.

‘진짜 쫄기라도 한 건가?’

문정민도 순간적으로 박한새가 코볼트의 괴성을 듣고 겁을 먹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박한새의 저 눈빛, 분명히 무언가를 노리는 눈빛이다.’

신체 평가에서 그토록 압도적인 모습을 보인 박한새가 겨우 1단계 몬스터인 코볼트에게 당할 리는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서걱!

박한새가 검집에 손을 대자마자, 무언가 베이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1단계 몬스터인 코볼트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헉!”

“검이 안 보였는데?”

“맙소사. 순식간이잖아!”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말소리를 들으며 문정민은 놀란 표정을 간신히 수습하였다.

무언가 노리고 있다는 사실은 예상했지만, 설마 이런 모습을 보여줄 줄은 몰랐다.

‘원래 검을 배운 사람인가? 발도가 왜 이렇게 빨라?’

반응들을 보니, 대부분의 각성자들은 박한새가 검을 휘두르는 장면을 보지 못한 듯싶었다.

검을 뽑고서 휘두르는 것이 워낙에 빨랐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내가 만약 저 사람과 대결하게 되었다면 과연 저 사람의 발도술을 막을 수 있었을까?’

동체시력이 좋은 편이라, 그는 흐릿하게나마 박한새의 검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동체시력으로 간신히 볼 속도라면, 사실상 피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아마 그 역시도 박한새가 공격한다면 코볼트가 죽은 것처럼 단칼에 죽을 거 같았다.

“바로 2단계 가겠습니다.”

“그, 그러시죠.”

다음 단계의 몬스터가 나오자, 문정민은 눈에 힘을 주었다.

박한새가 싸우는 모습을 더 집중해서 지켜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전투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끼에에엑!”

코볼트가 그랬던 것처럼, 괴성을 지르며 박한새에게 달려드는 고블린.

그런 고블린을 바로 앞에 두고 박한새는 그저 앞다리를 살짝 구부린 채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고블린이 검을 뻗으면 닿을 위치에 도달하자,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검을 뽑고 휘둘렀다.

2단계는 그걸로 끝이었다.

고블린은 코볼트가 그랬던 것처럼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목이 잘렸던 것이다.

‘3단계. 그래, 3단계부터는 다를 거야.’

3단계는 처음으로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의 몬스터가 등장하는 단계였다.

비록 고블린보다 약한 개체지만, 코볼트 세 마리라면 지금처럼 쉽게 끝내지는 못할 터.

한진영 역시도 이때부터 두 개 이상의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했었다.

“쩌, 쩐다.”

“저게 스킬 없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문정민이 예상했던 것과 달리, 3단계도 순식간에 끝이 났다.

이어지는 4단계도 마찬가지였다.

4단계는 무려 다섯 마리의 고블린을 상대해야 했는데, 박한새는 거의 동시에 다섯 마리의 고블린을 베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각성자들은 박한새가 검을 뽑는 장면조차 보지 못하였다.

각성자들의 눈에는 검집에 오른손을 가만히 올렸을 뿐인데, 몬스터의 목이 저절로 베인 것으로 보였다.

‘말도 안 돼!’

그나마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은 장면을 본 문정민은 경악 어린 표정을 지었다.

스킬 없이 다수의 몬스터를 압도하는 것은 그가 생각했을 때, 불가능한 일이었다.

제아무리 고블린, 코볼트 같은 하급 몬스터라고 해도 그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인간을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생명체가 몬스터였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몬스터들은 기본적으로 인간 이상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몬스터들을 아무런 스킬 없이 순식간에 죽여버리다니.

심지어 몬스터들은 저항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무력하게 목이 베이고는 그대로 먼지가 되어 사라질 뿐이었다.

‘이건 한진영이 보여주었던 것보다 훨씬 더 압도적이잖아?’

한진영은 적어도 그가 싸우고 있다는 사실은 알게 해주었다.

화려한 스킬들을 써가며 고블린이 어떤 공격을 맞고 죽는지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박한새는?

그저 검집에 손을 올렸을 뿐인데 몬스터들이 픽픽 죽었다.

극도로 절제된 그의 모습은 스킬을 펑펑 쓰는 한진영보다 훨씬 더 압도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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