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화
“절대 햇병아리 실력이 아닌데?”
“햇병아리는커녕 당장 현역으로 뛰어도 이상할 게 없겠어.”
“분명히 스킬이 없다고 들었는데, 이게 말이 되나?”
“그러니까.”
현역으로 활동하는 감독관들조차 박한새의 실력을 신기하게 여기고 있었다.
역시 헌터가 봐도 범상치 않은 실력이긴 한 거 같았다.
“5단계에 도전하겠습니다.”
문정민은 침을 꿀꺽 삼키며, 다음 단계에 도전하는 박한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설마 이번에도 순식간에 끝나는 건 아니겠지?’
겨우 한 마리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어려운 게 5단계였다.
다수의 고블린이나 코볼트보다 한 마리의 오크가 훨씬 더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문정민은 박한새가 이번만큼은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봤다.
이런 생각은 문정민만 한 것이 아니었는지, 각성자들의 반응이 엇갈렸다.
“오크도 한 번에 죽이려나?”
“고블린이나 코볼트는 그렇다 쳐도, 오크까지 그럴 리가?”
“만약 오크도 한 번에 죽이면 한진영보다 더 센 거 아니야?”
“오크를 한 번에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니까. 오크의 가죽이랑 뼈가 얼마나 단단한데?”
문정민은 힐끔, 한진영의 얼굴도 훑어보았다.
‘빡쳐도 단단히 빡친 얼굴이군.’
박한새를 스킬 없는 에딱이라고 무시하던 한진영이었다.
그런 박한새가 자신보다 더 관심을 끌며 5단계에 도전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기분이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저놈 때문에라도 박한새가 이겼으면 좋겠네.’
오크는 스킬 없는 헌터에게 있어 하나의 벽이나 다름없었다.
코볼트와 고블린을 상대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박한새도 오크를 상대로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문정민은 박한새를 응원하고 싶었다.
박한새가 5단계를 통과하여 한진영의 얼굴이 구겨지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크어어어!”
특유의 포효를 지른 오크를 보며 나는 살짝 긴장했다.
‘슬슬 아껴두었던 내공을 써야 할 땐가.’
오크는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내공을 아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챙!
맹렬한 기세로 달려온 오크에게 이전과 똑같은 공격을 날리자, 오크의 손에 들린 도끼에 의해 막히고 말았다.
‘검기를 사용했다면 그대로 도끼를 가르고 목까지 베었겠지만….’
안타깝게도 1년의 내공으로 검기를 사용하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다.
최소 10년의 내공은 있어야 검기 흉내는 낼 수 있으리라.
“와! 막았어!”
“역시 반응속도가 장난 아닌데? 저걸 어떻게 막냐.”
오크의 동작을 본 나는 미리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허공에서 위협적인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만약 상대가 진짜 몬스터였으면 모골이 송연해질 그런 순간이었다.
큰 동작으로 하체가 무방비해지자, 나는 검을 휘둘러 오크의 허벅지를 베었다.
“크아악!”
고통을 느꼈는지 비명을 지르는 오크였으나, 상처는 그리 깊지 않았다.
그저 피만 조금 흐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예상하고 있었기에 재차 공격을 감행하였다.
분기탱천하여 도끼를 내려찍으려는 오크의 팔꿈치에다 검을 내지른 것이다.
‘끝났군.’
팔꿈치가 관통당했음에도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공격을 이어가는 오크.
만약 다른 사람이 이곳에 있었다면 그런 오크의 용맹함에 두려움을 느꼈을 수도 있겠지만, 이 자리에 있는 것은 한때 절정 고수였던 나였다.
내 눈에는 오크의 행동이 용맹하기보단 그저 미련하게만 보일 뿐이었다.
그야말로 빈틈투성이였던 것이다.
나는 보법을 사용하여 오크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주었다.
보법의 위력은 확실히 대단했는데, 불리했던 위치를 순식간에 유리한 위치로 바꿔주었다.
푹!
오크 뒤통수가 너무나도 분명하게 보이는 위치에서 검을 내지르자, 오크는 반응도 하지 못하고 공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 공격을 허용한 순간, 오크의 목숨도 거기서 끝이었다.
내가 내지른 검은 오크의 뒷목을 관통하였고 제아무리 오크여도 뒷목이 관통당한 상태에서 목숨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물론 진짜 오크였으면 이때도 방심할 수 없겠지만 말이야.’
하지만 다행히 AI 오크는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정해진 생명력 수치 이상의 공격을 받자, 그대로 즉사 판정이 나온 것이었다.
“와아아아!”
“또 이겼어!”
“존나 멋있잖아? 스킬밖에 쓸 줄 모르는 한진영보다 훨씬 더 멋있다고!”
오크의 사체가 사라지기 무섭게 구경하던 각성자들 사이에서 우렁찬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가 스킬이 없다고 알려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한진영에 대한 반감 때문일까?
각성자들은 어느덧 나의 도전을 응원하기 시작하였다.
‘문정민도 나를 응원할 줄은 몰랐는데?’
어찌 보면 경쟁자인데, 저리도 응원하다니.
기분이 묘했다.
특히 미래에 A랭크 헌터이자, 초일류 무인으로 불리게 될 문정민이 저 무리 안에 있다는 것도 흥미롭게 여겨졌다.
내가 알고 있는 그의 성격이라면 나를 호적수로 여길 줄 알았는데 말이다.
‘다음 단계도 무조건 도전할 수밖에 없겠는데?’
솔직히 지금 수준으로는 오크까지가 한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남은 내공이 이제 1년도 채 안 됐다.
오크의 공격을 보법으로 피할 때, 그리고 마지막 결정타를 날릴 때 내공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카르마가 있지.’
지금의 내공으로 6단계에 도전하는 것은 어렵지만, 나에겐 카르마가 있었다.
아껴두었던 카르마를 잘만 활용한다면 6단계, 아니 그 이상도 가능하였다.
나에게는 현재 2,000 카르마가 있었다.
원래라면 이 2,000 카르마로 영약을 구매하여 조금이라도 내공을 늘렸을 터.
하지만 세상일이란 게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몇 년의 내공으로는 절대 대적할 수 없는 상대가 갑자기 나타나서 나를 공격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카르마를 바로 쓰지 않고 아껴두었다.
‘이럴 때 쓰기는 아깝긴 한데, 퀘스트까지 떴다면 굳이 아낄 필요가 없지.’
[연계 퀘스트 발생!]
[6단계를 클리어하십시오! 카르마 +500]
일반 퀘스트도 아니고 연계 퀘스트였다.
즉, 6단계를 깨고 나면 7단계, 8단계까지 쭉쭉 이어질 수 있다는 뜻.
나로선 더 많은 카르마를 얻기 위해서라도 카르마를 투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바로 다음 단계에 도전하겠습니다.”
“6단계에 도전하시겠단 말씀입니까?”
감독관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6단계면 D랭크 헌터인 그도 버거운 단계일 테니,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예, 도전하겠습니다.”
내가 당당하게 도전을 선언하자, 갑자기 구경하던 각성자들 사이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
“6단계 가즈아~!”
나는 각성자들의 응원을 들으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카르마와 카르마 상점에 관해 연구하였다.
카르마와 카르마 상점은 내게 있어 어찌 보면 무공만큼 중요하였다.
단순히 회귀 전의 실력을 복구하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실력을 얻게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런 영약도 있을 정도니 말 다했지.’
6단계 몬스터가 나오기 전, 나는 카르마 상점에서 구매한 ‘역천단’이란 영약을 복용하였다.
역천단, 그것은 일반적인 영약이 아니었다.
회귀 전의 나도 접해본 적이 없는 영약이었는데, 설명을 읽고서 크게 놀랐다.
가격은 1,000 카르마밖에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10년의 내공을 얻게 해주는 영약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공을 사용하면 그대로 사라지는 게 아쉬울 뿐이야.’
하긴, 그대로 흡수할 수 있다면 가격이 이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단 1년의 내공을 늘려주던 자홍선지초도 가격이 1,000 카르마였었다.
한 번에 10년의 내공을 늘려준다면 단순히 계산해도 1만 카르마 이상이어야 했다.
실제로 10년의 내공을 늘려주는 영약들은 기본적으로 가격이 1만 카르마 이상이었고 말이다.
“리자드맨이잖아?”
“아니, 6단계에 벌써 저 정도 몬스터가 나온다고?”
“오크랑 차원이 다를 텐데, 과연 이길 수 있을까?”
“글쎄, 이번에는 힘들 거 같지 않아?”
나를 응원하던 각성자들이 막상 6단계 몬스터를 보자 걱정하기 시작하였다.
6단계의 몬스터는 리자드맨.
오크와 비교했을 때, 상위호환의 몬스터였기 때문이었다.
‘리자드맨쯤은 문제 될 것도 없다.’
역천단을 복용하기 무섭게 단전에 차오르는 막대한 기운을 느끼며 나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겨우 10년.
하지만 1년도 안 되는 내공으로 계속 생활해서 그런지, 10년도 엄청나게 느껴졌다.
무려 열 배였으니까.
지금이라면 리자드맨이 아니라, 처음에 잠시 나오고 사라졌던 린드웜도 상대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저 사람이 아무런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 5단계를 통과했다는 그 사람입니까?”
다른 각성자들처럼 집중해서 박한새의 도전을 관람하던 김영수 감독관은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차, 차관님.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이재현 제1 차관.
그는 이능관리부의 실세 중의 실세였다.
“우연히 들렀습니다.”
“그, 그렇습니까? 아, 저분이 박한새 각성자 맞습니다.”
“김영수 감독관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 사람이 정말 스킬이 없는 거 같습니까?”
이재현의 질문에 김영수 감독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도 박한새란 인물에게 강한 의문을 품고 있었다.
“시각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나는 스킬 종류는 없었습니다. 다만 제 개인적인 견해로 스킬 없이 5단계를 통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같은 김영수 감독관의 의견에 이재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스킬 없이 오크를 쓰러뜨리는 것.
경험이 많은 현역 헌터라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물며 이제 막 각성한 사람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설령 스킬을 사용해서 오크를 잡은 거라 해도 흥미로운 인물이란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재현은 팔짱을 끼며 박한새와 리자드맨의 싸움을 지켜봤다.
5단계와 다르게 6단계는 대치 시간이 꽤 길었다.
리자드맨의 성향이 오크와는 달리, 신중하면서 조심성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호오.”
그러던 중, 박한새가 먼저 리자드맨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하였다.
“원래도 저렇게 공격적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지금까지는 몬스터가 선제공격하고 방어하는 모습만 보여줬었습니다.”
“공격도 자신 있다는 의미겠군요.”
박한새와 리자드맨의 거리가 점점 좁혀졌다.
그러자 리자드맨이 기습적으로 돌진해서는 세이버 형태의 곡도를 휘둘렀다.
마치 숙련된 검사를 보는 듯한 기세였다.
이재현은 그 모습을 보며 박한새가 이번에는 쉽게 이기지 못하리라 확신하였다.
‘5단계와 6단계는 같은 D랭크로 분류돼도 현격한 차이가 있는 거 같군.’
힘만 센 오크와는 다르게 리자드맨은 힘도 세면서 영리한 지능까지 갖추었다.
심지어 검술 실력도 웬만한 검도인에 못지않았으니, 더욱더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박한새와 리자드맨의 전투는 이재현이 예상했던 방향과는 전혀 다르게 끝이 났다.
“이번에도 한 방이야!”
“미친, 이게 말이 돼? 어떻게 검을 부수고 그대로 리자드맨까지 죽이냐?”
냉철한 성격으로, 언제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이재현도 이때만큼은 놀란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