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화
그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각성자들을 봐왔던가.
이능관리부로 영입하기 위해 헌터 자격시험의 시작과 끝을 늘 지켜봤던 그다.
하지만 이재현이 봤던 그 어떤 각성자도 이렇게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상위 헌터, 최소 B랭크 이상의 헌터가 아니고서야 리자드맨을 단칼에 죽이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반드시 잡아야 한다! E, F랭크 수준이 아니야. 무조건 C랭크 이상의 재목이다!’
이재현은 박한새의 일격을 보고 직감하였다.
이번 기수 중에 반드시 잡아야 할 인재는 바로 박한새란 사실을.
“와! 이번에도 한 번에 죽였어!”
“대박인데!”
“근데 저게 스킬 없이 가능한 일이야? 리자드맨의 도까지 부수었는데?”
“스킬 없다더니 순 거짓말이었네.”
“어쩐지 스킬 없이 6단계까지 갈 수 있을 리가 없지.”
“근데 저건 무슨 스킬이냐? 공격력 장난 아닌데?”
단칼에 AI 몬스터의 목을 벤 것.
결과 자체는 똑같았다. 하지만 과정이 달랐다.
몬스터가 반응도 못 하고 당한 것과 반응을 했음에도 단칼에 목이 베인 것은 엄청난 차이였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각성자들의 반응이 여느 때보다 떠들썩하였다.
아니, 각성자들뿐만이 아니었다.
“박한새 각성자님. 도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김영수 감독관이 어지간히 놀랐는지 그와 같은 질문을 하였다.
현역으로 활동하는 그 역시도 리자드맨을 단칼에 베어 버리는 상황은 경험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뭐, B랭크 이상의 헌터라면 맨손으로도 리자드맨을 제압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직접 보셨듯이 검을 사용하여 리자드맨을 죽였습니다.”
“…그렇게 간단하게 대답하고 끝날 일은 아닌 거 같습니다만.”
“어떤 대답을 원하십니까?”
“혹시 스킬을 사용하셨습니까?”
김영수 감독관이 그같이 묻자, 다른 각성자들도 귀를 쫑긋 세웠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저에게는 스킬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스킬 없이 그런 퍼포먼스를 어떻게 보여줍니까?”
나는 그런 김영수 감독관의 모습에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스킬이 아닙니다. 이건 검기라는 겁니다.”
“검기라고요?”
김영수 감독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의 대화를 엿듣던 각성자들도 검기라는 말에 웅성거리며 ‘무협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검기가 뭐야?”
“무협지에 나오는 거 아닌가? 검강, 검기 뭐 그런 거 나오잖아.”
“갑자기 무협지 이야기 나오니까 개뜬금없네. 설마 무공이라도 익혔다는 거야, 저 사람은?”
“검술 좀 잘하니까, 본인이 무협지 속 고수라고 착각하는가 보지.”
그저 검기라고 말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거짓말이라고 단정 지었다.
무협지 속 설정은 허구로만 생각하니,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 검기라는 게 정확히 뭡니까?”
“마력을 가졌다면 누구나 익힐 수 있는 기술입니다. 검에 마나를 코팅하는 것이죠.”
물론 내가 쓴 검기는 완전한 검기가 아니었다.
10년도 안 되는 내공으로 진정한 검기를 사용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절삭력이 조금 낮아졌을 뿐, 지금 내가 쓰는 검기도 충분히 효용성이 있었다.
일단 내공 소모 자체가 진짜 검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적었으니, 그것만으로도 가성비는 나쁘지 않았던 것이다.
“검에 마나를 코팅한다니. 그런 기술은 살면서 처음 들어봅니다.”
“그럴 겁니다. 제가 만들었으니.”
김영수 감독관이 미간을 좁혔다.
그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내 말을 믿지 못하는 듯싶었다.
“믿지 못하겠다면, 믿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당연히 믿기 힘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직 제대로 보여준 것이 없으니까.
‘하지만 내가 계속 도전을 이어간다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
6단계를 깼는데도 이 정도의 반응이었다.
이어서 7단계를 깨고 8단계까지 깬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더욱더 극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으리라.
[들었음? 이번 헌터 시험부터 증강현실 시스템 도입됐다던데.]
[ㄹㅇ? 폐급들 제대로 가려지겠네 ㅋㅋㅋ]
[원래 존나 불공정하긴 했어. ㅅㅂ 시험관들이 지들 꼴리는 대로 하는 거였잖아.]
[근데 증강현실 이거 개빡셈. 아마 F급은 1~2단계가 한계일 듯?]
[ㄴㄴㄴㄴ 우리 형이 시험관인데 1단계가 F고 2~3이 E랬음. ㅇㅇ]
[그럼 4부터 D임?]
[그럴 듯. 근데 거의 없지 않을까? 각성하자마자 어떻게 D랭크를 따내겠냐 ㅋㅋ]
원래도 엄청난 관심을 받았던 헌터 자격시험이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증강현실 시스템이 도입되자,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강남에서 6단계 깬 사람 있다던데?]
[백퍼 이호승 아님?]
[누구든 남자면 노관심 ㅋ]
[속보! 속보! 목동에서 8단계 깬 사람 나왔음!]
[ㅈㄹㄴ. 신입이 무슨 8단계야 ㅋㅋㅋㅋ]
[ㄹㅇ인 거 같은데? 인증 글 개 많음.]
[뭐지? 한진영이 그렇게 셌나?]
[지혜찡일 수도 있음. ㅇㅈ?]
[8단계 깬 사람 박한새라고 하는데?]
[박한새? 웬 듣보잡임?]
[아까 기사 올라왔던데 설마 그 사람인가?]
[헐? 스킬이 필요 없다는 개소리 지껄였던 그 사람?]
박한새가 6단계, 7단계에 이어 8단계까지 클리어했다는 소식은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었다.
그러자 박한새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정도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양천구를 관할하는 레이븐 길드의 마스터, 한다윗은 박한새의 활약을 직접 두 눈으로 지켜보고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나름 기대하던 한진영도 5단계가 한계인데 설마 이 정도까지 올라오는 신인이 있을 줄이야.’
그가 알기로 C랭크 이상의 헌터만이 깰 수 있는 단계가 7단계였다.
그런데 실전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개 각성자가 7단계를 깼다니?
심지어 7단계가 끝이 아니었다.
8단계까지 도전했고 기어코 8단계를 클리어하였다.
이는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인재를 발견하다니, 운이 좋았군.’
다른 10대 길드에서는 강남, 마포, 용산 시험장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다.
이번 기수 중에서 이름이 알려진 신인들은 전부 그 세 곳에 몰려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다윗도 목동 시험장은 잠시 구경만 하고 강남 시험장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는데, 설마 이런 일을 겪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박한새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완전히 무명인사였다.
이름, 나이를 제외하면 알려진 게 아무것도 없는 인물.
알려진 것이라고는 기자와의 인터뷰 때, 스킬이 필요하지 않다는 식의 엉뚱한 소리를 했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박한새가 어떤 인물인지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한다윗,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실력이었다.
그리고 박한새는 8단계를 깸으로써 C랭크 이상의 실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이제 막 각성한 인물이 C랭크 이상의 실력을 가졌다니.
실로 탐이 나는 인재가 아닐 수 없었다.
“반드시 우리 길드로 영입해야겠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말이야.”
한국에서 10위 안에 드는 레이븐 길드에서도 C랭크 이상의 헌터는 귀한 인재였다.
각성하자마자 C랭크 이상의 실력을 보여준 헌터라면 더더욱 귀하게 여겨졌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한새는 엄청난 가치를 지닌 각성자가 아닐 수 없었다.
심지어 가입한 길드도 없다고 하니, 한다윗으로선 반드시 영입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되었다.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8단계에서 멈추시겠습니까?”
역천단을 한 번 더 복용하면 최대 10단계까지 깰 수 있을 거 같기는 했다.
10단계라고 해봤자, 어차피 8단계와 동일한 5성급 몬스터가 나올 테니까.
‘하지만 카르마가 너무 아깝다.’
카르마는 무한한 게 아니었다.
지금으로선 정소연의 던전 사냥 외에는 수급할 방법이 전혀 없는 한정된 자원이었다.
목숨이 걸린 일도 아닌 곳에 카르마를 쓰기는 아깝게만 느껴졌다.
‘뭐 퀘스트만 더 이어졌다면 계속 도전했겠지만.’
6단계를 도전할 때 갑자기 떴던 퀘스트였다.
그리고 6단계가 끝나고 7단계와 8단계에 도전할 때도 연계 퀘스트가 이어졌는데, 보상이 무려 두 배씩 올라갔다.
즉, 7단계에 1,000 카르마가 보상으로 나왔고 8단계에 2,000 카르마가 보상으로 나왔던 것이다.
이 카르마 보상 덕에 역천단을 구매하고도 오히려 카르마가 남았었다.
1,000 카르마를 지출하고 2,500 카르마를 퀘스트 보상으로 얻은 셈이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퀘스트는 8단계가 끝이었다.
4,000 카르마라는 엄청난 보상을 얻을 기회였는데,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박한새 각성자님. 아니, 이제는 박한새 헌터님이라고 부르는 게 나을까요?”
“감사합니다.”
감독관은 수고했다며, 내가 이번 시험에서 합격할 것을 암시하였다.
뭐, 8단계까지 클리어한 내가 헌터 라이선스를 못 따낸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다음에는 던전에서 뵐 수 있을 거 같군요. 박한새 헌터님 정도라면 금방 상위 던전으로 가시겠지만 말입니다.”
김영수 감독관의 말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던전에서 그를 만날 일이 과연 있을까 싶었다.
내가 오늘 헌터 라이선스를 따낸다고 해도,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생각할수록 아쉽군. 던전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편하게 카르마를 모을 수 있을 텐데.’
속으로 그 같은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각성자들이 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박한새 형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올해 최고 유망주는 무조건 박한새 각성자님이실 거 같습니다.”
“C랭크는 거의 확정이나 다름없고 이러다 S랭크까지 가시는 거 아니에요?”
각성자들이 하는 행동들만 봐도 나에 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하기야, 8단계를 클리어했으니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근데 그 검기라는 거, 우리도 사용할 수 있는 겁니까?”
각성자들 틈에 끼어있던 문정민이 불쑥 그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의 눈빛은 무척이나 강렬하였는데, 어지간히 검기가 탐이 난 듯싶었다.
“헌터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습니다.”
“어, 어떻게 사용하는 겁니까?”
“형님! 저도 알려주십시오. 평생 형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럼 저는 스승님으로 모시겠습니다!”
내 한마디에 각성자들은 요란한 반응을 보였다.
6단계부터 8단계까지.
그들은 무려 세 번이나 내 검기를 구경하였다.
C랭크 헌터도 상대하기 버거워하는 몬스터들이 검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을 봤다는 뜻이었다.
헌터를 꿈꾸는 이들로서, 검기를 갖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진짜 에딱이들, 딱하다. 딱해. 저걸 믿네.”
“그러니까. 딱 봐도 거짓말인데 말이야. 저러다 돈이나 실컷 뜯기겠네.”
물론 모든 각성자가 검기에 눈독 들인 것은 아니었다.
스킬을 보유한 한진영과 정민교는 차가운 반응을 보이었다.
스킬 만능주의 사상을 가진 그들은 내가 스킬 없이 8단계까지 통과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직접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면서도 말이다.
“진짜 사기인가?”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야. 솔직히 말이 안 되기는 하잖아?”
“근데 그런 사기 쳐봤자 무슨 의미가 있다고?”
“우리 같은 사람에게 돈 뜯으려는 거지. 나는 저 양반이 8단계 깼을 때, 1억을 주고 배워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었어.”
“확실히 티가 안 나는 스킬이니 사기 치기 딱 좋긴 하겠네.”
한진영과 정민교의 말을 듣고 생각이 바뀐 것인지, 각성자들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추종자라도 되는 듯,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다가, 지금은 의심 섞인 눈빛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일은 다반사로 일어나겠지.’
스킬이 없는 헌터들조차 스킬 만능주의에 빠져있었다.
B랭크 이상의 상위 헌터라면 말할 것도 없었고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공을 가르친다?
한진영 같은 이들부터가 적대적으로 나올 게 분명하였다.
그들에게는 스킬의 유무가 일종의 기득권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아무리 견제해도 소용없다. 내가 사실 헌터가 아니었다고 밝히기만 한다면 모두가 검기를 믿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물론 아직은 밝힐 때가 아니었다.
지금의 나는 그저 잠재력이 뛰어난 신인 헌터일 뿐이니까.
헌터 연수가 시작되고 더 많은 사람이 나에게 관심을 가질 때, 나의 진짜 정체를 밝힌다면 파급력이 엄청날 게 분명하였다.
아침까지만 해도 나에게 관심을 주는 기자는 이소희 기자밖에 없었다.
이소희 기자마저도 내가 늦깎이 각성자라 관심을 준 것뿐, 나란 사람이 어떤 잠재력을 가졌는가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찰칵! 찰칵! 찰칵!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시험장을 나오기 무섭게 마치 레드카펫 위에 올라간 연예인 대하듯, 마구 사진을 찍어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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