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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11화 (11/275)

#011화

“박한새 헌터님! 8단계까지 통과했다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8단계가 C랭크 등급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스킬이 필요 없다고 발언하셨는데, 이 발언의 의미를 여쭙고 싶습니다.”

“길드는요? 박한새 헌터, 어떤 길드에 들어가고 싶습니까!”

나는 그런 기자들을 보며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기자들을 상대해야 한다니. 차라리 몬스터와 싸우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드는군.’

각오했던 일이긴 했다.

이성은의 조력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무공을 퍼뜨리려면 나 자신을 알릴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각오한 일이라고 해서 괜찮은 것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역시 내가 어떤 길드에 들어갈지에 대해 관심이 많네.’

이왕이면 무공에 관한 질문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의외로 검기는 관심을 못 받고 있었다.

검기를 그저 내 스킬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주된 질문은 어떤 길드를 염두에 두고 있느냐.

최종적으로 나올 랭크는 몇 정도로 예상하고 있느냐.

이렇게 두 가지였다.

“검기는 스킬이 아닙니다. 모든 헌터가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기술입니다.”

내가 직접 이같이 말했음에도 기자들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뭐 예상했던 반응이었기에 크게 상심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 검기 사용자들이 하나둘 늘어나면, 그때는 내 말을 믿게 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박한새 님, 아이언 길드에서 나왔습니다.”

“저는 로한 길드 스카우터입니다. 혹시 로한 길드에 들어오실 생각 없으십니까?”

“동호 길드에 들어오시면 헌터 연수에서 C랭크 이상 받으실 수 있게끔 전폭적으로 지원해드리겠습니다!”

기자들을 상대하는 시간이 끝나자 그다음에 내가 상대할 것은 각 길드의 스카우터들이었다.

수십, 수백 명의 헌터를 보유한 중견 길드부터, 이제 막 길드를 창설한 신생 길드까지.

온갖 곳에서 나를 영입하려고 들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나는 이들의 길드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하여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아까 기자들에게 말했던 대로, 저는 길드에 가입할 생각이 없습니다.”

내가 단호하게 대꾸하자, 스카우터들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길드에 가입할 생각이 없다니, 허 참.”

“몸값을 올리려는 수작인가?”

“신입 주제에 오만하네.”

“저러고 잘되는 건 본 적이 없는데 말이지.”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지만, 다 들렸다.

뭐, 무슨 말을 지껄이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일은 어차피 익숙했으니 말이다.

“박한새 각성자님, 맞습니까?”

자리를 뜨려는데, 키가 190cm는 될 듯한 장신에 뿔테 안경을 쓴 남성이 말을 걸었다.

“지금 가입하고 계신 길드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염두에 두고 계신 길드는?”

“10대 길드에 들어갈 수 있다 해도 없습니까?”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렇게까지 달라붙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죄송하지만 저는 길드에 가입할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레이븐 길드의 마스터 한다윗이라고 합니다.”

그의 말에 주변에 있던 다른 길드의 스카우터들이 헉 소리를 냈다.

사실 그가 본명을 말하기 전부터 그를 알아본 몇몇이 웅성거리고 있었는데, 한다윗이 본명을 밝히자 더욱더 떠들썩해졌다.

“한다윗 길드 마스터가 직접 왔다고?”

“작년에도 그러더니 또 이러네? 인재 수집욕은 진짜 장난 아니라니까.”

“레이븐 길드라면 박한새도 더 빼지 않겠지?”

“당연하지. 말단이긴 해도 10대 길드 중 하나인데.”

한다윗의 길드는 이곳에 모인 길드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규모가 큰 길드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 10대 길드 중 한 곳으로 꼽히는 길드였던 것이다.

‘하지만 레이븐 길드라고 달라질 것은 없다.’

레이븐 길드가 아니라, 그보다 더 상위의 길드가 온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으리라.

“계약금 10억. 저희 길드와 계약만 하면 통장에다 바로 10억을 넣어주겠습니다.”

듣던 대로 통이 크긴 했다.

신입에게 10억이라니.

대기업 자회사라면 모를까, 10억은 쉽게 쓸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생각 없습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10억?

회귀 전의 나와 달리, 지금의 나에게는 분명 큰돈이긴 했다.

전세보증금을 제외하면 내 돈은 고작해야 몇백에 불과했으니까.

‘그래봤자 돈은 돈일 뿐이다. 어차피 카르마 상점이 있는 한, 내게 돈은 큰 의미가 없어.’

내가 속으로 그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에도 한다윗은 여전히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내가 반드시 자기네 길드로 들어갈 것을 확신하는 태도였다.

“20억이라면요?”

단번에 계약금을 두 배로 올렸다.

아마 그는 20억이 아니라, 그 이상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8단계를 깬 헌터를 영입할 수만 있다면 사실 20억도 비싼 것이 아니었으니.

‘물론 돈을 아무리 준다고 해도 레이븐 길드에 가입할 생각은 절대 없지만 말이야.’

20억이 아니라, 50억 아니 100억을 준다고 해도 갈 생각이 없었다.

레이븐 길드처럼 대의나 정의에는 관심 없고 오직 세력 확장에만 관심을 두는 길드라면 더 말할 것도 없으리라.

“20억이 아니라, 그 이상을 준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흠.”

“하실 말씀 끝나셨으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기다리세요. 아직 제 이야기 안 끝났습니다.”

귀찮게 구는군.

내가 혀를 차며 뒤를 돌아보려는데, 바로 옆에서 30대 정도로 보이는 한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싫다고 하시는데 이만 물러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한다윗 길드 마스터.”

나는 새로 등장한 사내, 이재현을 보며 눈을 빛냈다.

‘이자를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회귀 전에 나와 꽤 인연이 깊었던 인물이었다.

정부의 고위 관료로서 나를 든든하게 지원해준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이재현 차관께서 여기는 어쩐 일입니까?”

“한다윗 길드 마스터와 같은 이유입니다.”

이재현의 말에 한다윗이 같잖다는 듯, 피식 웃었다.

“이능관리부에서도 박한새 헌터를 노리나 봅니다?”

“그럴 만한 인재니까요.”

“박한새 헌터 같은 인재가 과연 이능관리부에 들어가겠습니까? 돈도 얼마 안 주면서 바라는 것은 더럽게도 많은 곳인데?”

한다윗이 이죽거리며 그리 말하자 이재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표정이 안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능관리부가 괜히 인재들을 다른 길드에 뺏기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건 한다윗 헌터가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이재현이 그리 말하자, 한다윗은 어깨를 으쓱하였다.

그러고는 나를 보며 물었다.

“박한새 각성자님, 이능관리부에 입사할 겁니까?”

“글쎄요.”

“이재현 차관에게 어떤 제안을 받든, 저희는 그 두 배, 아니 세 배도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저희도 계속 염두에 두고 계시길 바랍니다.”

한다윗은 그리 말하고는 미련을 두지 않고 떠났다.

그의 뒷모습만 보면 이미 승부가 정해진 싸움처럼 보였다.

“혹시 제가 괜히 끼어든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건넨 이재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닙니다. 안 그래도 성가셨는데, 나서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하! 다행이군요!”

내가 괜찮다고 말하자, 그제야 안심이 됐는지 이재현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런데 아까, 레이븐 길드 마스터와 같은 용건으로 저를 찾아왔다고 말씀하셨는데, 맞습니까?”

사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가 지금 같은 시기에 나를 찾아올 이유는 영입밖에 없으니까.

예상대로 이재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저는 박한새 헌터가 싸우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그때 확신했죠. 이 사람은 반드시 이능관리부로 영입해야 한다는 것을.”

“그렇습니까?”

“물론 박한새 헌터에게는 이능관리부가 그리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알다시피, 여타 길드에 비하면 조건이 박하니 말입니다.”

길드에서 활동하는 D랭크 이상의 헌터들은 한 달 수익이 어마어마하였다.

연봉 1억도 우스운 수준이었고 월에 수천씩 버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길드에서 활동하는 헌터들의 이야기.

공무원이나 다를 게 없는 이능관리부 소속 헌터들은 월 수천은커녕 1,000만 원도 벌기 힘들었다.

한 달에 버는 수입 자체가 비교도 안 되게 낮다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조건이 좋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세금 감면 같은 나라에서 주는 혜택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혜택이 길드에서 주는 혜택보다 적었다.

이러니 D랭크 이상만 돼도 이능관리부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글쎄요. 그건 이재현 차관님께서 어떤 제안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거 같습니다.”

내 말에 이재현의 눈빛이 달라졌다.

아마 그는 레이븐의 길드 마스터인 한다윗이 마지막에 남긴 말 때문에 반쯤 포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다윗은 나에게 이능관리부가 제안하는 돈의 세 배 이상까지 제공하겠다고 호언장담했으니까.

“혹시 원하시는 조건이 있으십니까? 원하시는 조건이 있으시다면 무엇이든 말씀해주십시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이재현 차관님은 저를 어떤 의도로 영입하고자 하십니까?”

“저는 방금 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박한새 헌터가 AI 몬스터들과 싸우는 모습을 지켜봤었습니다. 솔직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검기라고 했던가요?”

“예, 검기 맞습니다.”

“어떤 몬스터도 그 검기에 예외 없이 당하더군요. 물론 박한새 헌터께서 워낙 검술 실력이 좋으셔서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말입니다.”

그야 그렇다.

검기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검기 이상의 위력을 지닌 스킬은 수도 없이 많았다.

6, 7, 8단계에서 내가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검기가 대단해서라기보다는 그냥 나라는 인간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박한새 헌터께서 보여주신 전투력. 저는 그 전투력을 굉장히 높게 샀습니다. C랭크를 넘어 B랭크의 잠재력을 가졌다고 볼 정도로.”

“저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계시는 거 같습니다.”

“누구나 박한새 헌터의 실력을 직접 두 눈으로 봤다면 저보다 더 요란한 반응을 보였을 겁니다. 설령 10대 길드의 길드장들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그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딱히 아부를 하려고 저런 말을 꺼낸 것은 아닐 것이다.

애초에 내가 아는 이재현이란 사람은 누군가에게 아부할 사람이 아니기도 했고.

이재현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만큼 내 실력이 충격적이었다는 의미일 터.

‘하지만 나를 한 명의 헌터로 영입하려 한다는 것은 아쉽게 느껴지는군.’

한 명의 헌터로서 빌런을 잡고 던전 브레이크 때 가장 먼저 나서서 사람을 구하는 것.

분명 의미 있는 일이긴 했지만, 지금의 내가 원하는 일은 아니었다.

숭고하기는 하나, 그런 일은 내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았다.

세계의 멸망이 예고된 지금은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제가 만약 이능관리부에 들어간다면, 이능관리부 소속의 헌터들에게 검기를 가르치는 역할을 맡고 싶습니다.”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그것은 다름 아닌, 무공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무인으로서의 자질을 갖춘 이는 이능관리부에도 많이 있다.’

이능관리부는 비록 개개인의 실력은 떨어질지 몰라도 소속되어 있는 헌터 수는 엄청났다.

무려 5,000명.

헌터 라이선스를 가진 헌터 수가 3만 명이 채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실로 엄청난 숫자가 아닐 수 없었다.

과거로 회귀했기에 내가 아는 인물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5,000명이란 숫자라면 인재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게 분명하였다.

어차피 헌터로서의 자질과 무인으로서의 자질은 다르니, 이능관리부 소속 헌터라고 무공의 재능이 없으리란 법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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