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대신 회귀함-12화 (12/275)

#012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제안이군요.”

이재현은 내 제안에 즉답하지 않고 미간을 좁히며 고민하였다.

아마 그의 입장에서는 꽤 당혹스러울 거 같았다.

헌터로 영입하려고 했는데 뜬금없이 검기를 가르치는 강사가 되겠다고 이야기하니 말이다.

“차관님도 보셨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제 검기를.”

“물론 검기를 보긴 봤습니다만. 진짜 그 검기라는 것을 타인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겁니까?”

“네. 가르칠 수 있습니다.”

이재현이 나의 눈을 분석하듯 날카롭게 바라보았다.

내가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분석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나는 떳떳하였기에 평소처럼 당당한 눈을 할 뿐이었다.

당당하기 그지없는 나의 눈을 봤기 때문일까?

허황되게 느껴지는 내 말에도 불구하고 이재현은 턱 끝을 쓰다듬으며 고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만약 박한새 헌터께서 검기를 가르친다면, 강의료는 대충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인당 오천 정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공짜로 해주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회귀 전에 이미 경험한 적이 있었다.

내가 가치를 매기지 않는다면, 배우는 이들도 검기의 가치를 낮게 여긴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이성은도 처음에는 인당 10억을 받고 검기를 가르치라고 했었지.’

이성은의 권유대로 10억을 받고 검기를 가르치니 오히려 더 인기가 많아졌다.

비싸면 비싼 값을 한다는 생각이 사람들 머릿속에 기본적으로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성은이라는 S랭크 헌터의 후광이 없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10억이나 받을 순 없었다.

오히려 오천만 원도 크다고 봐야 했다.

“검기의 가치를 생각하면 확실히 저렴하게 느껴지기는 합니다만, 쉽지 않을 거 같군요. 이능관리부의 예산이 아무래도 정해져 있어서 말입니다.”

인당 오천이라는 말에 이재현이 고개를 저으며 그같이 대꾸하였다.

“만약 검기를 완전히 익힌 이들을 기준으로 오천을 받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진심입니까?”

“앞서 말했듯, 저는 누구에게도 검기를 가르칠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니, 검기를 익힌 이들에게만 돈을 받아도 저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재현은 눈을 부릅뜨며 놀라워하였다.

아마 그는 타인에게 검기를 가르쳐주겠다는 내 말을 100% 믿지는 못했을 것이다.

설령 내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고 해도 다른 헌터가 검기를 익힐 수 있을지, 없을지 여부는 부정적으로 여겼을 터.

그런데 나는 확신 어린 태도로 모든 헌터를 검기 사용자로 만들 수 있다는 식의 말을 하였다.

“그런 조건이라면 인당 오천이 아니라, 1억도 가능합니다!”

흥분한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인당 1억이라.

이능관리부의 헌터가 모두 합해서 5,000명이니 그들 전부를 검기 사용자로 만든다면 5,000억의 수익이 생기는 셈이었다.

‘한다윗 길드 마스터가 건넨 제안이 하찮게 느껴질 정도군.’

신입에게 20억이면 엄청난 조건이 맞았다.

하지만 검기를 비롯한 무공의 가치를 생각하면 20억도 그저 껌값에 불과하였다.

지역이 달랐기에 주현근은 박한새와 다른 시험장에서 헌터 자격시험을 치렀다.

‘강해 보이는 사람들밖에 없네.’

예전 같았으면 크게 위축되었을 것이다.

누구와도 눈이 안 마주치려고 고개를 푹 숙이고 다녔을 터.

‘나는 한새 형의 하나뿐인 제자다!’

하지만 오늘의 그는 달랐다.

지금까지 수차례 헌터 자격시험을 봤지만, 오늘만큼 자신감이 넘쳤던 적은 없었다.

그만큼 박한새에게 배운 무공이 그의 자신감을 키워줬던 것이다.

‘역시 무공의 힘은 대단해!’

주현근의 무공에 대한 자신감은 헌터 자격시험이 시작되자, 더더욱 치솟았다.

현재 그는 옥동쌍취란 단계에 접어든 상태였다.

하단전의 기혈이 열린 단계를 의미하는데, 이 단계에 접어들면서 그는 몸속의 마력을 본격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박한새처럼 단전을 형성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으나, 마력을 활용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하였다.

“빠르다!”

“신체 강화 능력자인가 본데?”

박한새가 목동 시험장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그 역시 듣게 되었다.

스킬이 없는 상태에서 마력을 활용할 방법이란 육체 강화밖에 없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몬스터를 상대로도 과연 잘 싸울 수 있을까?’

지금까지 자신감이 넘치던 주현근이지만, AI 몬스터를 상대하는 일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짐꾼으로 활동한 그였기에 오히려 몬스터를 더 두렵게 여겼다.

그가 보았던 몬스터는 그야말로 인간을 죽이기 위해 태어난 악마 같은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쟤 뭐야. 왜 저렇게 잘 싸워?”

“그러게. 저 정도면 3단계도 무난하게 통과하겠어.”

“저 사람은 나처럼 매번 탈락했던 사람인데, 언제 저렇게 강해진 거지?”

“신체 강화 스킬을 각성했나 보지.”

하지만 다행히 몬스터와의 싸움은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신체 강화의 효과는 몬스터를 상대로도 분명히 발휘되었던 것이다.

‘내가 헌터라니!’

주현근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결국 최소 합격 기준치인 3단계를 통과하고 말았다.

그토록 고대하고 고대하던 헌터 자격증을 따냈으니, 무척이나 기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헌터 자격시험에서 합격했다는 사실보다 다른 것에 더 흥분감을 느꼈다.

‘지금도 이 정도인데 나중에는 얼마나 강해질까?’

박한새는 말했다.

지금 그의 수준은 이제 막 무공에 입문한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말이다.

그 말은 결국, 넘어설 단계가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박한새의 강함을 보면 무공이란 것은 실로 엄청난 비전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헌터 자격시험을 마치고 돌아온 주현근을 반겨주었다.

“헌터가 된 거, 축하한다.”

“이게 다 형 덕분이에요.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게요. 한새 형.”

주현근은 무척이나 감격한 얼굴이었다.

각성자가 되고서 몇 년 만에 헌터 라이선스를 따냈으니 그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무공을 사용해보니, 어땠어?”

“몸의 성능 자체가 달라진 거 같던데요? 반사신경과 동체시력 모두 엄청나게 좋아졌어요.”

“단전의 내공을 본격적으로 사용한다면 지금보다 더 큰 효과를 느낄 수 있을 거야.”

“지금도 엄청난데, 여기서 더 강해진다니. 무공은 진짜 상상을 초월하네요.”

괜히 이성은이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주현근 같은 입문자조차 힘이 달라진 걸 느끼게 할 정도로 무공의 효과는 엄청났다.

“그런데 형, 완전히 연예인 되셨던데요?”

주현근이 은근히 놀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연예인은 무슨 연예인이야.”

“에이, 벌써 역대급 신인 헌터란 소리 듣는데요.”

“역대급 신인이었으면 10대 길드들이 가만있지 않았을걸?”

“어? 10대 길드에서 영입 시도 안 했어요?”

“아직은 레이븐 길드에서밖에 안 하던데.”

“와, 보는 눈이 없네. 어떻게 한새 형을 스카우트하지 않을 수가 있지?”

“운으로 여기는 이들이 대부분이니까.”

헌터 자격시험에 처음으로 도입된 증강현실 시스템은 아직 미비한 구석이 많았다.

실제로 C랭크 실력을 가진 각성자가 6단계를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반대로 D랭크 실력을 가진 각성자가 7단계를 통과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결에서는 거의 비슷한 실력을 보여주던 사람이 AI와의 대결에서는 극과 극의 결과를 보이는 경우도 허다하였다.

내가 10대 길드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임팩트 있는 스킬이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말이다.

“근데 어차피 한새 형은 10대 길드에서 영입해도 길드에 가입할 생각이 없으시죠?”

“그렇지. 나는 헌터가 아니니까.”

“그럼 앞으로 뭐 하실 생각이세요?”

“연수가 끝나면 이능관리부에 들어갈 생각이다.”

헌터 자격시험이 끝나면 합격자끼리 따로 연수 기간을 갖는다.

이때 이론 수업과 정신교육, 그 외에 실전 연습 등을 하게 되는데, 헌터 랭크도 이때 정해진다.

‘C랭크는 받아야 이능관리부의 헌터들에게 확실한 인정을 받을 텐데 말이야.’

하지만 아쉽게도 C랭크는커녕 D랭크도 받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연수 기간에 실제로 던전에 들어가서 실전 평가도 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애초에 던전 자체를 들어갈 수 없는 몸이기에 최저 점수를 받게 될 터.

어쩌면 오늘 딴 헌터 라이선스도 다시 박탈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이능관리부요? 왜 하필 이능관리부에 들어가려고 하세요?”

“거기는 사람이 많잖아. 무공을 가르치려면 아무래도 사람이 많은 곳이 낫지.”

“악!”

내 말을 들은 주현근이 비명 같은 괴성을 질렀다.

“아니, 그 귀한 무공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주려고요?”

“너에게도 가르쳐줬는데, 다른 사람에게 못 가르칠 건 또 뭐야?”

“에이! 저는 한새 형의 하나뿐인 동생이고, 다른 사람은 완전히 남이잖습니까.”

“동생은 무슨. 내 동생 노릇을 하고 싶으면 실력이나 더 키워라.”

뭐 지금도 빠르게 배우고 있긴 했다.

곧 있으면 단전도 만들어버릴 기세였으니.

[3 카르마를 얻었습니다.]

[4 카르마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열심히 던전에서 사냥하고 있는 정소연을 생각하면 주현근의 실력이 여러모로 아쉬운 것은 사실이었다.

‘이제 이 녀석도 헌터 라이선스를 따냈으니, 던전에서 활약해주길 바라는 수밖에.’

지금은 1, 2성 던전밖에 노릴 수 없겠지만 그것도 시간문제였다.

주현근의 재능을 생각하면 금방 실력이 일취월장할 터.

곧 3성, 4성 던전도 도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집에 도착한 나는 바로 카르마 상점부터 열었다.

‘이제 카르마를 쓰긴 써야겠어.’

헌터 자격시험에서 받은 퀘스트 덕에 꽤 많은 카르마가 모였다.

정소연이 몬스터 사냥으로 모아준 카르마도 있어서 현재 내가 보유한 카르마는 5천이 조금 넘었다.

아끼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이쯤 되면 전력 강화를 시도할 때였다.

‘마음 같아서는 내공을 늘리고 싶지만, 근래에 영약을 너무 많이 복용해서 효율이 떨어질 거란 말이지.’

회귀 전에도 이렇게 단기간에 여러 종류의 영약을 복용한 적은 거의 없었다.

애초에 카르마 상점이 아니고서는 영약이란 것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고.

지금 당장 영약을 구매하는 것은 주저되었다.

‘영약은 나중에 사는 게 좋겠어.’

똑같은 가격인데 지금 사면 3년의 내공을 얻고 나중에 사면 5년의 내공을 얻는다.

이럴 경우, 급한 게 아닌 이상 나중에 영약을 사는 게 현명한 선택이었다.

‘이번에는 스킬 쇼핑을 해보자.’

내가 보유한 5,000 카르마라면 패시브 스킬 하나 정도는 구매할 수 있었다.

패시브 스킬이 아무리 헌터들에게 저평가를 당하고 있다지만, 무공 사용자인 나에게 주어진다면 또 모른다.

스킬이고 무기고 간에 결국 다루는 사람이 중요한 법이었으니.

‘스킬을 구매한다면 둘 중 하나를 고민해야겠군. 내 약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냐, 아니면 내 강점을 특화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냐를 말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