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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14화 (14/275)

#014화

“헉! 정소연에 정호연이라니!”

정소연은 혼자 오지 않았다.

자신도 갚아야 할 은혜가 있다면서 정호연이 정소연을 따라온 것이다.

“한새 씨를 다시 보게 돼서 정말 반가워요.”

“네, 저도 정호연 씨와 정소연 씨를 다시 보게 돼서 반갑습니다.”

두 사람과 인사하는 모습을 본 주현근이 옆에서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이분은?”

“주현근이라고 제 친한 동생입니다.”

내가 주현근을 소개하자, 정호연이 주현근에게 악수를 건넸다.

“주현근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무슨 군인처럼 말씀하세요.”

“저, 전역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렇습니다!”

“재미있으신 분이네.”

“감사합니다!”

사단장 대하듯 정호연을 대하는 주현근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왠지 모르게 주현근이 쪽팔리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렇게 주현근과 통성명을 나눈 정호연은 이내 고개를 돌리며 나에게 말했다.

“박한새 씨 소식 듣고 놀랐어요. 저는 던전 브레이크 때도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셔서 노련한 헌터일 줄 알았거든요.”

“저희와 만났을 때는, 각성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던 거죠?”

무공을 갓 익혔을 때니, 각성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라고 해도 무방하였다.

“저…….”

“말씀하시죠. 정소연 씨.”

정호연 옆에 가만히 서있던 정소연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더니, 갑자기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하였다.

“저를 치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한새 씨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꼭, 사례하고 싶은데 혹시 필요하신 거 있으신가요?”

“전화로도 말씀드렸듯, 사례 같은 건 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너무 고마워서 그래요.”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녀의 성격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뭔가를 받기는 받아야 할 거 같았다.

은혜든, 원한이든 절대 잊지 않는 것이 그녀, 아니 정 자매였으니까.

“그러면 나중에 부탁 하나 할 테니, 그때 제 부탁을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어떤 부탁이든 다 들어드릴 테니 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B랭크 헌터인 정소연에게 빚 하나를 달아두다니.

뭔가 든든한 기분이었다.

“저에게도 빚 달아두었다고 생각하세요. 제 동생의 은인은 제 은인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알겠습니다.”

나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뭐, 그렇다고 무리한 부탁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런데 한새 씨는 앞으로 어떤 길드에 가입하실 생각이세요?”

“따로 길드에 가입할 생각은 없습니다.”

예상치 못한 답변이어서 그런 것일까?

두 사람은 내 답변을 듣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길드에 가입하지 않는다면, 소문처럼 이능관리부에 들어가시려는 건가요?”

“예, 그럴 예정입니다.”

숨길 이유가 없었기에 나는 솔직하게 답변하였다.

그러자 정소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왠지 어울리시는 거 같아요.”

“제가요?”

“한새 씨, 원래 정의감 넘치는 성격 아닌가요?”

아무래도 정소연이 무언가 오해하는 거 같았다.

‘하긴, 실력 있는 헌터가 이능관리부에 들어가는 경우는, 특별한 신념이 있어서가 대부분이지.’

특별한 신념이 있는 게 아니라면 대우도 낮은 이능관리부에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물론 빌런을 향한 복수심으로 이능관리부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정의감 넘치는 성격은 아닙니다.”

“겸손하시기까지 하시네요.”

정소연은 어지간히 나를 높게 평가하는 듯했다.

이런 걸 콩깍지가 씌었다고 해야 하나 싶었다.

“사실 길드 말고 이능관리부에 들어간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이유를 여쭈어봐도 될까요?”

“이능관리부 헌터들에게 검기와 무공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검기와 무공이요?”

정소연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검기와 무공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한새 씨, 근데 무공이라는 게 정확히 뭔가요? 기사로 보기는 했는데, 내용이 제대로 안 적혀있어서 무공이 뭔지를 모르겠네요.”

나와 정소연의 대화를 흐뭇하게 지켜보던 정호연이 불쑥 내게 물었다.

그러자 나는 설명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이게 바로 무공입니다.”

정 자매 전면에 서 있던 내 몸이 어느새 정 자매의 후미로 이동해있었다.

몬스터보다는 주로 사람을 상대로 사용하는 비응신법이란 보법이었다.

뭔가 보법 이름이 이상하긴 해도, 귀신같이 은밀하면서 표홀하여 사람을 상대할 때는 나도 곧잘 사용하였다.

“와! 거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였어요!”

“어떤 스킬이죠? 처음 보는 스킬 같은데요?”

두 사람 다 무척이나 놀란 반응이었다.

하긴, 그녀들 입장에서는 내가 순식간에 자신들 뒤로 이동한 것이니 놀랄 법도 했다.

‘문제는 겨우 한 번 이동하는 데 내공을 거의 다 써버렸다는 거지만 말이야.’

정소연은 B랭크 헌터였고 정호연은 무려 A랭크 헌터였다.

A랭크 헌터인 정호연을 놀라게 하려면 나도 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비응신법의 효과는 나쁘지 않은 듯했다.

“스킬이 아니라 무공입니다.”

“무공이란 말이죠?”

“예. 무공은 스킬이 아니라서 누구나 배울 수 있습니다. 심지어 헌터가 아닌 일반인도 말입니다.”

정호연이 눈을 부릅떴다.

동생인 정소연의 얼굴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그만큼 충격적인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저 역시 헌터가 아닙니다.’

구태여 그 사실까지 전하지는 않았다.

이미 충격을 줬는데 더 큰 충격을 줄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능관리부의 헌터들에게 무공을 가르칠 거라고 하셨죠?”

“예. 이미 구두계약은 했으니, 랭크가 정해지면 곧바로 무공을 가르치게 될 거 같습니다.”

“혹시 그럼 저희도 무공이란 것을 배울 수 있을까요?”

정호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언니, 그런 부탁 하면 어떻게 해. 실례잖아.”

“아, 죄송합니다. 한새 씨가 보여준 무공이란 게 너무 탐이 나서 제가 실수했네요.”

“괜찮습니다.”

A랭크 헌터에게 무공을 가르친다면 나에게도 손해는 아니었다.

아니, 손해는커녕 엄청난 이익이었다.

B랭크 헌터인 정소연만 해도 한번 던전에 들어갈 때마다 엄청난 양의 카르마를 내게 안겨주고 있었다.

정호연을 내 권속으로 만든다면 그때 생길 이익은 실로 천문학적일 것이다.

‘더군다나 A랭크 헌터가 무공을 배운다면 이능관리부의 헌터들도 내 말을 더 잘 듣게 되겠지.’

공신력이 생기는 것과 똑같았다.

하위 헌터에게 있어 하늘과 같은 존재가 A랭크 헌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가르쳐줄 수는 없지.’

이능관리부 헌터들에게 돈을 받고 가르치려는 것과 같은 이유였다.

공짜로 가르치면 사람은 그 배움의 가치가 낮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었으니.

“만약 이능관리부와의 계약으로 저희에게 무공을 가르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제가 한 말은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그건 아닙니다. 다만, 이능관리부와의 형평성을 생각하면 강의료는 받아야 할 거 같습니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무공의 가치를 생각하면 1억도 저렴하다고 생각하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당연하죠. 저도 염치가 있는데 그런 귀한 지식을 공짜로 배울 생각은 없어요.”

“인당 1억인데 괜찮습니까?”

“1억이요?”

정호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무 저렴한 거 아닌가요?”

역시 A랭크 헌터였다.

하기야, A랭크 헌터쯤 되면 한 달에 무조건 1억 이상의 수입을 벌어들일 테니, 1억은 크게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다.

“최대한 많은 헌터에게 가르치려면 1억이 딱 적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하!”

“지금 바로 보낼게요.”

“지금요?”

“네!”

“그럼 저도 지금 보낼게요.”

정 자매의 남다른 행동력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정호연은 그렇다 치고, B랭크 헌터인 정소연에겐 1억은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을 텐데도 망설임이 없었다.

‘그나저나 운이 좋군. 마침 검 하나를 살까 했는데 말이야.’

헌터 라이선스를 발급받으면 당연히 도검 소지 허가증도 자연스럽게 발급받게 된다.

그래서 돈이 생기면 무기 하나를 구매할 계획이었는데, 정 자매 덕에 바로 무기를 구매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요즘 화영 길드의 기세가 장난 아니더군.”

레이븐 길드의 수장, 한다윗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화영 길드.

한때는 10대 길드 중 하나였던 곳으로 레이븐 길드와 자주 충돌하는 길드였다.

“내상을 입었던 정소연 헌터가 성공적으로 복귀한 게 큰 영향을 끼친 거 같습니다.”

“그래봤자 고작 B랭크 헌터 아닌가?”

“정소연 헌터는 B랭크 헌터이나, 그녀의 언니인 정호연 헌터는 A랭크이지 않습니까?”

한다윗은 부하의 말을 듣고 혀를 찼다.

정소연이 반쯤 폐인이 되고서 정호연까지 제대로 헌터 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뻐했던가.

정 자매가 공백기를 가지는 동안, 레이븐 길드는 더 큰 성장을 이루어냈었다.

아마 정 자매의 공백기가 조금만 더 길었더라면 레이븐 길드와 화영 길드의 차이는 훨씬 벌어졌을 터.

한다윗으로선 여러모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직도 정소연이 내상을 어떻게 치료했는지를 모르겠단 말이지.”

“정소연 헌터는 인터뷰 당시, 귀인이 나타나서 치료해주었다고 발언했습니다.”

“귀인이라. 그 귀인이 우리 길드에도 나타나 줬으면 좋겠군. 김종우, 그 식충이 같은 놈을 좀 던전으로 보낼 수 있게 말이야.”

레이븐 길드에도 내상으로 인해 폐인이 된 헌터가 있었다.

정소연의 사례보다 훨씬 상태가 심각하였는데, 아예 거동조차 하지 못할 정도였다.

“설령 귀인이 나타난다고 해도 김종우 헌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한때는 레이븐 길드의 기대주로 불리던 김종우.

하지만 지금은 한낱 폐인에 불과하였다.

거액의 병원비를 내고 있음에도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회복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긴 하지. 슬슬 방출할 때가 된 거 같아.”

“김종우 헌터를 방출하신단 말씀입니까?”

“우리가 봉사단체도 아니고 언제까지 퇴물의 뒤치다꺼리나 해줄 수는 없잖아?”

“그나저나 박한새 그놈은 왜 아직도 연락이 없는지 모르겠군.”

그는 당연히 박한새가 바로 자신에게 연락할 거라고 생각했다.

레이븐 길드는 비록 말석이라고 하나, 10대 길드 중 하나였다.

신입이라면 누구나 10대 길드에 들어가기를 원하였으니, 박한새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설마 내가 직접 권유했는데 다른 길드로 가는 것은 아니겠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엉덩이가 무거운 다른 10대 길드의 수장들이 직접 움직였을 리는 없을 테니까.

애초에 박한새의 잠재력을 한다윗보다 높게 평가한 이가 과연 있을까 싶었다.

한다윗도 반쯤 도박하는 마음으로 지르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이능관리부와 계약한 것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크큭. 레이븐 길드를 놔두고 이능관리부를 선택한다고?”

저도 모르게 조소가 흘러나왔다.

아무리 못해도 C랭크 이상의 잠재력을 가진 것으로 보였던 박한새였다.

박한새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능관리부에 들어갈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레이븐 길드를 놔두고 이능관리부를 선택할 정도로 생각이 없는 놈이라면 나도 필요 없어.”

차라리 간을 보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적어도 머리를 쓸 줄 아는 인물이란 뜻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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