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화
연수 일정을 기다리는 동안 열심히 무공 수련에 임하였다.
다행히 정소연 덕에 카르마는 꾸준하게 수급할 수 있었다.
하여 영약을 한 번 더 복용하였는데, 내공이 어느덧 6년으로 늘어났다.
‘이렇게 또 정소연 씨 덕을 보는군.’
이대로라면 10년 내공도 금방 만들 수 있을 거 같았다.
퀘스트가 추가로 생겨서 클리어한다면 그 이상도 가능할 것이고.
‘근데 요즘은 왜 퀘스트가 안 뜨는 거지?’
내가 속으로 퀘스트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 누군가는 다름 아닌, 정소연이었다.
“한새 씨. 마력을 이렇게 움직이는 거 맞나요?”
“잠시만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뒤에 섰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등에 손을 얹었다.
마력을 다루는 것.
특히 헌터들처럼 몸속에 엄청난 양의 마력을 품고 있는 사람은 마력을 다룰 때 극도로 조심해야만 했다.
인터넷이나 다른 매체를 통해 무공을 전파하지 않는 것도 마력의 위험성 때문이었다.
미래에도 헌터 출신의 초심자가 무공을 익힐 때는 반드시 무공 선생의 지도를 받게끔 만들었었다.
“마력을 움직여보시겠어요?”
나는 그녀의 마력을 집중해서 살폈다.
“후우, 후우.”
내가 알려준 호흡법으로 체내의 마력에 감응한 정소연.
그녀는 이내 침착하게 자신의 마력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스톱. 너무 힘이 들어갔습니다.”
“천천히 해도 돼요. 급하게 해봤자, 좋을 건 없습니다.”
“자, 지금입니다. 숨을 참고 집중하세요!”
정소연의 몸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겉으로 보면, 그냥 편하게 앉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녀는 엄청난 사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여기서 조금만 삐끗하면 마력이 역류하여 다시 폐인이 될 수도 있었다.
‘물론 내가 있는 한 그럴 일은 없지.’
내가 괜히 무공의 창시자가 된 것이 아니었다.
뛰어난 마력 감응력을 가진 헌터들조차 마력의 움직임을 예측하기 어려워했지만, 나는 달랐다.
마력이 어떤 특성을 가졌고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내 감각에는 너무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정소연의 마력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내가 그녀의 뒤에서 실시간으로 조언을 해주는 한, 그녀의 마력이 역류할 일은 절대 없으리라.
정호연은 실눈을 뜬 채로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봤다.
‘잘 어울리네.’
그녀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녀의 동생인 정소연은 도통 연애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오직 헌터로서 살아가는 것에만 몰두할 따름이었다.
당연히 언니로서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박한새를 보니 왠지 안심해도 될 거 같았다.
‘솔직히 무공을 만들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사기꾼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동생의 은인인 것을 알면서도 쉽사리 믿기 힘들었었다.
박한새가 보법을 사용하는 걸 직접 두 눈으로 보고서도 의문은 완전히 떨쳐낼 수 없었다.
마력을 다루는 기술이라는 게 그만큼 믿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이 무공이라는 것은, 절대 사기는 아닐 거야.’
아직 박한새가 말한 경지, 옥동쌍취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즉, 하단전의 기혈을 아직 뚫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호연은 무공의 무한한 가치를 직감적으로 느꼈다.
최소한 1억의 돈이 전혀 아깝지 않을 거란 사실을 말이다.
금전적인 가치로 따지면 아무리 못해도 수십억은 줘야 맞을 거 같았다.
마력을 다루는 방법을 알게 되는 것.
오직 그것만으로도 수십억의 가치를 지녔다고 볼 수 있었다.
‘여기서 만약 한새 씨가 보여준 보법이나 검기 같은 것까지 익힌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서든 박한새를 화영 길드로 영입해야 했다.
화영 길드의 간부로서, 박한새 같은 인재를 이능관리부에 뺏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연수 당일.
택시를 타고 연수원으로 가는 길에 주현근이 문뜩 말했다.
“정소연 헌터 진짜 장난 아니네요.”
“뭐가?”
“지금도 이미 엄청나게 강한데, 더 강해지려고 그렇게까지 노력한다는 게 대단하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심지어 정소연은 마력 역류 현상으로 폐인 생활까지 겪었던 인물.
마력을 다루는 게 두려울 만도 한데 정소연은 던전에 가지 않는 날이면 무공 수련에만 몰두하였다.
“그래서 정소연 씨와 친해졌어?”
“에이. 어떻게 바로 친해져요.”
“어제 보니까 둘이 꽤 긴 시간 동안 대화하는 거 같던데?”
“아, 그거요?”
주현근은 갑자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 형 이야기 한 거였어요.”
“내 이야기?”
“정소연 헌터님이 형에 대해 관심이 많더라고요. 오죽하면 군 시절 이야기까지 묻더라니까요?”
“그래?”
“잘해봐요, 형.”
“뭘 잘해보라는 거야?”
“에이, 모르는 척하시기는.”
뭔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정소연이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무공 때문일 텐데 말이다.
“아, 도착했나 본데요?”
“내리자.”
연수원이 보이자 우리는 택시에서 내렸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안내 요원으로 보이는 이가 나에게 물었다.
“혹시 제88회 헌터 자격시험의 합격자 맞으십니까?”
“예, 맞습니다.”
“헌터 라이선스를 보여주시겠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헌터 자격시험이 끝난 뒤에 발급받은 헌터 라이선스를 보여주자 안내 요원이 웃으며 말했다.
“박한새 헌터님, 주현근 헌터님 확인되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강당으로 안내해드릴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1분 정도 기다리니, 다른 안내 요원이 나타나서 나를 강당으로 안내해주었다.
“사람 엄청 많네요. 저 사람들이 다 헌터겠죠?”
“당연히 그렇겠지.”
“아는 얼굴들이 있나 찾아봐야겠습니다.”
“다 신인인데 아는 얼굴들이 있겠어?”
“친한 짐꾼 선배가 헌터 매니아 회원인데, 그 선배가 알려준 신인이 몇 명 있어요.”
헌터 매니아는 헌터와 관련된 커뮤니티 사이트 중, 최대 규모의 사이트였다.
이곳에서는 헌터들의 잡다한 소식부터 어떤 헌터가 더 강한지를 두고 제3자들끼리 싸우는 등의 활동이 주를 이루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신인 헌터들의 소식도 빠질 수는 없었다.
아직 결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신인이었기에 더더욱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제가 아는 얼굴들을 찾아볼게요.”
주현근은 열심히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한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새 형, 저기 보여요?”
주현근이 가리킨 방향에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신진호라고 멀지 않은 미래에 자신만의 길드를 만들어서 명성을 떨칠 인물이었다.
“저쪽은 왜?”
“왜, 험악하게 생긴 남자분 있잖아요. 저 사람이 7단계를 통과했다는 신진호 헌터예요.”
나는 이미 알고 있던 정보였지만, 굳이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러자 주현근이 또 다른 곳을 가리키며 주요 인물들을 소개해주었다.
“저기, 체격이 큰 여성은 박경선이란 헌터인데, D랭크는 거의 확정이라던데요? 스킬이 근거리 위주라, 근접에서 엄청 잘 싸운다고 들었어요.”
“저 사람은 나영석이라고 새벽 길드의 기대주예요. 전형적인 원거리 딜러인데, 스킬 한 방 한 방이 엄청난 파괴력을 가져서 양민 학살에는 적수가 없다네요.”
주현근의 입은 쉴 틈 없이 움직였다.
본인도 만만치 않게 헌터 매니아를 자주 방문하는 거 같았다.
“그리고 저기 남자 아이돌처럼 곱상하게 생긴 남자애 보이세요?”
“어, 보여.”
“겉으로 보기에는 연약해 보이지만, 저 남자애가 헌터 매니아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헌터예요.”
“얼굴 때문인가?”
“뭐 얼굴 덕을 아예 안 본 것은 아니긴 한데, 결정적으로는 실력 때문이죠.”
“실력이 어느 정도인데?”
“형과 똑같은 8단계까지 클리어했다던데요?”
“그래서 이름이 뭐라고?”
“이정이요. 제 동생이랑 동갑이라는데, 훨씬 어려 보이죠?”
이름을 듣고 나는 조금 놀랐다.
아는 이름이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모르는 이름이었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인물이 8단계를 통과했다고?’
8단계는 아무나 쉽게 통과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다.
이번 기수에서도 겨우 다섯 명밖에 통과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난이도가 높았다.
그런데 그 8단계를 통과할 정도의 실력자를 내가 알지 못한다니, 실로 기이한 일이었다.
한국에서 B랭크 이상의 강자가 될 인물이라면 내가 모를 리가 없는데 말이다.
“혹시 박한새 헌터님이십니까?”
그때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예, 맞는데 누구십니까?”
“와! 팬입니다!”
“팬이라고요?”
“예! 목동 시험장에서 박한새 헌터님의 활약을 보고 완전히 빠져버렸습니다!”
“혹시 괜찮으시면 같이 사진 좀 찍어주실 수 있을까요?”
사내가 떠들썩하게 구니, 주변에서도 관심을 드러냈다.
“박한새라면 이번 기수에서 5위 안에 든다는 실력자 아니야?”
“맞을걸? 검기라는 한 방이 엄청 센 근접 스킬을 가지고 있다던데?”
“대박! 그 박한새를 바로 여기서 볼 줄이야!”
내 얼굴은 몰라도 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했다.
하기야, 혜성처럼 등장해서는 최고 성적을 기록하였으니 나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형 인기 장난 아닌데요?”
“같은 신인 헌터들에게 인기 많아봤자 무슨 의미가 있다고.”
“형은 신인 헌터들에게만 인기 있는 게 아니잖아요. 10대 길드도 한 번씩은 형에게 러브콜 보냈다면서요?”
그건 그렇다.
헌터 자격시험이 끝나고 10대 길드에서 며칠에 한 번 간격으로 영입 제안이 들어왔었다.
뭐 그래봤자, 20억을 제안했던 한다윗 길드 마스터만큼 파격적인 제안은 없었지만 말이다.
“자, 다들 정숙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주현근과 대화를 나누며 강당에서 가만히 대기하고 있는데, 스태프로 보이는 이들이 강단 위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중 가운데에 있는 사내를 보며 눈을 빛냈다.
‘천현호군.’
천현호.
그는 미래의 S랭크 헌터로서, 실로 영웅이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은 헌터였다.
나와도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는데, 상호 존중하면서 서로의 일을 적극적으로 돕는 관계였다.
‘마지막 대격변을 끝으로 볼 수 없었던 얼굴인데, 이런 곳에서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네.’
3차까지 이어진 대격변으로 무수히 많은 영웅들이 장렬하게 산화하였다.
천현호 역시도 3차 대격변 때 인류를 위해 희생한 영웅 중 한 명이었다.
“아, 하필 연수원장으로 천현호 헌터라니.”
“천현호가 왜?”
“엄청 깐깐한 성격이잖아요. 원칙주의자이기도 하고요. 이번 연수는 FM으로 진행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확실히, 지금의 내 신분으로는 천현호의 존재를 마냥 반가워할 수는 없을 거 같았다.
내가 아는 천현호의 성격은 주현근이 말한 것과 그대로 일치하였으니.
오랜만에 퀘스트 알람음이 떴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퀘스트 내용을 살폈다.
[헌터 김수민을 죽이거나 권속으로 삼으십시오.
-김수민을 죽인다. 카르마 +3,000
-김수민을 권속으로 삼는다. 카르마 +5,000]
‘사람을 죽이라고?’
퀘스트 내용을 살핀 나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졌다.
이런 내용의 퀘스트는 처음이었다.
사람을 죽이거나 권속으로 삼으라니!
내게 퀘스트를 주는 주체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주체가 김수민에게 악의를 품은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