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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16화 (16/275)

#016화

‘어쨌든 퀘스트가 갑자기 떴다는 말은 김수민이 이 안에 있다는 뜻인 거 같은데, 내가 아는 그 김수민이 맞겠지?’

마에스트로 김수민.

무려 10대 길드를 상대로 전쟁을 시도하였던 악명 높은 빌런이었다.

원래라면 이성은의 손에 처단되었을 인물이지만, 회귀자 이성은은 이 세상에 없었다.

“잠시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예, 갔다 오세요.”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강당 안을 날카로운 눈으로 훑어봤다.

김수민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저기 있군.’

겉으로 봐서는 그냥 평범하게 생겼다.

헌터라고 하기에는 조금 병약하게 느껴지는 외모가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하지만 김수민은 겉보기에만 멀쩡했지, 무수히 많은 헌터를 살상한 희대의 빌런이었다.

그녀의 손에 죽은 C랭크 이상의 헌터 수만 거의 100명 가까이 될 것이다.

‘어떤 퀘스트를 깨는 게 좋을까?’

김수민을 죽일지.

아니면 권속으로 만들지.

일단 둘 중 하나는 선택해야 할 거 같았다.

카르마 보상도 보상이지만, 미래에 엄청난 악명을 떨칠 빌런을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으니까.

콕. 콕.

내가 그렇게 어떤 퀘스트를 받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가 내 등을 손가락으로 찌르는 것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아까 전 주현근이 이야기했던 이정이라는 헌터의 얼굴이 보였다.

“무슨 일이시죠?”

“이름이 뭐지?”

다짜고짜 내 이름을 묻는 이정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갑자기 왜 물으시는지?”

“박한새, 맞지?”

“그런데요? 저를 아십니까?”

“8단계를 통과한 헌터 중에서 육체파 헌터는 너와 나 둘뿐이더군.”

그랬던가?

다른 사람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라서 몰랐었다.

알아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실력이 궁금한데, 나와 한판 붙어보자.”

나는 순간 헛웃음을 지었다.

무슨 목적으로 나를 찾아왔나 했더니, 설마 이런 목적일 줄이야.

“저와 대련을 하자는 겁니까?”

“그렇다.”

그러자 주변에서 듣고 있던 헌터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뭐야, 두 사람 싸우려는 모양인데?”

“겉으로 봐서는 고등학생이랑 아저씨 같은데, 둘이 싸운다고?”

“무시하지 마. 고등학생처럼 보여도 쟤가 우리 중에 가장 강할걸?”

“누군데?”

“이정이라고 왜, 유명한 애 있잖아.”

“아, 이정이 쟤였어?”

“상대도 만만치 않아. 박한새라고 8단계 통과했다던 사람이야.”

역시 이정쯤 되니, 사람들이 다 알아보았다.

하기야, 나와 같은 8단계를 통과한 사람인데 유명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제가 왜 당신과 대련을 해야 합니까?”

나도 이정의 실력이 궁금하기는 했다.

내 기억 속에 없는 인물이었기에, 실력을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무슨 관종도 아니고 이렇게 다짜고짜 대련하고 싶지는 않았다.

“같은 육체파 헌터끼리 서열을 정해야 하지 않겠어?”

“저로선 들어줄 이유가 없는 요구입니다만.”

“더 말하지 않겠다. 공격할 테니, 자세 잡아.”

“싫습니다.”

단호하게 거절의 뜻을 표출하자, 이정이 갑자기 엄청난 속도로 팔을 뻗었다.

D랭크 이하의 헌터라면 반응조차 하지 못할 속도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르고스의 눈이라는 스킬이 있었다.

나는 내 미간을 향하는 이정의 주먹을 보며, 뒤로 고개를 젖혔다.

“피해?”

내가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피할 것을 예상 못 했던 것인지, 이정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와, 방금 뭐였지?”

“이정이 공격한 거 같은데?”

“미친. 내 눈으로는 보이지도 않았어.”

“스킬인가? 당연히 가속 계열이겠지?”

다짜고짜 공격하는 이정의 모습에 나도 더는 인내심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하여 바로 자세를 잡고 반격하려 하였다.

“두 분,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언제 다가왔는지, 천현호의 목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려왔다.

지금의 나이는 분명 30대 중반일 텐데, 목소리만 들으면 엄격하고 진중한 40, 50대 중년인 같았다.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자세를 풀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정은 달랐다.

“대련을 하려고 했다.”

마치 잘못한 게 없다는 듯, 당당하게 구는 이정이었다.

그러자 천현호가 미간을 구겼다.

“연수원에서는 헌터들 간의 사적인 대련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럼 몰래 하면 되겠군.”

“저는 분명히 금지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정은 천현호를 상대로 살벌하게 기 싸움을 하였다.

상대가 고랭크 헌터이고 연수원 원장이라는 사실은 조금도 개의치 않는 듯했다.

하지만 타협이 없는 것은 천현호 역시 마찬가지.

그는 차가운 눈으로 이정을 노려보며 자신의 통제에 따를 것을 주문하였다.

이정은 혀를 차더니 그대로 자리를 떴다.

그러자 천현호가 이정의 등을 향해 외쳤다.

“처음이자 마지막 경고입니다. 또다시 다른 헌터분께 공격을 시도한다면 그때는 경고 없이 바로 퇴출하겠습니다.”

처음부터 퇴출 카드를 꺼내 들다니.

연수원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실력으로 보나, 인성으로 보나 범상치 않은 인물인 건 확실하군.’

하필 그렇게 범상치 않은 인물이 나에게 관심을 드러냈다는 게 나로선 성가실 따름이었다.

이정 때문에 잠시 소란이 벌어졌었지만, 실제로 싸움이 벌어진 것은 아니었기에 소란은 금세 잠잠해졌다.

“여러분, 헌터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강단으로 돌아간 천현호가 마이크를 잡고 환영사를 전하였다.

물론 내가 아는 천현호답게, 환영사는 길지 않았다.

오히려 환영사보다는 연수원에서 지켜야 할 규칙과 규정을 강조하였다.

실로 원리 원칙주의자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첫 교육은 오전 9시에 시작입니다. 만약 자택이 멀어서 시간을 지키기 어렵다면 기숙사를 제공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시간 약속을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아니, 일정이 왜 이렇게 빡빡해? 여기가 무슨 군대야?”

“그니까. 요즘은 군대도 이러지 않을 텐데.”

“이런 생활을 한 달 반이나 해야 해?”

“제기랄. 하필 연수원 총책임자가 천현호일 게 뭐야.”

천현호의 연설을 듣는 헌터들의 입에서는 불평불만이 끊이지 않고 나왔다.

듣기만 해도 기가 질릴 거 같은 일정이 예고되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내일부터 이론교육 및 정신교육 8시간에 체력 훈련 3시간이라니.’

다른 건 몰라도 이론교육과 정신교육 8시간이 고통일 거 같았다.

차라리 반대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다.

“인성 교육을 뭐 그리 많이 하는지 모르겠네요. 어차피 학교에서 다 들었던 내용일 텐데.”

마침 옆자리에 앉은 주현근도 불만 섞인 목소리로 투덜댔다.

“그만큼 헌터들이 사고를 많이 치니 그런 거겠지.”

“사고 칠 헌터들은 인성 교육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사고 치지 않을까요?”

내 생각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성 교육을 안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정치인들 입장에서는 책임을 회피할 명분이 필요할 테니 말이다.

“그나저나 아까 쩔었어요. 형.”

“아까?”

“왜, 이정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하셨잖아요. 다른 헌터들도 그 이야기만 하더라고요.”

“너도 봤어?”

“당연히 봤죠. 그렇게 소란스러웠는데.”

이정과 강당 한복판에서 싸울 뻔했던 일을 주현근도 알고 있다니.

조금 민망하였다.

“형과 이정의 랭킹이 어떻게 정해질지 궁금하네요. 두 사람 다 당연히 5위 안에 들겠죠?”

“글쎄다.”

연수원에는 랭킹 시스템이 있었다.

말 그대로 신입 헌터들의 랭킹을 측정하는 시스템이었다.

헌터 자격시험에서 8단계를 통과한 사람은 모두 다섯 명.

나 역시 이 중 한 명이니, 주현근의 말처럼 5위 안에 들 가능성이 컸다.

“이정 성격 보니까, 형보다 순위 낮으면 바로 도전장을 날리겠는데요?”

주현근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야.”

“오. 정말요?”

“연수원에 온 이상, 1등은 하고 가야 하지 않겠어?”

연수원에서 랭킹을 정했다고 헌터가 무조건 그 랭킹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었다.

자신보다 높은 순위의 헌터를 꺾으면 랭킹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던전에 들어갈 수도 없는 내가 헌터 연수에 참가한 이유도 바로 이 랭킹 시스템 때문이었다.

일반인의 몸으로 신인 헌터들 사이에서 1등을 하는 것.

계획대로만 된다면 헌터 자격시험이 끝나고 받았던 관심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관심을 받게 될 거다.

“1위를 노리다니. 형의 자신감이 진짜 부럽습니다.”

“너도 연수 기간에 무공을 꾸준히 익히다 보면 연수가 끝나기 전에는 100위 안에 들 수 있을 거다.”

“100위라. 그게 가능할까요?”

“네 노력에 따라 그 이상도 가능해.”

오히려 100위도 나는 보수적으로 이야기한 거다.

무공의 재능 하나만큼은 이정이나 신진호, 나영석 같은 이보다 더 뛰어난 것이 주현근이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시간.

연수 과정은 무려 한 달 반 동안 진행되니 그 정도의 시간이면 주현근의 랭킹이 바뀌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헌터 연수의 첫날은 싱겁게 끝이 났다.

강당에서 천현호가 몇 가지 설명만 하고 그대로 끝이 난 것이다.

“현근아. 너는 따로 들어가라.”

“형, 어디 가시게요?”

“여기 근처에서 누구 만날 사람이 있어서.”

“그래요? 그럼 이따 저녁에 봅시다.”

주현근을 먼저 돌려보낸 나는 건물에서 빠져나오는 사람을 한 명씩 훑어보았다.

그러다, 김수민을 발견하게 되자 그녀의 뒤를 몰래 쫓았다.

‘아주 오랜만에 하는 미행이군.’

회귀 전에는 누군가의 뒤를 미행한 적이 의외로 적지 않았다.

인류의 적에는 같은 인간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파롤이란 성좌를 배후성으로 둔 헌터들이 주된 적이었는데, 나는 무공의 특성을 이용하여 그들의 뒤를 몰래 쫓는 일을 많이 했었다.

김수민의 뒤를 미행하는 것에 나는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녀 역시 파롤의 졸개만큼 위험인물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근데 장비 대여소에는 왜 간 거지? 설마 던전에 들어가려는 것인가?’

김수민이 연수를 끝마치고 찾아간 목적지는 전혀 의외의 장소였다.

다름 아닌, 던전 근처에 있는 장비 대여소였다.

“헌터 라이선스를 보여주십시오.”

“여기요.”

장비 대여소에서 중무장을 하고 나온 그녀는 바로 던전으로 들어갔다.

‘무슨 목적인지 알 수가 없군. 연수 기간에 던전을 찾다니 말이야.’

랭크는 측정되지 않았어도 어쨌든 헌터는 헌터였다.

헌터 라이선스를 가진 이상, F랭크 헌터로 인정받으니 던전에 들어가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보통 연수 기간에 던전을 출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였다.

한 달 반만 지나면 랭크가 정해지는데 굳이 지금 시점에 던전을 갈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어떡하지? 던전에 들어갔으니, 더 쫓을 수가 없는데.’

회귀 전에도 그랬지만, 던전은 늘 나에게 있어서 장애물과도 같았다.

파롤의 졸개를 뒤쫓을 때도 던전 때문에 실패를 경험한 적이 많았었다.

나를 적으로 둔 이들은 하나같이 던전을 은신처로 사용했던 것이다.

[던전에 들어가십시오. 카르마 +1,500]

김수민을 죽이거나, 권속으로 받아들이라는 퀘스트를 받은 이후로 하루도 지나지 않아 새로운 퀘스트가 발생하였다.

무려 카르마 1,500이라는, 절대 만만치 않은 보상이 걸려 있는 퀘스트였다.

‘하필 던전이라니!’

하지만 나는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헌터가 아닌 나로서는 절대 깰 수가 없는 퀘스트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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