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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17화 (17/275)

#017화

‘근데 왜 불가능한 퀘스트를 줬을까? 내게 퀘스트를 주는 것은 성좌잖아?’

문뜩 떠오른 깨달음에 나는 흠칫하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회귀하고 나서는 한 번도 던전에 들어가려는 시도를 해본 적이 없었다.

헌터가 아니니, 당연히 안 될 거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헌터는 아니어도 평범한 일반인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나에게는 카르마와 카르마 상점이 있었으니까.

‘한번 시도는 해보자.’

결심을 내린 나는 던전을 향해 걸어갔다.

“헌터 맞으십니까?”

이능관리부 직원에게 헌터 라이선스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직원은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장비 없이 가시면 위험하실 텐데요.”

“괜찮습니다. 뭐 좀 확인할 게 있어서 잠시 들어가는 겁니다.”

직원은 찝찝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더 반대하지 못하고 나를 통과시켜 주었다.

더는 나를 막을 사람이 없어지자, 나는 지체 없이 움직였다.

두근두근!

던전이 가까워질수록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기분이었다.

당연히 들어가지 못할 게 분명한데….

회귀 전에도 무수히 많은 시도를 했었으나, 한 번도 던전에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이성은도 이것만큼은 해결방안을 제시해주지 못했었지.

그러니 기대를 하지 않는 게 맞았다.

하지만 던전이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요동쳤다.

마치 이번에는 될 거 같다는 그런 확신이 들었던 것이다.

스르륵.

‘안 되는 건가?’

던전으로 손을 내밀자, 그대로 손이 통과하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결국, 이번에도 나는 던전에 들어가지 못하는 거 같았다.

[카르마를 소모하여 던전 내부로 진입하실 수 있습니다. 던전 내부로 진입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내 눈에 전혀 예상치 못한 문구가 떠올랐다.

‘카르마를 소모하면 던전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건가!’

엄청난 발견이었다.

설마 카르마에 이런 식의 쓰임새가 있을 줄이야!

다시금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낀 나는 더 망설이지 않고 ‘예’를 눌렀다.

그러자 허공을 맴돌던 나의 손이 자연스럽게 던전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후 내 몸도 스르르 던전으로 들어갔다.

던전은 또 하나의 세계라고 헌터들이 말했었다.

나는 그것을 과장으로 생각했었지만, 막상 던전 안으로 들어오니 정말 또 하나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하늘이 보였고 거대한 숲이 보였다.

심지어 각종 벌레와 새들도 육안으로 볼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세계가 아니라면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이게 던전인가.”

호흡법을 사용하여 숨을 들이마셔 보았다.

세계가 다른 게 확실한 것인지, 공기조차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마력의 농도도 풍부한데? 마음 같아서는 날 잡아서 폐관 수련하고 싶을 정도야.’

나는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가, 카르마를 확인하였다.

던전에 있을 때, 어느 정도의 카르마가 소모되는지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소모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군. 1초에 1 카르마가 소모되는 건가?’

카르마가 소모되는 속도를 보며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어느 정도 카르마가 소모될 것은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무리 그래도 1초에 1 카르마라니.

내가 보유한 카르마로는 한 시간 정도가 한계였다.

[던전에 들어왔습니다. 카르마 +1,500]

그나마 퀘스트 보상으로 유예 기간이 조금 늘긴 했지만 말이다.

“서둘러야겠군.”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카르마가 없는 상태에서 던전에 남아있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카르마가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김수민을 조사해야 했다.

인기 있는 던전과 인기 없는 던전을 나누는 기준은 사실상 하나라고 봐도 무방하였다.

그 기준이란 다름 아닌, 효율성.

즉, 던전에 머무르는 시간 대비 수익이 큰 곳은 인기가 많고 수익이 적은 곳은 인기가 적었다.

그리고 인기가 적은 던전에선 주로 비행형 몬스터, 고스트형 몬스터 등이 출몰하였다.

이곳 던전 역시도 이글이라는 비행형 몬스터, 일명 플라이 몹이 나오는 던전이었다.

“끼이이악!”

그때, 하늘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이글의 괴성이었다.

‘던전에 들어오자마자 환영을 해주다니. 이거 참 몸 둘 바를 모르겠어.’

나름대로 은밀하게 움직였다고 생각했는데, 하늘에서 볼 때는 훤히 보였던 모양이다.

하늘을 비행하던 이글이 나를 발견하고는 그대로 수직 강하하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였다.

이름이 괜히 이글이 아닌 거 같았다.

[25 카르마를 얻었습니다.]

물론 아무리 빨라도 내 눈을 피할 수 없었다.

보법을 사용하여 이글의 공격에서 벗어난 나는 이글이 다시 하늘로 날아가려는 순간에 검을 휘둘러 목을 날렸다.

그러자 이글이 죽으며 25 카르마를 획득했다는 문구가 떴다.

‘25 카르마라. 25초에 한 마리씩 사냥해야 본전인 건가?’

헛웃음이 나왔다.

고블린이나 코볼트와는 비교도 안 되게 사냥하기 까다롭다는 이글을 잡아도 겨우 25초의 유예 기간밖에 얻지 못하다니.

이래서야 던전 사냥은 꿈도 못 꿀 거 같았다.

물론 나중에 조금 더 강해져서 사냥 효율이 올라간다면 그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끼이이악! 끼이이악!”

나는 하늘을 노려보았다.

또 공격이 들어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내가 아니었다.

‘저쪽에서 소리가 나는군.’

멀지 않은 곳에서 이글의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저곳에 김수민이 있을 거 같았다.

소리가 난 방향으로 가니, 내가 예상했던 그림이 펼쳐지고 있었다.

잘 갈아놓은 칼이 내리꽂히는 모습처럼, 엄청난 속도로 수직 강하하는 이글.

아마 다른 헌터가 이곳에 있었다면 김수민이 위기에 빠졌다고 생각하며 구하려 들었을 것이다.

이글의 공격을 받는 김수민은 누가 봐도 무방비한 상태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연약하게 보이는 김수민이지만, 그녀는 고위험군 빌런이 될 인물이었다.

지금의 수준은 어떨지 몰라도 결코 이글 따위에 당할 수준은 아닐 것이다.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던 이글은 마치 누가 붙잡기라도 한 것처럼 김수민의 바로 위에 멈춰 섰다.

김수민의 고유 스킬인 염동력의 힘이었다.

염동력에 의해 몸이 묶인 이글의 최후는 실로 허망하였다.

손바닥만큼 작은 크기의 단도에 머리가 꿰뚫려 즉사한 것이다.

‘역시 강하긴 해.’

이글은 사냥하기 까다로운 몬스터였다.

번개가 꽂히듯, 순식간에 수직 강하하여 공격하는 이글이었기에, 일단 공격을 피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설령 원거리 스킬이 있다고 해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비행하는 몬스터를 정확하게 요격하기란 숙련된 헌터가 아니고서는 힘든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김수민은 너무도 쉽게 이글을 사냥하였다.

괜히 S랭크 잠재력을 가진 인물이 아닌 거 같았다.

‘지금 제거하는 것은 힘들겠지?’

기습을 시도해서 김수민을 제거해볼까?

잠시 그와 같은 고민을 한 것은 사실이었다.

김수민은 미래의 빌런이었고 인류에 해가 될 존재이니 굳이 살려둘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내 수준으로는 김수민을 100% 죽일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염동력은 무공과 상성이 좋지 않은 스킬이었으니까.

물론 내공이 많았다면 그깟 상성 차이쯤은 압도할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근데 왜 던전에 온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겠군.’

나는 바깥세상에서 그랬던 것처럼 김수민의 뒤를 계속 쫓아다녔다.

하지만 김수민은 이글의 부산물을 채취하는 데 열중할 뿐이었다.

마치 몬스터를 사냥하는 게 그녀의 목적이라는 것처럼.

조금 더 지켜보자 확실히 그녀의 목적은 몬스터 사냥인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일부러 소리를 내서 이글을 유인하였다.

김수민을 발견한 이글이 공격을 시도하면 염동력으로 막아내고 단검으로 숨통을 끊었다.

이후에도 똑같은 과정의 반복이었다.

‘정말 몬스터 사냥을 위해 온 것인가 본데?’

주섬주섬 마정석을 챙기는 김수민을 보면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조금 더 관찰하고 싶었지만, 카르마가 부족했다.

김수민을 조사하는 것은 나중을 기약해야 할 거 같았다.

‘그런데 던전에 있다가 카르마가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꼭 알고 싶은 정보였지만, 시험해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자칫하면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이정은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이정의 정면에서 날카롭게 생긴 작은 물체가 날아왔다.

이정은 쥐고 있는 검을 휘둘러 날아오는 물체를 막아냈다.

휙! 휙! 휙!

하지만 하나가 끝이 아니었다.

왼쪽, 오른쪽, 심지어 이정의 등 뒤에서도 무언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흥!”

사방에서 공격이 쏟아지는데도 이정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마치 춤을 추듯 가벼운 움직임으로 날아오는 물체를 피하거나 검으로 튕겨냈다.

-후후후. 이렇게 보니, 정말 검술 고수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군요.

갑자기 귓가로 중성적인 목소리가 들려오자 이정은 흥이 깨졌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훈련 종료.”

기계가 작동을 중단한 것을 확인한 이정은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그러자 중성적인 목소리가 다시금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제가 준 스킬은 어떠셨습니까?

“남의 것은 필요 없다. 내가 가진 스킬로도 충분해.”

-아직도 사용해보지 않은 겁니까?

지금 그의 태도는 절대 일반적인 헌터가 성좌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성좌, 아우구스는 그의 말투가 익숙한지,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재미있다는 듯, 기분 나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지금은 필요를 느끼지 않을 수 있겠지만, 곧 상황이 달라지게 될 겁니다.

그 말을 듣고 이정은 코웃음을 쳤다.

각성자가 될 때 얻었던 그의 고유 스킬로 헌터 자격시험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냈던 이정이다.

어쩌다 아우구스와 배후성 계약을 맺게 되었지만, 그의 힘에 의존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볼일이 있어서 찾아온 거야?”

-오늘 흥미로운 일을 겪으셨더군요.

“흥미로운 일?”

-박한새란 인물과 마주쳤지 않습니까?

아우구스의 그 같은 말에 이정은 자신의 주먹을 쥐었다 피며, 아까 있었던 일을 복기하였다.

전투라고 부르기에는 순식간에 끝나버린 일이었다.

하지만 이정은 그 짧은 교전으로도 상대의 실력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었다.

“확실히 흥미가 가는 인물이긴 해. 시간이 가속된 상태에서도 나와 똑같은 속도로 움직이더군.”

-그럼 박한새의 실력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합니까?

그 같은 질문에 이정은 턱 끝을 쓰다듬었다.

반응 속도만 봤을 때는, 웬만한 헌터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랭크로 구분하자면 아무리 못해도 C랭크 이상은 되어 보였다.

“나를 상대로 어느 정도 버틸 실력은 갖고 있는 거 같던데?”

-호오, 생각보다 높은 평가를 내리시는군요.

“어디까지나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뭐지?”

-박한새는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뭔 소리지?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다니?”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자면, 박한새에겐 액티브 스킬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우구스의 말을 들은 이정은 눈을 부릅떴다.

8단계를 통과한 박한새가 스킬을 보유하지 않았다니!

심지어 박한새는 자신의 공격을 완벽하게 피해낸 상대이지 않은가.

‘패시브 스킬만으로 그런 움직임이 가능하다고?’

다른 헌터들과 마찬가지로 스킬 의존도가 높은 이정이었기에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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