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대신 회귀함-18화 (18/275)

#018화

1주 차는 이론 수업과 체력 훈련의 반복이었다.

아침에 이론 수업을 세 시간 정도 하고서 오후에 체력 훈련 세 시간, 그리고 또다시 이론 수업 네다섯 시간 정도를 반복하며 하루하루를 보낸 것이다.

“이런 말이 있죠.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여러분들은 헌터로 각성하며 큰 힘을 얻었습니다. 그 말은 그만큼 여러분에게 큰 책임이 따른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일과도 똑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몇 시간 동안 이론 수업 및 인성 교육이 진행되었다.

실로 지루하기 그지없는 시간이었다.

헌터들은 거의 잠들 기세로 의자에 늘어졌다.

강사도 그리 열성적이지 않았다.

그저 의무이기에 억지로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후우. 하아. 후우. 하아.”

졸음이 쏟아질 거 같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한 시도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겨우 6년.

내가 보유한 내공은 고작 6년에 불과하였다.

조금이라도 내공을 늘릴 수 있을 때 늘려둬야 했다.

“형. 수업 끝났나 본데요?”

한창 호흡법에 열중하고 있는데 주현근이 내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그 역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뭐 하는지 혹시 알아?”

“아마 체력 훈련을 하러 가지 않을까요?”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번 주 내내 이론 수업과 체력 훈련의 반복이었으니, 오늘도 그럴 가능성이 높긴 했다.

‘오늘은 아이템 쓰는 법을 배우려나?’

하지만 예상했던 것과 달리, 강당으로 들어온 사람은 평소 체력 훈련을 도맡았던 훈련 교관들이 아닌, 연수원장 천현호였다.

“모두 정숙.”

단 한마디로 좌중을 휘어잡은 천현호는 중대 발표를 하기 시작하였다.

중대 발표란 다름 아닌, 헌터 랭킹이었다.

“드디어 이날이 왔군!”

“나, 처음 헌터가 되었을 때보다 떨리는 거 같아!”

“제발 100위 안에만 들기를!”

연수원에서 정해지는 랭킹은 실로 중요하였다.

랭킹은 결국 연수 과정이 모두 끝날 때, 랭크에 반영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론 수업을 들을 때만 해도 의자에 늘어져 있던 헌터들이 허리를 바짝 세우며 긴장하였다.

내 옆에 앉은 주현근 역시 다른 헌터들과 다르지 않았다.

꿀꺽!

얼마나 긴장했는지 마른침을 연거푸 삼키며 천현호의 말에 초집중하였다.

“시간 관계상, 30위까지만 발표하겠습니다. 나머지는 문자로 공지해드릴 테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천현호의 말에 여기저기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니, 30위 바깥은 헌터도 아니라는 거야?”

“제기랄. 괜히 긴장했잖아.”

주현근도 아쉬움을 느꼈는지, 작게 투덜댔다.

“너무하네요. 시간이 얼마나 걸린다고 이렇게 차별하다니.”

나로선 해줄 말이 없었다.

무조건 30위 안에 들 내가 어떤 위로를 하든, 그저 가식이고 위선이었으니.

“30위부터 발표하겠습니다. 김수민 헌터님. 김수민 헌터님이 30위입니다.”

“김수민이라고?”

“왜요? 형이 아는 사람이에요?”

천현호의 입에서 김수민의 이름이 나오자 나는 조금 놀랐다.

“김수민은 적어도 10위 안에 들 실력자야.”

“엥? 처음 듣는 이름인데, 그 정도의 실력자라고요?”

나름 정보통인 주현근도 김수민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는 모양이었다.

뭐,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할 것도 없었다.

김수민은 자신을 숨기는 것에 능한 사람 같았으니.

며칠 동안 미행했는데도 얻은 게 별로 없다는 것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자신을 숨기는지 알 수 있었다.

“9위는 나영석 헌터입니다.”

내가 김수민에 대한 생각을 하는 동안, 계속해서 순위 발표가 이어졌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내 이름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형, 이러다 1위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러진 않을 거다.”

“형도 8단계 통과자인데, 1위 못 될 게 뭐가 있어요?”

주현근의 얼굴은 한눈에 봐도 들떠있었다.

내가 1위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양이었다.

“4위는 박한새 헌터, 그리고 3위는 이정 헌터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 순위는 4위였다.

8단계 통과자 중에서는 두 번째로 낮은 순위를 받은 것이다.

“이건 진짜 억까네요. 형이 당연히 1위여야 하는데.”

“상관없다. 내 힘으로 1위를 노리면 되는 일이니.”

가만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1위를 하는 것보다 오히려 이쪽이 더 나을 수도 있었다.

연수원의 측정 기준이 아닌, 실질적인 실력으로 1위를 따내는 게 훨씬 더 임팩트 있어 보일 테니까.

“나보다 순위가 낮은 이에게 도전하는 것도 가능한가?”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귓속에 들려왔다.

3위를 기록한 이정의 목소리였다.

“상대가 동의한 경우에는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박한새에게 도전하겠다.”

나에게 공개적으로 도전장을 내민 그의 모습에 강당 분위기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뭐야. 랭킹 결정전이 원래 이렇게 진행되는 거였어?”

“이번이 이상한 거야. 3위가 4위에게 도전하는 게 정상일 리 없잖아!”

“이정 저 새끼는 확실히 돌아이가 맞다니까?”

“그래도 저 똘끼 부럽지 않냐? 힘이 있으니 저런 똘끼도 부리는 거잖아.”

“근데 박한새는 어떻게 할까? 당연히 거절하겠지?”

“더 높은 순위를 노리고 있었다면 받아들이지 않을까?”

안 그래도 내가 도전장을 내밀 것인데, 그새를 못 참고 먼저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것에서 그저 웃음이 나왔다.

“한새 형, 인터넷 반응 장난 아닌데요?”

주현근이 휴대폰을 내밀며 커뮤니티 반응을 보여주었다.

[순위 발표 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3위와 4위가 대결하냐?]

[일단 이정 이 새끼가 최소 미친놈임 ㅋㅋㅋ]

[미친놈이든 뭐든 이번 기수 역대급 개꿀잼일 거 같은데?]

[근데 이정이 바를 듯.]

[ㄴㄴㄴ 박한새가 한참 형임. 노련미로 이길 듯. ㅋ]

[넌 이미 죽어있다는 이정의 명대사 모름? 박한새는 시작과 동시에 썰릴걸?]

[박한새는 무림 고수인 거 모르냐? 보법으로 다 피함 ㅋㅋㅋ]

나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사실을 댓글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역시 연수원에 들어오길 잘했군.’

그냥 헌터 라이선스만 따고 만족했으면 이 정도의 인지도를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

연수원에 들어와 높은 랭크로 측정받으니 그나마 주목을 받는 것이었다.

“다른 헌터들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형과 이정 이야기만 하고 있어요.”

“사람들은 누가 이길 거라고 생각해?”

“눈이 없는 건지, 이정 쪽을 더 높게 평가하더라고요.”

“한새 형. 형이 당연히 이기겠죠?”

나는 대답 없이 어깨만 으쓱하였다.

이럴 때는 그냥 행동으로 보여주면 될 일이었다.

랭킹이 발표되면서 연수원의 분위기는 극도로 험악해졌다.

서로가 경쟁자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였기 때문이었다.

심지가 굳지 못한 이는 밤에 잠을 설칠 정도로 긴장하였다.

하지만 김수민만은 이런 분위기에서 예외였다.

그녀는 자신의 랭킹이 30위라는 것과 곧 3위와 4위 간의 순위 결정전이 치러질 것이라는 사실을 신경 쓰지 않았다.

김수민이 신경 쓰는 것은 오직 자신의 성장.

연수원에서의 일정이 끝나기 무섭게 던전으로 향하는 것도 자신의 스킬을 더욱더 성장시키기 위함이었다.

“학생, 혼자 던전에 가는 거야?”

던전 입구.

누군가가 김수민에게 말을 걸었다.

30대 후반으로 보였는데, 헌터 복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수민은 사내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던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 말 안 들려, 학생?”

“무슨 일이죠?”

“던전에 혼자 가는 거냐고.”

“그걸 왜 물으시죠?”

“혼자 가면 위험하니 우리랑 같이 가는 게 어때? 전부 다 E랭크에 베테랑 헌터들인데 말이야.”

“이게 다 학생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분배는 공평하게 할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거절하겠습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팀을 이룰 생각이 없었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서 그녀는 은밀하게 힘을 키워야 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던전 사냥을 하면 그녀의 스킬이 공개될 것이니 솔로 레이드를 하는 쪽이 마음이 편했다.

“같이 가자니까 그러네? 우리가 버스 태워줄게!”

사내가 탐욕스러운 눈으로 그렇게 말했다.

눈만 봐도 그의 의도가 선량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김수민은 더 상대하지 않고 던전으로 들어갔다.

“네까짓 게 감히 나를 무시해?”

매몰차게 던전으로 들어간 김수민의 뒷모습을 보며 사내가 씩씩거렸다.

얼굴이 반반하기에 몇 가지 노하우를 가르쳐 주려고 하였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지만, 돈 없고 빽 없는 신입 헌터에겐 그마저도 감지덕지.

하지만 호의를 거절한 이상, 대가를 치르게 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양 씨. 이야기가 잘 안 됐나 봐?”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선택하더군!”

“그럼 어떻게 할 건데?”

“평소처럼 해야지. 던전에서 깔끔하게 말이야.”

“흐흐, 좋지!”

사내는 동료들과 함께 던전으로 들어갔다.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몬스터 사냥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

그가 노리는 것은 바로 김수민이었다.

‘무력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나 본데, 던전에서 왜 혼자 다니면 안 되는지 알게 해주마.’

던전에서 출몰하는 적이 몬스터 하나뿐이라는 것은 신입 헌터들만 하는 착각이었다.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말은 던전에서도 통용되었다.

즉, 던전에서는 같은 사람도 적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 어린년의 위치는 파악했어?”

“이쪽 방향으로 갔어.”

“좋아! 바로 쫓아가자고!”

성욕에 굶주린 헌터들은 김수민의 뒤를 쫓았다.

마침 추격 계열의 스킬을 가진 헌터가 있었기에 김수민의 뒤를 쫓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풀숲에서 무언가가 날아왔다.

날아온 것은 돌덩이였다.

남자 주먹만 한 크기의 돌덩이가 갑자기 날아와서는 헌터들을 공격한 것이다.

“이게 뭐야!”

“닥치고 막아!”

“사방에서 날아오는데 어떻게 막으라는 거야!”

E랭크 헌터라면 스킬을 하나 정도는 갖고 있었다.

하지만 괜히 E랭크가 아니었는지, 그들의 스킬은 지금 상황에서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였다.

돌덩이는 쉬지 않고 사방에서 날아왔고 결국 그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으윽.”

“살려줘.”

피투성이가 된 헌터들을 보며 나는 속으로 감탄하였다.

‘역시 압도적이군.’

헌터들을 공격한 것은 김수민이었다.

멀리서 모습도 드러내지 않은 채 염동력을 사용하여 E랭크 헌터 다섯 명을 쓰러뜨린 것.

역시 미래의 고위험군 빌런답게 압도적인 무력이었다.

‘의외인 것은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는 거다.’

피투성이가 된 채 끙끙거리는 모습이 처량해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들이 김수민에게 하려던 행동을 생각하면 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던전이라는 특수성을 이용하여 성범죄를 저지르려고 했던 그들이었으니.

그렇기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는 김수민의 성격이라면 절대 이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직 빌런이 된 것은 아니라는 건가?’

악인이라고 처음부터 악인이라는 법은 없었다.

어쩌면 그녀 역시도 어떤 사연에 의해 악인이 된 것이지, 처음부터 악인이었던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