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화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자 연수원은 그 어느 때보다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순위 경쟁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윤 헌터가 보기에 병아리들 상태는 어떤 거 같습니까?”
윤희봉은 동료 교관의 물음에 관심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하였다.
“글쎄요. 저는 관심이 없어서.”
“이번 신입들은 하나같이 개성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던데, 윤 헌터에게는 아닌가 봅니다.”
“어느 기수든 정신 나간 놈들은 꼭 있었지 않습니까.”
사람 다섯 명만 모여도 이상한 놈이 꼭 하나 있다는데, 456명이 모인 곳에는 이상한 놈이 얼마나 많겠는가?
심지어 헌터는 몬스터와 투쟁하는 게 업인 직업이었다.
그 어떤 직업군보다 스트레스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인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이들의 수가 적지 않았다.
그렇기에 윤희봉은 개성 넘치는 헌터를 봐도 무덤덤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그의 길드에도 자신은 8서클 대마도사라느니, 전생에 황제였다느니 그런 소리를 진지하게 하는 이들이 많았으니 말이다.
‘어쩌면 나도 비정상 중의 한 명일 수도.’
세상을 언제나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이 성격도 따지고 보면 정상은 아니리라.
“그래도, 귀여운 후배들인데 관심 좀 가지면 좋지 않습니까?”
“어차피 남인데 관심을 가질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윤 헌터의 길드로 들어갈 수도 있고 나중에 같은 레이드 팀에서 활동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건 그때 생각해도 늦지 않습니다.”
“하하하, 그럼 두 사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누구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정이랑 박한새가 서로 붙게 되었지 않습니까?”
윤희봉은 턱 끝을 쓰다듬었다.
이건 그로서도 꽤 흥미가 가는 주제였다.
그 역시도 육체파 헌터였기 때문이었다.
“저는 두 사람의 결투가 사실상 1, 2위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건 윤희봉도 같은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대인전에서는 육체파가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현재 8단계 통과자 중, 육체파는 단 두 사람이었다.
나머지는 중거리 또는 원거리 스킬을 주로 사용하였다.
헌터 랭킹은 몬스터 사냥을 기준으로 하기에 육체파가 랭킹이 낮게 측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막상 서로 대결해야 할 상황이 된다면 랭킹은 크게 바뀔 것이 분명하리라.
박한새와 이정.
아마 두 사람 중에서 랭킹 1위가 나올 가능성이 클 것이었다.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그러면 윤 헌터가 볼 때, 누가 이길 거 같습니까?”
윤희봉은 고민하지 않고 대답하였다.
“아무래도 이정이 이기지 않겠습니까?”
“이정? 왜 이정이 이길 것으로 생각하시는지?”
“그야 이정에게는 압도적인 이점이 있으니까요.”
“압도적인 이점?”
“예. 그는 광속 스킬을 가진 스피드스터이지 않습니까.”
이정이 정확히 몇 가지 스킬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헌터 자격시험 때 그가 보여준 모습은 실로 압도적이었다.
그야말로 시작과 동시에 적을 썰어버릴 정도였다.
‘검기라는 스킬이 아무리 대단해도 상대를 맞히지 못하면 의미가 없지.’
박한새도 분명 강했지만, 속도에서 밀리는 이상 답이 없었다.
그래서 윤희봉은 두 사람이 대결한다면 이정이 반드시 이길 것으로 확신하였다.
연수원 일정이 끝나면 그대로 귀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긋지긋한 연수원에 오래 있을 이유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예외였다.
마치 헌터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연수원에 남아있었다.
“저기 나온다.”
“저 사람이 박한새지?”
“생긴 건 그냥 평범한데?”
“그래도 랭킹 4위이니, 뭔가 한 수가 있겠지.”
“글쎄. 만약 내기한다면 나는 시작하자마자 바로 발린다에 건다.”
헌터들이 하는 대화를 흘려들으며 작은 콜로세움처럼 생긴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초등학교 운동장 정도 크기의 경기장은 지금처럼 헌터 간의 결투가 있을 때 쓰였다.
“그래도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았군.”
경기장 중앙에 도착하니, 먼저 와있던 이정이 뜬금없이 말했다.
아마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을 이야기하는 거 같았다.
“시작하죠.”
“나와 대화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지?”
대화는 승부가 결정되고 나서 해도 늦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가장 궁금한 것은 그의 실력이었으니까.
“5초! 단 5초 안에 끝내주지.”
이정은 손가락 다섯 개를 내밀더니, 말도 안 되는 도발을 하였다.
나를 상대로 5초 안에 끝내겠다는 발언을 한 것이다.
“와, 방금 들었어? 5초 안에 끝내겠다는데?”
“중2병 새끼네. 완전히.”
“근데 내가 이정이랑 같은 시험장 출신이라 아는데, 저거 그냥 허세로 볼 수는 없을걸?”
“그 정도라고?”
“이정의 별명에 괜히 광속이나 신속이라는 단어가 붙는 게 아니라니까?”
관중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힐끔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덧 상당한 인파가 모여 있었다.
사실상 결승전이나 다름없었기에, 시간을 내서 구경하러 온 헌터들이 많았던 것이다.
“집중 안 하면, 5초도 못 버틸 텐데 집중하는 게 좋지 않겠어?”
이정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다시금 도발하였다.
나는 그런 이정의 도발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그저 검을 뽑아 들었다.
내가 검을 뽑기 무섭게 무언가가 내 얼굴로 날아왔다.
날아온 것처럼 느껴졌던 그 무언가는 다름 아닌, 이정의 검이었다.
‘빠르다.’
가속 계열의 스킬을 주력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그래도 문제 될 것은 없다.’
“이걸 막아?”
자신의 공격이 내 검에 의해 막히자 그가 눈을 부릅뜨며 놀라워하였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검을 내질렀다.
그러자 이정은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아마 검의 상태가 어떤지 알아차린 거 같았다.
“한 번만 더 제 검과 부딪치면 그대로 대련이 끝나게 될 겁니다.”
“…이게 너의 스킬인가?”
“스킬이 아닌, 무공입니다.”
이정은 충격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 없었다.
단 한 번 검을 주고받았을 뿐인데,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내구성이 엉망이 되었으니 충격을 받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네가 아무리 강한 스킬을 가지고 있다 해도, 결국 부딪치지만 않으면 그만이다!”
스킬이 아니라는데 끝까지 스킬이라고 말하는 이정이었다.
하긴, 누가 봐도 스킬로 보이겠지.
무공이란 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으니까.
파바박!
이정은 다시금 보이지 않는 속도로 덤벼들었다.
물론 남들에게만 보이지 않는 속도였지, 내 눈에는 다 보였다.
‘아르고스의 눈을 사길 잘했군.’
만약에 아르고스의 눈이 없었다면 조금 버거웠을지도 몰랐다.
안 그래도 내공이 부족한데, 눈에까지 내공을 사용할 여력은 없었던 것이다.
‘근데 내가 아는 가속 능력과는 조금 달라 보이는데?’
아무래도 이정의 스킬은 몸을 가속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가속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뭐, 남들이 보기엔 둘 다 똑같아 보이겠지만 말이다.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거야?”
“이정이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거 같은데?”
“근데, 그렇게 보기에는 박한새의 표정이 너무 여유롭잖아?”
“미치겠다. 분명 눈으로 보고 있는데, 왜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냐.”
관중석에서 구경하는 헌터들은 아직 눈치를 못 챈 거 같았다.
지금 경기를 지배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하기야, 이정의 맹렬한 공세를 보고 있으면, 사람들이 착각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르고스의 눈으로도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이정의 움직임은 빨랐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속도가 빨라도 공격이 통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
이정은 맹렬하게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속은 없었다.
검기가 두려운 것인지, 내 검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면 바로 뒤로 뺐기 때문이었다.
그는 빠르게 다가와서는 아무런 의미 없이 공기만 베고는 그대로 물러나는 과정을 반복할 뿐이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수비만 하고 있을 거지?”
“굳이 내가 먼저 움직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빌어먹을.”
내 태연한 대꾸에 그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겉으로는 여유로워 보여도 아마 그의 속내는 타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스킬의 잦은 사용으로 마력은 점점 소모되고 있는데, 정작 공격은 통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었으니 말이다.
“체력이 다하기 전에 기권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딱히 도발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이야기해준 것일 뿐.
하지만 이정은 내 말을 도발로 생각했는지, 다시금 맹렬한 기세로 덤벼들었다.
이정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박한새의 빈틈이라 생각되는 곳을 노렸는데, 다시 보니 함정이었다.
그가 들어간 공간으로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박한새가 검을 내지른 것이다.
하마터면 박한새의 ‘검기’라는 것에 당할 뻔한 순간이었다.
‘저게 액티브 스킬이 아니라고?’
박한새의 검에 잠깐 부딪쳤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바위를 때려도 이렇게까지 큰 충격을 받지 않으리라.
실제로 그의 검은 몇 번 쓸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지기도 했고 말이다.
-제가 준 스킬을 사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때 그의 귓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름 아닌, 그의 배후성, 아우구스의 목소리였다.
‘나는 아직 지지 않았어!’
불리한 상황이지만 이정은 포기하지 않았다.
여기서 포기하기엔, 그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박한새의 체력은 처음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정, 당신은 이미 많이 지친 상태이지 않습니까?
이정은 아우구스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실제로 그는 지칠 대로 지친 상태.
마력도 거의 바닥나기 직전이었다.
아마 이대로 간다면 그는 필패할 수밖에 없으리라.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나.’
웬만하면 아우구스의 도움을 받지 않을 생각이었다.
단순히 자존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존심보다는 오히려 ‘의존도’를 생각한 결과였다.
제아무리 아우구스가 그의 배후령이라 해도 의존도가 이 이상 높아지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았다.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배후령을 가진 다른 헌터들처럼 성좌의 노예 같은 존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딱 스킬 하나. 이 스킬 하나만 사용하자.’
악마의 유혹이라 해도 좋았다.
일단 지금은 박한새를 상대로 이기는 게 더 중요한 상황이었으니까.
“공격이 멈췄는데?”
“존나게 공격하더니, 지쳤나 봐.”
“와, 그럼 박한새가 이긴 거야?”
구경하던 헌터들이 하는 이야기처럼, 이정의 움직임이 갑자기 멈추었다.
어깨가 처져있는 것이, 온 힘을 쏟은 듯 지쳐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이정의 모습을 보면서도 방심하지 않았다.
눈빛.
여전히 승부를 포기하지 않는 이정의 눈빛을 봤기 때문이었다.
이정의 마력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가속 계열의 스킬을 사용할 때의 마력이 아니었다.
마력의 변화를 보니, 전혀 다른 스킬을 사용하려는 거 같았다.
“인정하겠다. 박한새, 너는 분명 강하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의 공격에 대비하였다.
그러자 이정이 기고만장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나를 이기기는 멀었다!”
이정은 말을 끝내기 무섭게 스킬을 사용하였다.
‘원거리 스킬인가?’
먼 거리에서 스킬을 사용하기에 당연히 원거리 스킬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과 달리, 어떤 공격도 날아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정이 사용한 스킬은 공격 스킬이 아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