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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21화 (21/275)

#021화

“안녕하십니까. 박한새 헌터님. 저는 이한성이라고 하는데, 혹시 힐러가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원거리 딜은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제가 비록 순위는 낮지만, 딜 대미지 하나만큼은 순위권 안에 든다고 자부합니다.”

“든든한 탱커가 필요하시지 않나요? 제가 박한새 씨의 탱커가 되어드릴게요.”

다음 날.

랭킹 1위가 되었기 때문일까?

무수히 많은 헌터들이 나에게 접근하였다.

물론 그들이 접근한 목적은 뻔했다.

팀을 구성할 때 자신들을 팀원으로 뽑아달라고 접근하는 것이었다.

좋은 팀을 만날수록 랭크가 높게 측정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질 테니 말이다.

‘나에게 아부 떨어봐야 떨어질 것은 없는데 말이지.’

지금이야 랭킹 1위지만, 나는 곧 나갈 사람이었다.

오히려 내 팀에 뽑힌다면 갑자기 팀장을 잃게 될 테니, 좋을 게 없었다.

‘그래서 김수민을 영입해야 하는데.’

내 팀원이 될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나를 대신할 팀장 한 명을 세워두고 가야 했다.

그리고 나를 대신할 팀장으로 내가 생각한 적임자는 바로 김수민이었다.

랭킹이야 30위여도 실질적인 실력은 나 못지않았으니까.

‘문제는 김수민의 인성인데…. 일단 지금 봤을 때는 빌런이 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아.’

조사 기간이 워낙 짧아서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며칠 동안 미행했는데도 뭐가 안 나왔으니, 당장은 빌런 세력과 관련이 없어 보였다.

뭐 애초에 적은 더 가까이에 둬야 하는 법이기도 하였고 말이다.

점심시간이 되자 나는 김수민을 찾았다.

김수민을 발견한 나는 식판을 든 채 김수민이 앉은 테이블로 향하였다.

“앉아도 되죠?”

내가 바로 옆자리의 의자를 빼며 묻자, 김수민이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참 조용하군.’

늘 느꼈던 거지만, 김수민은 누구와 어울리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다른 랭커들은 한창 자신의 팀원으로 뽑을 헌터를 물색하고 있는데 말이다.

“된장국이 아니라 무슨 똥국처럼 생겼냐.”

“맛도 거지 같은데?”

“이 생선구이는 뭐야. 사람 먹으라고 준 거 맞아?”

“점심부터 이런 거 먹이니 진짜 기분 거지 같네.”

지금도 테이블에 앉은 다른 헌터들은 온갖 불평을 하며 밥을 먹는데 그녀 혼자만은 무표정하게 식사를 이어갈 뿐이었다.

“김수민 헌터님은 자격시험을 어느 시험장에서 보셨나요?”

“그건 왜 묻죠?”

조심스럽게 질문 하나를 던졌는데, 김수민은 까칠하게 되물었다.

나의 접근이 그녀로서는 썩 반갑게 느껴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은 채, 이번에는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왜 힘을 숨기고 계신 겁니까?”

원래 그녀의 랭킹은 5위 안에 드는 게 정상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랭킹은 고작 30위.

30위도 높은 편이지만, 원래 그녀의 실력을 생각하면 힘을 숨겼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자격시험 때도 진심으로 하셨으면 8단계도 무리 없이 통과하셨을 텐데요.”

“…당신 뭐야?”

무표정하던 그녀가 처음으로 사람다운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 표정은 결코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적대감과 경계심이 가득한 그런 얼굴이었다.

“그냥 김수민 헌터님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녀가 살짝 눈썹을 꿈틀하며, 나를 노려봤다.

나는 그런 김수민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러자 김수민은 숟가락을 내려놓더니 식판을 들고 일어났다.

“제 팀에 들어오시죠.”

왜 그런 제안을 하냐고 물어볼 만도 한데, 김수민은 그저 단호하였다.

“거절하시면 제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당신에게 도전장을 내밀 겁니다.”

“김수민 헌터님도 아시겠지만 지금 여기저기서 저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녀는 현재 힘을 숨기는 상황이었고, 반면 나는 전국적인 관심을 받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그녀에게 도전장을 내민다면?

당연히 그녀 역시도 엄청난 주목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였다.

“협박인가요?”

“제안입니다. 서로에게 이익이 될 제안.”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퀘스트.

나는 이왕이면 그녀를 살리는 쪽의 퀘스트를 수행하고 싶었다.

아직 그녀는 빌런이 아니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녀를 권속으로 삼는 쪽이 보상도 훨씬 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녀의 재능이 탐이 난다.’

미래의 그녀는 10대 길드조차 두려움이 들게 만든 빌런이었다.

그런 빌런이 내 제자가 된다면 세상을 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좋습니다.”

김수민이 물러나자 나는 턱 끝을 쓰다듬었다.

‘내 제안을 받아주면 권속으로 삼는다. 하나, 제안을 거절한다면….’

그때는 그녀를 죽이는 선택을 할 수도 있으리라.

김수민은 멀리서 체력 훈련에 열중하는 박한새의 모습을 곁눈질하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도대체 저 사람의 의도가 뭘까.’

랭킹 1위가 된 다음 날, 갑자기 그녀를 찾아와서는 팀원이 되라고 요구하였다.

심지어 그녀는 30위 랭커로서, 팀장이 될 자격을 갖춘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설마 나의 스킬과 정체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말도 안 되는 추측이었다.

교관들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 그녀의 스킬이었다.

어쩌면 천현호 원장조차도 그녀의 스킬을 알지 못하리라.

이제 갓 헌터가 된 박한새가 그녀의 스킬을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김수민은 박한새가 했던 말을 떠올릴 때마다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마치 김수민의 사정을 꿰뚫어 보듯 의미심장한 이야기들을 했었다.

심지어 그녀가 힘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까지 거의 확신하듯 이야기했을 정도였다.

‘우리 아버지를 죽인 그놈들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박한새가 그 조직의 일원이라면 이미 그녀는 어디론가 끌려갔을 것이니.

하지만 박한새의 존재가 여러모로 수상한 것은 사실이었다.

애초에 10대 길드 소속도 아닌데 랭킹 1위가 된 것부터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그녀 역시도 10대 길드 소속이 아닌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그자의 제안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제 팀 구성이 끝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적어도 하루 안에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하지만 그녀로선 고민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박한새의 팀원이 되는 것.

이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활약하여 높은 랭크를 따내겠다는 그녀의 계획에 상당히 위배되는 행동이었다.

‘문제는 제안을 거절하더라도 여기저기서 쓸데없는 주목을 받게 될 거라는 점이야.’

박한새는 그녀의 약점을 정확하게 알았다.

만약 그녀가 박한새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박한새는 분명 그녀에게 악의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컸다.

‘어쩔 수 없이 박한새의 팀에 들어가야 하나?’

괜히 박한새와 시비가 붙는 것보다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나았다.

그리고 어차피 박한새가 독보적인 활약을 해주기만 한다면 팀원인 그녀는 별로 주목을 받지 않을 것이고 말이다.

“기, 김한별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육체 강화 스킬을 가진 배신웅입니다.”

팀원 구성이 끝이 났다.

나는 총 네 명의 팀원을 뽑았는데, 오늘이 바로 네 명의 팀원과 함께 훈련하는 날이었다.

“손이 너무 움직이고 있습니다. 받치는 느낌으로 손등에만 힘을 실어야 합니다.”

“손등에다요?”

“예.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면서 같이 손등도 앞으로 내밀면 됩니다.”

내가 팀장이었기에 주로 사람들을 가르치는 역할을 맡았다.

자세를 가르치거나, 아이템의 사용법 등을 가르쳐준 것이다.

‘설령 무공이 아니더라도 내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지.’

나는 14년 뒤의 미래를 경험한 사람이었다.

헌터의 삶은 살아본 적이 없지만, 14년에 해당하는 경험치는 절대 무시 못 하였다.

내가 조언해줄 것들이 아주 많다는 뜻이었다.

“김수민 헌터님. 혹시 제가 도와드릴 일 없습니까?”

“없어요.”

“아까 보니까, 검을 사용하는 것이 미숙해 보이던데 제가 가르쳐드리겠습니다.”

다른 팀원들은 내 조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무려 랭킹 1위의 조언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김수민은 예외였다.

첫 만남부터 까칠한 인상을 풍겼던 그녀는 내 팀원으로 들어온 뒤로도 시종일관 까칠하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

그녀는 거의 강제로 내 팀에 들어온 거나 다름없었다.

내 말을 잘 따른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저에게 신경 꺼주세요.”

“팀장으로서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팀장인 것은 제게 중요하지 않아요.”

“왜 그렇게 저한테 적대적인 겁니까?”

“당신에게 적대적인 게 아니라, 누군가의 관심을 받는 게 싫은 거예요.”

“숨겨야 할 게 많아서 그런가 봅니다.”

내가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니,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의미로 하신 말이죠?”

“아닙니다. 그냥 해본 말입니다.”

김수민의 사나운 눈을 본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이내 주현근이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어때, 팀은 잘 맞는 거 같아?”

참고로 주현근은 내 팀이 아닌, 다른 팀에 들어갔다.

나는 곧 나갈 몸이었기에 굳이 같은 배를 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꽤 잘 맞는 거 같아요. 형.”

“팀장이 기원현이라고 했었지?”

꼭 랭커들만 팀장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연수 교육을 받는 헌터는 모두 합해서 456명이었다.

단 30명의 팀장으로 팀을 구성하기에는 팀장의 수가 너무 적었다.

그렇기에 100위 이하의 사람들은 랜덤으로 팀을 구성한 뒤 30위부터 100위권까지의 사람이 팀장을 맡았다.

“예. 원현이가 팀장을 맡고 있어요.”

“근데 내가 봤을 때는 네가 거의 팀장처럼 보이던데?”

“…그냥 제가 나이가 많아서 제 말에 잘 따라주는 거죠.”

주현근이 쑥스럽다는 얼굴로 말했다.

현재 그의 랭킹은 350위.

팀원이 정확히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팀 안에서 절대 높은 순위는 아닐 것이다.

기원현이야 당연히 100위권 안에 드는 헌터였고 말이다.

‘그런데도 팀장 역할을 수행하고 있단 말이지.’

나이 덕을 조금은 봤을 것이다.

주현근도 평균 연령보다는 높은 나이에 해당했으니까.

하지만 헌터는 나이나 커리어보다는 실력이 그 무엇보다 인정받는 직업군이었다.

실력이 없다면 팀장으로 인정받을 수도 없다는 뜻이었다.

‘확실히 현근이의 성장세가 엄청난 거 같긴 해.’

몸속 마력을 단전의 내공으로 전환하는 과정도 수월하게 진행 중이었다.

아마 곧 있으면 나 못지않은 내공을 가지게 될 터.

검기나 보법 같은 무공 기술이야 아직 배우려면 멀었지만 크게 상관없었다.

단전을 만들었다는 것은 마력으로 내뿜는 출력이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상승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저 마력을 전신으로 순환하는 것만으로도 웬만한 육체 강화 스킬에 못지않은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여기서 손이나 발, 그도 아니면 눈, 코, 귀 같은 특정 부위에 마력을 집중시키는 법을 배울 경우 그 효과는 배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정말 100위권, 아니 30위권도 노려볼 만했다.

“근데 형. 문정민이라고 아세요?”

“문정민? 아는 이름이긴 한데, 왜?”

“저희 팀원 중에 문정민이라고 있는데 형을 안다고 하더라고요.”

“문정민이 너희 팀이었어?”

팀 운이 상당히 괜찮은 거 같았다.

기원현이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지만, 문정민 하나로도 선방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내 번호 알려주고 나중에 연락하라고 전해줘.”

“문정민이랑 친하세요?”

“친한 건 아니고, 그냥 재능이 있어서 눈여겨보는 헌터 중 하나야.”

내 말에 주현근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내가 눈이 얼마나 높은 사람인지 알고 있었기에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알겠어요, 형.”

문정민은 주현근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무공과 그가 가진 스킬의 시너지 효과도 상당하니, 그에게 무공을 가르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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