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화
‘마침내 그날이 되었군.’
어느덧 던전을 체험하는 날이 되었다.
“드디어 던전에 들어가는 건가?”
“이번에 제대로 보여준다. 고블린들 내가 다 잡아버려야지.”
“네가 잡긴 뭘 잡아. 어차피 우린 구경만 할 텐데.”
“모르는 일이지. 교관이 잡지 못하는 몬스터가 나올 수도 있는 거잖아?”
“너같이 나대는 놈이 꼭 가장 먼저 도망치더라.”
“아니거든.”
헌터들은 설렘 때문인지 긴장 때문인지, 무척이나 흥분한 기색으로 떠들어댔다.
대부분은 이번이 생에 처음으로 던전에 입장하는 것일 테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는 반응이었다.
“으, 무척이나 떨리네요.”
“그러게요. 우리 잘할 수 있겠죠?”
“팀장님이 계시니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맞아요. 김수민 헌터님도 계시니 괜찮을 거예요.”
“괜찮은 거 아는데도 괜히 떨리네요.”
우리 팀의 반응도 여느 헌터들과 다를 게 없었다.
긴장 반 설렘 반의 반응이었다.
“한새 형, 저부터 먼저 가볼게요!”
우리는 서로 팀이 다르기에 주현근이 먼저 던전에 입장하였다.
그렇게 주현근의 조가 입장하고 10분이 지났을까?
마침내 우리 팀의 차례가 되었다.
“던전에 들어가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주의사항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윤희봉 교관이 주의사항을 말하려고 하자, 나는 손을 들어 교관을 불렀다.
“교관님.”
“박한새 헌터. 무슨 일입니까?”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제가 사실, 던전에 들어갈 수 없는 몸입니다.”
내 말에 윤희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는 던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기들끼리 떠들던 헌터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꽂히기 시작하였다.
그만큼 내 발언은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지금 쟤 뭔 소리 한 거냐?”
“몰라. 던전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한 거 같은데?”
“레알? 설마 던전 들어가는 게 무섭다고 저러는 거야?”
“미친. 헌터가 던전을 무서워하는 게 말이 돼?”
“랭킹 1위라는 놈이 저런 찐따였을 줄이야.”
“팀장이 저러면 팀원들은 뭐가 되냐?”
헌터들은 내가 예상했던 반응을 보여주었다.
겁쟁이라느니, 찐따라느니.
던전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한마디 했을 뿐인데, 주변의 헌터들은 나를 혐오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던전에 들어갈 수 없다니. 여기까지 와서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윤희봉 교관의 반응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는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미간을 주무르며 그같이 물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저는 던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헌터가 되고자 헌터 연수원에 들어왔으면서 던전이 무서운 겁니까?”
얼굴에 언짢은 기색이 가득하였다.
지금 당장 던전에 들어가야 할 상황에서 황당한 이유로 제동이 걸렸으니, 언짢음을 느끼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윤희봉 교관. 왜 진입하지 않는 겁니까?”
그때 상황을 중재하기 위해서인지, 천현호 원장이 직접 나섰다.
“이분이 던전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
“박한새 헌터. 윤희봉 교관의 말이 사실입니까?”
“예. 사실입니다.”
천현호 원장은 나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내 속내를 파악하려는 거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이 해소되지 않는지 내게 직접 물었다.
“던전이 두려워서 그러시는 거 같진 않은데, 이유가 있는 겁니까?”
“이유라….”
이유는 간단하였다.
내가 비각성자이기 때문.
하지만 그냥 헌터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못 믿을 게 뻔하였다.
연수 기간 내내 그리도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비각성자라고 하면 상식적으로 누가 믿겠는가.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모두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볼 때, 나는 성큼성큼 던전을 향해 다가갔다.
익히 알고 있던 문구가 떠올랐다.
여기서 ‘예’를 누르면 그대로 던전 속으로 빨려 들어가겠지.
하지만 나는 ‘아니오’를 눌렀다.
지금은 내가 비각성자라는 사실을 드러내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그, 그냥 통과해버렸는데?”
“어떻게 된 거지? 왜 몸이 던전을 통과하는 거야?”
너무나도 비상식적인 광경에 헌터들은 혼란스러운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들에게는 던전으로 몸이 들어가는 것이 상식이고 몸이 통과하는 것이 비상식이었던 것이다.
“설마, 헌터가 아니었던 건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리자드맨도 단칼에 썰어버리는 놈이 어떻게 비각성자야!”
“던전을 통과하는 것은 말이 되고?”
“그, 그거는…….”
“스킬이 아닐까? 던전을 통과하는 뭐 그런 스킬인 거지.”
“그딴 스킬이 세상에 어디 있어?”
나는 그런 헌터들의 반응을 들으며 아예 던전 위에다 몸을 포갰다.
그러자 이번에는 교관들 사이에서 경악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원장님, 박한새 헌터는… 헌터가 아니었던 겁니까?”
“…헌터라면 이미 몸이 던전 너머로 넘어갔어야 정상이겠죠.”
애써 침착한 척을 하고 있지만, 천현호 원장 역시 당황하는 분위기였다.
직접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현실이었으니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이번 기수 랭킹 1위인 박한새 헌터가 사실은 헌터가 아니었다니.”
“그러니까 말입니다. 지금 기준으로도 이미 C랭크급으로 측정된 인재가 아닙니까.”
“일단 본인에게 직접 물어봐야 확실할 거 같습니다.”
천현호 원장은 교관들과 그리 대화를 나누더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박한새 헌터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행동으로 보여줬는데, 길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신 그대로가 맞습니다.”
“헌터로 각성하신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천현호 원장은 내 답변을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윤희봉 교관을 향해 말했다.
“일단 교육은 계속 진행하도록 합시다.”
“박한새 헌터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열외할 수밖에 없겠지요. 애초에 던전에 들어갈 수도 없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윤희봉 교관이 원생들을 이끌고 던전 속으로 사라지자, 천현호 원장이 내게 말했다.
“박한새 헌터에게 들을 이야기가 많을 거 같습니다.”
456명의 원생 중, 나 혼자만 열외된 상황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천현호 원장과 1:1 면담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연수원의 책임자 노릇을 세 번이나 했지만, 오늘처럼 놀란 일은 처음인 거 같습니다.”
천현호 원장이 그렇게 서두를 떼자, 나는 고개를 숙여 사과하였다.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사과하실 일은 아니죠. 박한새 헌터가 잘못한 건 아니니까.”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 같습니다.”
비각성자가 헌터 자격시험에 통과하여 헌터 라이선스를 따낸 것은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사태였다.
대부분은 자신과 상관이 없는 일이기에 그저 놀라는 것으로 끝나겠지만, 일부 헌터들은 다르게 반응할 수도 있었다.
“설령 그렇다 한들, 일반인이 헌터 자격시험을 보면 안 된다는 법적인 근거가 없으니, 크게 문제 될 일은 없을 겁니다.”
나 역시 법적인 처벌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그저 헌터 기득권의 견제가 시작될 수도 있다는 게 걱정일 뿐.
“박한새 헌터님께,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무력을 갖게 된 겁니까?”
“무공 덕분입니다.”
“무공이라.”
“무공을 익히면 일반인도 마력을 보유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이 마력을 잘 활용했을 뿐입니다.”
천현호 원장은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런 경우는 어쩔 수 없었다.
직접 무공을 배워야지만 현실을 받아들일 터였다.
“그러면 한 가지 더 질문드리겠습니다. 혹시 그 무공이란 거, 박한새 헌터님 말고 다른 사람도 배울 수 있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일반인도, 헌터도 모두 다 배울 수 있습니다.”
천현호 원장은 아무 말 없이 턱 끝만 쓰다듬었다.
아마 속으로는 꽤 당황하고 있을 것이다.
내 말은 결국, 일반인도 헌터의 무력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였으니.
“박한새 헌터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전 세계적으로 큰 변화의 시대가 오겠군요. 물론 박한새 헌터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이 될 것이고 말입니다.”
언젠가 그리 될 것이다.
회귀 전에도 내가 무공을 전파한 이후로 세계는 엄청난 변화를 맞이했었으니까.
내 명성이야 말할 것도 없이 높아졌고 말이다.
‘하지만 유명해지는 만큼, 기득권 세력의 견제도 받게 되겠지.’
지금의 기득권은 내가 일으키는 변화를 반갑게 여기지 않을 게 분명하였다.
A랭크, B랭크 헌터로서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데, 웬 듣보잡 헌터가 무공 하나 익히고 자신보다 위로 올라간다면 기분이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니까.
던전 체험은 이정에게 어떤 감흥도 주지 못하였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교관이 몬스터를 사냥하는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는 것.
직접 몬스터와 싸우기를 원하는 이정으로서는 실로 무료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다음 주부터는 교관 없이 우리 팀 멤버끼리 사냥을 하게 될 테니, 그때 재미를 봐야겠어.’
그때, 이정의 배후령인 아우구스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밖에서 아주 재미난 일이 일어나고 있군요.
“재미난 일이 뭔데?”
-후후, 나가시면 알게 될 겁니다.
이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팀에서 사고가 터진 것일까?
하지만 단순히 부상자 몇 명 생긴 사고라면 아우구스가 저리 반응할 리는 없었다.
그는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는 흥미를 보이지 않았으니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길래 저러는 거지?’
다행히 던전 체험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이 났다.
“비각성자가 어떻게 헌터 연수원에 들어와? 그게 말이 돼?”
“박한새가 던전을 통과하는 모습을 본 게 한두 명이 아니라는데?”
“나보다 실력이 좋은데 헌터가 아니라니. 뭐 그런 변종이 다 있어?”
바깥세상으로 돌아가니, 아우구스의 말대로 아주 재미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재미난 일이란 다름 아닌, 박한새의 정체가 밝혀진 일을 말했다.
‘박한새가 비각성자였다고!?’
진실을 알게 되고서 가장 놀란 것은 이정이었다.
경쟁자로 생각했던 상대가 사실은 비각성자였다니!
남들보다 사람 보는 눈이 좋다고 생각하던 그였기에 더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아우구스, 너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나?”
이정이 그같이 묻자, 아우구스는 특유의 웃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후후후. 전혀 몰랐습니다. 그저 보통의 헌터와 달라 보인다고만 생각했지, 설마 헌터가 아니었을 줄이야.
“너조차 속았다는 건가.”
-아마 제가 아닌 다른 성좌가 박한새를 관찰했어도 속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성좌까지 속을 줄이야.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정말 믿어지지 않는군.”
-제 심정도 당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럼 박한새 그자는 정녕 아무런 스킬 없이 그만한 실력을 보였다는 건가?”
-정확히는 무공의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원래는 그저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직접 그와 1:1 승부를 펼친 이후에도 이 같은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무공이라는 것은 무협지에서나 나오는 것.
그가 박한새에게 진 것은 박한새의 스킬이 그가 가진 스킬보다 더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박한새가 비각성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비각성자가 스킬을 가질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말은 박한새가 가진 힘의 근원은 무공에 있다는 뜻이었다.
‘이렇게 되면, 진심으로 무공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데?’
비각성자조차 무공으로 C랭크급의 힘을 보여주었다.
그럼 만약 헌터가 무공을 익힌다면 어떻게 될까?
갑자기 S랭크가 되거나 그러지는 않겠지만, 어찌 됐든 엄청난 무력을 얻게 될 건 분명해 보였다.
‘내 분신들이 전부 무공을 익힌다면…. 내 적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