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화
“그, 그걸 어떻게 알았지? 너도 성좌와 계약을 한 건가?”
당황한 목소리로 그리 묻자, 나는 피식 웃었다.
“비각성자인 제가 어떻게 성좌와 계약할 수 있겠습니까?”
헌터에게도 잘 관심을 안 주는 성좌들이었다.
그런 성좌들이 일반인에게 관심을 둘 일은 절대 없으리라.
이정은 입을 꾹 다물더니, 이내 변명하듯 말했다.
“성좌라 불리는 이와 계약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습니까.”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였다.
그러자 이정이 다시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가서는 추궁하듯 말했다.
“그래서 내 질문에는 언제 대답해줄 거지?”
“마력을 어떻게 많이 모았냐는 질문 말씀입니까?”
“무공입니다. 정확히는 호흡법의 힘이죠.”
“역시 무공인가.”
이정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더니, 평소의 그답지 않은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문을 열었다.
“흠흠, 무공이란 거, 나에게 보여줄 수 있겠나?”
“제가 제 무공을 당신에게 왜 보여줍니까?”
“마력을 다루는 방법은 나도 능숙해. 나와 의견을 교류하다 보면 너도 얻는 게 있을 거야.”
이정의 제안을 들은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말이 교류지, 내게 호흡법을 가르쳐달라는 말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그에게 배울 것이 뭐가 있단 말인가.
이정이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나는 무공의 창시자인 데다 14년의 미래 기억까지 가지고 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이 기회를 포기하기에는 이정의 재능이 너무 아깝단 말이지.’
무척이나 아쉬웠다.
이정이 성좌와 계약하지만 않았으면 고민할 일도 아니었을 텐데.
“제 무공에 흥미가 있으시다면 이능관리부로 오십시오.”
권속 후보로 둘 수도 없는데 굳이 그에게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정이 큰마음을 먹고 이능관리부로 온다면?
나 역시 무공을 베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능관리부라고?”
“예, 제가 앞으로 갈 곳이 바로 이능관리부입니다.”
“거기서 무공을 가르친다는 건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이정의 실력이라면 가고 싶은 길드는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그냥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장 좋은 조건으로 가입할 수 있었다.
설령 10대 길드라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도 이능관리부를 선택한다면 설령 권속 후보로 둘 수 없다고 해도 무공을 가르쳐줘야지.’
어차피 재능이 있다는 이유로 모든 헌터를 권속으로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겨우 10명.
권속으로 둘 수 있는 인원은 10명뿐이니, 무공을 가르치는 것에 너무 제한을 둘 필요는 없으리라.
“여러분께는 정말 죄송할 따름입니다.”
나는 팀원들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하였다.
아무리 차기 팀장을 미리 준비해두었다지만, 누가 봐도 책임감 없는 행동이었다.
“저는 오히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저희를 그 어떤 팀장보다도 성실하게 가르쳐주셨지 않습니까.”
“맞아요. 팀장님에게 배운 것이 엄청 많아요!”
안 좋은 소리가 나올 법도 한데, 팀원들은 웃는 얼굴로 나를 배웅해주었다.
자질이나 실력이 아닌, 인성을 보고 팀원을 뽑았더니 모두가 천사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사람은 예외지.’
천사들 사이에 앙칼진 고양이가 끼어있었다.
“이렇게 나가실 거면 저를 왜 팀에 데려오신 거죠?”
김수민은 특유의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내 팀의 일원으로서 조용히 묻어 갈 생각이었는데, 얼떨결에 팀장이 되었으니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 김수민 헌터의 실력이 가장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제 실력은 어떻게 아셨는데요?”
“무공을 배우면 그런 것도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뻔뻔하게 그리 말하자, 김수민이 할 말을 잃은 듯 입술을 꾹 다물었다.
“사실 김수민 헌터를 제 팀으로 영입한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뭐죠?”
“무공의 자질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실제로 나는 그녀와 팀워크 훈련을 할 때, 그녀의 자질을 자세하게 살폈었다.
육안으로도 어느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지만, 몸을 직접 굴리는 것만큼 확실한 것이 없었다.
그리고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김수민의 재능은 썩 괜찮은 편이었다.
그녀 역시 헌터로서의 재능뿐만이 아니라, 무공의 재능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말은 저에게 무공을 가르칠 생각이 있다는 건가요?”
“예. 없지는 않습니다.”
“왜 하필 저죠?”
그야 당신이 김수민이니까.
5,000 카르마를 받기 위해서라도 그녀, 김수민을 제자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같은 사실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저, 당신의 재능이 뛰어나다는 식으로만 어필하였다.
“어떻습니까? 무공에 대해서는 흥미가 있으십니까?”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가르쳐주기만 한다면 열심히 배울게요.”
“그렇다면 한 가지 약속을 지켜주세요.”
“어떤 약속이죠?”
“제 팀이 순위권 안에 들게 만들어 주세요.”
“그렇게만 하면 되는 건가요?”
김수민은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말하였다.
하긴, 그녀라면 70% 숨길 힘을 50%만 숨겨도 순위권 정도는 문제없을 것이다.
“예. 그거면 충분합니다.”
“약속 꼭 지키세요.”
“그러죠.”
나는 속으로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정은 아쉽게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김수민은 사실상 내 품으로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였다.
머지않은 미래에 엄청난 악명을 떨칠 김수민을 내 품으로 들어오게 만들었다는 것이 나는 무척이나 흡족하였다.
“무공을 익히면 일반인도 헌터처럼 강해질 수 있는 겁니까?”
“박한새 헌터님! 비각성자라는 말이 사실입니까?”
“헌터 협회에서 몇 가지 의혹을 제시하였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연수원을 나가니 확실히, 내 인지도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실감이 갔다.
헌터 자격시험이 끝나고 유망주 신분이 되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수백에 달하는 인파가 나를 보기 위해 연수원 정문에 모여든 것이다.
‘스카우터들은 질리지도 않는 모양이군.’
기자들이나 너튜버들만 모인 것이 아니었다.
헌터 자격시험이 끝났을 때 그랬던 것처럼 각 길드의 스카우터들도 나를 영입하기 위해 찾아왔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나는 어떤 영입 제안도 들어주지 않았다.
현재 나는 이능관리부에 들어가기로 확정이 난 상태였다.
내 다음 계획도 이능관리부에서 최대한 빠르게 권속을 늘리는 것이었기에 어떤 길드가 제안해도 들을 가치가 없었다.
비각성자가 연수원에서 랭킹 1위의 기록을 세운 것.
국내를 넘어 세계적으로 전대미문의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당연히 나에 관한 소식은 해외 토픽에도 나올 정도로 엄청난 파급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내 일상은 크게 변화가 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내실을 다져야 한다.’
나는 여느 때처럼 무공 수련에 열중하였다.
현재 내 내공은 겨우 11년.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최소한 반 갑자는 되어야 B랭크 이상의 강자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굴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퀘스트 수행도 열심히 해야겠지.’
무공 수련만 해서 반 갑자를 채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내공의 경지를 괜히 연 단위로 나눈 것이 아니었다.
지금 내가 가진 11년의 내공도 정석대로 수련했다면 11년 동안 수련해야 얻을 수 있는 내공이란 뜻이었다.
퀘스트를 깨서 카르마를 모아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였다.
영약이 없으면 단기간에 반 갑자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였던 것이다.
“넌 공식적으로 내 첫 번째 제자가 될 거야.”
내 말에 주현근이 턱을 벅벅 긁었다.
나의 첫 번째 제자가 될 거라는 말이 어지간히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정소연 헌터님도 계시고 정호연 헌터님도 계신데 왜 하필 접니까?”
“두 사람은 이미 고위 랭크 헌터니까.”
정소연 헌터나 정호연 헌터 정도의 실력자는 단기간에 무공으로 극적인 효과를 보기는 어려웠다.
그들에게 무공의 효과는 감각이 발달하고 육체 능력이 좋아지는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본인들은 그조차도 크게 느껴지겠지만, 공개적으로 무공의 효과를 입증하기엔 턱없이 부족하였다.
하지만 주현근은 그녀들과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주현근은 A랭크, B랭크는커녕 이제 막 F랭크 헌터가 된 상태였다.
심지어 몇 년 동안 헌터 자격시험에서 고배를 마시기까지 했다.
이런 그가 E랭크를 넘어 고위 랭크 헌터가 된다면 사람들은 무공을 더욱더 인정하게 될 것이다.
“너무 어깨가 무거워지는데요?”
“견뎌야지. 그게 네가 선택한 길이니까.”
“흐흐, 오늘부터 더 열심히 무공 수련에 임하겠습니다.”
“그래. 너는 꼭 나와 같은 무공 고수가 될 수 있을 거다.”
나는 주현근의 어깨를 쓰다듬어주었다.
‘현근이를 키우는 게 지금은 가장 시급한 일이야.’
내가 괜히 주현근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권속 후보, ‘주현근’에 대한 당신의 지분율 - 37%]
정호연, 정소연 그리고 최근에 합류한 김수민까지.
그 어떤 권속 후보도 이렇게 빨리 지분율이 오르지 않았다.
오직 주현근만이 엄청난 속도로 지분율이 오르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이 지분율이라는 것은, 그 헌터가 한계치까지 강해지는 데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를 따지는 거 같단 말이지.’
처음에는 기준을 몰랐었다.
정소연의 내상을 치료해줄 때는 바로 10%가 올랐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분율에 관해 연구하다 보니 어느 정도 감이 잡혔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다면, 지분율을 올리는 방법은 꼭 무공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공이 아니더라도 헌터의 무력을 늘리기만 한다면 무조건 지분율이 오르는 식이었다.
물론 주현근의 지분율만 빨리 오르는 것은 주현근의 한계치가 가장 낮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주현근이 헌터로서 가진 역량의 한계는 D랭크 정도였겠지.’
반대로 정소연은 A랭크, 정호연은 S랭크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그렇게 지분율이 찔끔찔끔 오르는 것일 테지.
어쨌든 간에 주현근을 내 권속으로 삼으려면 그를 하루빨리 D랭크 이상의 강자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권속이란 것을 만들어야 카르마 수급이 조금이라도 더 원활해질 테니 말이다.
나 자신의 무력을 키우는 일도 중요하였고 주현근에게 무공을 가르쳐서 지분율을 높이는 일도 당연히 중요하였다.
하지만 나는 내가 회귀한 목적을 잊지 않았다.
‘내가 회귀한 이유는 내가 가진 힘으로 세계를 구하기 위함이다.’
물론 내가 원해서 회귀한 것은 아니었다.
이성은에 의해 강제로 회귀자가 된 것이니.
그러나 그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회귀자가 된 이상, 내가 해야 할 것은 하나밖에 없었으니.
“박한새 헌터님이 이능관리부에 들어올 날도 이제 얼마 안 남았군요.”
무공을 전파하는 것.
그게 바로 무공의 창시자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현재 가장 쉽게 무공을 전파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이능관리부행이었다.
“저에게 교육받을 헌터는 다 정해졌습니까?”
“…사실 그에 대해서 박한새 헌터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겁니까?”
“아시겠지만, 이능관리부에서 무공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일부 존재합니다.”
이재현 차관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그는 일부라고 했지만, 일부보다는 오히려 대다수일 가능성이 컸다.
보수적인 헌터들이 쉽게 무공을 믿을 일은 없을 테니까.
“각 부서의 장들이 특히 협조를 안 해주었습니다. 파견 교육을 보내는 것에 극도로 거부감을 드러내더군요.”
무공의 현주소가 이렇다.
미래에는 억만금을 주어도 나에게 무공을 배울 수 없는데, 지금은 제 발로 찾아온 기회도 차버릴 정도였다.
“교육 인원이 안 정해진 겁니까?”
“정해지긴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입니까?”
“…상사 폭행, 과격 진압, 상습 지각.”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재현 차관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교육 인원 전부가 사고를 치거나 논란을 일으킨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