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화
“한마디로 문제아들이라는 것이군요.”
“박한새 헌터님에겐 정말 죄송할 따름입니다.”
이재현 차관은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였다.
차관으로서 일개 헌터에게 고개를 숙이는 일은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그만큼 진심이라는 뜻이겠지.
이능관리부의 문제아들?
문제 될 건 없었다.
회귀 전에는 문제아가 아니라, 빌런 출신의 전과자들까지도 교육한 적이 있었다.
범죄를 저지른 이도 아니고 그저 조직 생활에 적응 못 하는 이들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그보다는 겨우 스무 명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 아쉽네.’
무공을 배우는 인원은 많을수록 좋았다.
그래야 더 많은 권속 후보를 둘 수 있었으니까.
“대신 새로 들어올 헌터들만큼은 저에게 교육받게끔 해주십시오.”
“지금 연수원에서 교육받고 있는 헌터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주현근과 김수민, 이정 등등.
헌터 연수원에는 이미 내가 점찍어둔 인재들이 많았다.
이 중에 몇몇은 이미 이능관리부에 들어오기로 약속한 상태.
그러니 새로 들어올 신입들은 무조건 내 교육을 받게 해야 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신입 연수 과정에 무공 교육을 꼭 집어넣도록 하겠습니다.”
이재현 차관은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듯, 시원시원하게 답변하였다.
하지만 그런 이재현 차관을 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간부들을 설득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텐데.’
이전처럼 E랭크나 F랭크 헌터들만 들어온다면 신규 교육 과정을 새로 추가하는 거쯤은 문제 될 게 없었다.
하지만 D랭크 이상, 아니 C랭크 이상의 인재가 들어온다면 어떨까?
내가 이능관리부 간부라고 해도 반드시 자신의 부서로 집어넣으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곧 이능관리부에 들어올 C랭크 이상의 인재는 한둘이 아니었다.
김수민과 주현근만 따져도 벌써 둘이었으니.
그런데 만약 랭킹 1위인 이정까지 이능관리부에 들어오려고 한다면?
아마 이능관리부 내부에서는 이정을 채가기 위해서 엄청난 권력 다툼이 벌어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신입 연수의 교육 과정을 추가하는 것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컸다.
‘뭐, 이거는 내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지.’
자신만만한 표정의 이재현 차관에게 한마디 하려다가 이내 어깨를 으쓱하였다.
나는 그저 내 일만 열심히 하면 될 뿐이었다.
“앞으로는 교관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박한새 교관님.”
“그럼, 박한새 교관님.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예, 오늘 잘 먹었습니다.”
역 근처에서 이재현 차관과 작별 인사를 할 때였다.
뭔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비명과 괴성이 들려왔다.
“꺄아악!”
“빌런이다!”
“저놈 잡아!”
이재현 차관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다급하게 말했다.
“빌런이 나타난 거 같은데, 아무래도 제가 가봐야겠습니다.”
무려 차관씩이나 되는 그지만, 그 역시 헌터는 헌터였다.
물론 공무원 헌터가 으레 그렇듯 랭크는 상당히 낮은, E랭크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리는 함께 소란이 벌어진 곳으로 향하였다.
다행히 예상했던 것과 달리 큰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저 빌런 한 명이 난동을 부리고 있었던 것인데, 이미 이능관리부 소속으로 보이는 헌터들이 빌런을 제압하고 있었다.
“꽉 잡아! 좀 잡으라고!”
“힘이 너무 세서 제압하는 게 어렵습니다!”
“그러면 아예 묵사발을 내버리든가!”
“그러다가 또 과잉 진압이라고 기사에 나오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시발! 범죄자 새끼를 잡는데 그딴 게 뭐가 중요해!”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세 명의 헌터가 나섰음에도 빌런의 난동은 멈추질 않았던 것이다.
“뒤지기 싫으면 이거 놔, 이 짭새들아!”
육체 강화 스킬을 가진 것인지, 헌터 세 명을 힘으로 압도하였다.
영악한 것은 난동을 피우면서도 직접 누군가에게 폭행을 가하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랭크가 높은 빌런이군요.”
상황을 지켜보던 내가 불쑥 그리 말하니, 이재현 차관은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빌런의 랭크가 높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겨우 한 명.
이능관리부 헌터들이 직접 나섰음에도 단 한 명의 빌런을 제압하지 못했다는 것은 실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차관님. 제가 도움을 주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도움이라면 어떤 도움을 말씀하시는지?”
“빌런이 더는 저항하지 못하게끔 만들겠습니다.”
빌런 한 명에게 헌터들이 놀아나는 모습은 별로 보기 안 좋았다.
그래서 내가 나서려는데 이재현 차관이 단호하게 말렸다.
“안 됩니다. 괜히 저 빌런이 다치기라도 한다면 큰 논란이 될 겁니다.”
헌터들이 괜히 빌런 한 명에게 쩔쩔매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미래와 달리, 지금은 인권이 그 무엇보다 우선시되는 시대였다.
외국처럼 테러를 일으키거나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빌런들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더 온건하게 대처하는 경향도 있었다.
이능관리부 소속 공무원 헌터들도 이런 이유로 인하여 빌런 진압에 어려움을 겪었다.
조금만 강경 진압하면 바로 논란이 되니 한 명의 빌런을 제압하는 것도 이렇게 힘이 들었던 것이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누군가가 다칠 일은 없을 겁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제압이 가능하다는 말씀입니까?”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재현 차관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빌런 제압을 도와달라고 부탁하였다.
저벅저벅.
난동을 피우는 빌런의 곁으로 다가가니, 공무원 헌터가 나를 제지하였다.
“이 근처로 오시면 위험합니다.”
“저는 이능관리부 차관 이재현입니다.”
“추, 충성.”
“이분도 헌터신데, 도움을 드리려고 오셨습니다.”
“도움이라면?”
나는 굳이 입 아프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행동으로 보여줄 뿐이었다.
“저거 지금, 뭐 하는 거야?”
“응? 저놈 봐봐. 갑자기 움직임이 멈췄는데?”
내가 보여준 행동은 실로 간단하였다.
몸부림을 치며 저항하는 빌런의 뒤로 가서 뒷목을 손가락으로 찌른 것이다.
공무원 헌터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체포 과정에서 심하게 저항하던 빌런의 움직임이 한순간에 멈췄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본인도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안 갔는지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안 묶으십니까?”
“예? 아!”
내가 포승줄을 가리키며 말하자 그제야 빌런의 온몸을 꽁꽁 묶기 시작하는 공무원 헌터들이었다.
“어떻게 하신 겁니까?”
이재현 차관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점혈이란 것을 사용한 겁니다.”
“점혈이라면?”
“상대를 제압하는 무공 기술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물론 점혈이란 기술은 상대를 제압하는 것 외에도 여러 쓰임새가 있었다.
지혈로 피가 나는 것을 멈추게 할 수도 있었고 아니면 고문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내가 모르는 쓰임새도 여럿 있겠지.’
하지만 지금 굳이 점혈의 쓰임새들을 전부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상대를 손쉽게 제압할 수 있다는 것.
오직 이 설명 하나로도 지금의 상황을 납득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예상대로 내 설명을 들은 이재현 차관은 눈을 부릅뜨며 감탄하였다.
“대, 대단하군요! 이렇게 쉽게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이 존재하다니!”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몬스터를 상대로는 아예 사용할 수도 없는 기술입니다.”
“몬스터에는 사용 못 해도 빌런에게는 사용할 수 있지 않습니까?”
“물론 빌런에게는 혈이 존재하니 당연히 사용이 가능합니다.”
“허어, 오히려 검기보다 더 이능관리부에 필요한 기술인 거 같습니다.”
이재현 차관은 그리 말하더니, 입술에 침을 적셨다.
“혹시….”
“예, 말씀하십시오.”
“점혈이란 기술도 이능관리부 직원들에게 가르쳐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는 간곡한 목소리로 부탁하였다.
아마 그로서는 엄청 용기 내서 한 말일 것이다.
검기를 거의 공짜로 배우는 것도 염치없는 일인데, 점혈까지 가르쳐달라고 요구하는 셈이니.
“물론 그냥 가르쳐달라는 말은 아닙니다. 검기에 이어 점혈까지 가르쳐주시면 금전적으로 최대한의 보상을 해드리겠습니다.”
최대한의 보상이라.
안 그래도 점혈을 가르칠 생각이었는데, 보상까지 뒤따른다면 나야 좋은 일이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점혈은 이능관리부에 꼭 필요한 기술입니다!”
“알겠습니다. 점혈도 이능관리부 헌터들에게 가르치도록 하겠습니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이재현 차관의 모습에 나도 미소를 지었다.
그날 저녁.
한 영상이 너튜브에 올라왔다.
-뒤지기 싫으면 이거 놔, 이 짭새들아!
온몸에 문신을 한 험상궂은 외모의 빌런.
도로 한복판에서 대놓고 소란을 일으키는데도 헌터들은 제대로 제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뭐야, 저 사람은?
-관계자인가 본데?
그러던 어느 순간, 갑자기 카메라가 한 남성을 찍기 시작하였다.
외견상으로 봤을 때는 평범하게 느껴지는 사내였다.
영상 속에서는 그 사내를 주목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사내의 발걸음은 당당하였고 헌터들 간에 몸싸움이 벌어지는 장소로 향하면서도 주저하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그러게. 왜 갑자기 잠잠해진 거야?
상황을 지켜보던 주변 시민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것은 영상을 시청하는 너튜버 시청자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4:21 이거 뭐임? 얘 왜 갑자기 멈춤?]
[이 헌터 누군가요? 빌런은 D랭크 헌터 원선무라던데, 어케 D랭크를 한 번에 제압한 거죠?]
[포스 개쩐다 ㅋㅋㅋ 저 사람 최소 A랭크일 듯.]
영상 댓글에는 사내의 정체에 대해 온갖 추측설이 난무하였다.
누구는 사내를 B랭크로 추측하였고 누구는 A랭크로 추측하였다.
어떤 이는 사내가 10대 길드의 간부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ㅋㅋㅋㅋㅋㅋ 님들아 소설 쓰지 말고 이 기사나 보셈.]
하지만 이 같은 추측성 댓글들은 좋아요 100을 기록한 하나의 댓글이 올라오고 나서 멈추었다.
그 댓글에는 포털사이트 뉴스로 이어지는 링크가 적혀있었는데, 그 뉴스 기사에 바로 사내의 정체가 적혀 있었다.
<목동역 빌런, 비각성자가 제압하다!>
기사 제목만 봐도 충격적이었다.
모두가 예상했던 사내의 랭크는 최소가 C였다.
너무도 여유롭게 느껴졌던 사내의 태도도 태도지만, D랭크 빌런을 단숨에 제압하려면 최소 C랭크는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사에서는 사내의 정체가 C랭크 헌터가 아닌, 아예 비각성자라고 밝히고 있었다.
[요즘 비각성자들 왜 이래? 최근에 연수원에서 랭킹 1위 했다던 비각성자도 있지 않나?]
[둘이 같은 사람이래 ㄷㄷ]
[ㄹㅇ? 점혈 술사와 무공의 창시자가 같은 사람이라고?]
[ㅋㅋㅋ 당연한 거 아님? 점혈은 엄연히 무공의 기술 중 하나라고!]
[ㅅㅂ 무협지에 나온다고 그게 다 현실에서 쓸 수 있는 게 아니야.]
[되는데요?]
[박한새가 이미 증명함 ㅋㅋㅋ 검기도 할 수 있고 보법도 할 수 있다고 했음.]
박한새의 이름이 다시 전국을 강타하였다.
안 그래도 화젯거리가 많았던 그다.
그런데 점혈이라는 새로운 기술까지 공개했으니 더욱더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