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7화
<비각성자가 빌런을 제압할 때, 이능관리부는 무엇을 했나?>
<이능범죄수사팀의 무능 대응에 일반인이 나서다!>
헌터가 빌런을 제압했다면 이슈가 될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굳이 이능관리부의 이능범죄수사팀이 아니더라도 민간 헌터가 나서서 사건을 해결하는 일은 종종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사례는 그동안 있었던 평범한 사건과는 궤를 달리했다.
그도 그럴 것이, 헌터가 아닌 비각성자가 빌런을 제압했기 때문이었다.
“기사를 봐! 이능범죄수사를 총괄하는 우리가 비각성자 따위와 비교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국장은 화를 참을 수 없다는 듯, 신문지를 내던지며 그같이 말했다.
“그냥 평범한 비각성자가 아니잖아요.”
“비각성자가 비각성자지. 평범한 비각성자가 아니면? S랭크 비각성자라도 된다는 거야?”
“하, 하, 하. S랭크 비각성자라니. 국장님 너무 재미있어요.”
유현경은 어색한 얼굴로 국장의 개그를 칭찬하였다.
“지금 너 재미있으라고 내가 농담한 줄 알아!?”
“우리의 상황이 얼마나 엿 같은지 너도 알 거야. 기사에 나오는 이 빌어먹을 비각성자 놈이 이제 곧 우리 이능관리부 소속이 될 거라고!”
그 말에 유현경은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자신과 무슨 상관이냐는 얼굴이었다.
“차관이 이미 지침을 내렸어. 이능범죄수사팀에서는 최소 열 명 이상 파견 교육을 보내라더군!”
“열 명밖에 안 보내요?”
“열 명씩이나 보내는 거지! 그딴 헛짓거리에 열 명이나 되는 인력을 낭비해야 한다고!”
국장은 비각성자가 진행하는 무공 교육이란 것에 대단히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무공이란 것이 실존하는지가 일단 의문이었고 무엇보다 교관으로 오는 자가 비각성자라는 사실이 그로선 불쾌하게만 느껴졌다.
마력을 다루는 법을 A랭크나 S랭크 헌터도 아닌, 비각성자에게 배운다는 게 헌터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열 명이라면 임무에 지장이 가지 않을 선에서 골라 보내면 되는 거 아닌가요.”
“안 그래도 목록은 내가 다 뽑아놓은 상태다.”
국장이 종이를 건네주었다.
종이에는 열 명의 신상정보가 적혀있었다.
“재미있네요.”
명단을 읽은 유현경은 피식 웃었다.
파견 교육을 가게 될 인원들의 신상정보만 봐도 국장의 속을 훤히 알 수 있었다.
국장은 파견 교육을 일종의 쓰레기 처리반처럼 생각하고 있는 듯싶었다.
“책임자는 너야.”
“거기 적힌 열 명과 다른 부서에서 올 열 명까지 네가 전부 통솔해야 한다고.”
유현경은 입을 떡 벌렸다.
남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설마 자신까지 포함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이능관리부의 이능범죄수사팀 소속 신경철이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윗대가리 놈들의 생각을 도통 모르겠네. 이건 또 뭐 하는 개짓거리야?”
어느 날 갑자기 공문이 내려왔다.
엘리트 헌터 교육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공문이었다.
“푸하하하! 네가 엘리트 헌터라고? 출동할 때마다 빌런을 반병신으로 만들어서 인간 백정 소리를 듣는 천하의 신경철이?”
“닥쳐, 이 새끼야.”
“내가 봤을 땐 엘리트 헌터가 아니라, 문제아들만 골라 모은 거 같은데? 가서 인성 교육만 실컷 듣고 오는 거 아니야?”
동기의 저주를 듣고 신경철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하지만 그는 동기의 말을 부정하지 못하였다.
그가 듣기에도 현실성이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윗대가리들이 나 좋은 일을 해줄 리가 없지.’
엘리트 헌터 교육 대상자랍시고 모인 이들은 하나같이 신경철과 비슷한 부류였다.
상관과 마찰이 있었다든가.
그도 아니면 빌런을 과격하게 진압했다든가, 평소 언행이 난폭하다든가.
신경철로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하나같이 이능관리부의 문제아들밖에 없었다.
“문제아들 모아놓고 뭐 하려는 거야?”
“스스로 문제아라는 자각은 있는 모양이네.”
“뭐야, 당신?”
“나? 너랑 똑같은 처지야. 귀중한 주말까지 헌납하면서 이 빌어먹을 파견 교육이란 것을 받아야 할 사람이지.”
김재원이라 이름을 밝힌 사내는 그와 마찬가지로 이능범죄수사팀 소속이었다.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는 이였는데, 그 역시도 상사와 싸우는 등 여러 문제를 일으킨 바 있었다.
“그래서 우리를 모아놓고 뭐 한다는 건데?”
“무공이란 것을 배운다고 하더군.”
“무공? 그 무협지 같은 것에서 나오는 것을 이야기하는 거야?”
“그렇겠지.”
신경철은 미간을 찌푸렸다.
무공이라니.
재미없는 농담처럼 느껴졌다.
“근데 웃긴 게 뭔지 알아?”
“뭔데?”
“그 무공이란 것을 가르친다는 이가 비각성자라더군.”
그 말을 듣고 신경철은 헛웃음을 지었다.
비각성자 따위가 헌터를 가르친다고?
차라리 인성 교육 같은 거라면 또 모른다.
인성 교육은 이미 많이 받아왔었으니까.
비각성자에게 교육받는다고 자존심 상할 일도 아니었고.
하지만 엘리트 헌터 교육은 헌터로서의 전투력 상승에 도움이 되는 교육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무공이란 것도 그것의 일환이었고.
그런데 교관이 비각성자라니?
실로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게 말이 돼? 비각성자가 어떻게 우리에게 싸움 기술을 가르친다는 거야?”
“그냥 단순한 비각성자는 아니라던데?”
“단순한 비각성자가 아니면?”
“무공이란 게 진짜 실효성이 있는 건지, 헌터 자격시험에서 꽤 좋은 성적을 거뒀다나 봐.”
신경철은 눈을 크게 떴다.
헌터 자격시험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김재원이 말하는 비각성자가 누구인지 알 거 같았다.
전국적으로 워낙 화제인 인물이라 그도 모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박한새라는 놈이지?”
“맞아, 그 사람. 비각성자 주제에 C랭크 헌터에 버금가는 무력을 가지고 있다더라.”
“근데 아무리 그래도 비각성자인데, 헌터가 어떻게 비각성자에게 교육을 받아?”
“차관이 강력하게 추진했다는 말이 있어.”
“이래서 윗대가리들이 문제야. 정치 싸움은 지들끼리 할 것이지, 왜 우리까지 귀찮게 만드는 거야?”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황금 같은 주말을 뺏기는 것도 뺏기는 거지만, 조직에서 대놓고 ‘문제아’ 취급하는 것도 속된 말로 엿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 같은 기분을 느끼는 것은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무공이 뭔지 알고 배우라, 마라야?”
“시발. 이 정도면 우리를 마루타 취급하는 거 아니냐.”
“진심 개 같네.”
“교관이라는 새끼, 비각성자라는데 오면 가만 안 둬.”
사실상 교육 대상자 전원이 불만을 품고 있었다.
지원해서 교육을 받는 게 아닌, 강제로 교육을 받는 것이기에 불만이 클 수밖에 없었다.
“반가워요. 이번 파견 교육의 총책임을 맡은 유현경 사무관이에요.”
유현경과 인사를 나누던 나는 속으로 감탄하였다.
‘설마 책임자가 유현경일 줄이야.’
이걸 월척이라고 해야 할까?
처음부터 미래의 초일류 고수가 될 여인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지금 바로 교육생들과 인사하러 가시겠어요?”
“바로요?”
“예, 따로 설명할 것은 없을 거 같아서요.”
그녀는 왠지 모르게 나와 대화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느낌이었다.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느낌이랄까?
“따라오세요.”
허름한 복도를 지나 소강당 앞에 도착하였다.
유현경은 문을 열기 전, 나에게 주의를 주었다.
“교육생들을 대할 때, 조금 조심하셔야 할 거예요.”
“조심하다니요?”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하지만, 교육받을 인원 중에 교관님의 능력을 불신하는 직원들이 조금 있어요.”
이재현에게 이미 들은 사실이었으니 별로 놀랄 일도 아니었다.
“예, 아주 만약의 일이지만, 일부러 박한새 교관님에게 시비를 걸어서 대련을 유도하려는 직원도 있을 거예요.”
그녀는 그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지만, 표정은 100%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만약, 교육받을 직원들이 치명적인 부상을 입는다면 현장에 큰 문제는 없겠습니까?”
“아까 대련하게 될 수도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대련하다 보면 부상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데, 교육생들이 다쳐도 문제 될 게 없냐는 질문이었습니다.”
내 말에 유현경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설마 내가 이렇게 반응할 줄은 몰랐었던 듯싶었다.
‘헌터 자격시험과 헌터 연수에서 그만한 활약을 했는데도 여전히 헌터들은 나를 불신하는군.’
교육생은 겨우 스무 명.
그것도 문제아들만 골라서 교육생으로 뽑은 것만 봐도 이능관리부의 간부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능관리부에서 나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오직 이재현 차관뿐이었다.
나머지는?
아마 무공이 사이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보여줘야겠어.’
“저 사람이 박한새라는 그 양반인가?”
“비각성자라는데 사실일까?”
“사실이겠어? 무공인지 뭔지 그걸로 사기 치려고 비각성자라 속이고 다니는 거겠지.”
강단으로 걸어가니 교육생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 들으라는 듯 대놓고 떠들어댔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나를 싫어하는 분위기였다.
물론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여론이 바뀌는 것은 순식간일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아쉽게도 아는 얼굴은 보이지 않네.’
강단에 올라서 교육생들의 얼굴을 천천히 훑어봤다.
교육생들의 얼굴에는 퉁명스러운 것을 넘어 적대감까지 엿보였다.
하지만 나는 피하지 않고 20명 전원과 당당하게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몇몇 교육생은 오히려 찔끔했다는 듯, 시선을 피하였다.
“저는 여러분께 무공을 가르칠 무공 교관 박한새라고 합니다.”
잠깐의 눈싸움을 끝내고 입을 열었다.
예상했던 대로 박수는 없었다.
내가 고개를 숙였음에도 그들은 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달리, 마력을 각성한 각성자가 아닙니다.”
“허, 진짜 비각성자였어?”
“사기라니까. 비각성자인 척 연기하는 거야, 저거.”
비각성자라는 사실을 밝히자 그제야 한마디씩 입을 여는 교육생들이었다.
“하지만 제가 비각성자라는 사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공을 배우는 것은 각성자와 비각성자를 가릴 것 없이, 누구나 가능한 일이니 말입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내가 비각성자라는 사실에 신경 쓰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애초에 내가 비각성자라는 것을 100% 믿는 사람도 얼마 없어 보였고.
마침, 한 교육생이 손을 들어 자신의 의문을 드러냈다.
“비각성자라고 하셨는데, 정말 비각성자가 맞습니까?”
“예. 기사로 보셨겠지만, 저는 던전에 들어갈 수 없는 몸입니다.”
“그냥 못 들어가는 척 연기하신 거 아닙니까?”
“협회에 문의하시면 제가 거짓을 말하는 것인지, 진실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헌터 협회도 내가 비각성자라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 몸이 던전을 통과하는 장면은 너무 많은 사람이 봤으니까.
“그럼 더 말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어떤 게 말이 안 된다는 겁니까?”
“비각성자 따위가 어떻게 헌터인 우리를 가르칠 수 있단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