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8화
“저는 비각성자의 몸으로 헌터 자격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헌터 연수에서 랭킹 1위를 하였었죠.”
“그래서 어쩌라는 겁니까?”
“비각성자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내가 당당하게 말하자, 나를 도발하던 교육생이 미간을 찌푸렸다.
“헌터이신 여러분은 크든 작든 힘에 대한 열망이 있으실 겁니다. 제 교육에 잘 따라주기만 한다면, 여러분도 C랭크 이상의 강자가 되실 수 있습니다.”
“C랭크라고요?”
“말도 안 돼!”
이번에는 더욱더 격렬한 반응이 튀어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D랭크나 E랭크도 아니고, 무려 C랭크였다.
C랭크라 하면 작은 길드에서는 간부급도 노릴 수 있는 강자들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헌터들의 랭크는 기껏해야 E, F이고 몇몇 소수만이 D였다.
이러니 반응이 격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비각성자인 제가 C랭크 수준의 강자인데, 여러분이라고 C랭크 헌터가 되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지금 C랭크라고 하셨습니까?”
아까 그 교육생이 다시금 앞으로 나섰다.
“사기 치지 마십시오. 비각성자 따위가 어떻게 C랭크가 될 수 있습니까?”
코웃음을 치는 그를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믿지 않겠다면… 실력으로 보여드리는 수밖에요.”
어차피 실력을 한 번쯤은 보여줘야 했다.
이능관리부의 장관부터 나를 불신하는 상황.
그 아래 간부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 이능관리부 소속의 헌터들 앞에서 내 실력을 공개할 필요가 있었다.
제아무리 의심이 많은 헌터들이라고 해도 제 눈으로 직접 본 것은 믿을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신경철은 자신 있게 앞으로 나섰다.
“내가 실력을 좀 보고 싶은데?”
그는 더 이상 존대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사기꾼이나 다를 게 없는 상대였다.
존대해줄 가치가 없었다.
자신감 넘치는 상대의 태도를 보고 신경철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사기꾼 주제에 저리도 당당하다니.
숨겨진 한 수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자, 먼저 공격해.”
신경철이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도발하자, 박한새가 몸을 움직였다.
‘뭐, 뭐야!?’
발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자세를 갖추려는데 이미 상대는 그의 눈앞에 도착해 있었다.
주먹이 날아오는 모습을 보며 신경철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반응할 새도 없이 5m의 거리를 이동하다니.
실로 압도적인 속도였다.
‘피할 수 없다.’
박한새에게 주먹을 얻어맞을 것을 각오하는데, 그의 주먹이 허공에서 멈췄다.
“이게 바로 앞으로 여러분이 배우시게 될 보법이란 겁니다.”
그는 마치 강의라도 하듯,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바로 눈앞에 있는 신경철은 그야말로 안중에도 없는 듯한 태도였다.
그러자 신경철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이 새끼가!”
화를 내며 반격하려는데, 박한새의 신형이 또다시 사라졌다.
보법이란 것을 사용한 듯싶었다.
‘나를 아주 가지고 노는구나!’
화를 참지 못한 신경철은 전력으로 자신의 스킬을 사용하였다.
화르륵!
그의 전신에서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이게 바로 그의 스킬인 일명, 불바다였다.
“와! 엄청난데?”
“저놈이 그 유명한 강서의 불바다였군!”
“과잉 진압으로 문제만 생기지 않았다면 사무관까지 갔을 거라더니, 진짜 그런 거 같은데?”
스킬 덕에 신경철의 정체를 알아본 헌터들이 탄성을 질렀다.
그만큼 신경철은 이능관리부에서 유명한 인사였다.
“아무리 화려한 스킬을 가지고 있다 해도 적이 그 스킬을 피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뒤에서 들려오는 박한새의 목소리에 신경철은 바로 화염을 뒤쪽으로 쏘아 보냈다.
아니, 쏘아 보내려고 생각했다. 그때 갑자기 마력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마력이 왜 이래?’
마력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의 몸도 마치 밧줄에 꽁꽁 묶인 것처럼 꼼짝을 안 했다.
“쟤 갑자기 왜 저래?”
“손가락으로 찔려서 저러는 건가?”
“에이 설마.”
“기사에서도 나왔잖아. 점혈 신공이란 게 존재한다고 말이야.”
신경철은 점혈 신공이란 게 뭔지 아예 몰랐다.
그는 그저 지금 이 상황이 미치도록 답답할 뿐이었다.
“이분이 지금 꼼짝도 못 하고 있는 것은 제가 점혈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박한새는 그의 곁에 다가와서는 강의하듯 여유로운 목소리로 설명하였다.
마치 그를 제물로 자신의 기술을 홍보하는 느낌이었다.
수치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어떻게든 점혈을 풀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아무리 힘을 써도 그의 몸은 석상이라도 된 것처럼 꼼짝도 안 했다.
“이 점혈법이란 것을 배우면 빌런을 제압하는 데 효과적일 것입니다.”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건가요?”
“예. 누구나 배울 수 있습니다.”
“오오!”
교육생들과 여유롭게 질의응답을 하던 박한새가 신경철에게 나직하게 물었다.
“더 하시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뭘 더 할 수 있겠는가.
‘아니요. 제가 졌습니다!’
점혈에 당한 탓인지 그는 어떤 의사 표현도 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박한새는 바로 점혈을 풀어주었다.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하는 거 같았다.
신경철에 이어 김재원이라는 자와 대결했다.
그 역시 D랭크 헌터로서 이능관리부에서는 나름 알아주는 실력자였다.
물론 그런 자도 나에게는 상대가 안 됐다.
내가 C랭크라고 이야기한 것은 절대 과장이 아니었다.
상대가 인간이라면, 나는 C랭크를 넘어 B랭크와도 자웅을 겨룰 수 있었다.
물론 헌터들이 무공을 배우기 시작한다면 C랭크는커녕 D랭크 헌터를 상대하는 것도 버거워지겠지만.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빨리 내공을 쌓아놔야겠지.’
제자에게 밀리는 상황은 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흥미롭네요.”
그때, 유현경이 신기하다는 눈으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떤 게 흥미로우십니까?”
“점혈이란 거, 정말 당하면 꼼짝도 못 하나요?”
“직접 당해보시면 아실 겁니다. 당해보시겠습니까?”
유현경은 절대 싫다는 듯,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웬만한 헌터라면 점혈에 당하는 순간 꼼짝도 못 할 겁니다.”
“그 ‘웬만한’이라는 기준이 뭔지 알 수 있을까요?”
명확하게 몇 랭크 이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무공이 없는 지금 시대에선 오직 스킬만이 랭크를 정하는 기준이었으니까.
“B랭크 이상은 점혈을 한 번 이상 당해보면 바로 대응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은 C랭크까지는 통한다는 뜻이군요.”
사실 B랭크도 완전히 면역이 될 거라고 보긴 어려웠다.
B랭크라고 해봤자 마력을 다루는 능력은 거의 없다시피 했던 것이다.
하지만 B랭크 헌터들은 워낙에 보유한 마력이 많으니, 점혈에 어떤 식으로든 대항하는 게 가능하였다.
“점혈이라는 거, 저희에게 꼭 필요하겠어요. 이능범죄수사팀의 과잉 진압은 늘 뜨거운 이슈이니 말이죠.”
“이재현 차관께서도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혹시 교육 과정 중에 점혈도 포함되어 있나요?”
“당연히 점혈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점혈 말고 또 어떤 게 있을까요? 아, 보법이란 게 있었죠?”
“보법 말고도 많이 있습니다.”
“정말인가요?”
“애초에 제가 이능관리부에서 돈을 받으려면 교육생들에게 검기란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들어봤어요. 검의 절삭력을 높여주는 기술이었죠?”
유현경이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그녀로선 신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아까 신경철을 상대로 보여주었던 보법과 점혈만으로도 이미 범상치 않았는데 그게 끝이 아니라니.
“한 가지 더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물어보십시오.”
“교관님의 기술을 배우려면 보통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가요?”
그 말에 나는 머릿속으로 주현근의 성취도를 떠올렸다.
주현근에게 무공을 가르쳐준 지도 벌써 두 달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주현근은 그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엄청난 성취도를 보여주었다.
모든 기초 수련을 마무리하여 이제 본격적으로 검기와 보법, 점혈 등을 배울 차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주현근을 기준으로 잡으면 안 될 일이지.’
무공의 재능만으로 따지면 주현근은 S랭크였다.
실제로 현재 무력도 F랭크에서 D랭크까지 빠르게 치고 올라온 상황.
그렇기에 주현근이 아닌, 다른 이를 기준으로 삼아야 했다.
“평범한 재능을 가진 이라면 신체의 마력을 내공으로 모두 전환하기까지 반년 정도 소요될 것입니다.”
“내공이요?”
“무공을 쓰는 데 내공은 필수입니다. 검기와 보법, 점혈을 사용하려면 신체의 마력을 모두 내공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제겐 너무 어려운데요?”
“직접 배워보시면 이해하시게 될 겁니다.”
유현경은 대답을 피했다.
아직 내게 무공을 배울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역시 저 게으른 성격이 문제야.’
유현경의 성향을 나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전형적인 게으른 천재였다.
재능이 있는데도 그 재능을 제대로 안 쓰는 유형이었다.
‘어떻게든 저 성격을 뜯어고쳐야 할 텐데, 이번에는 어떤 수를 써야 할까.’
내가 그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유현경이 몸을 움찔하였다.
그러고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어쨌든 이제 교육생들이 박한새 교관님의 가르침에 잘 따라줄 테니,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요.”
“그건 두고 봐야 알 거 같습니다.”
“실력을 증명하셨으니 크게 문제 될 건 없을 거 같아요.”
‘나는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겠다.’라는 자신의 속내를 적나라하게 표출하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아무래도 그녀를 제자로 만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거 같았다.
본격적인 무공 강의가 시작되었다.
‘교육생들의 눈빛이 많이 달라졌군.’
분명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불신으로 가득한 눈빛을 보냈었다.
심지어 몇몇은 대놓고 불평을 토로하기도 했었고.
하지만 늘 그렇듯, 헌터는 실력으로 말할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D랭크 헌터인 신경철과 김재원을 연달아 쓰러뜨렸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보법과 점혈이라는 기술을 공개하였다.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지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눈빛들을 보니 다들 제게 교육을 받을 준비가 잘 되어있는 거 같군요.”
대답도 열성적이었다.
이능관리부의 처치 곤란한 문제아들만 모아놨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열정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모두가 주현근처럼 재능이 넘친다면 무공에 계속 흥미를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재능이란 것은 늘 그렇듯 극소수의 전유물이었다.
무공 역시 마찬가지.
어쩌면, 금방 무공을 포기할 사람이 나올 수도 있었다.
재능이 없다면 굼벵이만큼 더디게 성장할 테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모두를 데려갈 수는 없는 일이니까.’
내가 권속으로 둘 수 있는 헌터는 모두 합해서 열 명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권속 후보도 겨우 30명뿐.
이렇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나는 재능을 가진 이에게 조금 더 특혜를 줄 수밖에 없었다.
“제 교육을 받고 마음에 안 드시면 언제든 그만두셔도 됩니다. 하지만 중도 포기하신 인원은 두 번 다시 저에게 무공을 배울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나는 확실하게 말하였다.
포기하고 싶으면 언제든 포기하라고.
대신 그것이 엄청난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란 사실을 명심하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