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화
1시간 아니, 단 10분만 지나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던 교육생들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호흡법을 수련하는 교육생들의 집중력이 말도 안 되게 좋아졌다.
그렇게 교육생 모두가 미친 듯이 호흡법 수련에 열중하자, 마침내 성과를 보인 이가 한 명 있었다.
그는 바로 신경철이었는데, 완전히 무아지경 상태에 빠져있었다.
‘이건 예상치 못한 소득인데?’
신경철의 내부에서 움직이는 마력을 느끼며 나는 눈을 빛냈다.
마력을 감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력 감응력이 좋은 이들도 보통 스킬을 쓸 때 말고는 마력을 잘 감지하지 못하였다.
그나마 신경철은 D랭크 헌터이기에 조금 기대하긴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흘 만에 성과를 낼 줄은 몰랐다.
“박한새 교관님, 잠시 대화 좀 가능할까요?”
내가 신경철이 수련하는 것을 눈여겨보고 있을 때, 유현경이 옆으로 다가와서는 말을 걸었다.
“예. 그러죠.”
“교관님, 도대체 연수원에서 어떤 활약을 하신 거예요?”
그게 뭔 소리냐고 되묻자, 유현경이 굉장히 놀랍다는 어조로 말했다.
“지금 연수 교육을 받는 헌터들 중 무려 200명이나 되는 인원이 이능관리부에 들어올 것을 희망한다고 밝혔어요!”
“심지어 랭킹 30위 안에 드는 이들조차 이능관리부에 들어오겠다고 말했다니까요!?”
그녀는 진심으로 놀랐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로선 이미 알고 있었던 일이기에 심드렁할 뿐이었다.
“랭킹 1위인 이정 헌터도 이능관리부에 들어온다는 이야기는 저도 들었습니다.”
“네.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지금 업계 전체가 난리도 아니에요!”
랭킹 1위가 이능관리부에 온 것은 엄청난 사건이긴 했다.
물론 이미 그는 배후령이 있는 헌터라서 나로선 그리 탐나지는 않았지만.
“혹시 김수민 헌터도 오기로 했습니까?”
이정보다 내게 중요한 것은 김수민이었다.
현재 실력도 김수민이 더 위에 있었고 심지어 그녀는 배후령도 없었다.
당연히 내게는 김수민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김수민 헌터요? 그게 누군가요?”
“그녀 역시도 랭킹 30위 안에 드는 헌터입니다.”
“글쎄요. 제가 모르는 것을 봐서는 아직 저희에게 따로 접촉하지는 않은 거 같아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히 그녀도 이능관리부로 올 줄 알았는데….
‘한번 만나 봐야겠어.’
이번에 주현근을 통해 알게 됐다.
다른 성좌에게 지분율이란 것을 뺏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즉, 여유를 부리다간 김수민을 다른 성좌에게 뺏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성좌는 아마 악신 쪽에 해당하는 성좌일 것이고 말이다.
하여 직접 찾아갈 필요가 있을 거 같았다.
“이번 일로 교관님에 대한 여론이 많이 바뀌었어요.”
“교관님을 비난하던 이들도 이제는 옹호하는 쪽으로 돌아섰어요.”
조직에 이익을 주었는데 나를 비난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물론 장관이라는 사람은 여전히 나를 좋게 보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아마 다음 달부터는 더 많은 교육생을 받게 될 거 같은데, 혹시 괜찮을까요?”
“문제없습니다.”
교육생이 많아지는 것은 오히려 환영할 일이었다.
무공을 배운 헌터는 한 명이라도 많아질수록 인류에 이익이었다.
또한 권속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사람은 많을수록 좋았다.
“그런데, 사무관님은 안 배우십니까?”
“뭘요? 아, 무공이요?”
내 질문에 유현경은 조금 주저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도 무공에 대한 확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냥 귀찮아하는 것일 수도 있고.
“이번이 어찌 보면 저에게 무공을 배울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을 겁니다. 앞으로 제가 가르쳐야 할 교육생은 수도 없이 많을 테니 말입니다.”
잘난 척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현실을 이야기한 것일 뿐.
“…한번 배워볼게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게으르기는 하나, 무공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그녀였다.
그녀가 회귀 전보다 몇 년이나 일찍 무공을 배우게 되었으니, 엄청난 기대가 되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절정급 무인으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김수민은 평소처럼 던전에 들어가려고 장비 대여소에 들렀다.
염동력으로도 충분히 몬스터를 제거할 수 있지만 헌터에게 장비는 필수였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 헌터의 세계였으니.
“어떻게, 결정은 내리셨습니까?”
장비를 고르는데 뒤에서 손님으로 보이는 자가 말을 걸었다.
김수민이 뒤를 돌아보자, 눈웃음을 짓는 듯, 눈동자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실눈의 사내가 서있었다.
사내를 보고 인상을 찡그린 김수민은 조용히 스킬을 사용하였다.
“어이쿠, 도시에서 그러시면 서로에게 곤란하지 않을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그녀의 염동력이 사내의 목을 조용히 옥죄려고 할 때, 사내는 마치 예상했다는 듯,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그러고는 자신의 목을 어루만지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그런 사내의 모습을 보고 김수민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전에도 그랬지만 그녀의 공격은 사내에게 통하지 않았다.
분명 염동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도 사내는 마치 다 보인다는 듯 여유롭게 모든 공격을 피했다.
“제가 제 뒤를 두 번 다시 밟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네 번 다시 그러지 않을 테니, 화 푸세요. 하하.”
“지금 말장난을 하시는 건가요?”
“한 번 실수했던 사람은 원래 두 번도 하는 법이죠. 그러니 넉넉하게 네 번으로 말한 겁니다.”
장난스럽게 말하는 사내의 모습을 보고 김수민은 눈에 살기를 띠었다.
그런 그녀에게 사내가 물었다.
“그래서 결정은 내리셨습니까?”
“무슨 결정을 말하시는 거죠?”
“하하, 왜 이러실까요. 전에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지 않습니까.”
“자세한 설명이라고요?”
사내의 말에 김수민은 코웃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김수민이 사내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단 하나뿐이었다.
겉으로만 봐서는 평범하게 보이는 사내가 B랭크, 어쩌면 A랭크에 버금가는 무력을 가졌다는 사실 말이다.
“DX 길드가 어떤 곳인지, DX 길드에서 저를 왜 영입하려 하는지, 당신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으셨어요.”
사내의 소속은 DX 길드라는 곳이었다.
신생 길드로서 알려진 정보는 거의 없다시피 하였다.
보통 이런 신생 길드의 경우, 온갖 비전을 말하며 스카우트를 하고는 했다.
하지만 사내는 그저 의미심장하게 그녀의 복수를 도와줄 것이라고만 이야기할 뿐이었다.
이번에도 사내는 같은 말을 내뱉었다.
“김수민 헌터는 복수를 원하고 우리는 김수민 헌터의 복수를 도와줄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상의 설명이 필요할까요?”
뻔뻔하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김수민으로선 그의 말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었다.
사내의 말처럼, 그녀가 원하는 것은 복수였으니까.
“어떻게 저의 복수를 도와주신다는 거죠?”
“힘을 드리겠습니다. 말 그대로 더 강해질 수 있는 힘을 말입니다.”
김수민은 그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3주 전, 박한새에게 들었던 말과 똑같았다.
그 역시도 그녀에게 힘을 준다고 했었다.
지금보다 훨씬 강해질 수 있는 힘을.
‘하지만 박한새는 증명했고 이들은 어떤 것도 증명하지 않았다.’
주현근의 성장세는 그녀 역시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주현근의 성장세를 보며 그녀는 확신하였다.
반드시 무공을 배워야겠다고.
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일까?
힘을 주겠다는 사내의 말을 들었음에도 김수민은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하였다.
“글쎄요. 신생 길드가 어떤 요령이 있어서 헌터를 강하게 해줄 수 있다는 거죠?”
“이호승, 유주, 한진영 이 세 사람의 이름을 아십니까?”
“헌터 연수를 받는 헌터들 아닌가요?”
“그럼 그 헌터들을 지켜보십시오.”
김수민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자 사내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곧 그들의 순위가 바뀔 겁니다. 아주 급격하게 말입니다.”
“김수민 헌터님, 오랜만이군요.”
“제가 어떤 길드에 가입할지 궁금해서 찾아오신 건가요?”
김수민은 나를 보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나는 그런 김수민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 저는 김수민 헌터에게 관심이 많거든요.”
물론 그 관심이 이성으로서의 관심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권속 후보로서 관심을 표하는 것.
다행히 김수민은 다른 오해는 하지 않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러 길드에서 영입 제안이 왔었어요.”
아무리 그녀가 존재감 없이 지내고 있다지만, 그녀의 순위는 절대 존재감이 없을 수 없었다.
“10대 길드도 있었겠습니다.”
“맞아요. 하지만 저는 10대 길드에 들어갈 생각이 없어요.”
그럴 거 같았다.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그녀는 10대 길드들에게 엄청난 원한을 품은 것처럼 보였으니.
“영입을 제안한 길드 중에 특이한 곳이 하나 있었어요.”
“특이한 곳이요?”
“마치, 박한새 헌터님이 말했던 것처럼 제게 큰 힘을 줄 거라고 이야기했었죠.”
그녀의 말에 나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헌터들을 영입할 때 힘을 준다는 말은 사실 흔하디흔한 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웬만한 길드들은 전부 자신들만의 노하우를 갖고 있었다.
헌터의 능력을 어떻게 성장시킬지에 대한 노하우였다.
‘어떤 노하우도 무공과는 비교가 안 되지.’
설령 10대 길드의 노하우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노하우 수준이 아니라, 무슨 엄청난 비전을 가진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그래봤자 한계는 명확했다.
그저, 헌터 개개인에게 주어진 한계치를 최대한 빠르게 도달할 수 있게 해줄 뿐이었다.
즉, C랭크 잠재력을 가진 이라면 10대 길드의 비전으로도 C랭크까지가 성장할 수 있는 한계라는 의미였다.
“실례가 아니라면, 길드 이름이 뭔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DX라는 이름의 길드였어요.”
그 말을 듣고 나는 눈을 크게 떴다.
DX는 나도 알고 있는 길드였다.
그도 그럴 것이, DX 길드의 길드 마스터와 간부진부터가 내 살생부 명단에서 최상단에 있었다.
‘놈들이 벌써 움직이고 있는 것인가.’
세상에는 빌런이 많았다.
그중엔 김수민처럼 개과천선의 여지가 있는 빌런도 있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이도 적지 않았다.
DX 길드의 마스터와 간부진은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애초에 그놈들은 악신 파롤과도 연관이 있다고 알려진 놈들이지.’
사실 나도 DX 길드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본격적으로 악행을 저지르기 전에 회귀자인 이성은이 전부 척결하였기 때문이다.
이성은이 최우선적으로 그들을 척결했다는 사실만 봐도 그들을 살생부에 올려놓을 이유는 충분하였다.
“김수민 헌터님은 그래서 DX 길드에 들어가실 생각입니까?”
“아니요.”
다행이었다.
만약 그녀가 DX 길드에 들어간다면 나는 그녀를 죽일 수밖에 없었을 테니 말이다.
“힘을 준다고 해도 믿지 못하겠더라고요. 애초에 DX 길드에 가입했다는 헌터들 성적이, 주현근 헌터보다 못하기도 했고 말이죠.”
“그렇다면 이능관리부로 오시겠습니까?”
“약속 하나만 해주시면 갈게요.”
“약속이라면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DX 길드에게서 저를 지켜주겠다는 약속이요.”
나는 그녀의 말에 지체하지 않고 대답하였다.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켜드리겠습니다.”
그러자 김수민이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