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대신 회귀함-33화 (33/275)

#033화

“이분이 바로 박한새 헌터님이세요.”

“반갑습니다. 박한새라고 합니다.”

내가 고개를 숙이자, 정승호가 아무 말 없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마력을 강하게 발산하였다.

우우웅.

순식간에 나를 옥죄기 시작하는 정승호의 마력.

마치 점혈을 당한 느낌이었다.

S랭크에 비견되는 무력의 소유자라더니.

마력을 운용하는 게 범상치 않았다.

‘내 실력을 시험하겠다는 건가?’

피식 웃은 나는 단전의 내공을 전신으로 퍼뜨렸다.

그러자 압력이 사라지고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 정도의 압력으로 나를 제압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던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사기꾼은 아닌 듯하군.”

정승호가 여유롭기 그지없는 내 모습을 보며 눈에 이채를 띠었다.

지금 그가 발산한 마력이라면 C랭크 헌터의 움직임도 잠깐은 봉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마력을 너무도 쉽게 상쇄하였으니, 그로서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첫 인사가 조금 무례하신 거 같습니다.”

“호오. 직설적이군.”

“잘못된 일을 잘못되었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그래, 사과를 바란다면 사과하도록 하지. 내가 워낙 의심이 많아서 말이야.”

정승호가 건성으로 그리 말하자, 옆에서 정소연이 작은 목소리로 사과하였다.

“죄송해요. 저희 길드 마스터님이 워낙 성격이 이상한 분이라서.”

“다 들린다.”

“들리라고 한 말이에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나는 피식 웃고는 정승호에게 말했다.

“그래서, 이제 의심이 풀리신 겁니까?”

“나는 무공이란 거,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

“제 실력은 이미 테스트하신 거 같은데, 아닙니까?”

“내가 납득하지 못하는 이유는 당신의 실력 때문이 아니야.”

“그러면 무엇입니까?”

“겨우 1억 받는 조건으로 왜 무공이란 것을 가르치려는 걸까? 나는 그게 의문이다. 당신은 이 의문을 해결해줘야겠어.”

그 말을 들으니 무공을 불신하는 그의 태도를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무공은 헌터라면, 아니 설령 헌터가 아니어도 무척이나 매력적이게 느껴지는 공부였다.

비각성자조차 C랭크 헌터에 버금가는 무력을 갖게 해주지 않는가.

강해지길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탐을 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무공의 가치가 너무 좋기 때문에 정승호는 오히려 의심하는 거 같았다.

돈이 많은 헌터들에게 1억의 가치는 그리 높지 않았다.

정승호만 해도 한 달에 억 단위는 가볍게 벌어들일 터.

그런 정승호이니 1억을 ‘겨우’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제가 사람들에게 무공을 가르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무공을 배우는 이가 보다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라면 더 이해가 가지 않는데? 무공이란 것을 왜 당신 혼자 독점하려고 하지 않고 널리 퍼뜨리려는 거지?”

“희생을 줄일 수 있어서입니다.”

“희생?”

“무공을 익힌 헌터가 늘어나면 던전에서의 사망률이 크게 줄어들 겁니다. 또한 비각성자도 무공을 익히게 된다면 던전 브레이크에서의 희생도 크게 줄어들 것입니다.”

내 말에 정소연이 감동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호연도 눈을 반짝이며 작게 박수 쳤다.

하지만 정작 설득 대상인 정승호는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이 만든 무공을 바쳤다는 건가?”

“바쳤다는 표현은 옳지 않지만, 대의를 위해 행동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나는 대가 없이 자신의 것을 희생하겠다는 사람은 믿지 않아.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이미 다 죽었거든.”

한때 헌터를 영웅이라 부르던 시대가 있었다.

몬스터라는 인류의 적에 맞서서 가장 최전선에서 싸우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도 헌터를 영웅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정승호의 말처럼 헌신적인 헌터는 이미 다 죽고 사라졌다.

지금 존재하는 헌터들은 오직 돈과 명성 그리고 권력.

이 세 가지를 보고 움직일 뿐이었다.

“대가가 없지는 않습니다.”

“무슨 대가가 있다는 거지?”

“무공을 익힌 사람이 많아지면 제 명예와 권위는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겁니다.”

“흠, 틀린 말은 아니군.”

“그리고 저는 정승호 길드 마스터께서 왜 그렇게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세상을 부정적으로 본다고?”

“17년 전, 서울을 구했던 13인의 영웅 중 한 분이시지 않습니까.”

“…요즘 친구가 그 시대의 일을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군.”

“제가 잊을 수는 없죠. 제 부모님도 바로 그 현장에 계셨으니 말입니다.”

“현장에 있었다고? 혹시 이름을 알려줄 수 있겠나?”

나는 두 분의 이름을 밝혔다.

박정석, 신민아.

서울을 구하고 장렬하게 산화했던 두 영웅의 이름을 말이다.

“네, 네가 정석이 형님의 아들이었다고?”

정승호는 눈을 부릅뜨며 놀라워하였다.

아버지를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아버지와 안면이 있었던 모양이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있다더니, 그 아이가 벌써 이렇게 큰 건가.”

그가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방금까지 나를 불신하는 눈으로 바라봤던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실로 극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술이나 한잔하지.”

“…좋습니다.”

별로 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도저히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주르륵.

“마셔.”

“예, 감사합니다.”

그렇게 몇 잔 들이켜고 나니, 그가 빨개진 얼굴로 말했다.

“힘들었겠어.”

“아니긴. 다른 가족도 없었다며?”

“한새야. 나는 네가 정말 대견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에서 무공이란 것을 창시한 거잖아?”

“운이 좋았습니다.”

“운으로 그게 가능하겠어? 가능하다면 그것도 실력이지.”

정승호는 두서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헌터 업계는 왜 이렇게 변했는지.

심지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미안하다는 말까지 하였다.

‘의외로 투 머치 토커였군.’

술을 마시면 말이 많아지는 성격인 듯싶었다.

“그런데 한새야.”

“둘 중 누구랑 사귈 거야?”

뜬금없는 그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호연, 소연. 둘 중에 누구냐고?”

순간 술을 뿜을 뻔했다.

그만큼 황당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오해십니다.”

“오해? 그럼 우리 조카 가지고 장난을 친 거야?”

“장난이라니요. 저는 그런 적 없습니다.”

“둘 다 너에게 푹 빠진 거 같은데…. 너, 이렇게 책임감 없는 사람이었냐?”

나로선 그저 난감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정호연과 정소연.

둘은 분명 매력적인 여성들이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두 사람을 이성으로 본 적이 없었다.

지금의 나는 연애 같은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나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다니?

그저 당혹스럽게만 느껴졌다.

“푸하하하! 무슨 죽을죄라도 지은 표정이네.”

“뭐 하는 겁니까.”

“장난 좀 친 거다. 장난.”

주먹이 운다는 느낌을 오랜만에 느껴보는 거 같았다.

“길드원들이 무공을 익히는 거, 여전히 반대하십니까?”

계속 쓸데없는 이야기만 하게 되는 거 같아서 내가 먼저 본론을 꺼냈다.

“반대하신다면 저도 더는 이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원래 갑질과는 거리가 먼 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갑이어야 할 내가 무공을 가르치겠다고 애원하는 처지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너를 믿기로 했는데 반대할 이유는 없겠지. 지원자에 한해서는 무공을 배울 수 있게 기회를 줬으면 해.”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석이 형님의 아들인데 믿어야지. 아, 그리고 조건은 한 명당 1억이랬나?”

“예. 지금까지는 그렇게 했습니다.”

“화영 길드가 이능관리부처럼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인당 1억은 너무 적지. 두 배, 아니 세 배 올려주마.”

나야 반대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한 명 가르칠 때마다 3억이라. 무공 덕에 역시 돈 벌기는 쉽군.’

지금이야 억 단위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큰 돈을 벌게 될 것이다.

나중엔 전 세계에서 무공을 배우러 찾아올 테니까.

“혹시 그 무공이라는 거, 나도 배울 수 있겠나?”

“길드 마스터께서 직접 말씀입니까?”

“흥미가 생겼어.”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화영 길드의 길드 마스터가 무공을 배운다니.

초특급 대어가 아닐 수 없었다.

‘설령 무공에 재능이 없다고 해도 그가 수급해줄 카르마를 생각하면 엄청난 이익이다.’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었다.

“답변을 드리기 전에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배후령이 있으십니까?”

배후령의 유무는 굉장히 중요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정승호에게 배후령이 있다면 내 권속으로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성좌를 말하는 거냐?”

“어떻게 성좌를 알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따로 배후령을 두지는 않았다.”

정승호의 대답을 듣고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S랭크에 근접한 인재인데 배후령도 없다니.

나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인재가 아닐 수 없었다.

“뭐 제안을 받은 적은 있었지만 말이야.”

하지만 이어지는 정승호의 말을 듣고 나는 흠칫하고 말았다.

“성좌에게 제안을 받았단 말씀입니까?”

“그래. 달빛을 머금은 마녀인가 그랬었지?”

처음 들어보는 성좌명이었다.

애초에 내가 아는 성좌가 얼마 없기도 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다른 성좌가 관심을 두고 있다는 뜻이니 주의해야겠어.’

서두를 필요가 있을 거 같았다.

자칫하면 다른 성좌에게 뺏길 수도 있을 테니.

“그래서 나도 배울 수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배움의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호오, 그렇다면 나도 배워야겠어.”

“정호연 헌터나 정소연 헌터에게 기초적인 호흡법을 배우면 제가 심화 과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몸이 한 개이기에 모든 과정을 내가 다 가르칠 수는 없었다.

다행히 화영 길드에는 정 자매가 있었다.

두 사람에게 기초적인 교육을 담당하게 하고 나는 심화 과정만 가르치면 될 거 같았다.

“그런데 이능관리부에서 난리를 피울 수도 있는데, 괜찮겠나?”

정승호가 살짝 걱정스럽단 목소리로 말하자, 나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아직도 무공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이능관리부였다.

화영 길드의 사람들에게 무공을 가르친다고 문제 생길 일은 없을 것이다.

‘설령 논란이 생겨도 크게 상관은 없지.’

무공을 창시한 사람은 나였다.

따로 독점 계약을 맺은 것도 아닌데 이능관리부의 눈치를 볼 이유는 없었다.

“제가 제 것을 가르친다는데 문제 될 게 있겠습니까?”

“하하하! 성격 하나는 참 마음에 드는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술자리였다.

술자리가 오늘만 같으면 나도 술을 좋아하게 될 거 같았다.

성좌, 달빛을 머금은 마녀는 흥미로운 눈으로 두 사람을 지켜봤다.

요 근래 성좌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는 사내가 바로 박한새였다.

그런 박한새가 자신이 점찍어두었던 권속 후보에게 접근했다는 사실이 그녀로선 그저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앞으로 지켜볼 가치가 있겠는걸?’

정승호는 반쯤 포기했던 권속 후보였는데 생각이 달라졌다.

박한새 때문이라도 관심을 가져야만 할 거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