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5화
1성 던전이라고 우습게 볼 수는 없었다.
연수 교육을 마치지 못한 초짜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주현근이 속한 팀은 예외였다.
“외뿔 멧돼지 발견!”
정찰을 담당하는 팀원이 몬스터의 등장을 알렸다.
그의 외침을 듣고 주현근 팀은 능숙하게 전투 준비를 하였다.
가장 먼저 기원현이 외뿔 멧돼지에게 디버프를 걸었다.
스킬이 디버프 스킬 하나뿐이라서 순위는 낮았지만 그의 스킬은 몬스터를 사냥할 때 대단히 유용하였다.
맹렬하게 돌진하던 외뿔 멧돼지가 그의 스킬을 맞고 속도가 느려졌다.
그러자 탱커를 맡은 문정민이 방패로 외뿔 멧돼지의 돌진을 막았다.
이미 가속력을 잃은 외뿔 멧돼지의 돌진은 문정민에게 큰 타격을 주지 못하였다.
“현근아! 끝내!”
“알았어.”
주현근은 빠르게 달려가서는 문정민에게 붙잡혀있는 외뿔 멧돼지의 목을 그대로 내리쳤다.
“꽤애애액!”
외뿔 멧돼지는 목에 긴 자상을 입은 채 발광하기 시작했다.
‘검기만 배웠으면 한 방에 죽였을 텐데!’
아쉬웠다.
사람을 상대할 때도, 몬스터를 상대할 때도 늘 아쉬움을 느꼈던 것이 강력한 한 방 공격이었다.
‘더 열심히 무공 수련을 하는 수밖에.’
다행히 그의 부족한 공격력을 채울 방법은 존재하였다.
수련.
오직 수련만이 그의 공격력을 배가시켜줄 것이었다.
“잡았다!”
“돼지 같은 새끼. 진짜 끈질기네!”
주현근 팀은 기어코 외뿔 멧돼지의 숨통을 끊었다.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세 번 하면 될 일이었다.
외뿔 멧돼지 역시 세 번의 공격을 당하자 더는 버티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였다.
“팀워크가 아주 좋군요. 아마 팀워크 하나만은 여러분이 가장 좋은 점수를 받을 거 같습니다.”
교관의 말에 네 사람은 환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주현근의 표정이 가장 좋았다.
현재 그는 순위도 31위였고 팀 점수도 높았다.
어쩌면 연수 교육이 끝날 때, C랭크까지도 노려볼 수 있을 거 같았다.
키아아악! 키아아악!
하늘에서 웬 이상한 괴성이 들렸다.
모두가 하늘을 바라보니, 이곳에 있어선 안 될 몬스터가 하늘에 떠있는 모습이 보였다.
“외뿔 독수리가 여기서 왜 나와!”
이 던전의 핵이 있는 장소를 지키는 몬스터가 바로 외뿔 독수리였다.
사실상 던전 보스나 다를 게 없다는 뜻인데, 그런 몬스터가 던전 초입에 나타났으니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모두 저를 따라오세요!”
교관은 다급하게 지시를 내렸다.
제아무리 1성급 몬스터에 불과한 외뿔 독수리지만, 원래 공중 몬스터는 상대하기 까다로운 법이었다.
근접 스킬밖에 없는 교관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는데, 혼자서라면 모를까, 누군가를 지키면서 싸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저, 저희에게 오는데요?”
“뒤를 돌아보지 말고 뛰세요!”
다다닥!
모두 사색이 된 채 큰 나무가 있는 곳으로 뛰었다.
외뿔 독수리의 시야를 가려줄 나무가 있는 곳이라면 어느 정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
‘빌어먹을! 왜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거야!’
주현근은 등 뒤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외뿔 독수리의 공격을 받게 될 거 같은 기분이었다.
[오른쪽으로!]
뇌에서 강하게 위기를 발산할 때, 정체 모를 문구가 눈앞에 떠올랐다.
주현근은 갑작스럽게 떠오른 문구에 당혹감을 느낄 새도 없이 본능적으로 문구의 내용을 따랐다.
그러자 방금까지 그가 있던 곳을 무언가가 할퀴고 갔다.
“현근아! 괜찮아!?”
“허억! 허억!”
주현근은 식겁한 눈으로 뒤를 돌아봤다.
방금 그가 있던 곳에서 외뿔 독수리가 낮게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를 노리고 공격했다가 실패하고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살았다!’
자칫하면 죽을 뻔했다.
제아무리 무공을 익혔어도 외뿔 독수리의 공격을 맞으면 그대로 골로 갔을 테니 말이다.
[멍 때리지 말고 나무 아래로 달려!]
다시금 떠오르는 문구를 보며 주현근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달렸다.
마침내 안전 구역까지 가자, 그의 팀원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게 들렸다.
“갔다!”
“휴. 겨우 살았네.”
“이게 갑자기 어떻게 된 일이야?”
“그니까.”
주현근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변이 많이 발생하는 던전이라지만, 설마 1성 던전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아까 그거는 뭐였지?’
갑자기 떠오른 문구.
만약 그 문구가 아니었으면 죽음을 맞이했을지도 몰랐다.
‘설마 성좌인 건가?’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도와준 것이 성좌라면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갈 거 같았다.
“성좌님? 성좌님 맞으신가요?”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없었다.
문구 역시 깨끗이 사라진 상태였고 말이다.
‘뭐였던 거지.’
의아했지만 어쨌든 살았으면 된 일이었다.
그는 땀을 식히며 팀원들과 함께 휴식을 취하였다.
[권속 후보, ‘주현근’을 위기에서 구출하였습니다. 카르마 +5,000]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주현근을 위기에서 구출할 수 있었다.
메시지를 쓰는 데 들인 카르마가 1,000이 안 되니 엄청난 이익이었다.
하지만 나는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김수민도 위기에 처했을 거다.’
외뿔 독수리란 변수는 주현근 팀에만 일어난 일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주현근 팀보다는 다른 팀, 그중에서 김수민의 팀이 위기에 처했을 가능성이 컸다.
‘이런 식으로 발생하는 던전의 이변은 파롤의 졸개들이 흑막인 경우가 많았지.’
훗날 알려질 사실이었다.
파롤의 졸개들은 몬스터를 곧잘 다루었고 아예 몬스터의 힘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DX 길드와 김수민을 영입하기 위해 움직였던 황연호는 바로 그 파롤의 졸개였으니 그들이 이번 사태의 흑막일 것이다.
‘김수민을 구해야 한다.’
나는 이미 김수민과 약속했다.
그녀를 DX 길드의 마수로부터 꼭 지켜주겠다고.
그렇기에 나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움직여야만 했다.
[‘광기의 가면’을 구매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연수원 던전으로 가기 전, 카르마 상점에서 아이템 하나를 구매하였다.
내가 구매한 상품은 마치 하회탈을 닮은 가면이었다.
가격은 500 카르마.
아이템치고 가격이 저렴한 편에 속했는데, 그만큼 옵션이 쓸모없었다.
미약하게 은신 효과를 늘려준다는 애매한 옵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옵션 하나로 충분하였다.
내가 던전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숨겨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광기의 가면은 제 역할을 하는 셈이었다.
‘오랜만에 역천단도 써먹어야겠군.’
잠깐 동안 내공을 늘려주는 역천단이란 영약을 쓸 때가 온 거 같았다.
김수민 팀이 외뿔 늑대를 사냥하고 있을 때, 갑자기 사나운 괴성이 들려왔다.
소리의 진원지는 하늘이었는데 그곳에서 한 마리의 새가 날아오고 있었다.
“외뿔 독수리다!”
“헉! 보스가 왜 여기서 나와?”
김수민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던전을 자주 경험한 그녀조차도 외뿔 독수리의 등장은 실로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나무 옆으로 피하세요!”
모두가 당황하고 있을 때, 김수민 팀을 담당하는 교관이 손을 하늘로 향해 뻗으며 외쳤다.
휘휘휘휙!
교관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돌풍이 외뿔 독수리를 덮쳤다.
하지만 외뿔 독수리는 여전히 위협적인 기세로 교관을 향해 급강하하였다.
그러자 작게 느껴졌던 외뿔 독수리의 형체가 순식간에 3m 크기의 거조로 바뀌었다.
교관이 외뿔 독수리의 손에 당장이라도 목숨을 잃을 것처럼 느껴지자, 연수생들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연수생 중, 팀장인 김수민만은 차분함을 유지하였다.
던전 경험이 그 어떤 연수생보다 많은 그녀였다.
염동력이라는 사기적인 스킬까지 가진 그녀였기에,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였다.
키아아악!
다행히 그녀의 스킬은 외뿔 독수리에게 통하였다.
교관의 스킬에 맞고 속도가 주춤하였던 외뿔 독수리는 그녀의 염동력에 완전히 묶이고 말았다.
‘너무 세!’
간신히 교관을 구한 그녀였지만, 외뿔 독수리의 저항은 너무 거셌다.
마력이 뭉텅뭉텅 빠져나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두, 두 마리가 더 오고 있어요!”
“미친! 한 마리도 아니고 세 마리나?”
하늘에서 또 다른 외뿔 독수리의 괴성이 들려왔다.
심지어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였다.
‘저놈들이 오기 전에 빠르게 죽여야 해!’
위기였으나, 김수민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염동력으로 붙잡아둔 외뿔 독수리에게 온 신경을 집중할 뿐이었다.
뿌드득! 뿌드득!
염동력이 강하게 조여지며 외뿔 독수리의 형체가 납작해지기 시작하였다.
그 상태에서 김수민은 외뿔 독수리를 땅바닥으로 내리꽂았다.
콰아앙!
두개골이 먼저 바닥에 부딪치자, 외뿔 독수리는 그대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뻐할 새도 없이 김수민은 고개를 올려 하늘을 보았다.
두 마리의 외뿔 독수리가 그녀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내리꽂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절체절명의 순간.
갑자기 공기가 베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녀를 공격하던 외뿔 독수리의 목이 잘려나갔다.
김수민은 눈을 부릅떴다.
외뿔 독수리의 목이 잘려나가는 장면은 마치 예술을 보는 느낌이었다.
허공에 푸른 선이 그려지더니, 그 안에 있던 모든 것이 두 동강 났던 것이다.
‘만약 나를 향한 공격이었으면 나는 막을 수 있었을까?’
이럴 때 할 생각은 아니었으나, 그녀는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부터 하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김수민은 고개를 돌려 자신을 구해준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특이한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얼굴이 보이지 않는데도 비범함이 느껴졌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면을 쓴 사내는 그녀의 감사 인사를 듣는 둥, 마는 둥, 엄청난 속도로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날아오르듯 하늘로 점프한 그는 기어코 한 마리의 외뿔 독수리를 더 베어냈다.
“누구야?”
“엄청난 실력자다!”
연수생들은 사내의 실력을 보고서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최소 B랭크 이상으로 보일 정도로 범상치 않은 실력이었다.
‘누구인지 전혀 모르겠는데…, 왜 익숙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걸까?’
김수민은 멀어지는 사내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김수민을 구해준 나는 그대로 자리를 떴다.
여기서 내 정체를 밝히면 가면을 쓴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휴우. 다행히 늦지는 않았군.’
거리가 완전히 멀어지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꽤 위험한 순간이었다.
상위 헌터들조차 상대하기 까다로워 거의 방치하다시피 하는 게 외뿔 독수리였다.
그런 외뿔 독수리가 한 마리도 아니고 세 마리나 나타났었다.
김수민의 능력이라면 세 마리를 감당하는 게 가능할 수도 있었겠지만, 사람 일은 혹시 모르는 것이었다.
내가 조금만 더 늦었으면 그녀 역시 주현근만큼 위험했을지도 모르리라.
나는 퀘스트가 발생했다는 알람음을 듣고 눈을 크게 떴다.
‘또 퀘스트라고?’
[파롤의 졸개를 처단하십시오! 카르마 +10,000]
5천 카르마에 이어 1만 카르마라니.
갑자기 퀘스트 보상이 후해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지.’
카르마나 퀘스트는 나중에 생각할 문제였다.
그보다는 파롤의 졸개.
즉, 악신 파롤을 배후로 둔 빌런의 목을 따는 게 지금은 훨씬 더 중요한 일이었다.
‘파롤의 졸개가 이 던전에 있다는 건가.’
안 그래도 이번 사태의 흑막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장소가 특정되었으니 지금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덤으로 카르마도 얻고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