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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36화 (36/275)

#036화

멀리서 괴조의 소리가 들렸을 때, 한진영의 팀은 외뿔 독수리가 아닌, 다른 것에게 습격을 받았다.

“D랭크 헌터가 어딜 덤비고 그러십니까.”

“너, 너는 누구냐. 누군데 이런 짓을….”

“곧 죽을 사람에게 제 이름을 알려드리고 싶지는 않군요.”

“이런 개 같은…. 크헉!”

유일하게 저항하던 교관이 죽었다.

몬스터의 손에 죽은 게 아니었다.

같은 사람.

선글라스를 쓴 사내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였다.

“비, 빌런이다!”

교관의 최후를 보고 한진영 팀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되었다.

사내에게 덤빌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비명을 지르기 바빴다.

한 사람은 아예 등을 돌리고 도망치기까지 하였다.

“시끄럽군요.”

선글라스를 쓴 사내, 황연호의 손이 마치 뱀처럼 길쭉해지더니, 도망치던 연수생의 발목을 붙잡았다.

철푸덕!

쓰러진 연수생은 절박한 목소리로 외쳤다.

“사, 살려주세요!”

황연호는 그런 연수생의 말을 듣는 시늉도 안 한 채, 가만히 서있는 한진영에게 말을 걸었다.

“한진영 씨. 지금 뭐 하고 계시는 겁니까?”

“…예?”

“죽이십시오.”

“주, 죽이라니요? 누굴 죽이라는 말입니까?”

그러자 황연호가 혀를 찼다.

“눈치가 없는 겁니까? 지금 제가 누구보고 하는 말 같습니까?”

한진영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DX 길드에 가입한 것은 어디까지나 강해지고 싶어서였다.

황연호가 건네준 약을 복용한 뒤, 육체적인 강함을 얻게 되자, 홀린 듯 DX 길드에 가입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DX 길드가 이런 곳이었을 줄은 몰랐다.

“손에 피를 묻히기 싫으면 그대로 계셔도 됩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했다간 당신은 영원히 패배자로 살아가게 될 겁니다.”

그 말을 듣고 한진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영원히 패배자로 살아가야 한다니.

그에게 있어서 실로 끔찍한 저주가 아닐 수 없었다.

한진영은 헌터 자격시험 전까지만 해도 엄청난 유망주로 꼽혔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무려 트리플 스킬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파이어볼이라는 원거리 스킬에, 육체 강화 스킬, 적을 묶어두는 스턴 스킬까지.

스킬 배합조차도 이보다 좋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헌터 자격시험이 끝나자 그를 향한 관심은 급격히 시들었다.

그에게 향해야 할 관심을 다른 누군가가 가져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다른 누군가란 바로 박한새였다.

‘이 내가 비각성자 따위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들어야 하다니!’

박한새가 차라리 헌터였으면 어떻게든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비각성자였다.

비각성자에게 밀렸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DX 길드의 손을 붙잡아야 한다.’

설령 손에 피를 묻히는 한이 있더라도!

“패배자로 사시겠다면 더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하, 하겠습니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한진영은 자신의 팀원이 있는 방향으로 손을 뻗었다.

그가 보유한 스킬, 파이어볼을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파이어….”

“악취미군.”

그때, 이상한 가면을 쓴 사내가 등장하였다.

“누구냐!”

한진영은 굳은 얼굴로 물었다.

하필 살인을 저지르려던 시점에 사람이 등장하였으니, 그로선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팀원들을 죽일 생각이었나?”

사내의 물음에 한진영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뒤에 서있는 황연호를 힐끔 보더니, 이내 당당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어쩔 건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거 같으니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으마.”

“지랄하지….”

한진영의 말은 끝을 맺지 못하였다.

가면을 쓴 사내가 벼락처럼 휘두른 검에 그의 목이 절단되었기 때문이다.

연수생들이 비명을 지르더니, 이내 사방으로 도망쳤다.

그러자 자리에는 오직 한 명.

선글라스를 쓴 황연호만이 남아있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한진영이 죽었음에도 황연호는 태연한 반응이었다.

마치 한진영의 목숨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느낌이었다.

“파롤의 졸개들은 판에 박힌 듯 닮은 놈들밖에 없군.”

“호오, 당신.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아는 거 같군요.”

황연호는 눈웃음을 짓고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그의 얼굴에서 섬뜩함이 느껴졌다.

광신도답게 파롤을 모욕하는 말에 격분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그 목소리, 어디서 들어본 거 같습니다. 아! 혹시 박한새 헌터님 아니십니까?”

겨우 한 번 봤을 뿐인데, 목소리만 듣고 내 정체를 파악하다니.

기억력 하나는 정말 범상치 않았다.

‘뭐 상관없다. 이 자리에서 죽이면 그만이니.’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그렇기에 나는 황연호가 내 정체를 알아차린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비각성자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던전 속에 들어오셨는지 의아하군요. 역시 비각성자라는 말은 거짓이었나 봅니다?”

“알 거 없다.”

카르마 상점을 황연호에게 알려줄 이유는 없으리라.

“이거 참, 호기심이 생기는군요. 무공이란 것도 그렇고 박한새 헌터님에게는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누가 누구보고 수상하다고 하는 건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그에게 검을 겨누었다.

그러자 황연호가 같잖다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전에 제가 싸움을 피했다고 저를 우습게 보시나 본데…. 착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때의 저는 당신이 두려워서 싸움을 피한 것이 아니었으니.”

“알고 있다.”

“뭘 안다는 겁니까?”

“싸움을 피한 이유. 흉측해질 너의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싫었던 거겠지.”

“아까부터 저를 잘 안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군요.”

모를 수가 없었다.

파롤은 성좌였으나, 인류의 적이었다.

그것은 파롤을 배후령으로 둔 헌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황연호는 한국 지부의 중간 관리자급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다.

나 역시 파롤의 졸개들과 싸워본 경험이 많았기에 그가 누구인지 빠삭하게 알았다.

“숨기는 게 많으신 거 같은데, 제가 강제로라도 입을 열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할 수 있으면 해봐.”

“그 전에 엑스트라부터 없애고 가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내가 의아해하자, 그가 웃으며 손뼉을 쳤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악!”

“살려줘!”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를 듣고 황연호가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드디어 다 잡았나 보군요.”

“뭘 한 거냐.”

“제가 제 얼굴을 본 이들을 살려 보낼 거 같았습니까?”

미간을 찌푸렸다.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어내겠다고 대화한 게 실수였던 것일까.

설마 나와 대화하는 그 짧은 시간에 몬스터를 움직여 도망쳤던 연수생들을 다 잡아낼 줄은 몰랐다.

‘안일했다.’

내가 속으로 자책할 때, 옆에서 풀 밟는 소리가 들리더니, 무언가가 맹렬한 기세로 날아왔다.

그 무언가는 다름 아닌, 외뿔 늑대였다.

하지만 내가 1성 몬스터의 접근을 허락할 리가 없었다.

외뿔 늑대는 땅을 밟기도 전에 두 동강이 난 채 죽음을 맞이하였다.

“키아악!”

한 마리가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왼쪽과 뒤편에서 외뿔 늑대가 날아왔다.

서걱, 서걱.

“이깟 몬스터, 몇 마리를 불러온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질풍검에 달린 스킬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타이밍에 맞춰 검을 휘두르기만 해도 1성급 몬스터는 쉽게 죽어나갔다.

“몬스터와 싸우는 게 능숙하시군요.”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더 능숙하다.”

나는 말을 끝내자마자 보법을 사용하여 황연호에게 접근하였다.

황연호는 다가오는 나를 보더니 대뜸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러자 그의 회색 눈동자가 드러났다.

휙!

나는 그가 선글라스를 벗자마자 고개를 돌렸다.

파롤의 졸개들에겐 메두사의 눈, 혹은 석화의 눈이라고 불리는 스킬이 있었다.

메두사라는 몬스터가 가진 능력과 똑같은 능력을 가진 스킬이었다.

‘하지만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지.’

다른 헌터들이야 사람이 메두사의 능력을 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채 쉽게 당하겠지만 나는 달랐다.

지금 시점에선 그 누구보다 파롤을 상대한 경험이 많은 나였다.

파롤의 졸개들이 자주 사용하는 메두사의 눈을 피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얕았군.’

황연호의 눈을 피한 채 그의 발만 보고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공격이 얕게 들어갔는지 손맛이 별로였다.

“다, 당신은 도대체 뭡니까?”

내가 아쉬움을 느끼는 것과 별개로 황연호의 목소리에서는 당혹감이 묻어났다.

회심의 스킬을 아무렇지 않게 피해내고 빠르게 반격까지 했으니 당황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너를 죽일 사람이다.”

“…쉽게 당해주지는 않을 겁니다!”

황연호가 내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고무줄처럼 그의 팔이 쭉 늘어났다.

내가 검으로 그의 손을 쳐냈으나, 단번에 베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팔이 뱀처럼 내 검을 묶기 시작하였다.

‘나에게 검기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군.’

우우웅!

검에 내공을 주입하자, 검 위로 무형의 검기가 생성되었다.

“크악!”

황연호의 팔은 웬만한 몬스터보다 단단했으나 검기에는 얄짤없었다.

날카로운 절삭력에 큰 상처를 입은 그가 다급히 팔을 회수하였다.

물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내가 아니었다.

팔이 그의 몸으로 돌아가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여서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한 손이 비어있던 그는 옆구리에 상처를 남긴 채 뒤로 물러났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황연호의 목소리가 크게 흔들렸다.

검기까지 보고 나자 마침내 자신이 극도로 불리한 상황임을 알아차린 거 같았다.

‘이미 늦었다.’

나는 그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쉴 틈 없이 공격을 전개하였다.

근접할 때는 검기를 사용하여 공격하는가 하면, 그가 스킬을 써서 거리를 벌리려고 하면 질풍검에 담긴 스킬을 사용하였다.

황연호는 원거리에서도, 근거리에서도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결국, 상처투성이가 된 그는 다시 몬스터를 불러들였다.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벌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나는 몇 마리의 몬스터가 앞을 막든, 거침없이 그의 뒤를 쫓았다.

검기 한 번이면 일도양단이 가능하니 나의 발걸음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괴물 같은 것!”

막다른 길에 내몰린 황연호가 두려움에 질린 목소리로 외쳤다.

“누가 누구보고 괴물 같다고 하는지 모르겠군.”

메두사의 눈 때문에 볼 수는 없지만, 아마 지금 황연호의 얼굴은 괴물 그 자체일 것이다.

괜히 악신이 아닌 것인지, 파롤이 자신의 권속들에게 내려주는 스킬들은 그 부작용이 심각하기 그지없었다.

황연호처럼 연속으로 스킬을 사용하였다면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났을 터.

그의 얼굴도 당연히 끔찍한 형상으로 변해있을 가능성이 컸다.

“이제 그만 죽어라.”

“파롤께서 용서하지 않으리라!”

황연호는 마지막까지 되지도 않는 소리를 지껄이며 최후를 맞이하였다.

노인이 갑자기 비틀거리자, 비서로 보이는 이가 그를 부축하였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끄응.”

“여기 앉으십시오.”

“황 신도가 당했어.”

“…황 신도 말입니까?”

그 말에 비서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B랭크, 상성에 따라서는 A랭크 헌터도 상대할 수 있는 게 황연호였다.

그런 황연호가 당했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알아내고 와. 황 신도가 누구에게 당했는지를 말이야.”

비서는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DX 길드를 동원해야 할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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