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7화
<연수원 던전에서 발생한 이변 사태로 총 사망자 9명!>
<천현호 연수원 원장,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
신문 기사를 읽던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9명.
무려 9명이나 되는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아직 꽃을 피워 보지도 못했던 연수생들이 말이다.
‘나 때문이다.’
희생자들의 사진을 보며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원래라면 미래가 창창했을 헌터들이었다.
내게 목숨을 잃은 한진영도 어쩌면 인류를 위해 힘을 썼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 때문에 그들은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
내가 미래를 바꿨기 때문이었다.
‘더 강해져야 한다. 지금보다 훨씬 더…!’
힘.
내게 힘이 있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이성은이 그랬던 것처럼 DX 길드가 발호하자마자 그들을 제거했을 터.
이 사태는 결국에 내가 힘이 없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사용 가능한 카르마 - 31,840]
카르마 상점에서 내가 보유한 카르마를 확인하였다.
주현근을 구할 때 5,000 카르마.
그리고 파롤의 졸개인 황연호를 죽일 때 10,000 카르마를 얻었다.
거기에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16,840 카르마까지 합치자 내가 보유한 카르마는 무려 31,840이 되었다.
[만년지극혈보 – 150,000 카르마
인형설삼 – 200,000 카르마
묵혈정령실 – 300,000 카르마]
마음 같아서는 이런 영약들을 구매하고 싶었다.
설명에 적혀있는 대로라면, 단 하나만 구매해도 회귀 전의 내공을 거의 복구할 수 있을 것이리라.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였다.
설령 김수민을 권속으로 만들어 퀘스트 보상인 5,000 카르마를 추가로 받더라도 카르마 양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다른 영약을 구매해봤자 큰 무력 상승은 기대하기 어려워.’
지금의 나는 영약을 단기간에 과도하게 섭취한 상태였다.
10만 카르마 이상의 영약이라면 모를까, 그 이하의 영약이라면 큰 효율을 보기 어려웠다.
‘지금은 스킬을 구매할 때다.’
스킬보다 무공이 위대하다고 주장하던 내가 스킬을 구매하려는 게 역설적으로 느껴지긴 했다.
하지만 이미 나는 아르고스의 눈이라는 패시브 스킬의 효과를 체험한 바 있었다.
분명 무공은 그 어떤 스킬보다 유용하였다.
보법을 배우면 속도가 빨라졌고 검기를 배우면 공격력이 올라갔다.
기감을 배우면 은신 몬스터나 적의 기습을 감지할 수 있었다.
무공 하나로 여러 가지 스킬을 대신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무공만을 가지는 것보다 스킬도 함께 가지고 있는 쪽이 훨씬 좋지. 특히 그 스킬이 무공과 시너지 효과가 큰 스킬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고.’
무공과 시너지 효과가 큰 스킬은 분명히 존재한다.
예를 들면 마력 저장소라는 것이 그랬다.
마력 저장소는 내가 보유한 내공의 80%를 보관해주는 스킬이었다.
즉, 여분의 생명줄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이 밖에도 질풍검처럼 원거리 공격이 포함된 스킬이라든가, 부족한 방어력을 늘려줄 스킬도 존재하였다.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이다.’
마침내 고민을 끝낸 나는 하나의 스킬을 구매하였다.
[‘마력흡수’를 구매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마력흡수.
이 스킬이 바로 지금 내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스킬이었다.
연수원 던전에서 생긴 일로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나는 평소처럼 이능관리부로 출근하였다.
DX 길드 때문에라도 늘어지고 있을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오늘은 제가 격체전력을 사용하여 마력을 감응하지 못한 분들이 마력을 감응할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
격체전력.
본래는 1갑자 이상의 내공이 있을 때만 가능한 무공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는 마력흡수가 있었다.
내가 세운 이론대로라면 마력흡수가 격체전력의 효과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격체전력이 뭔가요?”
“자신이 가진 마력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 설명을 듣고 교육생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자신의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헌터가 태반이었다.
아니, 마력을 다루기는커녕 죽을 때까지 마력을 못 느끼는 헌터들도 적지 않았다.
마력을 각성했다던 헌터들도 이런 상황인데, 비각성자인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마력을 전달하는 기술까지 가졌다고 하니 사람들이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사실 내가 하려는 것은 내 마력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상대의 마력을 나에게로 가져오는 것이긴 하지.’
내가 마력흡수를 구매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무공을 입문하는 이에게 마력의 움직임을 느끼게 해주기 위함이었다.
자신의 몸속에서 마력이 빠져나간다면 아무리 둔한 이라도 마력의 움직임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첫 번째가 이렇게 남을 위한 이유라면, 두 번째 이유는 당연히 내 내공을 늘리기 위함이었다.
어차피 헌터들은 각자가 엄청난 양의 마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설령 마력을 뺏기더라도 그 과정에서 마력을 느끼기만 한다면 그게 오히려 이익이었다.
“이미 마력 감응에 성공하신 분은 저쪽에서 제가 알려드린 호흡법을 계속 익히시면 됩니다.”
신경철을 비롯하여 네 명의 교육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으로 갔다.
네 사람은 마치 승리자라도 되는 듯, 어깨가 많이 올라와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으며 가장 먼저 김재원의 등에다 손을 올렸다.
참고로 그는 마력을 감응하지 못한 이 중에 유일하게 D랭크 헌터였다.
아무래도 마력 사용과는 거리가 먼 패시브 스킬 보유자라 아직도 마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듯싶었다.
“마음을 단전에 두고 무심하게 관(觀)하고 계십시오. 그러면 자연히 마력의 흐름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리 말하며 김재원의 등에 손을 올렸다.
그러고는 어제 카르마 상점에서 구매한 마력흡수라는 이름의 스킬을 사용하였다.
‘이런 식인가.’
손을 통해 천천히 넘어오는 김재원의 마력을 느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흡수도 액티브 스킬인 터라 사용할 때마다 마력이 소모되었다.
하지만 소모되는 마력보다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마력이 훨씬 많았다.
‘근데 생각했던 것보다 효율이 낮군.’
나는 교육생에게 악영향을 끼치면서까지 마력을 가져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적당한 양만 빼가려고 했는데, 효율이 극도로 낮아서 20명 전원에게서 마력을 가져와도 내공으로 치면 1년이 채 안 될 거 같았다.
“느, 느껴집니다!”
다만, 내가 원했던 첫 번째 효과는 확실하게 발휘되었다.
격체전력처럼 내 내공을 주입한 것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반대이기에 더 효과가 클 수밖에 없었다.
“이 감각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김재원이 황홀한 표정으로 연신 감사 인사를 하였다.
처음 마력 감응에 성공해서 그런지 유난히 기뻐하는 기색이었다.
“다음 분, 앉아주십시오.”
다음 사람에게도 마력흡수를 사용했지만 역시 흡수되는 양은 많지 않았다.
이래서야 호흡법보다 조금 나은 수준밖에 안 될 거 같았다.
‘전투에도 쓸모없는데 흡수량도 이 정도라니. 무공이 아니었다면 가치가 없었을 스킬이었겠어.’
아마 그래서 카르마가 저렴했을 것이다.
액티브 스킬은 웬만하면 5만 카르마 이상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유현경처럼 마력이 많은 헌터에게 쓰면 효과가 조금 좋지 않을까?’
“하으응!”
시험 삼아 유현경에게도 마력흡수를 써봤더니, 이상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어떻습니까?”
“에, 예?”
“마력이 단전 쪽으로 향하는 게 느껴지십니까?”
참고로 그녀는 B랭크 헌터였기에 마력 감응은 진즉에 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내가 도와준 것은 마력을 단전 방향으로 인도해주는 것.
주현근도 그랬었지만, 사실 마력을 느끼는 것보다 단전을 만드는 것이 더 어려웠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내가 단전이 있는 곳을 알려준다면 쉽게 단계를 올라갈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느, 느껴져요.”
“그곳에다 집을 지어야 합니다.”
“집이요?”
“예. 아주 단단한 집입니다.”
단전 위치를 파악했으니 그다음은 일사천리였다.
망아지경에서 멈춰있던 그녀의 경지가 순식간에 응신입기혈을 넘어, 옥동쌍취의 경지에 올랐다.
하단전의 기혈이 열린 단계로서 이제 그녀는 자신의 의념으로 마력을 움직일 수 있는 경지가 된 것이다.
‘여기서 단전까지 만들고 나면 엄청나게 강해지겠지?’
그냥 마력을 움직이는 것과 단전을 통해서 마력을 움직이는 것은 그 결과가 천지 차이였다.
단전은 단순히 안전성만 증가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출력까지 배가시켜주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마력의 양이 엄청나군.’
원래도 나는 마력 감응력이 타고나서 상대가 얼마나 마력을 보유했는지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력흡수라는 스킬이 생기면서 정확도가 더 올라갔는데, 유현경의 마력은 실로 엄청났다.
내공으로 따지면 거의 2갑자 이상은 될 거 같았다.
사실상 마력 보유량만큼은 S랭크에 버금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마력이 그만큼 많으시니, 저도 조금만 가져가겠습니다.’
강의료(?)는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조금 얌체 같지만 죄책감은 느끼지 않기로 하였다.
“휴우. 드디어 오늘 수련도 끝이 났네요.”
그녀가 수건으로 땀을 닦은 채 후련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어떻습니까, 무공도 배워보니 재미있지 않습니까?”
“예!?”
“재미없었습니까?”
워낙 잘 따라와 주고 있어서 재미 좀 붙였나 했더니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하, 하, 하. 재미없을 리가요. 강해지는 게 눈에 뻔히 보이는데 재미없을 리가 없잖아요?”
“단전을 만들고 나면 확실하게 체감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해졌다는 것을.”
“그런가요? 벌써 기대가 되네요.”
“아무튼, 오늘 하루도 고생하셨습니다.”
“교관님이야말로 고생하셨어요. 이미 스무 명의 교육생들을 가르치고 왔는데 추가로 저까지 가르치셨잖아요.”
“가르쳐주겠다고 했으니 약속을 지켰을 뿐입니다.”
“고마워요, 정말.”
“하지만 앞으로는 지금처럼 1:1 교육은 어려울 거 같습니다.”
내 말에 유현경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죠. 교육생이 그렇게 많아지는데, 어떻게 저만 따로 과외를 받을 수 있겠어요.”
연수원의 연수 기간도 끝난 상황.
이제 곧 수백 명의 신입 헌터들이 이능관리부로 들어올 거다.
‘신입뿐만이 아니지.’
단순히 새로 들어온 신입들만 내게 무공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었다.
기존 이능관리부의 공무원 헌터들 역시도 이 ‘엘리트 헌터 교육’을 신청하였다.
그 숫자만 해도 무려 200명.
신입들도 200명이니 다 합하면 400명이나 됐다.
‘아주 정신없는 하루하루가 되겠군.’
엄청나게 힘들 것이다.
회귀 전, 내가 무공을 가르친 사람이 수천 명을 넘어 거의 만 명에 가까웠다지만, 그때는 기본적으로 무공을 접한 이들만이 내게 무공을 배웠었다.
기초 지식은커녕 마력을 느껴본 적도 없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마력흡수를 배워놔서 다행이야.’
재능이 있다면 내가 마력흡수를 사용하는 순간, 마력을 감지할 것이다.
그다음의 경지도 바로바로 밟을 수 있을 것이고 말이다.
마력흡수 덕에 쓸데없이 소모되는 시간을 확 단축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기초반과 심화반을 따로 운영해서 기초반은 현근이에게 맡기고 나는 심화반만 운영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