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화
이정은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다사다난했던 연수원 생활이 끝이 나고 마침내 이능관리부의 생활이 시작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무공을 배우겠군.”
-후후후, 제가 배우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저도 기대가 되는 기분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사람이 너무 많다는 점이야.”
그와 같이 무공을 배울 인원은 상당히 많았다.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았던 인원과 거의 엇비슷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능관리부의 지원율이 역대 최고라더니.’
박한새의 인기와 명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느껴졌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그와 똑같은 연수생 신분이었던 박한새가 이제는 모두가 주목하는 사람이 되었다.
“쟤가 이정이지?”
“어, 랭킹 1위라던 놈이야.”
“비실비실하게 보이는데 이번 기수는 약골들밖에 없나 봐?”
“저래 보여도 B랭크야.”
“B랭크라고? 미친. 그런 놈이 왜 이능관리부에 와?”
물론 박한새와 비교할 때만 일개 헌터일 뿐, 이정 역시도 평범한 헌터로 볼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박한새만 아니었으면 그는 역대급 신인이라 불렸을 몸이었다.
랭크도 무려 B.
근 몇 년간, B랭크에서 출발한 신인이 없었단 것을 생각하면 그는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역대급 신인이었다.
‘왔군.’
그때 한 사내가 강단 위로 올라갔다.
그는 바로 이 자리의 주인공, 박한새였다.
“반갑습니다. 저는 이능관리부에서 무공 교육을 담당한 박한새라고 합니다.”
박수 치는 다른 헌터들과 달리, 이정은 팔짱을 낀 채 박한새를 쭉 훑어봤다.
“뭔가 더 강해진 거 같은데?”
이정은 스스로 사람 보는 눈이 좋다고 자부하였다.
연수원에서 박한새의 비범함을 가장 먼저 알아본 것도 그였다.
관련 스킬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직감적으로 상대의 강함을 알아봤다.
그리고 그가 느끼기에 박한새는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강해진 느낌이었다.
-후후후, 확실히 강해진 거 같습니다.
“무공을 빨리 배우긴 해야겠어. 이러다 차이가 더 벌어질 거 같은 기분이야.”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인 그였다.
무공을 배우려는 이유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박한새를 넘어서기 위함이었다.
원래도 앞서 있던 박한새가 더욱더 앞으로 나갔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강렬한 위기감을 느꼈다.
-근데 참 신기합니다.
“어떤 게 신기하다는 거지?”
-다른 건 다 그렇다 치고, 마력을 어떻게 저리 많이 모았는지 저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무공을 배워보면 알게 되겠지. 박한새의 비밀들을 말이야.”
박한새의 비전을 습득하면 그때부터 유리한 것은 이정이었다.
박한새는 비각성자였고 이정은 헌터, 그중에서도 무려 B랭크 헌터였으니 말이다.
수백 명의 눈이 나를 향하였다.
어떤 이는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태연하게 내 소개를 끝마쳤다.
“아직 무공을 모르는 분들이 있을 거 같아서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무공 이야기를 꺼내자 사람들은 더욱더 부담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그들이 이 자리에 있는 이유가 바로 무공이었기 때문이다.
“무공이란 이런 겁니다.”
나는 뒷짐을 진 채로 보법을 펼쳐 순식간에 강단 우측으로 움직였다.
“거의 순간이동 같았는데?”
“저게 말로만 듣던 보법이라는 건가!”
너 나 할 것 없이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실제로 보면 누구라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스킬이 아닌 이상, 설명이 안 될 정도로 빠른 속도니까.
“이게 바로 보법입니다. 상대의 공격을 회피하거나 반격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스텝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워낙 반응이 좋아서 몇 번 더 보여주었다.
보법을 한번 펼칠 때마다 감탄사가 나왔는데, 그중에 몇 명은 심상치 않은 눈빛을 보냈다.
내 움직임을 자세하게 분석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이 보법 하나만 하더라도 저는 어지간한 스킬보다 낫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무공에는 이런 유용한 기술들이 아주 많습니다.”
몇 번을 자랑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최상급 성좌가 선택하고 한국에서 가장 강한 헌터였던 이성은이 선택한 게 무공이었다.
자부심을 가질 요인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런 기술을 배우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까?”
“시간이라.”
내가 잠시 말을 멈추었을 때, 한 사내가 손을 들더니 그 같은 질문을 던졌다.
“무공에도 재능의 격차가 존재합니다.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몇 달도 안 돼서 방금 제가 했던 보법을 펼칠 수 있을 것이고 재능이 없다면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뭐, 헌터라면 웬만해서는 몇 년까지 걸릴 일은 없을 것이다.
헌터는 기본적으로 마력이란 것을 보유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정말 재능이 없는 헌터라면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는 건 사실이었기에 나는 솔직하게 말하였다.
“에이, 뭐야.”
“그러면 평생 못 배울 수도 있다는 말 아닌가?”
“이거 사기 같은데. 괜히 나중에 우리가 재능 없어서 못 배운 거라고 구라 치는 거 아니야?”
“진짜 그럴 수도 있겠네.”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말을 들어서일까?
여기저기서 안 좋은 소리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당장 강해질 생각으로 이능관리부행을 선택했는데 몇 년을 투자하라고 하니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지만 제가 감히 장담하건대, 심화반에 들어온 분들은 3개월. 딱 3개월 안에 보법을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마력흡수가 있었기에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와, 3개월이면 가능하다고?”
“미친. 3개월 안에 스킬을 얻을 수 있다는 거잖아!”
“심화반에는 어떻게 들어가는 거지? 역시 돈인가?”
“말리지 마라. 공무원 하면서 벌었던 돈에 영끌까지 해서 무조건 심화반에 들어가고 만다.”
그제야 기대했던 반응이 나왔다.
겨우 3개월 안에 보법이라는, 스킬과도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무공 기술을 얻을 수 있다고 하니,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뭐 같은 보법이어도 내가 아까 보여준 보법과는 천지 차이겠지만 말이야.’
이제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하나였다.
어떻게 해야 심화반에 들어갈 수 있는가.
나는 그런 사람들의 의문을 너무도 간단하게 풀어주었다.
“한 번의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제가 마력을 불어 넣어드릴 테니, 마력의 움직임을 느껴보십시오.”
기준은 오직 재능.
오직 재능 하나만 가지고 심화반으로 선정하였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재능이란, 마력 감응력이었다.
마력흡수라는 스킬이 생기면서 이런 식의 활용도 가능해진 것.
“아! 마력이 느껴집니다!”
나에게 배운 호흡법으로 알렉시아 향초를 맡으며 마력 감응을 시도해도 단번에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주현근조차 1시간 가까이 걸렸을 정도니까.
하지만 마력흡수는 이런 면에서 사기적인 특성을 가졌다.
마력 감응력이 좋은 이에 한해서는 바로 마력을 느낄 수 있게 해줬으니까.
“저, 저도 마력을 느낀 거 같아요.”
“거짓말하시면 곤란합니다.”
“아, 아니에요. 정말 느꼈어요.”
“그러면 제가 마력을 어디로 보냈는지 맞혀보십시오.”
심화반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열의가 너무 커서 나를 속이려는 헌터도 몇 명 나왔지만, 어쨌든 재능 검사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등에다 스킬을 한 번씩만 써주면 끝이니 시간이 오래 걸릴 이유는 없었다.
‘역시 400명쯤 모이니 무공의 재능을 가진 헌터도 꽤 많구나.’
지금까지 마력 감응에 성공한 사람만 20명에 가까울 정도였다.
그리고 난 마력 감응에 성공한 사람만 눈여겨본 것이 아니었다.
마력흡수를 할 때 나는 교육생들의 마력 보유량도 체크하였다.
지금까지야 스킬 사용자 외에는 마력이 많고 적은 게 큰 의미가 없었을지 몰라도, 무공에서는 엄청난 의미를 지녔다.
나만 해도 내공만 있으면 몇 단계 경지를 뛰어넘을 수 있었으니까.
입문자나 초심자에 해당한다면 내공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10명 정도는 눈여겨볼 만하겠어.’
마력 감응에 실패해서 지금은 기초반에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력 보유량이 워낙 커서 미래가 기대되었다.
훗날 심화반에 올라온다면 고속도로 달리듯, 빠른 속도로 강자의 반열에 오를 것이다.
“오랜만이군.”
한 명씩 순번에 따라 마력 감응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익숙한 얼굴이 나에게 인사하였다.
그는 바로 연수원의 랭킹 1위인 이정이었다.
“정말 이능관리부에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당연한 거 아닌가? 이번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공을 배울 거다.”
결의에 찬 목소리였다.
그만큼 무공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다는 뜻이겠지.
“근데 이미 마력을 감응하셨는데, 왜 굳이 순번을 기다리셨습니까?”
“격체전력이란 것도 경험해보고 싶었다. 언젠가 나도 배우게 될 무공 기술이니 말이야.”
아무런 의미 없이 스킬을 한 번 더 사용하게 되었지만, 나로서도 손해 볼 것은 없었다.
이정의 마력을 자세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앉으십시오.”
그가 자리에 앉자, 나는 그의 등에 손을 대고 마력흡수를 사용하였다.
‘…역시 마력 보유량도 범상치 않구나.’
유현경 이상이었다.
S랭크 안에서도 꽤 높은 편에 속하는 마력 보유량이랄까?
‘만약 무공의 재능까지 갖추었다면 단번에 무시무시한 고수가 되겠어.’
살짝 경각심이 들었다.
이정은 이미 배후령이 있는 인물이었다.
비록 그 배후령이 악과는 거리가 먼 성향을 지녔다고 해도 성좌는 성좌였다.
그가 어떤 변수가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타인의 마력이 내 몸속을 헤집고 다니다니. 뭔가 기분이 이상하군.”
“익숙해져야 할 겁니다. 앞으로 자주 경험할 것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기술이 가능한 거지? 웬만한 마력으로는 엄두도 안 날 것처럼 보이는데 말이야.”
“…무공을 배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날이 올 겁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정은 끝까지 의문을 해결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내 강함의 비결은 무공 하나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유현경은 박한새를 보며 눈을 빛냈다.
‘어떻게 저리 능숙할 수가 있을까?’
400명이나 되는 인원을 갑자기 교육하려고 하면 누구나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조교라고 할 만한 인원도 거의 없는 상황.
박한새는 사실상 혼자서 400명을 교육해야 했다.
하지만 박한새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400명의 인원을 통제하였다.
기초반과 심화반을 나누는 과정도 더할 나위 없이 매끄러웠고 말이다.
‘지금도 이런데, 박한새 교관이 나중에는 어느 위치에 서게 될까? 10대 길드의 주인들보다 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을까?’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김인성 국장]
“전화 받았습니다.”
-지금 상황 어때?
“아직까진 특별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어요.”
-자존심 강한 헌터가 400명이나 모였는데 다 얌전하단 말이야?
국장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여전히 무공을 불신하는 그로선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수백 명의 헌터가 일개 비각성자의 지시를 따르는 상황이었으니.
하지만 무공의 가치를 생각하면 그리 이상하게 볼 일도 아니었다.
“지금 무공을 교육받으러 온 인원은 전부 자원해서 온 인원들이에요. 무공의 가치를 아는데 괜한 행동을 할 리가 없죠.”
-쯧쯧.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국장의 혼잣말을 들으며 유현경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한심하게 느껴졌다.
-아무튼, 무슨 일이 생기면 즉각 보고해. VIP께서도 주목하고 있으니까.
그 말을 듣고 유현경은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국장의 입에서 나올 VIP는 한 명뿐이었다.
다름 아닌, 대통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