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화
내공을 갈무리한 나는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는 고정희에게 물었다.
“스킬 수련은 잘 하고 계십니까?”
나는 48명의 교육생 중 오직 그녀에게만 스킬 수련을 주문하였다.
그녀의 스킬은 궁극적으로 무공 수련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결계를 혹시 몇 시간까지 유지하실 수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내가 스킬의 지속 시간을 묻자, 그녀는 수줍은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다른 조건을 추가하지 않는다면, 네 시간 정도 유지할 수 있어요.”
“크기는 다섯 평 정도라고 하셨죠?”
원룸 정도의 크기에서 네 시간 동안 유지되는 결계라.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였다.
내가 원하는 결계 스킬은 훨씬 더 광범위하고 유지 시간도 길어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단전을 만들기만 한다면 유지 시간은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늘어날 거다.’
단전의 효과는 실로 어마어마하였다.
단순하게 전신의 마력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는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력의 출력을 배가시켜주는 효과도 있었다.
‘어쩌면 반영구적인 결계도 가능하겠어.’
고정희가 주기적으로 마력을 주입하기만 해준다면 결계를 반영구적으로 유지하는 게 충분히 가능하였다.
그리고 결계가 반영구적으로 지속이 된다면 나는 실로 엄청난 것을 할 수 있었다.
그 엄청난 것은 다름 아닌, 진법 설치였다.
‘마력 집적진만 설치해도 무공 수련의 효과는 더 오르게 될 거야.’
진법은 무공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근간에는 서로 상통하는 원리가 존재하였다.
실제로 진법의 창시자도 나에게 배운 무공이 원형이라고 인정한 바 있었다.
어쨌거나, 내가 아는 진법이 몇 개 존재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마력 집적진이었다.
미래에서는 웬만한 길드라면 무조건 설치하는 게 바로 마력 집적진이었는데, 대지의 마력을 한 곳에 집중하는 진법이었다.
진법이 설치된 공간은 마력이 풍부하기에 당연히 무공 수련에 굉장한 도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유용한 진법인 만큼, 설치하는 게 대단히 까다로웠다.
특히나 진법의 특성상 외부의 변수가 개입할 경우, 심지어 바람이 불어 물건의 위치가 아주 약간이라도 바뀔 경우 진법이 깨지고는 했다.
그렇기에 결계 스킬이 꼭 필요하였다.
결계만 있으면 외부의 변수를 차단하는 게 가능해질 테니까.
‘마력 집적진을 위해서라도 고정희 헌터의 성장을 최우선적으로 돕는 게 좋겠어.’
편애한다는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었다.
고정희가 성장하면 모든 교육생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
그러니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으리라.
“정희야.”
김민경이 우아한 목소리로 고정희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고정희는 무슨 생각에 빠진 것인지, 자신의 이름을 듣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런 고정희의 모습에 김민경은 속으로 참을 인을 새기고 다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야! 고정희!”
“네, 네? 주사보님?”
화를 내고서야 뒤늦게 그녀의 말에 반응하는 고정희였다.
김민경은 그런 고정희의 모습에 짜증이 났지만, 애써 참아내고서 물었다.
“너, 어떻게 한 거야?”
“어, 어떻게 하다니요?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
“교관 말이야. 교관이 너에게만 유독 관심을 보이는 거 같던데?”
“예? 그, 그럴 리가요!”
김민경의 말에 고정희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사실 고정희도 내심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다른 사람에게까지 이런 말을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박한새가 그녀에게 관심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어디까지나 그녀의 망상이었기 때문이다.
“네가 생각하기에 교관이 너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뭘 거 같아?”
“과, 관심을 보이다니요.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그럼 아까 교관이랑 무슨 대화 했었는데?”
고정희는 그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박한새와 무슨 대화를 했는지 떠올린 것이다.
“…그, 스킬 이야기밖에 안 했어요. 교관님께서 저의 스킬에 관심이 많은 거 같더라고요.”
말하고 보니 박한새와는 정말 스킬 이야기밖에 안 한 거 같았다.
좋아하는 취미가 뭔지.
이상형이나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남녀 사이에 있어야 할 그런 대화들은 1도 나누지 않았던 것이다.
“그냥 스킬 이야기밖에 안 했다고?”
“네….”
“너 스킬 별거 없잖아?”
그 말에 고정희는 쓴웃음을 지었다.
업계에서 그녀의 스킬에 대한 인식은 그야말로 형편없었다.
나름 액티브 스킬인데도 그녀의 랭크가 E에 불과하다는 것만 봐도 그랬다.
어쩔 수 없는 것이, 결계는 전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유지 시간이 짧아서 안전 구역으로 쓸 수도 없었다.
범죄 용도로 쓸 게 아니라면, 웬만한 패시브 스킬만도 가치가 못한 것이다.
“그, 그건 그렇지만.”
“아무리 봐도 스킬은 핑계인 거 같은데. 그럼 왜 얘한테 관심을 보이는 거지?”
김민경은 고개를 푹 숙인 고정희를 분석하듯 예리한 눈으로 한참을 쳐다봤다.
박한새가 왜 그녀를 놔두고 고정희 같은 여자에게 관심을 표하는지, 김민경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미모로 보나 몸매로 보나 훨씬 더 훌륭한 것은 그녀였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김수민도 조용한 성격이었지.’
특별 수강생, 김수민.
김수민은 처음 들어왔을 때 교육생들로부터 엄청난 관심을 받았었다.
엄청난 미모에 유일한 화영 길드의 길드원이었으니 주목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김수민을 향한 관심은 급격히 식어갔다.
말이 없어도 지나칠 정도로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남자들이 수작을 부릴 때는 아예 대꾸도 하지 않아, 얼음 마녀 같은 유치한 별명이 붙기도 하였다.
‘한새 씨는 얌전한 여성을 좋아하는 걸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다.
박한새의 성격 자체도 필요할 때 필요한 말만 하는 성격이었으니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앞으로 패턴을 바꿔야겠는데?’
일단 메이크업부터 바꿔야 할 거 같았다.
지금은 너무 화려한 화장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오늘은 집에 가서 수련하지 마시고 푹 쉬십시오.”
신경철은 원래 누구의 말도 잘 듣지 않았다.
반골 기질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그가 따르는 사람이 생겼으니, 그가 바로 박한새였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오늘 같은 날은 하루 정도 쉬어줘야 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박한새의 지시를 받은 신경철은 오랜만에 친구들을 불렀다.
어쩔 수 없이 휴식을 취해야 하니, 친구들과 술이라도 한잔하려는 것이다.
“네가 어쩐 일이냐.”
“그러게. 무슨 바람이 불었대, 요즘 통 보이지 않더니.”
“경철이, 잠잠해진 뒤로 심심해서 죽는 줄 알았다니까. 경철이 나오는 뉴스 보는 재미로 살았는데 말이야.”
“뉴스도 뉴스지만, 경철이가 잠잠해지고 나서 동네에 담배 피우는 고딩들이 너무 많아졌어.”
“맞다, 경철이가 일진 전문이었지?”
“오죽하면 일진 브레이커라고 불렸겠어. 푸하하하!”
신경철은 한마디도 안 했는데 그의 친구들은 그를 안주 삼아 신나게 이야기하였다.
평범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그였기에, 날 잡고 이야기해도 밤을 새울 정도로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그런 친구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신경철이 불쑥 말을 꺼냈다.
“너희들 무공이라고 들어봤냐?”
“무공? 설마 요즘 핫한 그거 말하는 거야?”
“경철이 너 설마 무공 배우냐?”
“그래 인마. 내가 요즘 무공에 푹 빠져있다, 이 말이야.”
신경철은 팔을 들며 알통 자세를 취하였다.
그러자 우락부락한 그의 근육이 드러났다.
무공과는 전혀 관계없는 그의 순수 근육이었다.
“와, 주변에서 무공 배운다는 사람 처음 본다.”
“신경철, 이 새끼가 무공이라니. 너무 안 어울리는데?”
“그래서 무공은 어떤데? 효과가 있기는 있어?”
무공을 배운다는 그의 한마디에 친구들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역시 박한새 교관님의 인기는 엄청나시군.’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신경철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효과 있냐고? 딱 말할게. 이거, 개쩐다. 무공 안 배우면 이제 사람 취급을 안 하는 시대가 올 거야.”
“얘가 그냥 오버하는 거 아니야?”
“경철아, 정확히 뭐가 좋아졌는데?”
뭐가 좋아졌냐는 질문에 신경철은 자신의 근육을 가리켰다.
“일단 더 세졌고, 반응속도도 더 빨라졌어. 시력이랑 청각 같은 다른 감각도 훨씬 좋아졌고 말이야.”
“뭐야, 미묘한 것들뿐이잖아?”
“그냥 플라시보 효과 아님?”
“그러게. 얘 그냥 사기당한 거 같은데.”
친구들의 반응에 신경철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무공의 위대함을 모르는 친구들이 그저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젠장. 지금은 증명할 수 있는 게 없잖아.’
주현근처럼 보법이라도 사용할 수 있다면 바로 증명이 가능했을 거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어떤 스킬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의 그는 보법은커녕 단전도 만들지 못한 상태였다.
“저기요.”
신경철이 답답한 표정을 지을 때,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저 말입니까?”
“네네. 방금 대화하는 걸 우연히 들었는데, 무공 아카데미에서 교육받고 계시는 공무원 헌터 맞으신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헌모TV라는 너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데, 실례가 아니라면, 인터뷰가 가능할까요?”
“어떤 인터뷰입니까?”
“무공에 관해서 궁금한 게 있어서요.”
신경철은 잠시 고민하였다.
무공에 관한 정보를 사람들에게 이야기해도 좋을지 판단이 안 섰던 것이다.
‘뭐 상관없겠지? 어차피 교관님도 이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으셨으니 말이야.’
박한새는 하면 안 되는 것은 확실하게 안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아무 언급이 없었으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으리라.
물론 무공의 원리나 호흡법 같은 것은 공개하면 안 되겠지만 말이다.
신경철이 인터뷰 요청을 수락하자, 그가 카메라를 들고서 물었다.
“무공을 배운 지 얼마나 되셨나요?”
“한 달이 조금 안 됐습니다.”
“혹시, 효과가 있었나요?”
역시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이거였다.
효과가 있는가.
물론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신경철은 답답함을 느꼈다.
‘진짜 무알못들 답답해 죽겠네.’
무공의 위대함을 왜 모르는 것인지 그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원리를 들어보면 실로 명쾌하여 무공의 위대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 말이다.
“효과는 당연히 있습니다. 육체 능력이 엄청나게 발전했다는 객관적인 지표도 있습니다.”
“그래요? 그럼 혹시, PENT라고 아시나요?”
“그게 뭡니까?”
신경철은 속으로 ‘MBTI 같은 건가?’라고 중얼거렸다.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정확한 명칭은 펜테리움인데, 일종에 각성제입니다. 헌터 전용 각성제죠.”
“그렇습니까? 근데 그건 왜?”
“복용하는 것만으로 힘이 강해진다고 소문이 자자한데, 한번 보시겠습니까?”
너튜버가 영상을 하나 틀어줬다.
SNS의 짧은 쇼트 영상이었는데, ‘억ㅋㅋㅋ D랭크 원딜이 B랭크 탱커 팔씨름 바름 ㅋㅋㅋㅋ’라는 제목이었다.
그 영상을 보고 신경철은 같잖다는 듯 코웃음 쳤다.
‘원딜이 자랑할 게 없어서 힘자랑이라니.’
저런 식의 힘자랑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혹시 이 약과 비교했을 때, 뭐가 더 효과가 좋다고 보십니까?”
“비교할 가치도 없습니다.”
“정확하게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어쩌면 제3자가 무공을 바라보는 눈도 이와 비슷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공에는 이론적인 바탕이 분명 존재한다.’
박한새가 만든 위대한 무공이, PNT인지, PENT인지 이름도 기억하기 어려운 각성제 따위와 비교당하다니.
그로선 무척이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깟 불법 의약품을 어디와 비교하는 겁니까? 우리 박한새 교관님께서 만드신 무공은 그런 싸구려와 비교할 대상이 아닙니다.”
신경철의 그 같은 말을 듣고 너튜버는 눈을 반짝였다.
지금 그의 눈빛은 기자가 특종을 발견했을 때의 눈빛과 똑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