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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44화 (44/275)

#044화

“제 스킬이 필요하다고요?”

처음 박한새가 그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고정희는 무척이나 부담스러웠었다.

도움을 줬다가 괜히 실수라도 할 거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한새의 부탁은 의외로 간단하였다.

그녀의 스킬인 결계를 특정 장소에서 사용해달라는 거뿐이었다.

“어렵겠습니까?”

“아, 아니요! 그 정도는 얼마든지 해드릴 수 있어요!”

“마력을 계속 쏟아야 해서 수련에 큰 지장이 생길 겁니다.”

박한새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 정도는 상관없었다.

솔직히 지금 그와 대화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다른 그 어떤 보상도 필요 없게 느껴질 정도였다.

“괜찮아요!”

“나중에 시간이 촉박해지면 저희와 하루 종일 붙어 다녀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눈을 번쩍 떴다.

박한새와 하루 종일 붙어 지낼 수 있다니!

마치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생각이 바뀌셨습니까?”

“아, 아니요! 저는 상관없어요. 하루 종일 같이 지내는 거. 오늘 당장부터 가능해요!”

“고맙습니다.”

“아, 아니에요!”

박한새의 감사 인사에 그녀는 헤실헤실 웃었다.

그와 붙어있을 수 있단 사실만으로도 기쁜데 감사 인사까지 받다니.

살면서 오늘만큼 기쁜 순간이 또 있었나 싶었다.

“신경철 헌터는 오늘부터 3주간 스파르타식으로 교육하겠습니다. 힘들어도 부디 잘 견뎌내시길 바랍니다.”

박한새로부터 이와 같은 말을 들었을 때, 신경철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무공 수련이라는 게 일반인들이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일반인들은 무공을 모르니 무식하게 몸을 학대하며 육체를 단련할 거라고 생각하였다.

모래주머니를 차고 수련한다든가.

몇 날 며칠을 달리기만 한다든가.

하지만 그런 식의 수련은 없었다.

오히려 박한새가 강조하는 것은 마음공부.

정확하게 말하면, 호흡법이었다.

‘좀이 쑤시긴 해도 그 정도는 충분히 견뎌낼 수 있다.’

앉아서 호흡법에 열중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으리라.

하여 그는 자신감 있게 대답하였다.

“맡겨만 주십시오! 절대 기대를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흐뭇하게 웃는 박한새를 보며 신경철도 따라 웃었다.

하지만 그가 웃을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수련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조시는 겁니까?”

“마력을 움직이십시오. 오늘 안에 단전까지 가야 합니다.”

“예, 예!”

집중력을 계속 유지하는 것.

그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력 응용이라는 위험천만한 일이라면 집중력이 더 빠르게 소모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박한새는 그의 정신이 풀어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제가 정신이 번쩍 들게 해드리겠습니다.”

조금 집중이 풀릴 때면, 박한새가 그의 어깨 부위를 손가락으로 꼭 찔렀다.

그 유명한 점혈이란 것을 사용한 것인데, 신경철은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다른 효과를 체험하였다.

“끄아아악!”

불로 고문을 당하면 이런 고통일까?

잠깐이었지만 신경철은 지옥을 경험한 기분이었다.

‘시발! 점혈은 범죄자 잡는 스킬 아니었냐고!’

대신 한 가지 효과는 확실하였다.

박한새의 말처럼, 정신이 번쩍 든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정신력은 위대합니다. 이 정도의 피로도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신경철은 단 한시도 쉬지 않고 단전을 만드는 것에 열중하였다.

물론 그는 자신의 정신력이 위대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그 고문 같은 점혈 공격이 두려웠을 뿐이었다.

“집중력이 또 흐트러지셨습니다.”

“히익!”

박한새의 말을 듣고 신경철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집중력을 계속 이어가려고 했는데, 단기 목표를 이뤄내서 그런지 저도 모르게 집중이 풀린 듯하였다.

‘점혈만은 안 돼!’

불로 고문당하는 고통을 느끼기 싫어 신경철이 억지로 몸부림을 치는데, 박한새가 점혈을 찌르는 대신 옆에 있는 고정희를 거론하며 말했다.

“새벽에 힘들게 나와서 고생하시는 고정희 헌터님을 생각해서라도 조금 더 집중해주시길 바랍니다.”

“아, 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그 말을 듣고 신경철은 울컥하는 기분을 느꼈다.

‘고생하기는 뭘 고생합니까! 교관님은 저 표정이 고생하는 표정으로 보이십니까!?’

고정희는 환한 표정을 지은 채 박한새 옆에서 가만히 서있었다.

여기서 그녀가 하는 일이라곤 박한새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시간에 맞춰서 결계에 마력을 불어넣는 일뿐이었다.

고생이라고는 1도 안 한 채 오히려 사심이나 채우고 있다는 말이었다.

‘제기랄. 교관님은 여자들에게 인기도 엄청 많으시네.’

순간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도 남자답게 잘생긴 데다가, 능력적인 면에서는 S랭크 헌터도 부럽지 않았다.

그가 봤을 때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인 남성이었다.

“또 집중력이 흐트러지셨습니다.”

신경철은 ‘아차!’ 하고 다시 정신을 집중하였다.

하지만 박한새가 그런 신경철을 말려 세웠다.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조금 더 할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일단 오늘은 옥동쌍취의 경지를 넘어섰다는 것에 자축하도록 합시다.”

옥동쌍취를 넘어섰다는 것은 단전에 내공을 쌓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즉, 신경철은 오늘부로 단전을 가진 진정한 무인이 된 것이다.

“교관님. 저 이제 많이 강해졌습니까?”

그가 느끼기엔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해진 거 같았다.

19살 적에 처음 마력을 각성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만큼 단전을 만듦으로써 생긴 효과는 엄청 났다.

“궁금하시면 한번 시험해보는 것도 좋을 겁니다.”

“시험이라면?”

“이정 헌터와 한번 대결을 해보십시오.”

신경철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안 그래도 마음에 안 들던 놈이었다.

그런데 박한새가 이렇게 나서서 이정과의 대결을 말해주니 그로선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놈은 아직 단전도 제대로 못 만든 상태야. 내가 훨씬 유리해!’

박한새 덕분에 경지를 한참 앞서가게 되었으니, 이 기회를 이용하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이정은 혀를 찼다.

“신경철, 그놈만 아니었어도 진즉에 다음 경지로 넘어갔을 텐데.”

-후후, 지금도 빠르게 성장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박한새가 붙어있었다면 훨씬 더 빠른 성장이 가능했을 거다.”

신경철이 문제였다.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었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그에게 피해를 입힐 줄은 몰랐다.

‘놈이 나에게 경쟁의식을 갖는 것도 그저 우스울 뿐이지.’

이정은 늘 그렇듯 신경철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경쟁자는커녕, 그저 주제도 모르고 깝치는 자로 볼 뿐이었다.

신경철이 주천화부란 경지에 먼저 진입했다는 말을 듣고도 이 같은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기회를 빼앗아서 성장했다는 생각에 신경철을 보는 눈이 더 안 좋아졌다.

“야. 한판 붙자.”

“뭘 모르는 척이야. 남자 대 남자로서 한판 붙자는 거다!”

순간 이정은 신경철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신경철이 교육생 중 가장 빠른 성취를 보인다는 사실은 이정도 인정하고 있었다.

그 역시 아직은 주천화부의 전 단계인 옥동쌍취에 머물러있었으니까.

하지만 주천화부도 많고 많은 단계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저 단전의 토대가 만들어졌을 뿐, 단전 내부는 여전히 텅텅 비어있는 상태라는 뜻이다.

“뭔 자신감이지?”

“단전을 만들어 진정한 무인이 되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확실하게 알려주마.”

같잖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이정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 역시 신경철을 밟아주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교관의 허락을 받아 와. 그럼 언제든 상대해줄 테니.”

“이미 허락하셨으니 바로 덤벼, 이 새끼야!”

박한새가 두 사람의 대결을 찬성했다고?

‘무공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긴 한가 보군. 하지만 B랭크 헌터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만만한 존재는 아닐 거야.’

“선공은 양보하지.”

이정은 여유롭게 말했다.

주제 파악을 하게 만들려면, 압도적인 실력 차이를 보여줘야 했다.

그렇기에 그는 신경철이 스스로 포기할 때까지 공격을 시도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아무리 공격해도 절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위함이었다.

이정의 도발에 신경철은 콧김을 뿜어냈다.

그러더니, 더 참지 않고 기합을 내지르며 이정에게 달려들었다.

‘스킬도 사용하지 않고 냅다 덤비는군.’

무인 코스프레를 하더니, 자신이 스킬을 가진 헌터라는 사실을 잊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주먹을 들고 덤벼드는 신경철의 모습을 보며 코웃음 친 이정은 마치 박한새의 보법을 흉내 내듯 뒷짐을 지고 뛰었다.

두 사람의 거리는 순식간에 10m 가까이 벌어졌다.

신경철은 닭 쫓던 개의 표정을 지은 채 욕설을 내뱉었다.

“쥐새끼 같은 놈!”

“네가 느린 거다.”

그가 다시 덤벼들었다.

이번에는 이정도 거리를 벌리지 않았다.

마치 묘기를 부리듯, 뒷짐을 진 채로 그의 공격을 피해낼 뿐이었다.

부우웅! 부우웅!

스치기조차 하지 않았다.

이정의 속도를 잡아내지 못한 채 열심히 공기만 때렸다.

“지루하군. 공격은 다 끝났나?”

“닥쳐!”

신경철은 이를 악물고서 단전에 의념을 집중하였다.

그러자 오감이 극대화되는 기분을 느꼈다.

지금이라면 이정의 속도를 따라잡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수….

하지만 신경철의 기대는 더 빨라진 이정의 속도를 보고 여지없이 무너졌다.

‘더 볼 것도 없겠어.’

이정은 차가운 미소를 지은 뒤, 신경철을 향해 선언하였다.

“이제 반격을 시작할 테니, 막을 수 있으면 막아봐라.”

주천화부의 단계에 접어들면 동체시력과 반사신경이 소폭 상승하였다.

하지만 소폭 상승한 동체시력으로는 이정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커억!”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신경철은 제대로 된 저항 한번 못 해보고 일방적으로 얻어맞았다.

“역시 B랭크와 D랭크의 차이인가.”

“무공의 한계일 수도 있지.”

“에이, 이정도 무공 배우는 상황인 것은 똑같잖아.”

“신경철이 훨씬 더 오래 배웠고 심지어 지금은 1:1 과외까지 받고 있는데?”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본 교육생들은 스킬의 벽을 느끼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너무나 압도적인 이정의 모습은, 무공을 배워도 절대 꺾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결국 어떤 이변도 발생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대결은 이정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이 났다.

‘너무도 당연한 결과다.’

상위 헌터가 괜히 상위 헌터겠는가.

겨우 며칠 수련한 것으로 상위 헌터에게 덤비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내가 봤을 때, 괜한 짓을 한 거 같은데. 후회하지는 않나?”

“왜 괜한 짓이라고 생각합니까?”

박한새는 정말 모르겠다는 듯, 태연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이정은 거의 기절하다시피 바닥에 쓰러져있는 신경철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한테 처발렸으니 의욕이 크게 줄어들 거다. 신경철 외에 다른 교육생들도 사기가 낮아질 거고.”

그는 진심으로 의아하였다.

박한새는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대결을 허락해주었을까?

이렇게 일방적인 결과가 나올 것은 뻔히 예상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너무 방심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지금은 일방적이지만…. 며칠 뒤엔 결과가 조금 달라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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