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5화
며칠 뒤엔 대결의 결과가 달라질 거라는 박한새의 말에 이정은 조소를 흘렸다.
‘B랭크와 D랭크의 간격이 그렇게 빨리 좁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만약 그런 거라면 오만일 뿐이다.’
무공의 우수성은 그도 인정하였다.
그 역시 옥동쌍취의 경지에 접어들면서 감각이 발달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력이 움직이는 것도 훨씬 수월해졌고.
하지만 그가 얻은 성취는 그 정도뿐이었다.
B랭크 헌터였던 그가 A랭크가 되거나 하는 기적은 없었다.
그저 같은 B랭크 헌터에서 조금 더 감각이 좋고 조금 더 민첩한 B랭크 헌터가 된 것에 불과하였다.
‘주천화부나 그다음 단계에 들어가도 마찬가지겠지.’
아마 박한새에게 본격적으로 기술을 배우기 전까지는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생각됐다.
그렇다고 검기나 보법 같은 것을 단기간에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도 않았고 말이다.
‘며칠이 아니라 몇 주가 지나더라도 나를 놀라게 할 수는 없을 거다.’
하지만 이 같은 그의 생각은 사흘이 채 지나지 않아서 바뀌었다.
“피할 수 있어! 이제 나도 네 공격을 피할 수 있다고!”
처음 대결했을 때만 해도 이정의 움직임에 전혀 반응하지 못했던 신경철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정은 평범한 스피드스터와 궤를 달리하였다.
이정은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유연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의 스킬 본질이 몸을 가속시키는 게 아닌, 시간을 가속하는 것이기에 가능한 움직임이었다.
그래서 더 종잡을 수 없었는데, 어떻게 된 건지 신경철이 이정의 움직임을 꿰뚫어 보기 시작하였다.
‘겨우 사흘 만에 이 정도로 바뀌었다고?’
이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물론 질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신경철이 그의 공격을 몇 번 피한 것은 사실이나, 결과 자체는 이전과 똑같았다.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으며 끝이 난 것이다.
하지만 신경철의 말도 안 되는 성장세는 이정의 속내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박한새의 첫 번째 제자라던 주현근의 실력을 금방 따라잡을지도 모르겠군.’
연수원에서 그가 인정하는 몇 안 되는 헌터가 바로 주현근이었다.
그런데 이정이 전혀 염두에도 두지 않았던 신경철이 그 주현근과 비견되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다.
“신경철 헌터의 실력이 어때 보였습니까?”
내 질문에 이정은 침묵으로 대답하였다.
그의 얼굴을 보니 심경이 대단히 복잡해 보였다.
“아직은 실력 차이가 압도적이란 거, 저도 인정합니다. 이정 헌터는 아직 주력 스킬도 사용하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그건 신경철도 마찬가지 아닌가?”
“신경철 헌터는 사용하지 않은 게 아니라, 못 한 겁니다.”
D랭크 헌터가 스킬을 잘 활용해봤자 얼마나 잘 활용하겠는가.
아무리 잘 활용해도 이정의 스피드를 따라잡을 수준은 절대 아닐 것이다.
‘물론 더 높은 무공의 경지에 오르면 스킬 활용 능력도 확 오르겠지.’
무공은 단순히 육체 능력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육체 능력의 성장은 부차적이었다.
내공 즉, 마력의 효율이 늘어나는 게 무공의 가장 큰 효과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그 말은 스킬이 더 강해진다는 뜻을 의미하기도 했다.
“어떻게 단기간에 그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는 거지?”
“간단합니다. 마력을 전부 내공으로 전환하기만 하면 됩니다.”
“주천화부라는 경지를 벌써 돌파했다는 건가?”
이정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그는 아직도 옥동쌍취에서 헤매고 있는데 신경철은 한참을 앞서가고 있다 하니, 기분이 좋을 수는 없을 거다.
“예. 신경철 헌터가 이를 악물며 수련에 열중하니, 빠른 성과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게 노력으로 불가능하단 건 나도 알고 있다. 당신이 도왔기에 가능한 일이겠지.”
어깨를 으쓱하였다.
굳이 부정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건 다 이해하겠다. 근데 왜 신경철의 마력이 늘어난 거지?”
마력이 늘어난 것을 눈치챘다니.
역시 이정의 마력 감응력은 상당하였다.
“이것저것 투자를 했습니다.”
“투자?”
“다음에 이정 헌터에게도 기회가 있을 겁니다.”
나는 더 설명하지 않고 그렇게만 말했다.
어차피 지금 설명해봤자 신경철에게 했던 지원을 이정에게 똑같이 해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신경철이 운이 좋았지. 영약에 마력 집적진까지, 온갖 혜택을 다 받았으니.’
10년 뒤에도 이렇게 대대적인 지원을 받으며 무공 수련을 하는 사람은 얼마 없을 텐데 신경철은 참으로 행운아가 아닐까 싶었다.
물론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지만 말이다.
“한새 형. 서용석이 또 영상을 올렸는데요?”
나는 시간이 지나면 신경철을 향한 관심이 줄어들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야 신경철은 유명해질 이유가 없는 평범한 공무원 헌터였기 때문이다.
뭐, 워낙에 사고를 많이 쳐서 ‘평범한’이라는 수식어가 옳은지는 의문이긴 했지만 어쨌든 유명인은 절대 아니었다.
약쟁이보고 약쟁이라 한 발언 때문에 오랫동안 화제가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보법이라고? 그딴 잔재주, 내 앞에서는 절대 안 통해.
하지만 신경철은 자신의 대결 상대인 서용석 때문에 끊임없는 관심을 받게 되었다.
조금 조용해지려고 하면 서용석이 어그로를 끌었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 원거리 딜러라고 하지 않았어요?”
서용석의 영상을 지켜보던 주현근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SNS 스타였던 서용석은 너튜브에도 진출하여 거의 하루에 한 번꼴로 영상을 올렸다.
주로 자신의 우월한 신체 능력을 자랑하는 영상이었는데, 우습게도 스킬에 대한 영상은 하나도 올라오지 않았다.
“기존의 스킬은 이제 사용할 수 없을 거다.”
“예? 스킬을 사용하지 못한다고요? 왜 그렇게 되는 거죠?”
“서용석이 복용하고 있는 약이 그런 약이니까.”
펜테리움에는 많고 많은 부작용이 있지만, 그중 한 가지가 바로 스킬이 퇴화하는 것이었다.
스킬을 아예 못 쓰게 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 위력이 약해졌다.
‘물론 저놈이 소모품이라 그런 거지만.’
DX 길드, 정확히는 악신 파롤의 무서운 점은 ‘마인’을 양성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전에 연수원의 던전에서 상대했던 황연호 같은 이가 대표적인 마인이었는데, 이들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 보기 어려웠다.
단순히 악마 같은 성격을 가졌다, 그런 비유가 아니었다.
생식 능력이 존재하지 않았고 극한 조건에서도 오래 생존하였다.
더군다나 인간을 본능적으로 증오하고 멸시하였다.
이러니 그들을 인간이라 부르지 않고 마인이라 불렀다.
“스킬이 없다면 이기기 쉽겠는데요?”
주현근의 말에 나는 턱 끝을 쓰다듬었다.
영상만 보고 판단했을 때, 확실히 승산은 우리에게 있었다.
아니, 승산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압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저쪽에서도 서용석에게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는 게 신경 쓰이는군.’
서용석이 신경철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
아마 그것은 서용석 개인의 의지가 아니었을 거다.
그 같은 결정의 뒤에는 DX 길드가 있었을 터.
그리고 DX 길드가 신경철을 상대로 서용석을 내보낸 것은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었다.
‘이러면 나도 더 투자를 하는 수밖에.’
파롤이 ‘마인’을 양성할 수 있다면 나는 ‘무인(武人)’을 양성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승리를 확신할 수 있겠나?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인의 차가운 목소리에 DX 길드의 길드장, 장윤석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였다.
“펜테리움을 총 5회 복용하였습니다.”
-내 질문은 그게 아니었을 텐데?
부르르.
장윤석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반드시 이기게 만들겠습니다.”
-꼭 그래야 할 것이야.
노인의 존재감이 흐릿해지자, 장윤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회장, 그는 실로 두려운 존재였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아니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본능적인 공포를 느낄 정도였다.
‘서용석…, 꽤 기대되는 인재였는데,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군. 소모품으로 사용하는 수밖에.’
DX 길드는 소속 길드원을 두 가지로 분류하였다.
소모품과 신도.
그리고 서용석은 본래 신도가 될 몸이었으나 소모품으로 방금 막 신분이 바뀌었다.
‘만에 하나 서용석이 질 경우도 대비해야겠어.’
무공이라는 것은 아직 알려진 게 별로 없었다.
그저, 무공의 창시자라는 박한새가 B랭크에 못 미치는 수준이니, 그의 제자는 그보다 훨씬 약할 거라고 판단할 뿐이었다.
하지만 사람 일이란 게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법이었다.
그렇기에 장윤석은 최악의 경우도 대비하기로 하였다.
‘절대 패배를 안 하는 방법은 하나뿐이지. 경기를 아예 무효화시키는 것.’
물론 웬만해서는 경기가 무효화될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수백, 수천 명이 죽어 나가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떨까.
그때도 과연 경기를 이어나갈 수 있을까?
“이게 필승법이지.”
장윤석은 승리를 확신한 듯,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
신경철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무림 아카데미 동료들과 함께 목동 경기장으로 향하였다.
‘존나게 많이도 왔네.’
헌터 간의 1:1 대결은 불법이 아니었다.
하지만 헌터 간의 대결을 수익화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외국에서 그러는 것처럼 헌터 간의 대회를 열어 표를 팔아 돈을 번다든가, 중계비를 받는다든가 그런 것은 전부 불법이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의 대결이 성사되었을 때도 SNS에서 대결 장소만 서로 주고받았을 뿐, 어디다 따로 홍보를 하거나 그러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목동 경기장에 모인 관중의 수는 상당하였다.
D랭크 헌터인 두 사람의 대결을 보기 위해 무려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이 구경 온 것이었다.
‘많으면 오히려 좋지. 무공의 위대함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으니까!’
신경철은 전혀 부담감을 느끼지 않았다.
수천 명의 시선?
어차피 이길 건데 부담스러워할 이유가 뭐 있단 말인가.
“긴장하면 뭐라도 한마디 하려고 했는데 그건 아니라서 다행이군.”
이정의 한마디를 듣고 피식 웃음을 지었다.
‘어린놈이 어른처럼 구는 게 꼴 보기 싫긴 한데, 나도 이상해졌는지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네.’
그새 이정에게 적응하기라도 한 모양이다.
“죽을 각오로 싸워라. 어차피 여기서 죽으면 내 손에 죽을 테니.”
“개소리 마. 난 여기서도, 네 손에도 절대 안 죽을 거다.”
이정과 그런 대화를 나누는데, 옆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히, 힘내세요.”
신경철은 고정희를 보고 피식 웃었다.
“그동안 고마웠다. 고정희.”
“네, 네!”
“교관님과 잘해보고.”
툭툭.
고정희의 어깨를 두드려준 신경철은 마지막으로 박한새를 바라봤다.
그와 시선이 마주친 박한새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교관님 아니, 스승님! 반드시 이기고 돌아오겠습니다.”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박한새와도 인사를 끝마치자 신경철은 경기장 중앙으로 향하였다.
이미 대결 상대인 서용석은 경기장 중앙에서 그를 기다리는 상태였다.
“드디어 왔군. 유서는 작성하고 왔겠지?”
“지랄.”
신경철은 코웃음을 치고는 질 수 없다는 듯, 서용석을 도발하였다.
“내가 댓글로 적었었지? 10초 안에 끝내주겠다고?”
“이번에 확실하게 보여주마. 내가 왜 그렇게 말했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