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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46화 (46/275)

#046화

목동 경기장을 찾은 사람들이 두 사람의 대결에서 기대하는 것은 화려한 스킬 대전이 아니었다.

육체를 강화시켜주는 신비로운 각성제와 마찬가지로 육체를 강화시켜주는 신비로운 무공.

이 두 가지 중에서 뭐가 더 효과가 좋을지, 이게 궁금해서 찾아온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었다.

신경철은 근접 딜러나 탱커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내가 댓글로 적었었지? 10초 안에 끝내겠다고? 보여주마. 내가 왜 그렇게 말했었는지.”

그는 말을 끝내기 무섭게 손에 불을 일으켰다.

처음엔 그저 손이 뒤덮일 정도의 화염이었다.

하지만 신경철이 만든 불길은 순식간에 거대한 용으로 바뀌었다.

그의 손 위로 5m짜리 화염용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화염용은 만들어지자마자 서용석을 덮쳤다.

“뭐, 뭐야? 무공을 보여주는 거 아니었어?”

“그보다 저 사람, D랭크 헌터 맞아? 화력이 왜 저렇게 세?”

“와. 개쩐다.”

“시발, D랭크 헌터 수준 실화냐?”

구경하던 사람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장면이었다.

D랭크 헌터의 스킬이 저리도 강맹하다니!

“김 헌터! 워터 스킬 바로 사용해! 저러다 죽겠어!”

참관 중이던 힐러들이 다급하게 달려갔다.

서용석이 헌터인데도 목숨을 잃을 게 걱정이 될 정도로 신경철의 스킬은 강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 연기가 걷히며 서용석의 신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공격을 정면으로 맞은 서용석의 몸은 생각 이상으로 멀쩡하였다.

머리카락이 타서 거의 대머리 상태가 된 것을 제외하면 아무런 타격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근데 저 팔은 뭐야?’

서용석의 양팔은 한눈에 봐도 이질적이었다.

뭐랄까.

오크의 팔을 보는 거 같다고나 할까?

색깔도 초록색이었고 힘줄은 유난히 튀어나와 있었다.

“그게 무슨 스킬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공격을 더 막지는….”

“크아아악!”

신경철이 서용석에게 몇 마디 하려는 순간, 서용석이 괴성을 지르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이 새끼가 형이 말하는데!”

여유롭게 소리쳤지만,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서용석의 모습을 본 그는 조금 당황하였다.

엎드린 채 네 발로 달리는 모습이 마치 한 마리의 야수를 보는 거 같았다.

괴성까지 더해지자, 도저히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 새끼 뭐야?’

마음 같아서는 실컷 비웃고 싶었다.

네가 무슨 개새끼냐며 낄낄대고 싶었는데, 도저히 그럴 여유가 안 생겼다.

괴상한 움직임이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빨랐다.

아니, 오히려 괴상한 움직임이었기에 상대하기가 더 까다로웠다.

어디로 튈지 전혀 예측이 안 됐기 때문이다.

‘이정이랑 싸운 경험이 없었으면 조금 위험했을지도.’

분명 주먹을 휘두르고 있는데, 소리는 주먹이 아니라, 거대한 몽둥이를 휘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야말로 스쳐도 중상일 거 같은 공격의 연속이었다.

만약 이정과 대결한 경험이 없었으면 진즉 위기에 처했을지도 몰랐으리라.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던 관중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이 기대하던 결투가 바로 이것이었다.

주먹과 주먹의 대결.

물론 서용석의 모습이 괴상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세상엔 원래 다양한 스킬이 존재하는 법이었다.

심지어 늑대인간이라는 변신 스킬도 있지 않은가.

지금 서용석의 모습도 그런 스킬들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하게 볼 것이 아니었다.

‘역시 처음 보는 스타일이라 그런지 당황스러워하고 있군.’

회피에 열중하는 신경철의 모습을 보며 나는 쓰게 웃었다.

주어진 시간이 워낙 짧아서 실전 대처 요령을 제대로 알려주지 못한 게 아쉬웠다.

대처 요령만 알면 저 정도 상대는 쉽게 상대할 수 있는데 말이다.

‘뭐, 그래도 신경철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니 상관없다.’

신경철은 아직 본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가 본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데도 팽팽한 상황이 이어졌다.

이대로 서용석의 움직임에 적응한다면 승부는 사실상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박한새 씨.”

일부러 눈에 안 띄는 옷을 입고서 신경철이 싸우는 모습을 참관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입니까.”

“나, DX 길마 장윤석이요. 만나서 반갑소.”

갑작스러운 DX 길마의 등장이었다.

하지만 나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무심한 얼굴로 다시 말했다.

“반응이 영 별로인데. 인사라도 받아주면 어디 덧나나?”

그는 인상을 찡그린 채 대뜸 반말하였다.

“저는 당신과 인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솔직해서 좋기는 한데, 왜 나와 인사하기 싫다는 거지?”

“굳이 설명해야 합니까?”

장윤석이 인상을 잔뜩 구겼다.

그러자 원래도 흉악했던 그의 얼굴이 더 폭력적으로 바뀌었다.

“DX 길드에 대한 감정이 별로 안 좋은가 보지?”

“DX 길드뿐만이 아닙니다. 그 뒤에 있는 이들에게도 악감정을 품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지?”

“알아서 생각하십시오.”

내가 건성으로 대답하자, 그가 다시금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나를 찾아온 목적이 있는 것인지,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뭐 그건 그렇고 제자는 아주 잘 키운 거 같더군.”

“적어도 누구와는 달리 소모품으로 보지는 않고 있습니다.”

“…이상하단 말이지.”

“뭐가 말입니까?”

내가 계속 DX 길드에 관해 잘 아는 것처럼 구니 수상하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괜한 의심이라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무공은 단순히 신체 능력만 좋아지는 게 아닌가 봐? 스킬 효과도 저리 좋아진 거 보면 말이야.”

“하지만 이번 대결은 우리의 승리로 끝이 날 거야.”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보면 모르나? 용석이가 일방적으로 공격하고 있는데?”

“인정하기 싫은가 보지?”

같잖았다.

그저 겉면만 보고 신경철이 불리하다고 판단하다니.

“뭐야? 쟤 왜 저래?”

“얼음땡 하는 거냐! 푸하하!”

“박한새가 점혈이란 것도 사용한다더니, 그거 배웠나 본데?”

“와, 그게 그렇게 쉽게 배울 수 있는 거였어?”

“대박!”

원래도 소란스러웠지만, 관중석에서 더 큰 소란이 터져 나왔다.

나는 경기장으로 시선을 옮기고는 이내 미소를 지었다.

“저 모습을 보고도 서용석 헌터의 승리를 확신하십니까?”

서용석은 풀 펀치를 내지르는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몸이 멈추었다.

점혈에 당한 것이다.

‘저 상황에서 점혈을 쓰다니. 신경철도 역시 재능이 없는 사람은 아니야.’

3주라는 시간을 쏟아부은 게 아깝지 않은 거 같았다.

물론 영약을 사는 데 쓴 4,500 카르마는 조금 아까웠지만 말이다.

“두 달 정도 배워서 저 정도라. 꽤 하는군.”

잠시 말이 없던 장윤석이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황한 티가 너무 많이 나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는 게 그저 우습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아직 승부가 결정된 것은 아니야.”

“저걸 보고서도 그런 말이 나옵니까?”

서용석은 점혈에 당해 완전히 움직임이 멈춘 상태였다.

처음 당한 사람이라면 점혈을 푸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터.

결국에 서용석은 신경철에게 농락당한 채 패배하고 말리라.

“박한새, 내가 경고 하나 하지.”

장윤석은 내 물음에 답변하는 대신,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넌 너무 많은 관심을 끌었어. 적당히란 것을 모르고 윗분들의 심기를 어지럽혔지.”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오늘 내가 친히 냉혹한 현실을 일깨워주겠다, 이 말을 하려는 거야.”

“냉혹한 현실이라….”

가볍게 여길 경고는 아니었다.

DX 길드가 가진 힘이라면, 정확히는 그들의 배후가 가진 힘이라면 지금의 나 정도는 얼마든지 응징하는 게 가능하였다.

꼭 나를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더라도 내 주변에 피해를 입히는 것이 가능하였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고 이곳에 온 것은 아니지.’

상대가 누군지 몰랐으면 모를까.

나는 DX 길드에 대해 너무나 잘 알았다.

그런데도 내가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을 리는 없었다.

“혹시 크로커다일을 믿고 그따위 협박을 하시는 겁니까?”

“네, 네가 그 이름을 어떻게?”

내가 불쑥 말을 건네니 그가 눈을 부릅떴다.

내 입에서 절대 나오면 안 될 말이 나왔으니 그로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지금쯤 당신이 원하는 소란이 일어났어야 할 텐데, 이상하게 조용하지 않습니까?”

DX 길드는 승부를 무효화하기 위해 테러를 준비하였었다.

경기가 신경철의 승리로 끝이 날 경우, 테러를 일으켜 서용석이 패배했다는 사실을 묻히게 하려 했다는 뜻이었다.

크로커다일이라는 자가 바로 그 테러를 일으켜줄 빌런이었고 말이다.

‘지금쯤 그 빌런은 정승호 길드장 손에 붙잡혀있겠지.’

장윤석의 의도를 간파했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

화영 길드에 도움을 요청하여 테러 대비에 만전을 꾀하였다.

정승호 길드장까지 나섰다고 하니, 테러범을 가장한 빌런 몇 명쯤 잡는 것은 일도 아니리라.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방금까지 경악하는 표정을 짓던 주제에, 천연덕스럽게 굴었다.

그를 보니 역시 바지사장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극한의 상황에서도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있을지 보자고.’

나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의 차를 타기 위해 지하 주차장에 도착한 장윤석은 박한새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바드득!

“박한새 이 엿 같은 놈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DX 길드와 자신을 비웃었다는 사실이 도무지 용납이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무공이라는 거, 지나칠 정도로 효과가 세다.”

설마 D랭크 헌터였던 신경철이 단기간에 저리 강해져서 돌아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무리 그래도 펜테리움을 5번이나 복용한 서용석을 상대로 이길 정도라니?

서용석이 B랭크 헌터까지는 아니어도 C랭크 헌터는 능히 상대할 힘을 가졌는데 말이다.

‘심지어 그놈은 믿기지 않을 정도의 정보력까지 갖추었다.’

어디서 크로커다일에 대한 정보가 유출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중국 용병인 크로커다일의 존재를 알아차렸다는 건, 박한새가 범상치 않은 정보력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아무래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거해야겠어.”

원래도 한 번쯤 수를 쓰기는 할 생각이었다.

만약 박한새가 헌터였다면, 그래서 던전에 들어갈 일이 있었더라면 무슨 수를 써서든 제거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비각성자였고 주변에 헌터들이 많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니, 박한새를 더 내버려 둘 수가 없게 되었다.

이미 박한새를 향한 관심은 최고조에 달한 상태.

오늘 일로 그 관심은 더욱더 높아질 것이다.

여유롭게 상황을 지켜보다간 진짜 그가 무공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말리라.

“누굴 제거한다는 거지?”

아무런 발소리 없이 누군가가 그의 뒤에서 나타났다.

장윤석이 인상을 찌푸린 채 뒤를 돌아보니 괴상한 가면을 쓴 사내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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