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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47화 (47/275)

#047화

장윤석이 접근했을 때, 전혀 놀라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다.

[헌터 장윤석을 죽이십시오. 카르마 +15,000]

퀘스트가 미리 그의 존재를 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뭐 제 발로 나를 찾아와줄 거라고는 생각 못 했지만 말이야.’

처음 퀘스트가 떴을 때부터 나는 장윤석을 노리고 있었다.

무려 1만 5천에 달하는 카르마 보상을 얻어낼 기회였기 때문이다.

물론 카르마 보상이 아니더라도 기회가 있을 때 언제든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장윤석이 먼저 나에게 접근하였다.

나로서는 장윤석을 찾는 수고를 덜게 된 셈이었다.

‘만리추종향을 붙여줬으니 천천히 따라가면 되겠군.’

카르마 상점에는 정말 별의별 것이 다 있었다.

그중에는 누군가를 추적할 때 사용하는 아이템도 존재하였다.

만리추종향이라는 아이템이 그런 종류의 아이템이었다.

장윤석과 대화하면서 나는 그에게 이 아이템을 사용하였고 덕분에 거리가 멀어진 지금도 그의 위치를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정승호 길드장님. 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땅한 세력이 없는 나에게 화영 길드의 도움은 정말 크게 느껴졌다.

이번에 테러 기도를 막은 것도 사실상 화영 길드라고 해도 무방하였다.

물론 사람들은 테러가 일어날 뻔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겠지만 말이다.

-빌런 때려잡는 일은 언제든 부탁해. 전에도 말했듯, 빌런 잡는 것은 나도 바라는 일이니까.

“그런데 크로커다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내가 붙잡고 있다. 곧 이능관리부에 인도할 거야.

B랭크급 빌런이라서 걱정했는데, 역시 정승호는 믿음직하였다.

하긴, A랭크와 B랭크의 차이는 어마어마하였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경기 결과가 참 재미있게 되었던데?

“결과를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어디서 듣기는. 지금 죄다 그 이야기들밖에 안 해. 듣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들린다니까?

공중파 방송을 탄 것도 아닌데 소문이 참 빠른 거 같았다.

뭐 나로선 손해 볼 것은 없었다.

어쨌든 무공의 인지도가 더 높아진다는 의미였으니.

-한새, 너 아주 바빠지겠어. 이제 외국에서도 너 보러 찾아오는 거 아니야?

“원래도 바빴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바빠서 전화를 끊어야 할 거 같습니다.”

나는 필요한 답변을 전부 들은 거 같았기에 더 대화하지 않고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정승호에게 바쁘다는 말을 괜히 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 죽이러 가는데 안 바쁠 수가 있나.’

카르마 상점에서 100 카르마밖에 안 하는 철검을 구매하였다.

이젠 검기를 마음껏 쓸 수 있었기에 웬만큼 좋은 무기가 아니고서는 어떤 검을 사용하든 다 비슷비슷하였다.

그러니 100 카르마짜리 철검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지하 주차장에 혼자 있는 그에게 몰래 접근하니, 그가 의미심장한 말을 지껄였다.

주어가 생략된 말인데도 이상하게 나는 그가 제거하려는 대상이 누군지 알 거 같았다.

‘당연히 나겠지.’

DX 길드의 비밀을 아는 듯 보이고 심지어 크로커다일의 존재까지 꿰뚫어 본 나다.

그로서는 제거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거다.

뭐, 그래서 내가 먼저 선빵을 치려는 거지만 말이다.

별로 놀라지 않았다.

DX 길드의 길드장에게 이 정도 일은 별거 아니라는 것이겠지.

“가면 쓴 사람에게 정체를 물으면 과연 제대로 된 답변을 해줄 거라 생각했나?”

“이 목소리,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데?”

나는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황연호도 그렇고 이놈의 빌런들은 왜 이렇게 기억력이 좋은지 모르겠다.

‘내 목소리가 그렇게 특이한가?’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하다가 검 끝으로 그의 목을 가리키며 물었다.

“장윤석. 나이 36세. C랭크 헌터였다가 작년에 갑자기 랭크가 올랐다지?”

“근데 그게 뭐 어쨌다고?”

“소속되었던 길드는 길드장의 죽음으로 와해되고 본인이 직접 새로운 길드를 차렸더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용건이나 말해. 뒤지기 싫으면.”

“너를 B랭크로 만들어주고 DX 길드의 길드장으로 만들어준 자가 누구지?”

“내 배후에 누가 있냐고?”

장윤석은 코웃음 치며 말했다.

“없어, 이 병신 새끼야! 나는 지금까지 혼자서 커왔는데 뒤에 있기는 누가 있다는 거야!”

“그 말을 오 회장이란 자에게 전해도 되는 건가?”

“…네, 네놈은 누군데 회장님을 아는 거지?”

그의 반응을 보며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엄청난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놈의 현재 신분이 오 회장인 건 확실하군.’

사실 나는 DX 길드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회귀 전, 이 당시의 나는 한창 무공 수련에 열중하던 시기였다.

즉, 외부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시기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회귀자인 이성은이 바로 이 시기에 DX 길드를 없앴다.

황연호나 눈앞의 장윤석도 이성은의 손에 의해 사라진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장윤석은 어디까지나 바지사장일 뿐, 진짜는 따로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누군지는 알 거 없다.”

“서, 설마 회장님이 보낸 자객은 아니겠지?”

얼마나 서로에 대한 신의가 없으면 말 몇 마디 했다고 바로 의심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속으로 혀를 차고는 당당한 발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장윤석도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이윽고 스킬을 사용하였다.

“크르륵.”

안 그래도 흉측했던 얼굴이 마인화하면서 더 흉측하게 바뀌었다.

“변신이 끝날 때까지는 기다려주겠다.”

발걸음을 멈춘 나는 그가 변하는 모습을 여유롭게 지켜봤다.

몇 달 전의 나라면 이런 여유를 부릴 수 없었을 것이다.

쥐뿔도 없는 내공으로 여유를 부렸다간, D랭크 헌터에게도 당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단전의 내공도 벌써 반 갑자나 모였다.’

마력흡수의 효과가 작다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결과를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처럼, 교육생들의 마력을 꾸준히 흡수하니 내공이 상당히 모였다.

22년 정도에서 정체되었던 내공이 30년까지 늘어난 것이다.

‘회귀 전과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장윤석 따위를 상대하기에는 충분한 양이다.’

변신이 끝나자 장윤석은 지체하지 않고 선공을 날렸다.

가장 먼저 날린 그의 공격은 침이었다.

“퉤!”

혐오스러운 외모에서 튀어나온 침은 그 자체만으로도 두려움을 느끼게 하였다.

장윤석의 입에서 침이 튀어나오기 무섭게 나는 보법을 펼쳐 거리를 벌렸다.

물론 더럽다는 이유만으로 보법까지 써가며 침을 피한 것이 아니었다.

황연호가 써먹었던 석화의 눈과 마찬가지로 히드라의 침은 파롤의 졸개들이 자주 사용하는 스킬이었다.

그저 침을 맞히기만 해도 상대를 즉사시킬 수 있으니 이보다 효율적인 스킬은 없으리라.

하지만 침의 효과를 아는 나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공격이었다.

“크르르!”

침 공격을 포기한 장윤석은 맹렬하게 돌진해서는 주먹을 마구 휘둘렀다.

콰콰쾅!

역시 공격력 하나는 만만치 않았다.

주변에 있던 차들이 전부 부서졌고 주차장의 기둥은 크게 금이 갔다.

‘더 시간 끌어서는 안 되겠어.’

시간을 끌었다간, 차주들의 피해도 피해지만, 내 정체를 들킬 위험이 증가할 것이다.

괜히 가면을 쓴 게 아니었으니, 최대한 서둘러 싸움을 마무리하는 게 좋을 거 같았다.

길쭉한 팔을 휘두르며 맹공을 퍼붓던 장윤석이 순간 멈칫하였다.

분명 있어야 할 그의 팔이 어디론가 날아가버렸기 때문이었다.

고통스러운지 지하 주차장이 크게 울릴 정도로 괴성을 지르는 장윤석이었다.

하지만 마인이 괜히 마인이 아니었다.

팔을 잃은 고통으로 패닉에 빠질 법도 한데, 장윤석은 전혀 개의치 않은 채 맹공을 이어나갔다.

물론 그런다고 승패 결과가 바뀔 일은 없었다.

변신한 상태에서 그의 전투력은 A랭크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

무공이 일상화되어, 전체적으로 상향 평준화 된 회귀 전을 기준으로 한다면 C랭크만도 못한 실력이었다.

그리고 그때 장윤석 정도의 실력은 마인 중에서도 하급에 불과하였다.

검기를 가득 담고서 그의 목줄을 그었다.

웬만한 몬스터보다 단단한 그의 목이었으나 아무런 저항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부드러운 두부를 썰듯, 그의 목은 너무도 쉽게 잘려나갔다.

[장윤석을 죽였습니다! 카르마 +15,000]

장윤석의 죽음을 증명하듯 퀘스트 완료 알람음이 떴다.

‘1만 5천이라. 상당한 수익인데?’

어차피 장윤석은 죽여야 할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퀘스트까지 받으니 이건 뭐 꽁으로 카르마를 번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파롤의 졸개들을 만날 때마다 계속 퀘스트가 뜨는군. 내게 퀘스트를 주는 주체는 어지간히 파롤을 싫어하나 보지?’

아직도 어떤 조건에서 퀘스트가 내려지는지 파악하지 못하였다.

어쩔 때는 누군가를 살리라는 퀘스트를 주기도 했고 또 어쩔 때는 내 개인 성장을 돕는 퀘스트를 주기도 하였다.

심지어 김수민이라는 특정 개인을 제자로 삼으라는 퀘스트가 내려지기도 했다.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파롤의 졸개를 만날 때면 거의 100% ‘살해 퀘스트’가 떴다.

퀘스트를 주는 주체가 어지간히 파롤을 싫어하는 듯싶었다.

‘나야 나쁠 건 없다.’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장윤석의 시체에다 잠시 손을 올렸다.

마력흡수를 사용해보기 위함인데, 장윤석 내부의 꺼림칙한 마력을 느낀 나는 스킬을 중단하고 바로 손을 뗐다.

괜히 마인이 아닌지, 마력부터가 평범한 마력과는 궤를 달리하였다.

‘마인들의 마력을 흡수할 생각은 접어야겠군.’

카르마도 모으고 내공까지 모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렸지만,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무리인 듯싶었다.

“시체는 없애는 게 좋겠어.”

만능 상점인 카르마 상점에는 화골산이란 아이템이 있었다.

살을 녹여 뼈만 남기는 독약이었는데, 지금처럼 증거를 없앨 때 유용하였다.

남은 뼈야 힘을 써서 가루로 만들면 그만이었고 말이다.

목동 경기장에서 펼쳐진 두 사람의 대결은 실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경기 본 사람 있음? ㄹㅇ 살벌하던데.]

[스킬부터가 D랭크 수준이 아님 ㅋㅋㅋㅋ]

[ㅇㅈㅇㅈ. 무공을 배우면 스킬도 더 강해지는 듯.]

[와 그럼 무공이 넘사벽 아님? 육체도 강해지고 스킬까지 더 세진다니 ㄷㄷ. 뭐 이딴 사기가]

[지금 그래서 스킬 가진 D랭크 이상 헌터들도 흔들리고 있다고 함. 원래는 안중에도 두지 않았었는데ㅋㅋㅋㅋㅋㅋ]

[나였어도 관심 가질 듯.]

[무공 아카데미에서 제자 또 안 뽑나? 진짜 한 달에 몇백 내라고 해도 낼 수 있는데.]

[몇백은 ㅅㅂ ㅋㅋㅋ 몇천 줘도 안 가르치겠다.]

헌터들은 서로 모일 때면 너 나 할 것 없이 무공 이야기를 꺼냈다.

일반인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무공의 창시자로 알려진 박한새부터 비각성자인 상황.

헌터를 동경하던 일반인들도 무공을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정승호 길드장, 중국 출신의 국제 빌런을 포획!>

그 와중에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두 기사는 조용히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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