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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49화 (49/275)

#049화

“웃기지 않아? 분명 C랭크 이상의 실력임을 증명했는데, 랭크는 D랭크인 게?”

진세희는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협회에서는 무공의 신뢰도를 의심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게 더 웃기다는 거야. 만약 무공이 가짜라면 비각성자가 어떻게 연수원에서 랭킹 1위를 하고 그랬겠어?”

무공의 원리는 이미 세간에 밝혀진 상태였다.

단전이란 것을 만든 뒤에, 마력의 출력과 안전성을 상승시키는 것이 세간에 알려진 무공의 기본 원리였다.

“마력의 마도 모르는 사람들이 무공을 의심하는 게 나는 너무 황당해.”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황당한 것을 넘어, 한심하다니까. 기득권을 지키려고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어.”

그녀는 진심으로 헌터 협회의 결정을 불쾌하게 여겼는지, 계속해서 투덜거렸다.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어도, 속으로는 무공에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그녀였기에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빠도 설마 무공을 배척하는 것에 찬성했을까?”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아빠까지 그런 일에 찬성했다면 정말 실망인데.”

그렇게 중얼거리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S랭크 헌터인 그는 애초에 무공이란 것에 관심도 없었을 거다.

‘아빠 머릿속에는 던전밖에 없을 거야.’

권력과 명성, 그리고 자본까지.

그녀의 아버지, 진수호는 모든 것을 갖추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진수호는 오직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마치 몬스터에게 가족을 잃기라도 한 사람처럼 던전에서만 쭉 생활하였다.

지금도 저 멀리 중동까지 가서 던전 레이드를 하고 있었다.

“내가 박한새란 사람을 만나볼까?”

진세희는 불쑥 그와 같은 말을 꺼냈다.

“예? 아가씨가 그자를 왜 만납니까?”

“무공이란 거, 우리도 배울 수 있으면 좋잖아.”

“아, 아가씨! 그런 짓을 했다간 길드장님이 크게 혼을 내실 겁니다!”

“거짓말. 우리 아빠는 내게 관심도 없는걸.”

“그럴 리가요! 길드장님이 아가씨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데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아무튼, 나는 박한새를 만나볼 거야. 일단 나부터 무공을 배워보고 나중에 우리 길드 사람들도 무공을 배울 수 있게 이야기를 잘 해봐야지.”

“지금 시국에 무공을 배운다면 간부들에게 미움을 받지 않겠습니까.”

신경철을 통해 무공의 신뢰성이 확보된 순간에 이미 그녀는 결정을 내렸었다.

무공을 배우기로.

헌터 협회의 결정으로 일부 헌터들이 무공을 배척하는 상황이 만들어졌지만, 그것도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내가 간부들을 무서워할 거 같아?”

그녀는 오성 길드의 차세대 유망주이자, S랭크 헌터인 진수호의 무남독녀였다.

이 정도의 행동으로 그녀에게 뭐라 할 사람은 적어도 오성 길드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만에 하나 오성 길드에서 반대한다고 해도 오성 그룹을 설득하면 되는 일이야.’

“한새 씨, 협회장 새끼 진짜 미친 거 아니에요?”

정호연은 자신이 더 분하다는 듯,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언니. 아무리 그래도 협회장보고 미친 새끼라니.”

“말이 안 되는 짓을 하고 있잖아.”

“그건 그렇지만.”

두 사람이 봤을 때도 헌터 협회의 결정은 황당할 수밖에 없을 거다.

[권속 후보, ‘정호연’에 대한 당신의 지분율 – 31%]

[권속 후보, ‘정소연’에 대한 당신의 지분율 – 43%]

지분율만 봐도 그녀들이 무공으로 얼마나 큰 도움을 얻었는지 알 수 있었다.

지분율이라는 것은 무공으로 그 사람이 자신의 한계에 얼마나 도달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나 다름없었다.

그 말은 결국, 두 사람은 무공을 배움으로써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겨우 60~70%밖에 남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한새 씨, 저희가 따로 대응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대응이라면?”

“언론에 발표해야죠. 우리 두 사람도 무공을 배웠고, 무공은 위대하다. 그러니 전문가도 아닌 것들은 조용히 짜져라.”

확실히 두 사람이 그런 발표를 한다면 파급 효과가 상당할 거 같기는 했다.

화영 길드의 정승호 길드장까지 동참한다면 더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럴 필요 없습니다.”

“왜요? 이대로 두면 무공에 대한 인식이 더 안 좋아질 거예요.”

“괜히 저 때문에 두 분이 협회의 미움을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내가 그리 말하자, 정소연이 낮고 힘 있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한새 씨! 그런 건 걱정하지 마세요! 협회와 마찰이 생기는 것은 전혀 두렵지 않아요!”

“맞아요. 그깟 협회 따위. 그리고 애초에 한새 씨만을 위한 게 아니에요. 저희도 무공을 익힌 사람으로서 무공이 배척당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요.”

두 사람의 그 같은 말에도 내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두 분이 나서지 않아도 저에게 해결책이 있습니다.”

“역시! 한새 씨의 이런 모습, 너무 믿음직스럽다고요.”

사실 거창하게 말했지만, 특별한 해결책은 없었다.

그런데도 내가 여유로운 이유는 하나였다.

그건 바로 내가 미래를 경험한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무공은 이미 시대의 흐름이 됐다. 시대의 흐름은 일개 개인이 거스를 수는 없어. 그 개인이 아무리 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말이야.’

협회가 헌터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이제 거의 끝이었다.

무공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한 이상, 헌터 협회는 기득권을 내려놓게 될 수밖에 없으리라.

정소연, 정호연만 걱정스럽게 반응한 것이 아니었다.

“근데 진짜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주현근도 이번 상황을 꽤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거 같았다.

하긴, 100% 아군일 거로 생각했던 인터넷 여론도 50 대 50으로 나누어진 상황이었다.

헌터들의 여론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무공은 오직 이능관리부만 혜택을 보는 상황이었기에 헌터들의 반감이 상당했던 것이다.

“뭘 해야 하는데?”

“헌터 협회가 저리 나오니, 아예 비각성자들만 교육생으로 받아보는 건 어때요?”

“비각성자들만?”

“예. 비각성자 출신의 무인이 늘어나게 되면 헌터 협회도 아차 하지 않을까요?”

나는 피식 웃었다.

헌터인 주현근이 이런 말을 하다니.

자신을 헌터가 아닌 무인으로 생각하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려.”

“그래요?”

“마력을 가진 헌터들도 몇 달은 수련해야 무공의 효과를 보잖아? 마력이 없는 일반인들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겠어?”

내가 특별한 경우였다.

애초에 이성은의 도움이 없었다면 내가 과연 무인이 될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었다.

물론 회귀자인 이성은이 나를 선택한 것을 보면 그가 회귀하기 전에도 나는 무공의 창시자로 불렸던 거 같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겠네요.”

“너무 걱정하지 마. 여론이야 금방 바뀔 테니까. 보법 사용자들이 늘어나고 있잖아?”

나는 예전에 이 같은 선언을 한 적이 있었다.

석 달.

단 석 달이면 보법 사용자로 만들 수 있다고.

이때의 선언 이후로 대략 한 달 하고 보름이 지났다.

그리고 현재 48명의 심화반 교육생 중 보법까지 터득한 이가 무려 10명이었다.

다른 이들도 모두 단전을 만들고 내공으로의 전환도 거의 끝마친 상태였으니 보법을 익히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왜 이렇게 빠른 거야!”

“보법이란 게 나와 조합이 잘 맞더군.”

“젠장! 사기 같은 놈!”

나는 팔짱을 낀 채, 신경철과 이정의 대결을 지켜보았다.

늘 그렇듯, 일방적인 대결이었다.

안 그래도 빨랐던 이정은 무공을 익힌 뒤, 반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빨라졌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의 눈으로 봤을 때는 블링크 같은 순간이동 스킬을 사용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거기에 분신까지 사용할 수 있단 말이지.’

분신.

연수원에서 경험했을 때는 잘 몰랐지만, 막상 무공을 익힌 이정의 모습을 보니 이보다 사기적인 스킬이 없었다.

원래라면 분신을 사용할 경우 분신 개개인의 전투력은 크게 급감하였다.

네 개의 분신을 만들면 하나당 40% 정도의 전투력을 보였다.

하지만 이 40%의 전투력도 이정이 무공을 익히고 나니, 거의 예전의 이정과 엇비슷한 수준이었다.

즉, 무공을 익힌 지금의 이정은 예전의 그와 비교했을 때 최소 4배, 시너지 효과까지 감안하면 5배 이상 강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뜻이었다.

‘그나저나 신경철 헌터도 다시 열정맨이 되었군.’

이정과 대결을 펼치는 신경철의 눈에는 독기가 가득하였다.

단순히 이정을 향한 독기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랭크 측정 불가 판결을 내린 헌터 협회를 향한 독기였다.

‘보면 볼수록 느끼는 거지만 참 운이 좋은 거 같아. 원래라면 다른 헌터들에게 경지를 추월당하고 큰 절망을 느끼게 될 줄 알았는데 말이야.’

신경철은 헌터 협회에게 독기를 품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입장이었다.

헌터 협회가 아니었으면 그는 자만에 빠진 채로 허송세월을 보냈을 테니 말이다.

“교관님! 손님이 찾아오셨어요!”

그때, 유현경 사무관이 다급한 발걸음으로 나를 찾아왔다.

“손님이라면?”

“오성 길드에서 오신 분이에요!”

그 말을 듣자, 그녀가 호들갑을 떠는 이유를 알 거 같았다.

오성 길드.

국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길드였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성 길드의 진세희예요.”

진세희를 보며 나는 눈에 이채를 띠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군.’

회귀 전의 나는 10대 길드의 주요 인물들과는 대부분 친분이 있었다.

그중에 진세희도 예외는 아니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하지만 회귀 전의 기억은 오직 나에게만 있었다.

현재 시점에서 진세희와 나는 말 그대로 안면도 트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니 회귀 전과 달리, 사무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다.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서 왔어요.”

제안?

이 시기에 그녀가 내게 할 제안이 뭐가 있을까?

“저희는 무공을 원해요. 저희에게도 무공을 배울 기회를 주실 수 있을까요?”

“무공 말씀입니까.”

“조건은 그 어떤 길드보다 좋게 제시할 수 있어요. 물론 레이븐 길드처럼 독점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저, 저희 길드원들에게도 동등하게 무공을 가르쳐주길 원해요.”

그런 거라면 나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의문이 드는 것이 하나 있었기에 일단 의문부터 해결하기로 하였다.

“정말 오성 길드에서 무공을 원하고 있는 게 맞습니까?”

10대 길드는 전부 기득권 세력이었다.

가장 세력이 큰 오성 길드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기득권이라 하면 새로운 것에 배타적인 경우가 많았다.

헌터 협회가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오성에서 원하는 것은 맞아요. 물론 오성 길드는 아니지만 말이죠.”

예상대로 무공을 원하는 것은 오성 길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뻔뻔하게 말했다.

“오성 그룹에 제 자회사가 하나 있어요. 경호 회사인데, 그곳에 무공을 가르쳐주길 원해요.”

역시 이 여자.

예나 지금이나 다른 게 하나도 없는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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