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화
‘일단 돈이 필요하겠지?’
오성 길드든, 아니면 국방부든 간에 나를 회유할 때 가장 먼저 꺼내든 카드가 바로 돈이었다.
사실상 돈으로 무공을 사려는 속셈이었는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으면 회유에 넘어갔을 게 분명하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힘은 그 무엇보다 위력적이었으니까.
그러니 나 역시도 돈이란 게 필요하였다.
돈이 있어야지만 누구에게도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검기 사용자를 빠르게 늘려야겠어.’
이재현 차관과 계약했을 때, 검기 사용자가 한 명 생길 때마다 추가 인센티브를 1억씩 받기로 하였다.
즉, 현재 교육받는 헌터들을 모두 검기 사용자로 만들 경우 내가 받게 될 수익은 400억이 넘는다는 뜻이었다.
여기에 곧 들어오게 될 차기 기수, 차차기 기수까지 합치면 앞으로 벌어들일 수익이 1,000억은 족히 될 터.
기본적인 자금은 이능관리부에서 충분히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추가로 미래에 대기업이 될 기업에다 지분 투자까지 한다면 아카데미를 운영할 자금은 어렵지 않게 마련할 수 있을 거야.’
전문가가 보기엔 실로 엉성할 수도 있는 계획이었지만, 나는 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러고도 돈이 부족해지면 화영 길드나 이능관리부의 지원을 받으면 됐다.
무공이라는 독점적인 기술을 갖춘 이상, 돈이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가질 수 있었다.
‘오히려 돈보다 중요한 것은 강사진이지.’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나 혼자서 무공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수백 명을 교육하는 것조차 힘이 들어 주현근의 도움을 받는 처지인데, 수천, 수만 명을 가르치는 것이 가능할 리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나의 역할을 일부 대신해줄 강사진이 꼭 필요하였다.
권속 후보창을 열었다.
[권속 후보 30/30]
30명으로 꽉 차 있는 권속 후보 명단을 보며 나는 강사로 둘 인재를 탐색하였다.
‘일단 주현근, 신경철, 고정희, 김수민, 문정민 이렇게 다섯 사람은 무조건 영입하는 게 좋겠지?’
가능하다면 가장 실력이 좋은 이정을 포섭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정의 경우, 던전에 들어가서 몬스터를 때려잡으면 때려잡았지, 강사 일을 할 거 같지는 않았다.
그러니 이정은 배제하고 나머지 중에서 강사 후보를 물색했다.
신경철은 헌터로 따지면 원거리 딜러였지만, 무인으로서는 권법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 권법만을 전담하여 다른 이들을 가르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
문정민은 패시브 스킬부터가 신체 강화였다.
외공 교관으로서 교육생들의 신체 단련을 전담하면 딱이었다.
주현근의 경우는 두루두루 재능이 있었기에 기본 교육을 담당하면 될 것이다.
고정희 같은 경우는 이들과 달리 특기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스킬을 생각하면 호흡법을 가르치게끔 하는 것이 가장 알맞았다.
마지막으로 김수민은 보법, 경공에 상당한 재능을 가지고 있으니 이를 전담하게 하면 될 거 같았다.
‘어, 뭐지?’
권속 후보창에 갑자기 변화가 생겼다.
[권속 후보, ‘주현근’에 대한 당신의 지분율 – 96%]
[권속 후보, ‘주현근’에 대한 당신의 지분율 – 97%]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주현근의 지분율이 실시간으로 오르고 있었다.
‘이러다 100%까지 오르겠는데?’
나는 뜻밖의 상황에 숨을 죽이며 권속 후보창을 바라보았다.
박한새가 무공의 창시자로 알려지면서 주현근 역시도 엄청난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주현근은 무공을 익힌 최초의 헌터였다.
무공의 창시자인 박한새의 첫 번째 제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었기에 엄청난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경철이 등장하고 B랭크 헌터 이정이 최고의 실력자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를 향한 주목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박한새의 첫 번째 제자라는 사실과 연수원에서 조금 활약한 것 외에는 특별히 이름을 알릴 무언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이능관리부 내에서도 그와 이정을 비교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이정에 대한 평가가 훨씬 더 좋았다.
안 그래도 B랭크 헌터였던 이정이다.
그런데 무공을 배우는 속도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듯, 벌써 보법까지 익힌 상태였다.
분신이라는 그의 스킬과 보법의 상성은 실로 무시무시하였고 자연히 이정에 대한 평가도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반면 이런 상황에서도 주현근은 별다른 진전이 없어 보였다.
무공의 숙련도 자체는 이정, 신경철과 비교도 안 되게 좋았지만, 그게 겉으로 티가 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주현근을 평가절하하며 이정이나 심지어 신경철을 주현근보다 더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주현근은 남들이 이정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신경 쓰는 것은 오직 하나.
무공의 진전이었다.
‘어떻게 해야 나의 내공을 몸 밖으로 발출할 수 있을까?’
검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내공을 외부로 발출해야만 했다.
하지만 신체 내부에서 마력을 운용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신체 외부로 발출하는 것이 쉽게 될 리 없었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자, 주현근은 박한새에게 조언을 청하였다.
“손을 검처럼 여기고 검을 손처럼 여기면 자연스럽게 검으로 내공을 발출할 수 있을 거야.”
박한새가 해준 조언은 간단하였다.
신검합일을 이루라는 조언이었다.
다른 사람이 들었으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터무니없는 조언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주현근은 박한새의 말이면 무조건 따르는 사람이었다.
그는 박한새의 조언을 들은 이후로 손에서 검을 놓지 않았다.
기초반에서 교육생들을 가르칠 때야 말할 것도 없었다.
밥을 먹을 때도, 심지어 잠을 잘 때도 검을 끼고 살았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호흡법을 수련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지금 맨손이다. 나는 어떤 것도 손에 들지 않았다.’
그는 검을 손에 쥔 채로 양반 자세를 하였다.
그러면서 호흡법에 열중하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검의 존재가 그의 머릿속에서 지워지기 시작하였다.
분명 그의 손에 쥐어져 있고 그의 양 허벅지 위에 올려져 있는데도 그의 머릿속에서는 검의 존재가 사라져갔다.
그러자 손끝에서 끝나야 할 그의 감각이 검의 길이만큼 늘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박한새가 말했던 신검합일의 경지가 바로 이것인 듯싶었다.
하지만 주현근은 신검합일이란 단어를 의식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호흡법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감각이 닿는 곳까지 호흡을 잇는다!’
손끝에다 숨을 불어넣는다는 생각을 하며 호흡법에 열중하였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났다.
그의 손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던 내공이 무언가를 타고 손 밖으로 발출되기 시작했다.
그 무언가란 다름 아닌, 그의 손에 들린 검이었다.
검이 진동하는 느낌을 받자, 주현근은 눈을 번쩍 떴다.
그러자 그의 눈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그의 검에 실린 검기는 위태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뭐가 되었건 검기는 검기였다.
현재로선 오직 박한새만이 할 수 있는 비기.
이정도 감히 엄두를 못 내고 있는 검기를 그가 가장 먼저 만들어낸 것이다.
[‘무에서 무를 이룬 자’의 권속이 되었습니다!]
“뭐, 뭐지, 이건?”
검기를 배운 거까진 좋았다.
근데 이건 또 뭘까?
권속이라니.
주현근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 눈을 끔뻑거렸다.
주현근의 지분율이 마침내 100%가 되자 나는 쾌재를 불렀다.
처음 퀘스트가 떴을 때부터, 얼마나 이 순간을 고대하였던가.
마침내 지분율이 100%가 되어 권속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으니,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나는 더 기다리지 않고 주현근을 권속으로 만들었다.
그러자 퀘스트 알람음이 들리며 눈앞에 익숙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권속 후보, ‘주현근’을 권속으로 만들었습니다. 카르마 +500]
‘겨우 500이네. 분명 그때는 크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막상 퀘스트 보상을 보니, 뭔가 아쉬운 기분이었다.
카르마 수급량 자체가 달라져서 그런지, 초기에 받았던 퀘스트 보상이 작게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퀘스트 보상 자체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권속이 생김으로써 얻게 될 혜택이 더 중요하였다.
‘근데 권속으로 만들면 정확히 뭐가 더 좋아지는 거지?’
수급되는 카르마의 양이 더 많아진다는 거야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정소연, 정호연이 1%씩 찔끔찔끔 지분율을 올리면서 계속 정보를 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겨우 10명밖에 둘 수 없는 권속의 혜택이 이 정도일 리가 없었다.
나는 권속창을 켜서 새로운 기능들을 확인해보았다.
‘일단 커뮤니케이션 기능이 확대되었군.’
권속 후보의 지분율이 51%가 넘으면 그때부터 그 권속 후보와 의사소통이 가능하였다.
하지만 이때는 메시지로밖에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음성을 통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이제 주현근과 얼마나 거리가 떨어져 있든, 실시간으로 대화가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강림이라. 이런 것도 가능하네.’
강림이란 기능도 생겼다.
말 그대로 권속의 세상에 강림하는 기능인데, 다른 성좌라면 모를까, 나에게는 크게 의미가 없는 기능 같았다.
이미 나는 권속들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물론 권속이 위기에 빠졌을 경우, 빠르게 도와주기 위해 강림을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 강림이란 기능보다 다른 것을 눈여겨보았다.
‘스킬을 빌려올 수 있다고!?’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혜택이었다.
권속이 보유한 고유 스킬.
즉, 주현근의 ‘직감’이란 스킬을 나는 언제든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빌려오는 형태라서 내가 스킬을 사용할 때 주현근은 스킬을 사용할 수 없게 되지만, 뭐가 됐건 사기적인 기능이었다.
이 기능 하나만으로도 권속은 최대한 늘릴 필요가 있었다.
‘지분율이 높은 편에 속하는 강병철이나 고현정 같은 헌터도 권속으로 삼을까 생각했는데, 그러면 안 되겠어.’
이능관리부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주현근의 지분율은 모든 권속 후보 중에서 가장 압도적이었다.
일단 무공의 재능이 엄청나기 때문에 지분율 상승세도 독보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헌터들이 있었다.
강병철과 고현정이라는 헌터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특이하게도 이 두 사람은 재능이 그리 특출난 편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헌터로서의 자질이 아예 없는 편이었는데, 실제로 51%의 지분율을 확보하고 스탯창을 확인한 결과 올릴 수 있는 스탯의 한계치가 주현근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아마 두 사람의 한계는 F랭크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그렇게 한계치가 낮은 이들이었기에 지분율은 빠르게 올랐다.
원래 F랭크가 한계였던 이가 무공으로 F랭크 이상의 힘을 얻게 된다면 지분율도 어마어마하게 오르는 구조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두 사람이 지분율 100%를 달성하면 권속으로 삼으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생각이 달라졌다.
권속으로 삼은 이의 스킬을 빌릴 수 있는데, 굳이 스킬이 없는 이를 권속으로 삼을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언젠가 김수민의 염동력도 배울 수 있다는 건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10대 길드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빌런의 고유 스킬을 배울 수 있다니.
“교, 교관님!”
고정희가 다급하게 뛰어와서는 내게 이 같은 소식을 전하였다.
“이정 헌터가 주현근 헌터에게 대결을 신청하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