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화
“당연히 이정이 이기겠지?”
“C랭크, D랭크도 아니고 무려 B랭크다. B랭크. 이정이 질 리가 있냐?”
“그래도 교관님의 첫 번째 제자라는데.”
“첫 번째든, 백 번째든 솔직히 무공 배운 건 몇 달밖에 차이 안 나잖아. 이정은 무공의 재능까지 갖췄다고 하니 이정이 당연히 이기겠지.”
오늘은 빅 이벤트가 있었다.
빅 이벤트란 다름 아닌, 기초반에서 교관을 맡은 주현근과 심화반의 에이스, 이정의 대결이었다.
둘이 대결을 하게 된 사연은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이정이 일방적으로 대결을 신청하였고 주현근이 그 신청을 받아주었을 뿐이었다.
물론 교관인 박한새가 반대했다면 대결이 성사될 리 없었을 터.
하지만 박한새는 오히려 심판을 자처하였다.
“다 준비되셨습니까?”
박한새가 묻자, 주현근이 ‘예!’라고 크게 대답하였고 이정은 아무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시작하십시오.”
그렇게 두 사람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어찌 보면 선배나 다를 게 없는 주현근에게 도발하듯 그리 말하는 이정이었다.
박한새에게조차 반말하는 그였으니, 이런 오만한 태도도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가겠습니다.”
주현근은 이정의 양보를 사양하지 않고서 보법을 펼쳤다.
근접전으로 승부를 볼 생각이었다.
“와, 엄청 빨라!”
“교관님의 첫 번째 제자라더니, 실력이 개쩔긴 하네.”
“속도 자체는 가속 스킬을 가진 이정이랑 거의 엇비슷할 거 같은데?”
사람들은 그의 보법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무공을 어느 정도 배운 그들이었기에 주현근의 보법이 얼마나 고절한지 한눈에 알아봤다.
하지만 정작 대결 상대인 이정의 표정은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챙! 챙!
그의 고유 스킬로 알려진 분신이나 시간 가속 스킬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똑같이 무공으로만 주현근을 상대하였는데, 이정은 주현근의 모든 공격을 완벽히 막아냈다.
“이정은 검도 잘 다루네?”
“재능충이잖아.”
“진짜 세상 불공평하다. 어떻게 B랭크이면서 무공의 재능까지 가지고 있냐.”
“쩝. 주현근 헌터가 이기길 빌었는데, 역시 힘들겠네.”
상황은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흘러갔다.
겉으로만 봐서는 호각처럼 보였지만, 이정은 아직 스킬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반면 주현근은 쓸 수 있는 스킬이 하나도 없었으니, 대결에서 누가 승리할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주현근의 실력도 이 정도인가. 검술이 현란하긴 해도 상대하기는 어렵지 않군.’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정 역시도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주현근의 보법이나 검술은 실로 고절하게 느껴졌지만, 딱 그뿐이었다.
이정은 무언가에 적응하는 속도가 남달랐고, 실시간으로 주현근의 무공에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검술을 조금만 더 배우고 끝을 봐야겠어.’
상대를 농락하고 싶은 생각은 일절 없는 그였다.
그렇기에 주현근의 현란하기 그지없는 검술에 완벽히 적응하고 나면 대결을 종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대결의 승리는 그의 것으로 정해져 있었고 말이다.
갑자기 주현근의 검에서 진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설마…!?’
이정이 눈을 부릅뜨며 당황할 때, 주현근이 휘두른 검이 그의 검에 닿았다.
쨍―!
연수원에서 경험했던 그 일이 똑같이 벌어졌다.
그의 검이 대결 도중에 산산조각이 나버린 것이다.
‘어떻게 벌써 검기를!’
이정이 눈을 부릅뜰 때, 주현근이 그의 목에 검을 겨누며 말했다.
“계속 승부를 이어가시겠습니까?”
잠시 고민했다.
시간 가속과 보법을 동시에 펼친다면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 뒤에 분신을 사용하면 맨손으로도 충분히 주현근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검기라고 해서 무적은 아니었으니.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이기고 싶지는 않았다.
“……패배를 인정하겠다.”
결국 이정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였다.
“와아아! 뭐야, 방금?”
“이거 진짜 예상치 못한 반전인데?”
“어떻게 검을 부순 거지?”
“검기 아니야?”
“검기라고? 진짜 그게 실존하는 거였어?”
“당연히 실존하는 거지. 설마 교관님이 거짓말했겠냐! 근데 저렇게 빨리 검기를 익힌 사람이 나올 줄은 몰랐네.”
“개쩐다. 검도 잘라버리는 절삭력이라니!”
두 사람의 대결을 구경하던 사람들은 크게 경악하였다.
검기라는 기술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미 그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공을 익힌 상태에서 보면 오히려 비현실적인 게 바로 검기였다.
신체 내부에서 내공을 운용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외부로 발출한다니?
내상이라도 입을까 두려워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주현근은 내상이라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가장 먼저 검기를 발현하고야 말았다.
실로 엄청난 반전이 아닐 수 없었다.
주현근이 검에 아지랑이를 일으켰을 때, 나는 작게 감탄하였다.
‘처음 한 거치고는 선명한데?’
역시 무공의 재능은 주현근이 최고인 거 같았다.
이렇게 빨리 검기를 배운 것도 놀라운데, 심지어 검기가 선명하기까지 하였다.
“현근아, 잘했다.”
두 사람의 대결이 끝난 후.
나는 주현근을 불러서 어깨를 두드리며 칭찬하였다.
“운이 좋았어요.”
“검기가 운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닌데?”
“아, 검기 말고 상황이 운이 좋았다는 말이에요.”
운이 좋았다는 것.
단순히 겸손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주현근의 수준을 100% 파악하고 있는 나조차도 그의 승리를 확신하지 못했었으니.
‘사실 원래는 검기를 사용해도 이정이 이기는 싸움이었지.’
실전이었으면 아마 이정이 이겼을 것이다.
검이 깨졌다는 사실에 아무리 당황했어도 목숨이 달려있다면 가만히 당해줄 이정이 아니었으니.
하지만 뭐가 됐건 승리는 승리였다.
당사자인 이정부터 깔끔하게 인정한 일이었으니, 운으로 치부할 수는 없으리라.
“검기는 어떻게 그렇게 빨리 배우게 된 거야?”
“그냥 형이 하라는 대로 했더니 됐어요.”
참 쉽게 말하는 거 같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천재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겠지.
뭐 주현근의 경우는 노력의 천재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근데 형,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말해봐.”
“그….”
주현근이 그답지 않게 뜸을 들였다.
“형, 혹시 배후령 있어요?”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주현근이 이런 질문을 던질 줄은 몰랐다.
‘내가 권속으로 삼을 때, 현근이에게도 뭐가 떴나 보지?’
하긴, 계약이 이루어졌는데 주현근만 모를 리는 없었다.
아마 나처럼 홀로그램 형태로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았을까 싶다.
‘마음 같아서는 현근이에게도 진실을 말해주고 싶지만….’
내가 미래에서 회귀했다는 것.
그리고 성좌의 능력을 일부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주현근에게만큼은 이 모든 비밀을 밝히고 싶었다.
권속이니 100% 신뢰할 수 있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변수는 최대한 줄이는 게 좋다.’
세상엔 별의별 스킬이 존재하였다.
내가 아무리 주현근을 100% 신뢰한다고 해도 다른 무언가에 의해 내 비밀이 탄로 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웠다.
“비각성자인 내가 무슨 배후령이야?”
“그, 그렇죠?”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벅벅 긁는 그를 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언젠가 비밀을 말해줄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군.’
이정과 주현근의 대결은 김수민에게 엄청난 자극이 되었다.
‘주현근이 검기를 사용한다는 말은 나도 곧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겠지?’
검기.
박한새가 처음 보여줬을 때부터 그녀는 검기를 배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었다.
그녀에게 부족한 공격력을 보완할 수 있는 기술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공을 익히면 익힐수록 오히려 검기는 멀게만 느껴졌다.
신체 외부로 내공을 발출한다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검을 끼고 살면 된다고?’
그런데 그 어려운 검기 발현을 주현근은 너무도 쉽게 해냈다.
심지어 그 과정도 허탈할 정도로 쉬웠다.
그냥 검을 끼고 살면 되었으니까.
주현근을 부러워한 김수민은 곧장 그를 따라 하였다.
검을 끼고 살며 매일같이 검술 수련에 열중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귀가하는 그녀에게 누군가가 접근하였다.
DX 길드와의 일이 떠오른 그녀는 경계심을 담아 다가오는 사내를 노려봤다.
검집에 손을 올린 채였는데, 실제로 그녀는 언제든 검을 뽑을 기세였다.
‘설령 DX 길드의 그 사람과 비슷한 실력을 가졌다고 해도, 이번에는 결과가 다를 거다!’
DX 길드의 황연호에게 당했던 굴욕을 그녀는 아직 잊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현재의 DX 길드는 길드장의 실종 사태로 완전히 난장판이 된 상황이었다.
황연호가 다시 그녀의 앞에 나타나는 일도 없었고 말이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바뀌었다고 해서 지난날에 겪었던 굴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황연호의 협박에 아무 대응도 하지 못했던 자신을 떠올리며 기세를 뿜어냈다.
설령 상대가 황연호보다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이전처럼 무기력하게 당할 일은 절대 없으리라.
“워워. 진정하십시오.”
“…누구시죠?”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적대감을 표출하는 그녀를 보며 사내가 당당한 태도로 명함을 건네주었다.
멸절 길드의 인재영입 팀장 정우진.
김수민은 명함을 보고 속에서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멸절 길드는 그녀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멸절 길드에서 저에게 무슨 일이죠?”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지 않은 채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어느 길드의 사람인지 알면서도 그렇게 까칠하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용건이나 말씀하세요.”
퉁명스러운 그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정우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혼잣말로 작게 투덜거렸다.
“무공에 의존하는 헌터 주제에 유세 떠는군.”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녀의 귀에는 뚜렷하게 들렸다.
무공을 배운 덕에 오감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다름이 아니라, 김수민 씨를 저희 길드로 영입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지금 멸절 길드에 들어오시면….”
정우진이 영입 제안을 건네자 김수민은 더 듣지도 않고 거절 의사를 밝혔다.
“거절할게요.”
“너무 조급하신 거 아닙니까? 아직 조건을 다 듣지도 않으셨는데, 거절이라니. 그러다 나중에 후회하십니다.”
“후회할 일은 없을 거예요.”
“화영 길드가 꽤 좋은 조건을 제시했었나 봅니다. 아니면 이능관리부 때문인가?”
김수민은 구태여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가 화영 길드에 가입한 이유를 정우진에게 설명할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저는 이만 가볼게요.”
“잠시만. 아직 제 용건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무공과 관련해서 몇 가지 알고 싶은 게 있습니다.”
“……?”
“저희 길드장께서 무공이란 것에 관심이 생겼다지 뭡니까. 일단 호흡법이란 것부터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대가는 충분히 지급해드리겠습니다.”
정우진의 그 같은 말에 김수민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멸절 길드도 무공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건가.’
그녀는 내심 멸절 길드를 비롯한 다른 10대 길드들이 무공에 관심을 두지 않기를 바랐었다.
안 그래도 막강한 힘을 가졌는데, 더 강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괜한 바람이었던 듯싶었다.
멸절 길드의 길드장까지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들어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