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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54화 (54/275)

#054화

“알려줄 수 없어요.”

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돈은 충분히 드린다니까. 저희 멸절 길드입니다. 멸절 길드.”

“10억, 아니 그 이상을 준다고 해도 제 대답이 달라질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러자 정우진이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뭐 대단한 비밀이라고 그렇게 꽁꽁 숨기는 건지 이해가 안 가네. 이봐요, 김수민 씨. 돈 벌기 싫습니까?”

“말했을 텐데요. 알려주기 싫은 게 아니라, 알려줄 수 없는 거라고.”

물론 무공을 알려주는 게 가능하다고 해도 그녀는 멸절 길드에 무공을 알려줄 생각이 없었다.

복수 대상인 멸절 길드가 강해지는 것은 원치 않았으니까.

“다른 헌터들도 그 소리를 하더니, 김수민 씨도 똑같은 소리를 지껄이시네. 심화반이라고 다를 게 없나 봐?”

“뭐 됐습니다. 어차피 웬만한 정보는 다 빼냈으니까.”

멸절 길드는 이미 그녀 말고도 여러 헌터들과 접촉을 한 모양이었다.

아마 심화반을 운운한 걸 보면 기초반에서 정보를 판 이들이 나온 게 아닐까 싶었다.

‘무공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고 해도 과연 박한새 교관 없이도 무공을 배울 수 있을까?’

그녀는 회의적으로 봤다.

기초반이든, 심화반이든 박한새의 도움 없이 호흡법을 익힌 사람은 없었다.

주현근에게 교육받고 있는 기초반 교육생들도 박한새가 격체전력이란 것으로 마력을 일깨워줬기에 호흡법을 온전히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박한새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호흡법을 비롯한 무공을 익히면 어떻게 될까.

열에 아홉은 마력 역류 현상을 겪게 될 것이다.

나머지 한 명도 온전히 무공을 체화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고 말이다.

그렇기에 김수민은 무공을 쉽게 생각하는 정우진의 태도가 같잖게만 느껴졌다.

“김수민 씨, 그러면 다른 제안을 하겠습니다.”

“박한새의 신상에 관한 정보들을 넘겨주십시오. 이건 무공과 관련이 없으니, 알려주는 게 어렵지 않을 거 아닙니까?”

“지금 저보고 멸절 길드의 스파이가 되라는 말인가요?”

“한 달에 500만 원씩 드리겠습니다.”

“뭐라고요?”

“어디서 누구와 만났고 무엇을 했는지. 이런 사소한 정보만 넘겨줘도 월 500만 원씩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김수민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월 500으로 스파이 짓을 하라고?

박한새에 대한 의리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런 요구는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배운 무공의 가치를 생각하면 월 500으로 배신하기엔 터무니없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 달에 1억을 준다고 해도 고민할까, 말까인데.’

물론 1억을 준다고 해도 그녀는 결국에 거절했을 것이다.

부친의 원수인 멸절 길드의 손에 놀아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못 들은 걸로 할게요.”

“신입이시니, 500만 원이 적은 액수는 아닐 텐데, 더 바라시는 겁니까?”

“더 대화하고 싶지 않으니, 이만 가세요.”

“600만 원, 아니 700만 원을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제 갈 길을 갈 뿐이었다.

그러자 정우진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박한새는 무슨 세뇌 스킬이라도 가진 건가? 왜 이렇게 충성심 높은 놈들이 많은 거야?”

정우진의 혼잣말을 들으며 김수민은 피식 웃었다.

‘세뇌 스킬이라. 무공은 그딴 스킬보다 훨씬 위력적이란 사실을 아직 모르나 보네.’

무공을 익히면 실시간으로 강해지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심지어 그 강함의 끝은 감히 상상도 못 할 수준이었다.

이러니 무공을 배우는 사람들은 박한새의 말에 맹목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김수민이 내게 찾아와서는 의외의 말을 건네주었다.

어제 저녁, 멸절 길드의 인재영입 팀장이란 사람이 찾아와 자신에게 어떤 제안을 했는지 이야기해준 것이다.

“멸절 길드가 저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나 봅니다. 김수민 헌터님께 그런 제안까지 한 것을 보면.”

“교관님은 어떻게 그리 태연하시죠?”

김수민은 내 반응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인지,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마 그녀는 내가 멸절 길드에 분노를 토해내길 바랐던 거 같았다.

“예상했던 일인데, 구태여 이 이상의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보법 사용자가 하나둘 늘어나면서, 김범수 협회장과의 신경전도 사실상 나의 승리로 끝이 난 상황.

내 명성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었다.

이제는 10대 길드들도 나의 존재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오히려 생각했던 것보다 반응이 늦었지.’

내가 직접 가르치는 교육생들의 실력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성장 중이었다.

신경철의 경우, 모두가 지켜보는 곳에서 압도적인 성장세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인터넷 여론도 이제는 신경철을 C랭크 헌터로 인정해야 한다고 부르짖는 상황.

무공으로 인한 패러다임 변화는 이미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예상했던 일이라고요?”

“기득권을 가진 자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아마 멸절 길드뿐만이 아니라, 다른 10대 길드들도 저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을 겁니다.”

레이븐 길드나 오성 길드도 안심할 수는 없었다.

두 길드도 본질적으로 따지면 기득권이었다.

나의 존재가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해가 된다고 판단된다면 언제든 나를 적대하려 들 것이다.

“낙원과 볼케이노도 교관님을 탐탁지 않게 여길까요?”

“아마도 그럴 겁니다.”

내 말을 들은 그녀가 눈을 빛냈다.

멸절, 낙원, 볼케이노.

이렇게 세 길드가 바로 그녀의 원수였다.

‘김수민 헌터의 부친이 죽은 이유도 저 세 길드 때문이라지?’

정확한 사연은 나도 알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 세 길드는 빌런이 된 김수민의 주 타깃이었다.

이성은이 김수민을 미리 처단하지 않은 것만 봐도 그녀의 복수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말이다.

“아, 감사 인사를 빼먹었군요. 스파이가 되라는 멸절 길드의 제안을 받고 저에게 바로 말씀해주신 거,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감사할 필요 없어요. 애초에 그딴 황당한 제안 따위 들어줄 헌터는 아무도 없을 테니까요.”

아무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돈의 유혹이란 것은 그리 쉽게 이겨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무공의 가치를 생각하면 500만 원이란 돈은 아무것도 아닌 돈인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말이야.’

가만 생각하면 조금 웃겼다.

얼마나 나를 얕잡아 봤으면 겨우 월 500만 원으로 내 제자나 다를 게 없는 김수민을 포섭하려고 한 것일까?

멸절 길드 상부에서 무공의 가치를 정확하게 판단했다면 월 500만 원이 아니라, 월 1억도 충분히 질렀을 텐데 말이다.

김수민을 보내고 나는 홀로 생각에 잠겼다.

‘기득권을 가진 헌터들의 견제는 날이 갈수록 심해질 거다.’

헌터 협회만 봐도 이미 몇 차례에 걸쳐 도발을 자행하고 있었다.

협회장 본인부터가 기자회견을 통해 무공은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선언할 정도였으니까.

10대 길드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기초반, 심화반 가릴 것 없이 사실상 모든 교육생이 10대 길드에게서 영입 제안을 받았다.

나를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10대 길드가 E랭크, 심지어 F랭크 헌터에게까지 영입 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가만히 지켜봐서는 안 되겠지.’

김수민을 포섭해서 나를 견제하려는 행동은 시작에 불과하였다.

방관한다면 그들은 더 똘똘 뭉쳐서 나를 견제하려 들 터.

보법 사용자가 늘어나고 검기 사용자까지 생기기 시작한다면 더더욱 그들은 공격적으로 바뀔 것이다.

그렇기에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우선 89기 헌터들부터 확실하게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겠어.’

1년에 총 4차례 진행하는 헌터 자격시험.

얼마 전에 또 한 차례의 헌터 자격시험이 진행되었다.

무려 수백 명이나 되는 새로운 헌터가 생겨나게 된 것.

이 수백 명의 새로운 헌터들이 연수원 과정을 거쳐서 10대 길드를 비롯한 여러 길드에 들어가게 될 거다.

그런데 만약 이 수백 명의 헌터를 전부 이능관리부로 끌어들인다면?

전부는 아니어도 절반 이상을, 그것도 C랭크 이상의 잠재력을 가진 유망주 위주로 끌어오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10대 길드의 위상도 크게 흔들리게 되겠지.’

유망주는 그 길드의 미래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유망주를 많이 포섭할수록 미래 잠재력이 높다고 봐도 무방하였다.

그렇기에 나는 최대한 많은 유망주를 포섭하기로 마음먹었다.

인재를 모으는 것이 최고의 공격이자 방어였으니까.

홍준기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과연 연수원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그도 다른 헌터들처럼 처음 각성했을 때는 세상의 주인공이 된 듯, 두려울 게 없었었다.

헌터 자격시험도 최고의 성적으로 통과하고 연수원에서는 역대급 유망주 소리를 들으며 10대 길드 중에서 원하는 곳을 선택하는 미래를 꿈꿨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였다.

육체 능력은 평범하였고 스킬은 아예 있지도 않았다.

사실상 헌터 자격시험을 통과하는 것조차 버거운 수준이었다.

실제로 그는 8번이나 낙방을 경험하였었다.

이번에 헌터 자격시험에 통과한 것도 순전히 운이었다.

시험을 보던 날 컨디션이 좋아서 고블린을 다 잡아낸 덕에 통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운이 연수원에서도 과연 이어질 수 있을까?’

홍준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헌터 자격시험은 하루 안에 끝나고 마는 거니, 운이 작용할 여지가 존재하였다.

하지만 헌터 연수는 무려 6주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6주 동안 던전 사냥도 10번 넘게 진행될 것이고, 헌터 간의 대결도 수도 없이 치러질 터.

홍준기로선 이 같은 연수 과정을 떠올릴 때마다 암담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설마 꼴등 하는 건 아니겠지?’

차라리 헌터 자격시험에서 불합격하는 게 낫지, 연수원에서 꼴등 하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연수원에서 최하위 랭킹을 기록한 헌터의 경우 갈 수 있는 곳이 이능관리부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던전 사냥을 목적으로 하는 각 길드에서 꼴등 할 정도로 실력이 낮은 이를 영입할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아니 이제는 이능관리부 들어가는 것도 빡세다던데….’

홍준기의 입에서는 다시금 한숨이 나왔다.

공무원 헌터.

원래는 홍준기처럼 아무런 스킬이 없고 신체 능력도 평균 이하의 헌터들만 선택하던 길이었다.

상위 헌터가 될 잠재력을 가진 헌터들이 봉급도 적고 대우도 박한 공무원 헌터의 길을 선택할 일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박한새란 인물이 이능관리부에 들어가면서 이능관리부의 위상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상승하였다.

지난 분기, 신입 헌터의 수만 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무려 200명.

456명의 신입 헌터 중 절반에 가까운 수가 이능관리부를 선택하였다.

그리고 언론에서는 이번 89기의 경우 300명 이상이 이능관리부를 선택할 것으로 예측하였다.

이능관리부의 위상이 그 정도로 올라간 것이다.

[저는 무조건 이능관리부 가려고요. 무공 배워야죠 ㅋㅋ]

[ㅇㅈ. 돈은 적게 벌어도 일단 강해지는 게 먼저입니다.]

[보법이랑 그 검기라는 거. 두 가지만 배우고 나중에 10대 길드 들어가면 최고의 선택일 듯.]

[ㅋㅋㅋ 그거 좋은 방법인데요?]

헌터 자격시험에서 친해진 헌터들이 모인 단톡방에서 이능관리부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연수원이 끝나면 어떤 길드에 가입할 것인가 하는 물음에 전부 이능관리부를 거론한 것이다.

[님들아. 그 이야기 들으셨어요? 이능관리부에서 곧 무공 아카데미 3기를 뽑는다는데요?]

그러다 홍준기는 누군가의 글을 읽고 눈을 부릅떴다.

이능관리부에서 무공 아카데미 인원을 새로 뽑는다는 내용이 적혀있었기 때문이었다.

‘무공 아카데미 3기를 뽑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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