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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56화 (56/275)

#056화

무공 아카데미의 위상이 무섭게 높아지자 멸절 길드는 위기감을 느꼈다.

10대 길드로서 기득권의 일원인 그들은 새로운 변화에 민감하였다.

그리고 박한새가 일으킨 이 새로운 변화는 이미 그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신입 헌터 300명.

길드의 유망주가 될 수도 있는 신입 헌터들을 무려 절반 이상이나 채간 것이다.

“일단 이능관리부에 따져봐야겠어.”

안지호는 이능관리부를 찾았다.

연수 과정도 끝마치지 않은 신입 헌터를 대규모로 채용한 일에 대해 따지기 위함이었다.

“멸절 길드도 헌터 라이선스가 없는 각성자들과 미리 계약을 따내지 않았습니까? 저희는 헌터 라이선스를 취득한 인원들과 계약을 한 것이니 문제 될 것은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가 직접 나섰음에도 ‘저희 잘못 없어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능관리부는 무공 아카데미를 통해 입지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인 게 분명하였다.

‘이렇게 나오시겠다?’

안지호는 코웃음 쳤다.

평소에 10대 길드에게 저자세로 일관하던 이능관리부였다.

무공 하나 때문에 기세등등한 모습이 여간 꼴사나운 게 아니었다.

“다른 길드들 다 불러.”

“10대 길드의 길드장들 전부 다 부르라고.”

이능관리부가 89기 헌터를 300명이나 채간 것은 다른 길드에게도 좋게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사실상 그들의 인재를 뺏긴 셈이었으니까.

하여 안지호는 10대 길드의 길드장들을 불러 무공 아카데미와 관련해서 회의하고자 하였다.

“무슨 일로 우릴 부른 거지?”

새벽 길드의 길드장이 팔짱을 낀 채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10대 길드라지만 마냥 서로 사이가 좋지만은 않았다.

경쟁하는 사이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중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 다른 분들이 도착할 때까지 얌전히 기다려주십시오.”

“별일 아니면 바로 일어날 거다.”

시간이 지나 열 명의 길드장이 모두 회의장에 도착하였다.

물론 오성 길드의 경우 아직 길드장이 외국에 나가 있는 상태였기에 부길드장이 대리 참석하였다.

“이능관리부에서 헌터들을 새로이 300명이나 뽑아 갔다는 소식은 여러분도 들으셨을 겁니다.”

그가 그렇게 물꼬를 트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서 이능관리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능관리부의 행태에 분노를 느낀 것은 멸절 길드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짓이지. 정부 부처가 우수 인재를 독점하다니!”

“애초에 정부 부처에서 무공이라는 사기극에 놀아나는 것도 우습기 그지없어.”

“그러게 말입니다. 무공이 뭐기에 저리도 난리들인지.”

“설령 무공이란 게 사기극이 아니어도 이능관리부의 행태는 반드시 제동을 걸어야 합니다. 벌써 두 차례나 인재를 독점하지 않았습니까?”

아직도 무공이란 것을 회의적인 시선으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상위 헌터이기에 더더욱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무공의 원리는 그들이 생각하기에 절대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무공이 사기든, 사기가 아니든 이능관리부가 인재를 싹쓸이하는 것은 견제해야 할 일이었다.

당장 올해 길드에 들어온 신입 헌터와 작년에 들어온 신입 헌터의 질이 확연하게 차이 나고 있었으니.

“안지호 길드장. 그래서 우리끼리 모여서 뭘 하자는 겁니까?”

그때, 레이븐 길드의 길드장, 한다윗이 무표정한 얼굴로 안지호에게 물었다.

“이능관리부에서 제멋대로 행동하지 못하게 우리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 막을 것인지 그걸 묻는 겁니다.”

“일단 가볍게 보이콧을 할까 합니다.”

“보이콧이라고요?”

“우리의 협조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줘야지요.”

안지호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국가 차원에서 워낙 혜택을 많이 받는 10대 길드였기에, 그들은 의무 아닌 의무가 많았다.

그 의무 중에는 빌런을 잡는 것이나, 방치된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

그리고 북쪽에서 남하하는 야생 몬스터를 막는 것도 포함이 되어있었다.

지금 안지호는 보이콧을 해서 이 같은 일을 하지 말자는 말을 한 것이다.

“민간의 피해가 클 텐데요.”

한 길드장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자, 안지호가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애초에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의무 아닌 의무라지만, 사실 빌런을 잡는 거나 야생 몬스터를 잡는 것은 이능관리부의 일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

“맞아. 우리가 언제까지 정부의 뒤처리를 해줘야 해?”

안지호의 말에 낙원 길드장과 볼케이노 길드장이 바로 동의를 표하였다.

그들이 담당하는 던전은 주로 경기도 북부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북쪽에서 내려오는 야생 몬스터를 처리할 때 가장 출동을 많이 하는 것도 그들이었다.

명분만 생기면 언제든 이런 귀찮은 의무들을 때려치우고 싶은 그들이었기에 안지호의 말에 바로 동조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보이콧이라. 저희 레이븐 길드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괜히 박한새라는 자와 척을 지고 싶지도 않고 말입니다.”

“저희 오성 길드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모든 길드가 안지호의 뜻에 동참한 것은 아니었다.

오성과 레이븐 길드가 박한새와 척지기 싫다는 이유로 단호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다.

10대 길드가 일개 비각성자의 눈치를 보는 실로 보기 드문 진귀한 광경이 펼쳐진 셈이었다.

두 길드 외에도 다른 길드들 또한 정부와 적대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하였다.

‘멍청한 것들 같으니.’

정부 부처가 자신들의 권익을 해치고 있는데 뭐 저리 고분고분하게 행동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상관없다. 볼케이노와 낙원, 이렇게 두 길드만 뜻을 함께해도 정부를 압박하기엔 충분해.’

그들이 보이콧해서 민간의 피해가 발생하기 시작한다면 사람들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까?

보이콧을 한 세 길드도 물론 책임소재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비난하고 욕할 곳은 정부였다.

그중에서 이능관리부가 비난의 중심이 될 것이리라.

마침내 그날이 왔다.

무공 아카데미 입학시험!

진세희는 주먹을 불끈 쥐며 다짐하였다.

‘무조건 합격할 거야!’

안 그래도 그녀는 무공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었다.

예전에 신경철이 목동 경기장에서 DX 길드원과 대결했을 때, 몰래 신경철을 응원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 같은 무공에 대한 호기심은 박한새와 1:1 대결에서 패배한 이후, 더욱 강해졌다.

[beagle_sehee 오늘이 바로 무공 아카데미 입학시험 날이에요!

결과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정말 꼭 합격하고 싶어요. 여러분 저를 꼭 응원해주세요~!

#이능관리부 #무공아카데미 #3기교육생 #박한새]

SNS에 출사표를 던진 그녀는 당당한 발걸음으로 삼성동에 있는 이능관리부의 본부로 향하였다.

“진세희 아니야?”

“오성 길드에서도 진짜 시험을 보는구나.”

“시험에서 합격하면 나도 그럼 진세희와 같이 무공을 배우는 건가?”

“와, 진짜 예쁘다.”

시험장에는 상당히 많은 인파가 몰려있었다.

무공에 호기심을 가진 헌터는 진세희뿐만이 아님을 증명하는 듯하였다.

‘엄청 치열하겠지?’

여기 모인 인원이 전부 합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부 합격시킬 거면 애초에 입학시험 같은 걸 치르지도 않았을 테니.

그들 전부가 외부 인사라는 것을 생각하면 아마 상당한 난이도로 시험을 진행하지 않을까 싶었다.

“진세희, 너는 그 박한새라는 놈과 대결에서 졌는데도 무공을 배우러 온 거냐?”

그때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레이븐 길드 소속의 정의현이라는 사내였다.

“정의현 오빠.”

“쪽팔리지도 않냐. 비각성자한테 패배하고 무공인지 뭔지 하는 것의 가르침까지 받는다는 게?”

정의현의 말에 진세희는 뾰로통한 얼굴로 볼을 부풀렸다.

박한새에게 진 일은 별로 자존심 상하지 않았지만, 정의현에게 이런 말을 듣는 것은 기분이 나빴다.

“그러는 오빠는? 오빠도 무공 배우려고 여기 온 거 아니야?”

“나? 무공 배우려고 온 거 아닌데?”

무공을 배우러 온 게 아니라면 시험장에는 왜 왔단 말인가.

그녀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박한새라는 그 건방진 비각성자 놈의 실력을 테스트해 보려고 왔다.”

진세희는 그 말을 듣고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누가 누굴 테스트하겠다고?

“나도 못 이긴 사람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같은 B랭크라고 실력이 같지는 않단다. 세희야.”

당연히 실력은 같지 않다.

정의현보다는 진세희가 훨씬 더 강하니까.

하지만 진세희는 구태여 그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괜히 자신에게 대결을 신청하면 귀찮을 테니까.

“잘해봐. 오빠가 이길 리는 절대 없겠지만 말이야.”

“웃기는군. 내가 질 거 같다고?”

“걱정해서 하는 말인데, 박한새 님은 오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해.”

“박한새 님? 비각성자를 그렇게 부르다니. 헌터로서 수치스럽지도 않나?”

“내 스승이 되어줄 사람인데, 님 자 붙이는 게 어때서?”

“스승? 그럼 만약 그 비각성자 놈이 나에게 진다면 그때는 어쩌려고?”

“만약에 그런다면 내가 오빠를 스승처럼 모셔줄게.”

그럴 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녀는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자 정의현은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네 입으로 직접 말했다? 내 제자가 되겠다고?”

“박한새 님을 상대로 승리한다면 그렇다는 거지. 승리하면.”

“좋아. 내가 반드시 이겨서 너를 제자로 만들어주마.”

진세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의현의 제자가 된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야.’

그녀는 정의현의 실력을 알고 박한새의 실력을 알았다.

박한새가 일부러 져주지 않는 한, 승부는 정해져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무복이 멋있는데?”

“옆에 있는 저 사람은 신경철 아니야?”

“부럽다. 언젠가 나도 저기에 낄 수 있을까?”

“무공이란 것에 자질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정의현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박한새를 찾고 있는데, 정의현이 이죽거리듯 말하였다.

“드디어 왔나 보군. 주제도 모르고 센 척하는 비각성자 나리가 말이야.”

진세희는 자신도 모르게 정의현과 거리를 벌렸다.

괜히 정의현 옆에 붙어있다가 박한새에게 안 좋은 취급을 당하긴 싫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거리를 벌렸을 때, 마침 박한새가 사람을 헤치고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

“오랜만에…….”

“이봐. 당신이 박한새란 사람이지?”

박한새와 눈이 마주치자, 진세희는 반갑게 인사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녀를 방해하는 사람이 있었다.

정의현이 하필 그녀보다 먼저 박한새에게 시비조로 말을 건 것이다.

“예. 제 이름이 박한새입니다.”

“얼굴 보기가 참 힘들더군. 비각성자 주제에 말이야.”

그가 그 말을 꺼낸 순간, 세상이 멈춘 것 같은 적막감이 찾아왔다.

이곳에 모인 헌터들은 전부 무공을 배우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무공의 창시자인 박한새를 얕잡아 보는 발언에 격분할 수밖에 없었다.

“저 새끼는 뭐 하는 새끼지?”

“자기도 무공 배우러 온 주제에 저딴 소리를 지껄이다니. 별 웃기는 놈이 다 있네?”

“관종 새낀가 보지.”

하지만 이러한 사람들의 반응과 다르게 박한새의 반응은 태연하였다.

“누구신데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나? 레이븐 길드의 차기 에이스, 정의현이다.”

정의현의 이름을 들었는데도 박한새의 반응은 달라지지 않았다.

마치 정의현의 이름값이 별거 아니라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무슨 용건으로 지금 저에게 말을 거시는 겁니까?”

“너, 나랑 한판 붙자.”

사람들이 어떤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지 전혀 개의치 않은 채, 그는 당당하게 대결을 신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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