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8화
북한, 정확히는 개성 지역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자, 이능관리부는 곧바로 대응에 나섰다.
5분 대기조를 보내 몬스터 남하를 저지시킨 것이다.
“차관님! 개성에서 내려오는 몬스터의 숫자가 5천 마리 이상입니다!”
“5천 마리라고요!?”
남하하는 몬스터 무리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전해지자 이능관리부 간부진은 큰 충격을 받았다.
최소 3성.
어쩌면 4성급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한국으로 오는 몬스터의 숫자만 수천 마리라는 것은 최소 10곳 이상의 던전이 터졌다는 사실을 의미하였으니 말이다.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맞습니다. 저희 이능관리부 요원들만으로는 방어할 수가 없습니다.”
이재현 차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보기에도 이능관리부 힘만으로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무리했다가는 괜히 아까운 공무원 헌터들의 목숨만 날아갈 것이다.
이럴 때는 10대 길드의 도움을 받는 게 현명한 처사였다.
-죄송합니다만, 지금은 저희도 여력이 없습니다.
“도움을 주실 수 없단 말입니까?”
가장 먼저 멸절 길드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파주를 세력권으로 둔 길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도움 요청에 멸절 길드의 안지호 길드장은 뻔뻔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저희도 인력이 부족한 걸 어떡합니까?
“인력이 왜 부족한 겁니까?”
-던전 브레이크가 임박한 던전들이 많아서 레이드 뛰느라 바쁩니다.
“지금 수천 마리의 몬스터가 남하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급한 일이 어디에 있다고 나 몰라라 하시는 겁니까?”
-외부에서 터진 던전 브레이크보다 내부에서 터질 던전 브레이크가 더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이재현 차관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안지호 길드장의 말이 핑계라는 사실을 그 역시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멸절 길드를 압박하기에는 명분이 부족하였다.
외부에서 터지는 던전 브레이크보다 내부에서 터지는 던전 브레이크가 더 위협적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이 멸절 길드를 포기하기로 한 이재현 차관은 다른 길드에게도 지원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안지호 길드장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갖가지 핑계를 대며 그의 도움 요청에 비협조적으로 나왔다.
‘보이콧을 하겠다는 건가.’
10대 길드에서 최근 이능관리부의 행보를 불편한 눈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은 그도 알고 있었다.
신입 헌터를 300명이나 빼앗겼으니 독이 바짝 오른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시민의 목숨을 인질로 삼아버리니.’
도저히 용서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400명의 신입생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며 나와 강사진 모두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교관들을 기초반과 초급반 중 어디로 보낼지도 정해야 했고 어떤 과목을 가르칠지도 정해야 했다.
그러니 하루하루가 바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정신없는 나날을 보낼 때, 이재현 차관이 나를 찾아왔다.
“박한새 교관님. 교관님도 들으셨을지 모르겠지만 얼마 전, 개성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했습니다.”
“그 소식은 저도 들었습니다.”
파주에서 몬스터가 출몰했는데 나라고 그 소식을 듣지 못했을 리 없었다.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렸을 때, 지금 이 시기에 위기가 터진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회귀자 이성은이 부재함으로써 생길 나비효과는 무시할 수 없겠지만 말이야.’
실제로 회귀하자마자 기억에 없던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지 않았던가.
내 기억만 믿고 100% 안심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우선 선발대에 해당하는 몬스터 무리는 이능관리부가 자체적으로 막고 있습니다만, 중과부적이 될 거 같습니다.”
“다른 길드의 지원은 받지 못한 겁니까?”
“아무래도 보이콧을 한 거 같습니다.”
나비효과가 또 이렇게 발생하다니.
역시 회귀 전의 기억만 믿고 안심할 수는 없는 거 같았다.
“보이콧이라. 10대 길드가 전부 보이콧을 한 겁니까?”
“전부는 아니고 일부 길드에서는 협조하고 있습니다.”
“그럼 가장 비협조적으로 구는 곳은 어디입니까?”
“멸절과 볼케이노, 낙원 이렇게 세 길드입니다.”
하필 세 길드 모두 김수민의 원수들이었다.
‘뭐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인가. 회귀 전에도 부도덕으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던 길드들이니.’
태생부터 부도덕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김수민의 부친을 배신하고서 그 세력을 갈가리 찢어먹은 게 바로 세 길드였으니까.
“대응책은 마련된 상태입니까?”
“일단 휴가를 간 인원을 전원 복귀시켜서 파주로 보낸 상태입니다.”
부도덕한 길드들 때문에 고생하는 것은 역시 공무원 헌터들이었다.
“지금 시점에 저를 찾아오신 이유도 몬스터 때문인 거 같은데, 맞습니까?”
무공 아카데미에 소속된 헌터는 무려 400명이 넘었다.
새롭게 들어올 400명까지 합하면 총 800.
헌터 한 명, 한 명의 도움이 절실한 이재현 차관으로선 이 800명의 헌터가 구원자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파주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선, 교관님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그러니 부디 저희를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죄송하지만, 아직 교육이 끝나지 않은 저희 아카데미 교육생들을 위험 지역에 보낼 수는 없습니다.”
내 말에 이재현 차관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마음 같아서는 계약을 물리고 싶을 것이다.
기존의 이능관리부 소속이었던 200명의 공무원 헌터들이라도 파주로 보내고 싶을 테니.
하지만 계약을 물린다는 것은 나를 이능관리부에서 내치겠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S랭크 헌터보다 귀한 인재인 나를 내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니 계약을 포기하는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단, 저와 심화반의 교육생들은 실전 교육도 할 겸, 야생 몬스터를 잡는 데, 도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약간의 도움을 준다고 하니, 그는 반색하면서도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심화반의 숫자가 겨우 48명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그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48명도 아니지. 교관으로 4명이 빠졌으니 말이야.’
김수민, 이정, 고정희, 신경철.
지금의 심화반은 핵심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인원이 빠진 상태였다.
이러니 이재현 차관으로선 믿음이 안 갈 수밖에 없으리라.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와 심화반 교육생들이 어지간한 길드보다 큰 역할을 할 겁니다.”
C랭크 헌터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지만 나는 자신 있었다.
내가 직접 가르친 교육생들은 웬만한 C랭크 헌터만큼의 활약을 선보일 것이라고.
그리고 C랭크 헌터가 50명 가까이 포함된 집단은 한국에서도 몇 없었다.
진세희가 무공 아카데미에 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김민경은 강렬한 위기감을 느꼈다.
‘박한새의 여인’ 자리를 노리는 그녀의 입장에서 진세희는 무서운 경쟁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진세희는 심화반이 아닌, 초급반에 들어갔다.
심화반이 아니라는 말은 박한새와 마주할 일이 별로 없다는 뜻.
그렇기에 김민경은 안심할 수밖에 없었다.
‘김수민도 사라졌으니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안 넘어오는 거야? 남자 맞아?’
김민경은 몇 번이고 박한새에게 대시하였다.
하지만 그녀가 어떤 유혹을 해도 박한새는 넘어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치 철벽을 대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실력이 늘어야 하는 건가?’
고정희도 그렇고 김수민도 그렇고.
박한새가 관심을 가진 여성들은 하나같이 상당한 수준의 무공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김민경으로선 박한새가 무공 실력이 뛰어난 여성을 좋아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땀 흘리는 건 질색인데!’
속으로 투덜거려도 박한새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받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수련에 매진하였다.
그렇게 수련에 매진하던 어느 날, 박한새가 그녀를 조용히 불렀다.
‘호호, 역시 한새 씨도 남자는 남자구나.’
김민경은 드디어 박한새가 자신에게 넘어왔다고 확신하였다.
자신이 무공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고 반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박한새는 이상한 환약 같은 것을 건네주며 뜬금없는 말을 했다.
“드십시오. 내공을 늘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예? 이게 뭐죠?”
“지금 말고 결계 안에서 드셔야 효과가 더 좋을 겁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갑자기 환약을 주며 내공을 운운하다니.
무엇보다 실망스러운 것은 박한새가 자신에게 고백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후우. 어쩔 수 없지.’
일단 그녀는 박한새의 말에 따라 결계에 들어가 환약을 복용하였다.
‘어!? 이 기운은 뭐지?’
환약을 복용하기 무섭게 단전에서 내공이 강렬하게 들끓었다.
김민경은 단전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기세에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집중하였다.
그러자 단전의 내공이 늘어나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한새 씨는 도대체 나에게 뭐를 준 거야?’
이게 말로만 듣던 영약인가 싶었다.
단전의 내공이 이렇게나 극적으로 늘어난 것을 보면 말이다.
“7년 정도 늘어났군요.”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김민경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관님!”
“어떻습니까. 영약을 복용한 소감이?”
“너무 좋아요! 힘이 넘치는 거 같아요!”
그녀의 답변에 박한새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저에게 귀한 영약을 주신 것은 혹시…?”
관심 있어서 그러는 거 아니냐고 물으려던 그녀에게 박한새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김민경 헌터님은 곧 저와 함께 파주로 갈 겁니다.”
박한새의 말을 들은 그녀는 황당함을 금치 못하였다.
파주가 아니라 다른 곳이었으면 데이트하자는 뜻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하필 파주라니?
지금 시점에 파주를 가자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라고 모를 수 없었다.
“물론 단둘이 가는 것은 아니고, 심화반 교육생 전원과 함께 갈 예정입니다.”
다른 교육생까지 데리고 가겠다는 그의 말에 김민경은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파주로 가는 게 두려우시다면 잔류를 선택해도 따로 불이익이 주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잔류라니요. 저를 어떻게 보시고!”
그녀는 절대 그럴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사실 몬스터와 전투하는 것.
원래라면 최대한 피하고 싶었을 일이었다.
‘나, 강해졌어.’
하지만 무공을 익힌 지금은 달랐다.
더는 몬스터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호기롭게 몬스터와 싸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공이란 걸 배우면서 그녀에게도 호승심이란 게 생겨난 것이다.
‘무엇보다 이럴 때,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새 씨가 나를 더 좋게 볼 거야!’
“무조건 교관님과 같이 갈 거예요!”
김민경의 대답을 듣고 나는 눈에 이채를 띠었다.
심화반 교육생 중에 잔류를 선택하는 이들이 몇 명 정도 나올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중에서 김민경은 거의 100%라고 생각했었는데, 전혀 의외의 답변을 하였다.
‘회귀 전에는 분명 재능이 있어도 그 재능을 써먹지 않던 사람인데, 이번 삶에서는 왠지 다르게 보이는군.’
김민경은 유현경과 비슷한 과였다.
게으른 천재.
재능이 있는데도 그 재능을 썩히는 인물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녀에게 줄 영약이 조금 아깝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카르마 상점에서 구매한 영약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김민경의 적극성을 보니 그녀에게 쓴 카르마가 전혀 아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뭐 때문에 이렇게 바뀐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조금 더 신경을 써줘야겠어.’
나는 재능이 있다고 무조건 편애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재능보다는 노력을 더 높게 평가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김민경은 우수한 자질에 노력까지 더해가고 있으니, 나로선 그녀를 예의주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