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9화
파주.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파주를 몬스터 소굴이라 생각하였다.
뉴스에서 허구한 날 몬스터 피해를 당했다고 보도하니 위험천만한 곳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파주 사람들은 파주가 위험한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비무장지대와 인접한 곳을 제외하면 몬스터 피해를 겪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 파주 사람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몬스터의 위협에 노출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우우우우-!
도심 한복판에서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평범한 늑대의 울음소리는 아니었다.
몬스터, 그중에서 외뿔 늑대라는 이름의 몬스터가 내지르는 포효 소리였다.
그리고 외뿔 늑대가 있는 바로 근처 놀이터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꼬마 아이 두 명이 숨어있었다.
“형, 어떻게 해?”
“괜찮아. 곧 헌터들이 와서 우리를 구해줄 거야!”
진우는 미친 듯이 두려웠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은 채 겁먹은 동생을 달랬다.
어른들은 이미 어디론가 다 대피한 상황.
적막한 도심에서 몬스터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는 것만큼 두려운 상황도 없었다.
하지만 동생이 옆에 있는데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온몸을 잠식하는 공포를 애써 이겨내며 진우는 늑대의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크르릉.
순간 마주치고 말았다.
진우의 눈이 멀리 있는 외뿔 늑대의 빨간 눈과 정면으로 딱 마주친 것이다.
‘그, 그냥 엎드려 있을걸!’
덜덜!
진우는 동생이 옆에 있음에도 떨림을 주체하지 못하였다.
당장이라도 외뿔 늑대에게 잡아먹힐 거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제발! 제발 그냥 가줘!’
외뿔 늑대를 향해 진우는 마음속으로 애걸복걸하였다.
거리가 머니 못 본 척 넘어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몬스터가 어린아이라고 해서 봐주는 일은 절대 없었다.
“혀, 형! 늑대들이 오고 있어!”
외뿔 늑대 여섯 마리가 마치 사냥감을 사냥하는 듯, 사방으로 퍼져서 접근해오고 있었다.
놀이기구에서 내려가, 다른 곳으로 도망친다고 해도 중간에 잡히고 말리라.
‘히어로님! 제발 저희를 구해주세요!’
진우는 양손을 꽉 잡으며 열심히 기도하였다.
물론 그가 기도하는 것은 헌터였다.
TV란 것을 처음 봤을 때부터 진우가 동경하던 대상이 헌터였고,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지금도 헌터를 동경하였다.
헌터는 상상 속의 만화 캐릭터가 아닌, 현실 속에 존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위기 속에 빠진 지금도 진우는 애타게 헌터를 찾았다.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되게 가까이서 들리는 늑대의 울부짖는 소리.
불안에 떨고 있던 동생은 가까이서 늑대가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결국 울음을 참지 못하였다.
“으아앙!”
“조, 조용히 해.”
“으아아앙!”
동생의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진우도 더는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눈물을 흘리며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도중, 진우는 보고 말았다.
외뿔 늑대 한 마리가 자신들이 있는 놀이기구 쪽으로 뛰어오르는 장면을.
‘엄마! 아빠! 미안해요! 진수를 구하지 못했어요!’
죽음을 직감한 진우는 천국에 있을 부모님을 향해 외쳤다.
동생을 지키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때, 기적이 벌어졌다.
무언가 잘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높이 뛰어오른 외뿔 늑대가 거짓말처럼 땅으로 푹 꺼졌다.
‘뭐, 뭐지?’
눈물을 닦으며 진우는 늑대가 떨어진 장소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검을 든 정체불명의 사내가 서있었다.
사내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외뿔 늑대의 목이 잘려나갔다.
외뿔 늑대 여섯 마리는 순식간에 차디찬 시체로 변해있었다.
‘멋있다!’
아이가 보기엔 잔인한 광경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진우가 느낀 감정은 ‘동경’이었다.
‘정말 많군.’
나는 검에 묻은 몬스터의 피를 털어냈다.
어찌나 많은 몬스터를 베었는지, 5억 이상의 가치를 지닌 질풍검이 벌써 무뎌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 정도야 7성급 이상의 던전이 터졌을 때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회귀 전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몬스터들을 상대한 경험이 있는 나였다.
죽음을 경험하기 직전에는 혼자서 9성급 몬스터 수백 마리를 죽인 적도 있었다.
지난 경험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몬스터 숫자는 별로 많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심지어 1성급 몬스터라면 말할 것도 없지.’
간혹 2성급이나 3성급 몬스터도 보였지만 나한테는 1성이나 3성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오히려 야수형 계열인 1성급 몬스터보다 고블린이나 코볼트 같은 몬스터가 더 상대하기 편하기도 했다.
“아저씨!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왜 대피소에 가지 않고 여기 있었던 거니?”
“대피소가 어디 있는지 몰랐어요!”
“그럼 여기 계신 아저씨를 따라가렴. 대피소로 안내해줄 거야.”
나는 어느새 근처로 다가온 이능관리부 직원에게 아이들을 맡겼다.
내가 직접 안내소로 데려가고 싶었지만, 아직 몬스터의 위협은 해소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니 아이들은 이능관리부 직원에게 맡기고 나는 다시 몬스터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아저씨, 이름이 뭐예요?”
“박한새란다.”
“나중에 사인해주시면 안 돼요?”
“그래. 안전해지면 꼭 해주마.”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다시 차에 올라탔다.
“바로 이동해주시죠.”
“휴식을 취하시지 않으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운전대를 잡은 이능관리부 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벌써 10시간째였다.
나 혼자서 수백 마리의 몬스터를 사냥한 것.
직원으로선 내 체력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는 멀쩡합니다.”
무공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전투 지속력이었다.
호흡법을 사용하면 체력과 내공이 빠르게 정상화되었고, 덕분에 무공을 익히지 않은 헌터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오랫동안 전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즉시 당동 공원으로 이동하겠습니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몸 상태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는데, 조금 지친 것 말고는 그 어느 때보다 컨디션이 좋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조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도 확인해볼까?’
구태여 무전을 쓸 필요는 없었다.
내가 가진 능력으로도 다른 조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느려, 느려! 고블린 놈들아, 너희들 이것밖에 안 되는 놈들이었냐!
-키, 키키킥!
-느리다고 이놈들아. 하하하!
강병철의 시야로 다른 조의 상황을 확인한 나는 피식 웃었다.
‘아주 고블린을 갖고 놀고 있군.’
권속 후보 중, 51% 이상의 지분율을 확보한 권속 후보의 경우 내가 원할 때 언제든 그의 시야를 공유할 수 있었다.
강병철의 경우 지분율이 무려 90%대였기에 적은 카르마로도 시야 공유가 가능하였다.
‘무공을 익히고 첫 실전이라 기분이 들뜬 것은 알겠는데, 자만심을 갖게 될 수도 있으니 나중에 주의를 줘야겠어.’
어찌 됐든 강병철 조는 안심해도 될 거 같았다.
몬스터의 수는 제법 많았지만, 보법을 활용하여 숫자의 불리함을 최대한 상쇄하고 있었다.
강병철의 활약으로 몬스터의 수도 빠르게 줄고 있으니, 위험한 일이 벌어질 일은 없을 것이다.
‘한번 다른 곳도 살펴볼까?’
조장들은 일부러 지분율이 51% 이상인 이들로 선정하였다.
지분율이 높다는 것은 실력이 더 뛰어나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51%가 넘어야지만, 내가 실시간으로 상황을 체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필요 이상 간격을 벌리지 마. 어이! 내 말 안 들리냐!
-부상도 용납하지 않겠다! 박한새 교관님의 명성에 흠집을 내는 놈은 내가 절대 가만 안 둬!
다른 조 역시 상황은 순조롭기 그지없었다.
대부분이 E랭크, F랭크 헌터임에도 그들은 웬만한 C랭크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한 명이 아무리 못해도 30마리 이상은 잡았던 것이다.
<이 영상을 보면 무공의 실체를 알 수 있을 겁니다.>
박한새가 44명의 교육생들과 함께 파주로 향한 그날 저녁, 너튜브에 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영상 속에는 검을 든 여덟 명의 사내가 사투를 벌이는 모습이 비쳤다.
사투를 벌이는 상대는 고블린이었는데, 주변에 쓰러져있는 시체까지 합하면 100마리는 족히 되어 보이는 숫자였다.
영상의 첫 장면을 본 사람들은 여덟 명의 사내가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입고 있는 복장부터 하위 헌터의 그것과 크게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E랭크 또는 F랭크급의 하위 헌터 여덟 명이 100마리가 넘는 고블린과 전투를 벌인다?
누구나 안 좋은 상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전투 양상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과 정반대로 흘러갔다.
-덤벼라! 더 덤벼!
-키에엑!
사방으로 포위된 상태.
일반적인 하위 헌터라면 패닉에 빠지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똑같은 모양의 검을 찬 여덟 명의 사내는 패닉에 빠지기는커녕 오히려 여유로운 모습으로 고블린의 수를 하나하나 빠르게 줄여갔다.
마치 10년 이상의 연륜을 쌓은 헌터들처럼 능숙하기 그지없는 모습들이었다.
[와 ㅋㅋㅋ 이거 뭐지?]
[무공 개쩐다 ㄷㄷㄷㄷㄷ]
[저기 가운데에서 소리 지르는 사람, 나 아는데 강병철이라는 놈임. 참고로 F랭크.]
[F랭크가 고블린을 농락한다고?]
[ㅁㅊ 저게 어떻게 봐서 F랭크냐?]
[무공을 익히면 다 이렇게 강해지는 건가요? 진짜 엄청나네요.]
[이 영상 말고 다른 팀 영상도 있음. 그것도 한번 봐보셈 ㄱㄱ]
영상은 하나가 아니었다.
몬스터들은 도심 한복판에 출현하였기에 아파트나 빌라 같은 곳에서 찍은 것으로 보이는 영상들이 많았다.
심지어 드론으로 찍은 영상도 있었는데, 모든 영상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무공을 익힌 헌터들이 몬스터 무리를 압도하는 장면들이 꼭 하나씩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가장 압권은 100 VS 1을 찍는 박한새의 전투였다.
[ㅅㅂ 이게 어떻게 비각성자냐고 ㅋㅋㅋㅋ]
[박한새! 그는 신인가? 박한새! 그는 신인가?]
[ㄹㅇ 무신임.]
[혼자서 몬스터 수십 마리를 그냥 썰어버리네 ㅋㅋ]
[저 정도 실력이면 무조건 A랭크 이상일 듯.]
이미 박한새의 실력은 여러 차례에 걸쳐 증명되었다.
하지만 지금 영상 속 박한새의 실력은 이전까지 보였던 실력보다 훨씬 더 강해 보였다.
A랭크와 비교하는 댓글에 어느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는 것만 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멸절 길드의 길드장, 안지호는 너튜브 영상을 보고서 분노를 터뜨렸다.
개성에서 수천 마리의 몬스터 무리가 남하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기뻐하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이능관리부의 항복을 받아낼 수 있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비각성자 한 명 때문에 그의 계획이 무산되고 말았다.
이능관리부 전체가 나서도 역부족이었던 일을 비각성자 한 명과 평소에는 안중에도 두지 않았던 E랭크, F랭크 헌터들이 해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말이 돼? 이딴 게 어떻게 비각성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