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화
유명 브랜드의 아파트 옥상.
그곳에서는 영상이 아닌, 두 눈으로 직접 박한새의 활약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벌써 몇 시간째지?”
“적어도 10시간 이상 지난 것은 확실하다.”
“10시간 이상 전투를 이어가도 전혀 지쳐 보이지 않는군.”
“조금 지치는 거 같다가도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바로 체력을 회복하는 거 같다.”
“비정상적인 체력이야.”
“애초에 박한새라는 인물 자체가 비정상적이다.”
“하긴, 일개 비각성자가 저런 체력과 민첩성, 근력을 갖는 게 말이 되지는 않아.”
“마력도 그렇지.”
아파트 옥상에서 박한새의 전투를 지켜보는 그들은 일반적인 사람들과 달리 박한새의 전투력을 자세하게 분석하고 있었다.
마치 스카우터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때 가운데에 검은 모자를 쓴 사내가 살벌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아주 위험한 놈이다.”
그의 말에 양옆의 두 사람이 동의하듯 거들었다.
“오 회장이 우려하는 이유를 알 거 같군.”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놈이 활약하면 활약할수록 신도를 구하기는 더 어려워질 거야.”
신도라는 단어가 나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그들은 어느 한 길드에 소속된 스카우터가 아니었다.
종교, 정확히는 특정 성좌를 찬양하는 집단에 소속된 이들이었다.
“그분께서도 원하고 계신다. 저놈의 목숨을.”
사내가 말한 그분의 존재는 다름 아닌, 파롤이었다.
악신이라 불리는 파롤을 신으로 모시는 집단이었던 것이다.
참고로 그들 집단에서 신도를 구하는 방법은 간단하였다.
바로 힘.
더 강한 힘을 대가로 주겠다고 약속하고서 파롤의 신도로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박한새의 명성이 커지고 무공이란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신도를 모으는 일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였다.
무공이란 게 세상에 알려진 것이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그랬다.
일개 비각성자가 B랭크 헌터를 이길 정도로 강한 무력을 보여주니, 힘을 원하는 이들로선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놈을 어떻게 처리할지다. 오 회장의 말처럼 저놈은 A랭크급의 무력을 가지고 있다.”
오 회장이라 불리는 이는 그들이 소속된 집단에서 일종의 한국 지부장이라 볼 수 있었다.
DX 길드를 뒤에서 후원하고 펜테리움이라는 헌터 전용의 각성제를 유통한 것이 바로 오 회장이었다.
그런 오 회장이 최근 들어 집중하고 있던 게 박한새에 관한 조사였다.
박한새가 말한 무공이란 것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이 무공을 익힌 사람은 얼마나 빨리 강해지고 어느 선까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10대 길드가 박한새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던 시절부터 오 회장은 박한새를 자세하게 연구하였었다.
그리고 오 회장이 분석해본 결과, 박한새의 전력은 A랭크 이상으로 추정되었다.
일개 비각성자가 실로 믿을 수 없는 무력을 가진 셈이었다.
‘오 회장의 눈이 잘못된 건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어.’
상부에서는 여전히 오 회장의 분석을 신뢰하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믿기 어려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직접 관찰한 세 사람만이 뒤늦게 오 회장의 말을 신뢰하게 되었다.
“지치기라도 했다면 기회를 노렸을 텐데 아쉽군.”
박한새는 현재 100마리가 넘는 고블린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 누구의 지원도 받지 않은 채, 혼자서 100마리와 싸우고 있는 것인데, 위태롭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압도하는 것은 박한새였다.
100마리가 넘었던 고블린의 수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데 반해 박한새는 조금도 지친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기회를 노릴 거면 지금이라도 더 많은 몬스터를 끌어와야 한다.”
“난 반대한다. 지금은 놈을 노릴 때가 아니야. 오늘은 놈의 실력을 파악했다는 것에…….”
말을 하던 사내가 갑자기 무언가를 보고 흠칫 몸을 떨었다.
“왜 그러지?”
“잠깐, 방금 저놈이 우릴 본 거 같았는데?”
“일개 비각성자가 이 거리에서 우리의 존재를 파악한다고? 그런 게 가능할 리 없다.”
“설령 눈이 좋다고 해도 우리를 평범한 일반인으로 봤을 거다. 위기를 느낄 이유는 없어.”
박한새와 시선이 마주쳤다고 주장하는 사내의 말에 다른 두 사람이 강하게 반박하였다.
현재 그들이 있는 곳은 박한새가 전투를 벌이는 장소와 최소 500m 이상 떨어져 있었다.
심지어 10층이 넘는 아파트 옥상이었으니, 한창 전투를 벌이는 박한새가 그들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일개 비각성자가 100마리의 고블린을 압도하는 지금의 상황도 비정상적이긴 마찬가지 아닌가.’
동료들의 반박에 사내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왠지 이번만큼은 자신의 감이 틀렸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원래 던전은 하나가 터지면 주변 던전도 연쇄적으로 터지는 법이었다.
하지만 던전이 몇 성급이냐에 따라 그 주변의 범위가 달라졌다.
이능관리부에서 파악한 정보에 따르면 개성에서 터진 던전은 3성급에 불과하였다.
‘개성에 3성급 이하의 던전이 많았던 건가? 몬스터의 수가 엄청나군.’
고작 3성급 던전이고, 한국이 아닌, 북한 지역에서 터진 던전 브레이크인데도 파주에 출몰하는 몬스터는 끝도 없었다.
이재현 차관이 괜히 호들갑 떤 것이 아닌 건 확실한 듯싶었다.
‘그래봤자, 우리가 나선 이상 금방 상황이 정리될 테지만 말이야.’
내가 키운 44명의 제자들.
이들은 회귀 전의 기준으로 치면 이류 무인 수준의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
현재 시점에서 헌터 랭크와 비교하면 C 이상, 아니 B와도 능히 겨룰 수 있었다.
물론 실질적인 전투력이야 B랭크 헌터들이 월등히 높긴 했다.
B랭크 이상의 헌터들이 가진 스킬들은 절대 무시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B랭크 헌터들은 각자 하나 이상의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공격력 하나에 몰빵한 유리 대포라든가, 아니면 체력이 조루라든가.
반면 무공을 익힌 내 제자들은 속도면 속도, 체력이면 체력, 뭐 하나 부족한 게 없었다.
심지어 김민경, 강병철 같은 극소수의 인재는 거의 검기를 배우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이들이 검기까지 배우고 나면 부족한 공격력까지 확충하는 셈.
[파롤의 졸개를 처리하십시오. 0/3 카르마 +50,000]
100마리가 넘는 고블린 무리와 한창 싸우던 도중이었다.
갑자기 떠오른 퀘스트.
나는 그 퀘스트를 보자마자 주변을 샅샅이 훑어봤다.
그러자 멀리 떨어진 옥상에서 나를 바라보는 세 명의 사내를 볼 수 있었다.
‘파롤의 졸개 놈들이군.’
세 사람을 보는 순간 직감하였다.
그들이 내 숙적, 파롤의 졸개라는 사실을.
‘파롤의 졸개 놈들이 이번 사태에 개입하려는 건가?’
별로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애초에 파롤의 졸개가 낀 시점에서 좋은 징조가 어디 있겠냐마는, 파롤의 졸개가 개입한다면 엄청난 피해도 각오해야 했다.
곧 상황이 종료될 것으로 예상되는 파주 사태가 더 길어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자칫 하다간, 내 제자들이 죽을 수도 있다.’
던전 브레이크를 막는 일에 희생이 없는 경우가 드물기는 했다.
하지만 겨우 3성급 던전 브레이크에서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이런 곳에서 죽게 하려고 심화반 교육생들을 데려온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저들의 개입을 막아야겠어.’
꼭 퀘스트 때문만은 아니었다.
제자들을 위해서라도 저들의 개입을 차단할 필요가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저들의 개입을 막을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것.
즉, 내가 직접 손을 써서 저들을 제거하는 게 가장 확실한 길이었다.
“허억, 허억.”
“끼에엑!”
고블린과 사투를 벌이던 나의 움직임이 조금씩 느려졌다.
진짜로 지친 것은 아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연기였다.
약한 척, 미끼를 던진 것인데, 아쉽게도 야산에 숨어있는 파롤의 졸개들은 지금 당장 나를 공격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한 모양이지?’
아니면 아직 나를 제거할 생각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파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저들은 모를 테니까.
‘너희들이 오지 않으면 내가 간다.’
고블린의 수가 10마리로 줄어들었는데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나를 공격할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하지만 저들이 공격하지 않는다고 나까지 공격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파르르-!
내 검이 진동하더니 내 눈에만 보이는 아지랑이 같은 게 검 표면에 보이기 시작하였다.
검의 표면에 떠오른 아지랑이는 다름 아닌, 검기였다.
검기를 일으킨 상태로 크게 한 번 휘두르니, 사방을 포위하고 있던 고블린들의 몸이 두 개로 양분되었다.
고블린과의 전투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단 일 검에 십여 마리의 고블린이 즉사하였다.
고블린을 모두 처리했다는 사실에 기뻐할 틈도 없이 나는 정면을 향해 번개처럼 달려갔다.
내가 향한 곳은 파롤의 졸개로 추측되는 세 명의 사내가 있는 아파트 옥상이었다.
‘네놈들이 누구든, 이 자리에서 반드시 죽게 될 거다.’
세 사람의 정체가 무엇인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무력인지, 그런 것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9성급 던전은커녕 8성급 던전도 열리지 않은 상태였기에 파롤의 졸개들도 내가 회귀 전에 경험했던 것만큼 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강한 놈도 기껏해야 중급 마인 수준에 불과할 터.’
물론 12사도와 같은 몇몇 예외적인 존재가 있었지만, 파롤이란 성좌를 상대하는 일에 리스크가 없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파롤의 졸개를 처단할 기회를 놓치느니, 리스크를 감수하는 게 맞았다.
‘애초에 직감이 반응하지도 않는 걸 보면 전혀 위험할 게 없어 보이지만 말이야.’
주현근에게 빌린 스킬, 직감을 사용한 결과, 위기는 감지되지 않았다.
이러면 안심해도 좋을 것이리라.
“우리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눈치를 챈 거지!?”
“무공이란 것은 단순히 전투력만 강화시켜주는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는 나를 보며 그들은 당혹감에 휩싸였다.
내가 자신들을 발견한 것도, 발견하자마자 공격을 감행한 것도 그들에겐 그저 당혹스럽기만 할 것이다.
“잠깐만! 왜 공격하려는 거지? 우리는 당신의 적이…. 크윽!”
붉은 모자를 쓴 사내가 같잖은 연기를 하려고 했지만, 나는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다.
검기가 가득 실린 나의 일 검에 그는 팔에 긴 자상을 입은 채 뒤로 정신없이 물러났다.
“다짜고짜 공격이라니!”
“이거 완전히 미친놈이었군!”
말하는 것만 보면 애꿎은 피해자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괴물처럼 변하는 그들의 얼굴을 보면 누구도 애꿎은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빨리 본체를 보일 줄은 몰랐는데.’
원래였으면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해서 기본적인 스킬만 사용했을 터.
나의 존재가 그만큼 위험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그래봤자, 의미는 없다.’
왼쪽에서 오크처럼 거대한 팔이 내 얼굴로 날아왔다.
오른쪽에서는 반대로 여성의 팔처럼 가녀린 팔이 내 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양쪽에서 날아오는 공격은 실로 위력적이었다.
그대로 맞을 경우, 즉사할 수도 있을 정도로 강력한 위력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나는 굳이 그 공격들을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왼쪽 다리만 살짝 숙인 채로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허억!”
공격을 날렸던 두 사람이 되레 비명을 질렀다.
극강의 공격력을 가진 검기에 당하고 만 것이다.
“사방으로 도망쳐!”
“저놈의 위험성을 회에 알려야 한다!”
단 한 수로 나의 실력을 간파한 것인지, 그들은 싸울 생각을 포기하였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도망치는 것을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끝까지 쫓아가서 반드시 죽이고 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