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화
박한새를 향한 공격이 수포로 돌아간 순간, 임태웅은 직감하였다.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하여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다른 쪽으로 갔군!’
임태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다른 두 동료와 다르게 기동력이 부족한 편이었다.
아파트 옥상으로 뛰어오던 박한새의 기동력을 생각하면 얼마 도망치지도 못하고 붙잡혔을 게 뻔한데, 그저 운이 좋았다.
‘구태여 멀리 도망갈 필요 없지. 원래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니.’
근처 야산에 들어가 몸을 숨긴 임태웅은 자신들을 공격하던 박한새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려보았다.
‘도대체 박한새 그놈은 뭐 하는 놈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박한새는 그 먼 곳에서 어떻게 임태웅과 동료들을 발견한 것일까?
그리고 임태웅을 보자마자 공격한 이유는 무엇일까?
‘설마 그놈 뒤에도 성좌가 있는 건가?’
그런 거라면 이해가 갔다.
파롤이 그렇듯, 박한새의 성좌 역시 그들을 제거하라는 식의 지시를 내렸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놈은 비각성자가 아니었나?’
비각성자가 성좌와 계약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물론 박한새만큼 강한 비각성자가 등장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렇게 숨으면 내가 못 찾을 줄 알았나?”
바로 근처에서 들려오는 박한새의 목소리에 임태웅은 눈을 부릅뜨며 경악하였다.
‘설마 내 위치를 알아낸 건가?’
그럴 리는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은신 능력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니까.
“더 도망치지 않을 거면 거기서 죽어라.”
뚜벅뚜벅.
임태웅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박한새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리 봐도 박한새는 임태웅의 위치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도대체 어떻게 내가 있는 장소를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거야!’
지금의 그는 사실상 나무와 완전히 일심동체가 된 상태였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가 숨은 장소가 어딘지 알고 있어도 그를 정확히 찾아내기는 힘들 것이었다.
그런데 박한새는 그가 이쪽에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으면서 정확히 그의 위치를 특정하였다.
이건 박한새에게 전투 능력 말고도 감지 계열의 능력이 더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이 사실을 반드시 회에 전해야 해!’
안 그래도 요주의 인물이었던 박한새다.
그런데 자신들이 알고 있던 박한새의 정보가 한참이나 저평가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박한새가 자신들을 다짜고짜 급습했다는 사실까지 생각하면 반드시 살아서 정보를 전해야만 했다.
‘어차피 들킨 이상 더 숨어봤자 의미 없다. 이렇게 된 김에 기습을 날려서…!’
서걱.
임태웅의 생각은 거기서 끊어졌다.
‘이딴 같잖은 위장이 내게 통할 거라고 생각했나?’
통할 리가 없었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건 나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애초에 나는 눈으로 상대를 쫓는 게 아니었다.
마력.
파롤의 졸개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더러운 마력을 찾아서 놈들을 쫓는 것이었다.
‘이제 한 놈 남았군.’
세 놈 중에 산에 숨어있던 놈을 처리했으니, 이제 하나만 남았다.
나는 이미 그가 도망친 방향을 알고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보법을 펼쳤다.
그러자 시간을 가속한 것처럼 주변 환경이 급속도로 변하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산속이었는데 내 몸은 어느덧 상가 건물 옥상에 와있었다.
“어, 어떻게 여기까지?”
건물 옥상에 숨어있던 사내는 나를 보며 크게 당황하였다.
내가 올 것을 전혀 예상치 못한 거 같은 반응이었다.
“DX 길드 소속인가?”
사내는 내 물음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의문 가득한 눈으로 나를 노려볼 뿐이었다.
‘분근착골을 해봐야 하나?’
고문을 해볼까?
잠시 그런 생각을 해봤지만, 지금 시점에 얻을 정보는 별로 없을 거 같았다.
어차피 지금 시점에 파롤의 졸개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해외에서 활동 중이었으니까.
‘그래도 오 회장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으면 나쁘지 않은데.’
오 회장.
DX 길드의 실질적인 수장이었다.
현재 화영 길드에게 부탁하여 DX 길드의 뒷조사를 하고 있었지만 오 회장에 관한 정보는 아무리 조사해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일단 붙잡고 생각하자.’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서 사내에게 달려들 때였다.
갑자기 그의 윗옷이 찢어지더니, 그의 등에서 징그럽게 생긴 날개 하나가 튀어나왔다.
‘박쥐의 날개인가.’
석화의 눈, 히드라의 침과 마찬가지로 박쥐의 날개는 파롤의 졸개들이 곧잘 사용하는 스킬이었다.
주로 생존기로 많이 사용하였는데 원거리 스킬이 없다면, 아무래도 하늘로 도망치는 상대를 쫓는 게 쉽지 않았다.
그리고 원거리 스킬이 없는 것은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자칫하다간, 사내를 놓칠 수도 있다는 뜻.
그가 날개를 펴고 도망치기 전에 서둘러 보법을 펼쳤다.
하지만 이미 그는 옥상에서 뛰어내린 상태였다.
‘놓칠까 보냐!’
내공을 가득 실어 땅을 박찼다.
그러자 사내와의 거리가 조금 좁혀졌다.
물론 여전히 검이 닿는 거리는 아니었다.
적어도 5m 이상은 떨어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에게는 원거리 스킬이 없지만 원거리 스킬을 대용할 아이템이 있었다.
‘질풍검!’
내가 스킬을 사용하자, 검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검풍과 유사한 효과를 지닌 아이템 스킬이었다.
나는 그 아지랑이를 그대로 적을 향해 날려 보냈다.
질풍검에 직격으로 맞은 사내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나는 그 비명을 듣고 오히려 미간을 찌푸렸다.
‘안 죽은 건가.’
비명을 질렀다는 것은 일단 살아는 있다는 소리.
죽일 각오로 질풍검을 사용한 나였으니 별로 좋은 결과는 아니었다.
[파롤의 졸개를 처리하십시오. 2/3 카르마 +50,000]
실제로 퀘스트 창은 변함이 없었다.
죽었으면 퀘스트가 완료되었다는 알람이 떴을 터.
여전히 2/3에서 변함이 없는 것을 보면 살아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역시 목숨이 질긴 놈들이야.’
혀를 내둘렀다.
분명히 목이 있을 장소로 정확하게 검풍을 날렸는데 어떻게 살아난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파닥파닥!
그때, 하늘 위에서 무언가가 내려왔다.
나의 질풍검에 당했던 바로 그 사내였다.
‘죽지는 않았어도 크게 다친 모양이군.’
중급 마인 따위가 내 손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게 다시금 증명되었다.
“뭐야, 늙은이 갑자기 왜 그래? 벌써 뒤질 나이가 된 거야?”
오 회장이라 불리는 이가 고통에 찬 신음을 내지르자, 정면에 앉아있던 백인 여성이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물었다.
하지만 오 회장은 백인 여성의 질문에 대답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자신이 고통을 느낀 이유를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임태웅이 왜 갑자기 죽은 거지? 설마 박한새 그놈인가?’
그가 지병을 앓고 있어서 통증을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임태웅의 몸속에 심어두었던 사역마의 존재가 소멸하여 고통을 느낀 것이었다.
참고로 사역마가 소멸했다는 것은 한 가지 사실을 의미하였다.
기생하고 있던 숙주의 죽음.
즉, 임태웅이 죽었기에 그의 사역마가 소멸한 것이다.
“파주로 갔던 신도들이 전부 파롤의 곁으로 돌아갔소.”
하급 신도도 아니고 중급 신도 세 명이었다.
노인이 속한 조직, 여명회 전체로 따지자면 별거 아닌 피해일 수 있지만, 자원이 적은 여명회의 한국 지부에서는 상당한 피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오 회장의 말에 백인 여성은 뭐가 그리 웃긴지 박장대소하였다.
“깔깔! 늙은이, 부하 관리 진짜 못한다. 왜 늙은이 밑에 있는 부하들은 죄다 하루살이야?”
“…부하가 아니오. 나 역시도 다른 이들과 똑같은 파롤의 신도일 뿐.”
“누가 늙은이 아니랄까 봐, 재미없게 말하네. 부하든 동료든 관리 못해서 죽인 건 사실이잖아? 깔깔!”
비웃는 백인 여성의 모습에 오 회장은 미간을 좁히다가 이내 화제를 전환하였다.
“박한새의 짓인 거 같소.”
“박한새? 그놈이 늙은이 부하를 왜 죽여?”
백인 여성도 박한새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오 회장이 이미 상부에 박한새의 위험성을 이야기하며 즉각 제거해야 한다고 보고를 올린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한국으로 온 것도 박한새를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루드밀라 벨로프.
백인 여성은 여명회에서 요인 암살을 전문으로 맡은 인물이었던 것이다.
“모르겠소. 하지만 파주에서 신도들을 죽일 자는 박한새밖에 없을 것이오.”
여명회가 주로 활동하는 나라에서도 여명회가 어떤 단체인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시아, 그것도 한국이라면 말할 것도 없으리라.
이러니 오 회장으로선 박한새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세 명의 신도들에게 내린 마지막 명령이 박한새를 감시하는 것이었으니까.
“오,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는데? 박한새가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거잖아!”
“이건 긍정적으로 생각할 일이 아니오. 안 그래도 박한새, 그자로 인해 신도를 모으기가 얼마나 어려워졌는지 아시오?”
DX 길드의 길드원인 서용석이 박한새의 제자에 의해 일방적인 패배를 경험한 것도 실로 뼈아픈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DX 길드의 길드장이었던 장윤석이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일도 생겼었다.
오 회장을 대신하여 외부의 일을 담당하였던 황연호까지도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였었고 말이다.
이렇게 연이은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박한새의 활약까지 더해지자 한국 지부는 성장 동력까지 잃고 말았다.
박한새가 설령 여명회의 사람을 제거하는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는 반드시 제거해야 마땅한 인물이었다.
“박한새 때문에 DX 길드인지 뭔지가 그 모양 그 꼴이라는 거야?”
“그렇소.”
“깔깔! 늙은이가 능력이 없는 건데, 남 핑계 대서 뭐 해?”
오 회장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루드밀라의 성격은 그와 맞지 않았다.
변장한 그의 외모 가지고 늙은이라 놀리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박한새를 죽이려면 그녀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데.
“그러니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오. 박한새, 그자를 죽여주시오.”
“뭐 좋아. 나도 무공인지 뭔지 하는 것을 직접 보고 싶었는데, 잘됐네.”
“박한새를 너무 무시하진 마시오.”
“지금 나보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야? 성가시게 굴면 나 안 도와준다?”
“깔깔깔! 농담이야. 농담! 늙은이 표정 귀엽네. 놀리는 재미가 있어.”
“꼭 좀 부탁하겠소.”
“나만 믿으라고. 내가 누군지 알잖아?”
루드밀라의 말에 오 회장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성격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녀의 실력 하나만큼은 인정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A랭크 헌터조차 그녀에게 걸리면 죽음을 피할 수 없을 정도였다.
‘박한새는 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군.’
루드밀라가 나선 이상 박한새의 죽음은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
하지만 오 회장은 박한새를 제거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
박한새의 후계자.
즉, 무공을 배운 박한새의 제자들까지 싹 다 제거하고 싶었다.
‘아니, 몇몇은 살려둬야겠지. 무공이란 것을 회에서도 진지하게 연구해야 할 때가 됐으니까.’
여명회 상부에서는 여전히 무공을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오 회장의 발언권이 워낙 약하다 보니, 그의 말을 흘려듣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 회장에게 기회가 열려 있었다.
박한새의 무공을 그가 최초로 여명회에 도입하게 된다면 그의 발언권과 영향력은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게 강해질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