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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66화 (66/275)

#066화

“지금 바깥에 기자들이 쫙 깔렸습니다.”

상황이 종료되었다는 소식이 기자들에게도 전해진 모양이다.

창문으로 바깥을 확인하니, 기자로 보이는 수십 명의 인파가 모여있었다.

“오늘부로 온 국민이 차관님을 주목하게 되겠습니다.”

별다른 피해 없이 수천 마리의 몬스터를 막아냈다.

민간 길드의 도움도 크게 받지 않았으니 더욱더 그 공이 컸다.

이번 던전 브레이크로 이재현은 아마 스타 정치인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저는 어디까지나 감독입니다. 대부분은 선수를 주목하지, 감독을 주목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거야 뭐 예정된 결과였다.

‘대세가 더욱 굳혀지겠어.’

오성과 레이븐이라는 10대 길드조차 조금씩 무공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무공을 배우는 것이 이미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 된 상태.

이번 사태로 그 흐름은 더욱더 가속화될 것이다.

<헌터의 시대는 가라! 앞으로 무림의 시대가 온다!>

<침묵하는 헌터 협회. 무공이 무용하다는 주장은 포기할 것으로 보여.>

<무공의 한계는 어디인가. 박한새, A랭크 헌터에 버금가는 무력을 선보이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벌써 나와 관련된 기사들이 나오고 있었다.

이재현보다 나에 대한 기사가 더 많은 것이, 그만큼 무공을 향한 관심이 높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듯하였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서울로 돌아가기 전.

파주에서 활약하였던 내 제자들을 만나 격려해주었다.

“와! 끝이다!”

“교관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흐흐, 서울로 가면 바로 무공 수련 재개하는 겁니까?”

힘들 만도 한데 모두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심지어 바로 무공 수련을 재개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일단 푹 쉬고 다음 주 수요일부터 다시 나오시면 될 거 같습니다.”

내가 휴식을 권고하자,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저는 무공 수련해야 해서, 딱 나흘만 쉬겠습니다.”

“야, 네 실력에 나흘이나 쉬어? 교관님, 저는 오늘 하루만 딱 쉬고 내일부터 바로 나오겠습니다.”

“나태한 것들. 나는 지금부터 바로 시작할 건데, 쯧쯧.”

원래도 무공에 열의를 가지고 있긴 했다.

근데 실전을 경험하고 나자,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이래서 실전이 답인 건가?’

카르마도 늘릴 겸, 앞으로 실전을 많이 경험하게 해야 할 거 같았다.

집에서 휴식하라고 헌터들에게 해산하라 했더니, 김민경이 혼자 남아서 나를 불렀다.

“박한새 교관님.”

“파주의 영웅이 되신 소감이 어떠세요?”

“글쎄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인터넷에서는 지금 교관님에 관한 이야기로 엄청 시끄럽던데요?”

“교관님 덕분에 저희도 영웅이란 소리를 듣게 되었어요.”

내가 짤막하게 대꾸하니, 그녀가 무엇이 불만인지 살짝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따로 용건이 있는 겁니까?”

“저희 사이에 용건이 있어야 대화를 하나요?”

우리 사이?

제자와 스승의 사이를 말하는 건가.

“교관님, 언제 고백하실 거예요?”

“고백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요?”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왜 맨날 백마 탄 왕자처럼 극적인 순간에 나타나서 저를 구해주신 거예요?”

“…그야 제가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봤으니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상황을 지켜본 게 아니라, 저를 지켜본 거겠죠!”

김민경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는 뒷머리를 긁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현재 김민경의 경우, 지분율이 60%를 넘긴 상황이었다.

지분율이 60%를 넘겼다는 말은 언제든 그녀의 시야로 상황을 볼 수 있다는 뜻.

그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적시에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기능 덕분이었다.

“정말 저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으신 거예요?”

“아무런 감정이 없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게 이성으로서의 감정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냥 저를 제자 중의 한 명으로 본다는 말이죠?”

내가 솔직하게 대답하니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교관님은 이상형이 어떻게 되시는데요?”

“글쎄요. 아직은 제가 연애할 생각이 없어서 이상형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연인이 죽는 것은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멸망의 위기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 한, 연애와 결혼은 포기하리라.

이게 내가 회귀 전에 했던 다짐이었다.

그리고 이 같은 다짐은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러면 언제쯤 연애할 생각이 드실 거 같은데요?”

“최소 5년은 필요할 거 같습니다.”

5년?

솔직히 그것도 짧게 본 것이다.

10년, 아니 20년이 주어져도 과연 목표를 이루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그 정도면 그냥 제가 마음에 안 드는 거 아니에요?”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5년은 너무 긴데….”

5년이라고 말하면 솔직히 포기할 줄 알았는데, 그녀는 마치 5년도 기다릴 것처럼 보였다.

“이거 괜히 정부와 사이만 안 좋아지고 얻은 게 없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보이콧을 하지 말 걸 그랬어.”

“애초에 박한새 그놈이 그리 강할 줄 누가 알았겠나?”

멸절 길드의 간부들은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개성에서 일어난 던전 브레이크로 파주가 큰 위기에 처했을 때, 멸절 길드는 파주를 외면하였다.

이능관리부가 무공 아카데미 하나 믿고 점점 기고만장해지자,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 보이콧을 한 것이다.

하지만 수천 마리의 몬스터가 남하했음에도 이능관리부는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고 사태를 수습하였다.

보이콧을 한 게 오히려 이능관리부의 명성만 더 올려준 결과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정은 보이콧에 참여했던 볼케이노와 낙원 길드라고 다르지 않았다.

“이능관리부에서 단단히 작정했다던데?”

“제길, 이능관리부가 이리도 크게 될 줄이야.”

“앞으로 더 커질걸? 그 빌어먹을 무림인이란 것들이 계속 늘어날 거잖아.”

세 길드는 이번 사태를 겪고서 강렬한 위기감을 느꼈다.

이능관리부의 힘은 절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어쩌면 이능관리부 하나가 10대 길드를 대신할 날이 올 수도 있으리라.

“무공이란 것은 진짜 한계가 없는 것일까?”

“일단, 박한새가 보여준 무력은 A랭크 이상이긴 해.”

“어이가 없네. 비각성자 주제에 A랭크라니.”

“문제는 박한새 그놈만 그리 강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지.”

“이대로 놔두면 위험해. 무공을 익힌 이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우리의 영향력은 줄어들 게 될 거야.”

“영향력이 줄어드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을걸? 협회가 만들어지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정부가 헌터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들 수도 있어.”

보이콧을 하기 전이라면 모른다.

레이븐 길드나 오성 길드처럼 길드원을 보내 무공을 배워 대세에 합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으니.

하지만 이미 그들은 이능관리부와 사이가 나빠질 대로 나빠진 상태였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이능관리부의 힘이 강해지는 것이 좋게 보일 리 없었다.

“우리끼리 이런다고 뭐 달라져?”

“다른 길드들도 부르자고.”

한 간부의 말에 다른 이들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세 길드가 한자리에 모였다.

“여러분. 이능관리부가 더 강해지기 전에 한 번쯤 밟아줄 필요가 있습니다.”

모임을 주최한 안지호가 늘 그랬듯 선동적인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능관리부를 어떻게 밟으려고요?”

“그들의 기세가 오른 것은 무공의 창시자라는 박한새, 그놈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놈을 밟아줘야 합니다.”

“누가 그걸 모릅니까? 하지만 문제는 박한새, 그자를 어떻게 밟냐는 겁니다.”

박한새가 헌터였다면 무슨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던전에서 손을 쓴다면 제아무리 박한새라고 해도 방법이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는 비각성자로, 던전에 들어갈 일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A랭크급에 가까운 실력을 지닌 그를 현실에서 처리하는 것도 불가능했고 말이다.

“대결로 박한새를 눌러주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누가 대결에 나갈 건데요?”

“박한새가 A랭크로 알려졌으니, 아무래도 A랭크 각성자가 나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자와 대결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솔직한 말로 비각성자와 대결하는 것도 쪽팔린데, 만약 무승부로 끝난다면 제 명예가 얼마나 실추되겠습니까?”

“명예가 중요합니까?”

“그러는 안지호 길드장은요. 안지호 길드장이 참교육을 해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저는 그놈과 상성이 안 좋습니다.”

안지호가 뒤로 내빼니, 다른 두 사람도 당연히 뒤로 내뺐다.

A랭크급 무력을 지닌 비각성자와의 대결이라니.

가진 것이 많은 그들로선 최대한 피하고 싶은 대결이었다.

“다른 방법은 또 뭐 없습니까?”

“박한새가 안 되면 박한새의 제자들이라도 눌러줘야지요.”

“글쎄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아니면 협회와 힘을 합쳐서 박한새를 괴롭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겁니다.”

“헌터 협회가 지금까지 뭘 했다고 협회가 무언가를 해줄 걸 기대합니까? 박한새 그자에게 또 망신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결국, 그날 회의는 아무런 소득 없이 끝이 났다.

무공 아카데미는 언제나 그렇듯, 열정이 넘치는 분위기였다.

“거기! 발 신경 안 쓰나!”

“다시 주먹 내지른다.”

신경철이 권법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 미숙한 점은 많았지만, 무공을 배운 기간이 짧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만으로도 훌륭한 성과였다.

“사부님 오셨습니까!”

“오셨습니까!”

다만 어느 순간부터 사부라고 부르더니, 과하게 예를 차리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신경철 교관님, 교육이 끝나면 회의장으로 와주십시오.”

훈련생처럼 우렁차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나는 피식 웃으며 다른 교관들도 불러 모았다.

주현근과 이정, 고정희 그리고 김수민까지.

총 다섯 명의 교관이 나를 대신하여 교육생들을 통제해주었다.

“초급반에서도 보법 사용자가 꽤 많이 늘어났어요.”

가장 먼저 회의장에 입장한 고정희가 그녀답지 않게 침착한 목소리로 보고하였다.

늘 소심한 모습을 보여주던 그녀였는데, 교관이 되고서 조금 당당해진 듯싶었다.

“제가 전에 확인했을 때는 50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몇 명입니까?”

“일주일 동안 30명이 더 생겼어요.”

초급반에서도 벌써 보법 사용자가 생기고 있다니.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새로 합류한 인원들의 성과는 어떻습니까?”

마침 김수민이 들어오길래 김수민을 바라보며 물으니, 그녀가 무심한 어조로 대답하였다.

“아무래도 박한새 교관님의 지도가 없어서 그런지 지지부진한 상태입니다.”

나는 쓰게 웃었다.

격체전력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 이런 점이 골치 아팠다.

회귀 전에는 그래도 절정 고수가 수십 명이나 되고 진법이나 무공 관련 아이템이 많아서 혈도를 뚫는 것쯤은 내가 없어도 충분히 가능했었는데 말이다.

‘무공 아카데미를 세우려면 이 문제도 진지하게 고민해보긴 해야겠어.’

나 없이는 새로운 무인을 양성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만약 내가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는 상황이겠지만, 나는 한시라도 빨리 무공을 보급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지금의 상황을 유쾌하게 바라볼 수만은 없었다.

“기초반도 마찬가지겠죠?”

“예, 마력 감응에 성공한 인원이 두 명밖에 늘지 않았습니다.”

주현근의 답변을 듣고 나는 턱 끝을 쓰다듬었다.

‘역시 마력 흡수를 후원하는 게 나으려나?’

성좌는 자신의 권속에게 스킬을 후원할 수 있었다.

나 역시도 성좌가 맞기는 한 것인지, 카르마 상점에 등록된 스킬에 한해서는 권속에게 후원할 수 있었다.

주현근이 내 권속이고 무공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으니 그에게 마력 흡수를 선물한다면 나의 역할을 대신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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